슈퍼 매치의 기분 좋은 승리 기운이 바다 건너 사이타마까지 이어졌다. K리그 클래식의 명가 수원이 현재 J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우라와 레즈의 '붉은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줬다.

서정원 감독이 이끌고 있는 수원 블루윙즈(한국)가 지난 21일 오후 7시 30분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G조 5라운드 우라와 레즈(일본)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전에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만들며 2-1로 이겨 남은 1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우라와 GK 니시카와, 전반전 슈퍼 세이브 행진

지난 주말(18일)에 K리그 클래식의 맞수 FC 서울을 상대로 빅 버드에서 5-1 대승 잔치를 벌이고 사이타마로 날아간 수원 선수들은 염기훈 주장을 중심으로 K리그 클래식의 자존심을 맘껏 자랑했다.

마침 상대 우라와 레즈가 이 경기를 통해 16강 진출을 향한 희박한 희망을 걸고 있는 터라 더욱 흥미로운 맞대결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프로축구 1부리그 자존심이 유니폼 상징색(수원-파란색, 우라와-빨간색)으로도 충돌하는 것이어서 조편성 결과가 발표되면서부터 팬들의 기싸움이 이어진 것이기도 했다.

이 챔피언스리그 성적은 형편 없지만, 우라와 레즈로서는 현재 4승 2무로 J리그 1위를 굳게 지키고 있기에 1만 3924명의 홈팬들 앞에서 절대로 질 수 없는 경기였다. 하지만 전반전 뚜껑이 열리고 우라와 팬들은 계속 탄식만 내뱉었다.

한국 축구팬에게도 이름이 익숙한 이충성(리 타다나리)이 공격을 이끌고 있었지만 전반전에는 수원의 조직력에 조금도 기를 펴지 못했다. 골키퍼 니시카와 슈사쿠의 연이은 슈퍼 세이브가 아니었다면 일찍 주저앉았을 경기였다.

수원의 측면 공격형 미드필더 서정진과 골잡이 정대세가 우라와 골문을 수시로 위협하며 아찔한 장면을 많이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10분 간격을 두고 터진 서정진의 오른발 슛(19분)과 왼발 슛(29분)은 안 들어간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30분에는 염기훈의 기막힌 찔러주기를 받은 양상민이 왼발 대각선 슛을 낮게 시도했는데 역시 골키퍼 니시카와가 각도를 줄이며 왼발로 겨우 막아냈다. 39분에도 염기훈의 절묘한 찔러주기를 받은 미드필더 권창훈이 골이나 다름없는 날카로운 슛을 시도했지만 니시카와의 선방에 잡히고 말았다.

역전 결승골 카이오, 박지성처럼

이렇게 전반전을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한 우라와 레즈는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이례적으로 세 명의 선수를 모조리 교체했다. 후반전에 부상 선수라도 생길 경우 대체 선수를 들여보낼 수도 없는 형편이 된 셈이다. 그만큼 우라와 레즈 입장에서는 이 경기를 절대적으로 이겨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미하일로 페트로비치 감독은 슬로베니아 국가대표 공격수 즐라탄 루비얀키치를 비롯하여 아베 유키와 우메사키를 한꺼번에 들여보내는 중대 결단을 내렸다. 그 덕분에 69분에 선취골을 뽑아내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공격형 미드필더 다카기 도시유키가 날카로운 대각선 크로스를 올려준 것을 후반전 교체 선수 즐라탄 루비얀키치가 빠져들어가며 이마로 돌려넣은 것이다. 사이타마의 붉은 물결이 일렁였다. 하지만 그 기쁨은 겨우 5분만에 사그라들었다. 수원의 서정원 감독이 더 기가막힌 선수 교체 신공을 한 수 가르쳤기 때문이다.

71분 서정진 대신 들어간 고차원이 그라운드를 밟은지 단 3분 만에 염기훈의 왼쪽 띄워주기를 받아 골문 정면에서 몸을 날리며 헤더 동점골을 뽑아냈다. 마음만 급한 우라와 레즈 수비수들은 어설픈 지역 방어만 고수하고 있었다.

서정원 감독이 쓴 또 하나의 교체 카드가 종료 직전에 빛났다. 후반전 초반 가벼운 부상을 당한 정대세를 대신해 들어간 골잡이 카이오가 88분에 염기훈이 왼쪽 측면에서 올린 공을 향해 달려들어가며 왼발로 슬쩍 방향을 바꾸는 역전골을 터뜨린 것이다. 수원 블루윙즈 주연의 사이타마 챔피언스리그 극장이 만들어진 셈이다.

카이오는 2010년에 한국 국가대표 축구 팀의 주장이었던 박지성이 바로 그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산책 세레머니를 펼쳐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 승리로 수원 블루윙즈는 남은 1경기(5월 5일, vs 베이징 궈안, 수원 빅 버드) 결과와 상관 없이 최소 2위 이상의 순위표를 확보하여 당당히 16강에 올랐다. 3위 브리즈번 로어(호주)와의 승점 차이가 3점밖에 나지 않지만 규정상 맞대결 결과에서 1승 1무(6득점 4실점)로 앞섰기 때문에 승점 계산기를 돌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수원으로서는 어린이날 저녁에 열리는 베이징 궈안과의 홈 경기에서 G조 1위 자리도 노릴 수 있기 때문에 더 활짝 웃을 수 있었다. 그보다 앞서 수원은 오는 26일(일) 오후 4시 대전 시티즌을 빅 버드로 불러 K리그 클래식 8라운드를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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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5 AFC 챔피언스리그 G조 결과(21일 오후 7시 30분, 사이타마 스타디움)

★ 우라와 레즈 1-2 수원 블루윙즈 [득점 : 즐라탄 루비얀키치(69분,도움-다카기 도시유키) / 고차원(74분,도움-염기훈), 카이오(88분,도움-염기훈)]

◇ G조 현재 순위표
베이징 궈안(중국) 10점 3승 1무 1패 5득점 2실점 +3 ******* 16강 진출 확정
수원 블루윙즈(한국) 10점 3승 1무 1패 10득점 7실점 +3 ****** 16강 진출 확정(브리즈번 로어와 승자승 원칙)
브리즈번 로어(호주) 7점 2승 1무 2패 6득점 7실점 -1
우라와 레즈(일본) 1점 1무 4패 3득점 8실점 -5
수원 블루윙즈 서정원 축구 챔피언스리그 역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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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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