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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와 배를 번갈아 타고 가야 하는 긴 여정의 청산도.
 버스와 배를 번갈아 타고 가야 하는 긴 여정의 청산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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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완도항이 있는 완도버스터미널까지 5시간을 가야 하고, 다시 배를 타고 1시간가량을 더 가야 비로소 도착할 수 있는 섬, 청산도(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그만큼 가는 길이 멀고 힘들기에 청산도는 많은 사람에게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섬 혹은 '버킷 리스트(Bucket List)'가 된 섬이다.

지난 11일, 그렇게 가보길 벼르고 벼른 섬이기 때문인지 청산도까지 가는 길은 느리면 느릴수록, 더디면 더딜수록 더 즐거웠다. 먼 길을 가야 했지만, 이 섬이 속속 안겨줄 계절의 아름다움과 섬 마을의 정겨움을 음미할 마음의 설렘은 커져만 갔다. '빙그레 웃을 완(莞)'자를 쓰는 완도의 여객 터미널에서 50여 분 간의 청산도 도청항까지의 뱃길. 눈 시원하게 푸른 남해 바다는 흐린 날씨가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물안개가 자욱한 몽환적 바다로 변신했다. 

여​객선을 휘감아 돌던 바다 안개가 몸에 닿자 4월임에도 차가운 한기가 오싹 느껴졌다. 페리호 여객선 안에 승객용 좌석 대신 널찍한 마루가 있는 이유를 알게 됐다. 많은 승객이 마치 찜질방에 온 것 마냥 뜨끈한 마루에 주저앉거나, 누워 등을 지지면서 섬을 향해 가고 있었다. 

긴 여정이 전혀 아깝지 않은 섬

파시(波市)의 역사와 흔적이 남아있는 도청항 뒷골목 안통길.
 파시(波市)의 역사와 흔적이 남아있는 도청항 뒷골목 안통길.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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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길 축제를 맞아 도청항 주변에 생겨난 작은 장터.
 슬로길 축제를 맞아 도청항 주변에 생겨난 작은 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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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머리가 향한 곳, 섬이 점점 가까워졌다. 마침내 청산도다. 아담한 양식장과 어선 뒤로 마을과 산비탈에 일궈놓은 다랭이논(표준어 다랑이논의 사투리)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사람들도 내 마음 같았는지 배가 섬 항구에 채 닿지도 않았는데 하나 둘 여객선 출구 쪽으로 모여 들었다.

섬에 찾아온 여행자를 반겨주는 빨갛고 하얀 두 개의 등대가 유난히 정다워 보였다. 청산도의 첫인상이 될 도청항에 발을 내디뎠다. 특산물 판매점과 수산물 식당 외에 동네 주민임이 확연히 티 나는 풍물패가 한판 공연을 펼치며 섬을 찾아온 손님을 시끌벅적하게 반겨줬다.    ​

​특히 '슬로 장터'라는 간판을 단 아담한 장터가 항구 주변에서 눈길을 끌었다. 인구 감소로 섬에서 사라진 청산도의 오일장과 시장. 청산도가 슬로시티로 선정되고 매년 4월 한 달 간 11개 코스(총 43km)의 섬 길 걷기축제를 할 땐 마을 곳곳에서 작지만 정답고 소박한 장터가 펼쳐진다.​

섬 마을 길에는 주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놓여있다.
 섬 마을 길에는 주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놓여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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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靑山島)는 이름 그대로 푸른 섬이다. 맑고 푸른 다도해와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예로부터 신선들이 산다는 '선산(仙山)' 또는 '선원(仙源)'이라고도 불렸단다. 청산도는 아름다운 다도해에 떠있는 보석 같은 섬으로, 남해에서도 풍광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특히 느릿느릿 걷기 좋은 섬으로 알려진 청산도는 옛 조상들의 문화와 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음을 인정받아 2007년 12월 1일 담양 창평, 장흥 장평, 신안 증도 등과 함께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에 지정됐다.

슬로시티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기준이 있다고 한다. 적정한 인구(5만 명)을 넘지 않아야 하고 전통 산업과 패스트 푸드가 아닌 슬로 푸드와 아름다운 경관을 갖춰야 한다. 여기에 대기업의 자본에 지배를 받지 않아야 하고,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가질 수 있는 보편적 상품과 문화가 있어야 한다.

달팽이처럼 느리게 걸을수록 좋은 청산도 슬로길 100리

4월에 가장 걷기 좋고 풍광 좋은 섬 마을 청산도.
 4월에 가장 걷기 좋고 풍광 좋은 섬 마을 청산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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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그 어떤 섬보다 정답고, 찬란해지는 남도의 끝자락 청산도, 4월 내내 펼쳐지는 '슬로길 걷기 축제'가 한창이다. 주말엔 남도의 축제답게 마을이 시끌벅적하지만, 평일엔 섬 마을의 자연과 정취를 한껏 즐기며 오롯이 걸을 수 있다. 한 폭의 그림으로 마음 속에 내내 남는 유채꽃과 해안가 풍광, 어깨에 닿을 듯 말듯 보면 볼수록 정감가는 마을 돌담 길, 귀여운 목소리의 염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풍경들이 한 번 찾아가면 오래도록 머물고 싶게 하는 고향 같은 섬이다.

축제의 주인공 '청산도 슬로길'은 청산도 주민의 마을 간 이동로로 이용하던 길이었다. 마을 길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절로 발걸음이 느려진다 해서 '슬로길'이라 이름 붙였단다. 청산도는 서울 면적 16분의 1 정도 크기의 작은 섬이다 보니 바퀴보다는 두 발로 느리게 걷기 좋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로 선정된 청산도 슬로길은 전체 11코스(17개길) 42.195km로 100리에 이른다.

미항길, 돌담길, 범바위 해안길, 다랭이논길, 몽돌 바닷가 등 섬이 지닌 다채로운 풍경, 섬 마을에 사는 사람들, 섬과 길에 얽힌 이야기와 어우러져 거닐 수 있다. 이 밖에 명품1·2길보적산(330m)과 매봉산(384m)으로 이어지는 가벼운 산행길도 있다. 슬로길의 상징은 마을을 등에 지고 가는 느림의 대명사, 작은 달팽이다.

전 코스는 아니지만 며칠 간 서너 개 코스를 걸어 보았다. 신기하게 도시에서 겪었던 봄의 나른함이나 춘곤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요즘 같은 날 왠지 피곤한 이유는 충만한 햇볕과 함께 충분히 걷지 못해서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청산도의 관문 도청항과 안통길

주민들로 구성된 풍물패가 도청항에서 관광객들을 반겨주었다.
 주민들로 구성된 풍물패가 도청항에서 관광객들을 반겨주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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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긴 시간을 달려와 청산도 도청항 도착한 시간이 벌써 오후 3시 반. 달팽이처럼 느리게 걸을수록 좋다는 청산도 슬로길을 걷기엔 좀 늦은 시간이다. 도청항 주변 풍경과 항구 뒤편 골목으로 이어진 안통길은 애매한 시간에 청산도에 도착한 여행자가 가기 좋은 곳이다. '​파시(波市) 거리'라 불리는 생경한 이름의 항구 뒷골목으로 들어서면, 골목 벽에 파시의 추억이 담긴 옛 흑백 사진이 눈길을 끈다.

파시란, 풍어기 어장(漁場)에서 어선과 상선 사이에 어획물의 매매가 이뤄지는데, 이때 거래가 이뤄졌던 지역을 일컫는다. 그 규모가 커짐에 따라 선원·상인을 상대로 한 음식점·숙박 시설·위락 시설·점포·선구상(船具商) 등이 어장 근처에 거리와 촌락을 형성했다. 1960년대가 청산도의 최전성기로, 섬 일대에서 고등어와 삼치가 많이 잡혀 큰 파시가 열렸으며 어업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고 한다.

처음 들어보는 파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보니, 파시의 흔적이 겨우 남아 있는 쓸쓸한 뒷골목길이 새롭게 보였다. 여관이었다는 옛 목조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고, 50년 됐다는 약국이 아닌 '청해 약방'에는 백발의 약사 할아버지가 동네 주민과 사랑방처럼 모여앉아 있었다.

평범했던 백반, 라면,짬뽕 등이 전복 덕택에 별미가 된다.
 평범했던 백반, 라면,짬뽕 등이 전복 덕택에 별미가 된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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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외지인에게 들어오라며 손짓하는 약사 할아버지와 주민들 표정이 친근하고 정다웠다. 섬 길 걷기 축제 구경하러 왔다고 하자 오히려 주민들은 청산도에 그런 축제가 다 있었냐고 되물었다. 하긴 4월의 청산도는 굳이 축제를 펼치지 않아도 섬의 자연과 마을 풍경 자체가 축제지 싶다.  

도청항과 파시 골목 사이에 있는 수산물 장터와 횟집, 식당 거리에서 백반 전문이라 쓰여있는 '섬마을 식당'에서 늦은 점심밥을 먹었다. 1인당 7천 원 한 상에 생선구이, 나물 된장국, 해초 무침, 어묵 볶음 등 여러 찬이 나와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소박하고 풍성한 밥 상이 맘에 들어 사진을 찍었는데 액정 화면 속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는 껍데기 속 전복 조림이 4마리나 들어 있었다. 잘못 나왔나싶어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점심 때가 지난 한산한 시간인데다 우리 일행이 너무 배고파 보였다나... 천혜의 전복 양식장이 많은 청산도에선 평범한 백반, 라면, 짬뽕을 먹을 때도 전복이 들어가 있어 별미였다.  

도청항을 흥청거리게 하던 고등어잡이 어선도 삼치잡이 어선도 청산 바다를 떠났다. 파시가 사라지고 외지에서 찾아온 배들이 모두 섬을 떠나 막막했을 청산도는 자연스레 지금처럼 농사짓는 섬이 됐다. 비로소 청산도는 섬 사람의 땅이 된 것이다.

생선이 빨래처럼 걸려있는 어촌 마을의 모습보다는 논밭 위 소와 염소, 농군들과 푸른 보리밭, 노란 유채꽃을 더 쉽게 볼 수 있는 청산도. 그런 섬 마을 풍경을 오롯이 걸어 볼 수 있는 '청산도 슬로길'이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된다.

약국이자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인 안통길 '청해 약방'.
 약국이자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인 안통길 '청해 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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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ㅇ 청산도 교통편 및 여행정보 안내 : www.cheongsando.or.kr



태그:#청산도 여행, #청산도 걷기 축제, #청산도 슬로길, #도청항, #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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