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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한스 홀바인은 작품의 주인공인 헨리 8세의 궁정화가이기도 했습니다. 남부 독일의 아우크스부르크 출신인 한스 홀바인은 대대로 미술가 집안 출신답게 어릴 때부터 네덜란드 사실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이탈리아 명암법과 원근법을 익히기도 했지요.

독일인인 한스 홀바인이 영국 왕실의 궁정화가가 되는 과정에는 두 명의 위대한 인문학자가 등장합니다. 에라스무스와 토마스 모어. 한스 홀바인은 1515년께 당시 인문주의가 유행하던 스위스 바젤에서 활동했습니다. 그곳에서 에라스무스의 추천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토마스 모어를 만나게 되죠. 그리고 토마스 모어의 후원으로 영국 왕실에 소개됩니다.

한스 홀바인 "헨리 8세" 로마 바르베리니 국립미술관.
▲ 헨리 8세 한스 홀바인 "헨리 8세" 로마 바르베리니 국립미술관.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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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림의 주인공, 헨리 8세가 누굽니까? 왕비의 시녀, 앤 불린과의 사랑(혹은 불륜?) 때문에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에게 반발하여 오늘날의 영국 국교회를 성립시키고, 결국은 파문까지 당한 영국 역사상 가장 문제적 군주입니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영국인들로부터는 실질적으로 오늘날 영국의 기틀을 잡은 인물로 칭송받기도 하죠. 어쨌든 인물에 대한 세세한 묘사를 제대로 해낼 수 있는 화가가 없던 당시 영국에서, 한스 홀바인은 단번에 헨리 8세의 눈에 들어 영국 최초의 궁정화가가 됩니다. 

한스 홀바인의 그림 '헨리 8세'는 헨리 8세의 실제 모습에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림에는 교황에 맞서 수장령을 선포한 후 반대 세력에 대한 숙청도 마무리하고(이때 토마스 모어도 죽게 됩니다), 앤 불린과의 골치 아픈 관계도 청산(간통과 반역죄를 뒤집어씌워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의 목을 벴죠)하고, 웨일즈까지 통합해서 말 그대로 하늘을 찌를 것 같았던 헨리 8세의 기세당당함이 잘 드러납니다.

세속 국왕으로서의 화려하고 사실적인 묘사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실재하는 공간이 아닌 푸른색의 모호한 배경에 그림자까지 생략함으로써 국교회의 수장, 즉 종교 지도자로서의 신성한 면모도 드러내고 있습니다. 초상화에서 '전신사조'의 전통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게 아닌가 봅니다.

'헨리 8세'와 가까운 곳에서 나는 뜻밖의 외국인 화가를 또 만났습니다. 전시실 입구 쪽 좁은 벽에 걸어 놓아서 하마터면 모른 채 스쳐지나갈 뻔했습니다. 그는 바로 엘 그레코였습니다.

스페인에서 주로 활동했기 때문에 흔히 스페인 사람으로 알고 있는 엘 그레코는 본명이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로, 베네치아 공화국령이었던 크레타 섬 출신의 그리스인입니다. '엘 그레코'는 당연히 '그리스 사람'이란 뜻이겠죠.  엘 그레코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는 베네치아 편에서 매너리즘과 함께 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짧게 그림 소개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엘 그레코, '세례받는 예수', '양치기의 경배' 로마 바르베리니 국립미술관
▲ 세례받는 예수, 양치기의 경배 엘 그레코, '세례받는 예수', '양치기의 경배' 로마 바르베리니 국립미술관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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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두 편의 연작입니다. 왼쪽은 '세례 받는 예수'이고, 오른쪽은 '양치기의 경배'입니다. 시간 순서로 따지면 오른쪽 베들레헴 마구간의 아기 예수에게 양치기들이 찾아와서 경배를 드리는 장면을 먼저 보고, 왼쪽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있는 예수를 보면 됩니다. 두 작품 모두 세로로 길게 왜곡된 인체와 추상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공간감, 그리고 과감하고 역동적인 색채 사용까지 엘 그레코 특유의 개성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잔혹성으로 기억되는 이탈리아 판 '논개'

발길은 특별 전시실로 옮겨 갑니다. 이곳에서 또 다시 카라바조를 만납니다. 그것도 한꺼번에 다섯 편씩이나 말입니다. 실제 전시와는 상관없이 내 나름의 순서대로 네 편의 작품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이름하여 '신성과 병약과 광기와 자기애, 그리고 죽음'.

불면 날아갈 것같이 깡마른 노인이 두꺼운 책을 보고 있습니다. 노인은 방금 무언가를 쓰려고 펜을 들었지만 아직 완전히 정리가 되지 않은 듯 어두운 조명 아래 고개를 떨구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해골이 하나 놓여 있습니다. 그는 바로 '성 히에로니무스', 모든 학인의 수호성인입니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로마 가톨릭의 4대 교부 중 한 명으로 초기 가톨릭의 정본 성서였던 '불가타 역 성서(versio Vulgata 새 라틴어 성서)'를 집필한 사람입니다. 황야에서의 고행과 사자와 관련된 전설도 유명하지요.

카라바조 '성 히에로니무스' 로마 바르베리니 국립미술관
▲ 성 히에로니무스 카라바조 '성 히에로니무스' 로마 바르베리니 국립미술관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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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의 '성 히에로니무스'는 카라바조의 작품치고는 기존의 관습에서 크게 벗어난 그림이 아닙니다. 붉은 색 망토, 성경, 펜, 해골까지 성 히에로니무스를 상징하는 도상들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카라바조의 '성 히에로니무스'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좀 더 집중도가 높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아마 아무것도 없는 배경 때문일 것입니다. 늘 죽음(해골)을 앞에 두고 죽음을 떠올리며(메멘토 모리), 어두운 방 안에서 오로지 고행과도 같은 성서 번역에만 몰두하는 성 히에로니무스. 그를 묘사하기 위해서는 굳이 다른 배경이 필요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카라바조는 어쩌면 성 히에로니무스를 통해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자신의 예술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다음으로 만날 작품은 '병든 바쿠스'입니다. 이 작품은 20대 초반, 로마에서 살던 시절에 그린 것입니다. 작품 속 주인공 바쿠스(디오니소스)는 잘 아시다시피 주신, 즉 술의 신입니다. 또한 풍요와 쾌락을 상징하기도 하죠. 그런데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카라바조의 이 주신은 흔히 알고 있는 신화 속의 신성하고 우아한 모습이 아닙니다. 어딘지 아파 보이기까지 합니다. 바쿠스는 바로 카라바조 자신의 자화상입니다.

카라바조 '병든 바쿠스' 로마 바르베리니 국립미술관
▲ 병든 바쿠스 카라바조 '병든 바쿠스' 로마 바르베리니 국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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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지만 아름답지 않은, 심지어 손톱에 때까지 낀, 자신의 모습으로 바쿠스를 묘사한 카라바조. 카라바조는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창조주를 본받아 불경스럽게도 자신의 형상대로 신을 창조한 것 같습니다. 그것도 병들고 나약한 모습으로 말입니다. 
      
세 번째로 만날 작품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입니다. 잔인하고 무서운 그림입니다. 그림의 내용은 구약성서의 외경 중 하나인 '유디트서'의 한 장면입니다. 이스라엘을 침입한 아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 앞에 과부인 유디트가 나타나 유혹합니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간 홀로페르네스는 술에 취해 잠이 들게 되고, 유디트는 시녀의 도움을 받아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고는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말하자면 이스라엘 판 '논개'쯤 됩니다. 이 역시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 작품화된 이야기인데 카라바조의 그림에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잔혹성'입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엽기, 하드코어입니다.  

카라바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로마 바르베리니 국립미술관
▲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카라바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로마 바르베리니 국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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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에서 솟구치는 선홍색 피. 이미 목이 반쯤이나 잘려나간 홀로페르네스는 놀랍게도 아직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습니다. 유디트 자신도 놀랍고 두려운 듯 몸서리를 칩니다. 그에 비해 목을 넣을 자루를 들고 있는, 이가 빠진 늙은 하녀는 오히려 똑바로 눈을 뜬 채 무서운 표정으로 홀로페르네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거의 실물 크기에 가까운 그림은 제대로 바라보기 힘들 정도로 잔인합니다.

비록 외경이긴 하지만 성서의 한 장면을 카라바조는 왜 이토록 무섭고 잔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일까요? 이렇게 극단적으로 사실적인 묘사도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아니면 그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던, 그리고 결국에는 그 자신의 삶을 파국으로 몰고 갔던 극단적인 광기의 표현일까요? 아니면 오히려 그 극단적인 자신의 삶에 대한 참회였을까요?

이것은 순전히 나 혼자 생각인데 죽어가는 홀로페르네스의 얼굴이 자화상 속 그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보르게세 미술관에서 본, 다윗에 의해 목이 잘린 골리앗도 그의 자화상과 닮았습니다. 어쨌든 카라바조의 잔혹성은 피렌체 편에서도 한 번 더 보기로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어쩌면 카라바조의 작품 중 가장 단순한, 그렇지만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만나보겠습니다. '나르키소스'입니다. 아름다운 외모로 수많은 님프들의 사랑을 받은 나르키소스는 그 모든 사랑을 외면합니다. 하지만 나르키소스는 님프들의 기도를 들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의 저주로,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물의 요정인 줄 알고 사랑하게 됩니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 그것은 만질 수도 없고 소유할 수도 없는 대상입니다. 결국 나르키소스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자신을 향한 사랑에 빠져 죽게 됩니다.

카라바조 '나르키소스' 로마 바르베리니 국립미술관
▲ 나르키소스 카라바조 '나르키소스' 로마 바르베리니 국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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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의 '나르키소스'는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황홀한 듯 바라보고 있습니다. 커다란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오로지 나르키소스입니다. 그의 '나르키소스'를 보고 있으면 어쩐지 한없이 외로워집니다. 연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자기애의 상징이라고 하지만 나르키소스에게 수면에 비친 자기의 모습은 자아가 아닌 타자일 뿐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감상자는 나르키소스를 붙들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저것은 바로 당신의 모습이다."

카라바조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자기애에서 비롯된 집착과 광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카라바조, 바로 자신에게 말입니다.

정규교육 못 받았지만 그림 실력 하나로 주목받은 천재

카라바조의 본명은 놀랍게도 '미켈란젤로 메르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입니다. '카라바조에서 온 메르시 가문의 미켈란젤로'란 뜻이지요. 그렇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모두 잃고 정규교육도 받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다가 천재적인 그림 실력 하나만으로 세상의 관심을 받은 카라바조.

오로지 자신의 예술밖에 모르던, 광기에 사로잡힌 천재 카라바조는 불과 3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열병에 걸려 죽게 됩니다. 하지만 카라바조는 이후 수많은 추종자들, 이른바 카라바지스트(Caravaggist)들을 낳았고 루벤스, 렘브란트, 벨라스케스와 같은 바로크 거장들의 뿌리가 됐습니다.

특별 전시실에서는 카라바조 이외에도 볼로냐 화파의 거장인 구이도 레니와 구에르치노의 명작들도 만날 수 있었지만, 카라바조에게 온통 정신을 팔린 뒤라 그런지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특히 풍부한 색채와 부드러운 정조, 아름다운 인물 묘사가 특징인 구이도 레니의 경우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만나 보기로 하고 오늘은 작품들만 봅니다.
   
(왼쪽 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구이도 레니 '성 베드로', '유로파', 구에르치노 '성 도마의 의심', 구이도 레니 '아탈란타와 히포메네스'
▲ 구이도 레니와 구에르치노의 작품들 (왼쪽 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구이도 레니 '성 베드로', '유로파', 구에르치노 '성 도마의 의심', 구이도 레니 '아탈란타와 히포메네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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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전시실을 끝으로 '바르베리니 국립 미술관'을 나섭니다. 다시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길을 걷습니다. 초겨울 늦은 오후의 로마가 온몸을 휘감고 돕니다. 이제 마지막 일정입니다. 세 개의 성당과 한 개의 아름다운 분수가 모여 있는 '성 베르나르도 광장(piazza di San Bernardo)'. 이곳에서 나의 목적지는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Chiesa Santa Maria della Vittoria)'입니다. 1620년 화이트 산(White Mountain) 승전을 기념하여 성모 마리아에게 헌정된 이 성당은 보르게세 추기경의 명으로 건축됐습니다.

바로크 양식의 성당답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내부 천장화입니다.
▲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 천장화 바로크 양식의 성당답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내부 천장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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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규모의 성당이지만 바로크 양식의 성당답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천장화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 작품, '성 테레사의 환희'가 있습니다. 베르니니의 전성기를 장식하는 걸작 중 하나입니다. 꿈속에서 천사로부터 금으로 된 불화살을 맞은 성 테레사. 그녀는 끔찍한 고통과 함께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고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 불타올라 신과 하나가 되는 것 같은, 말 그대로 '법열'을 느낀 것이지요.

베르니니는 그 법열의 순간을 성 테레사의 표정과 몸짓을 통해 더할 나위 없이 관능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테레사와 천사가 입고 있는 옷의 주름은 실물보다 더 사실적으로 보여 관능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베르니니 '성 테레사의 환희' 로마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
▲ 성 테레사의 환희 베르니니 '성 테레사의 환희' 로마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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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발표 당시 지나치게 관능적인 묘사 때문에 로마 가톨릭 측에서는 비판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베르니니는 그동안 작가들이 기피한 감정의 극점을 보여줌으로써 이후 바로크 미술이 지향한 열렬한 환희와 신비스러운 황홀경의 느낌을 가장 모범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눈을 뗄 수 없이 완벽한 조각 앞에서 나 역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황홀경에 빠진 기분입니다. 그렇게,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던 로마의 첫 하루가 지나갑니다.

성 베르나르도 광장에 있는 아쿠아 펠리스 분수입니다.
▲ 아쿠아 펠리스 분수 성 베르나르도 광장에 있는 아쿠아 펠리스 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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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최규화 기자

덧붙이는 글 | 2014년 12월 5일부터 2015년 1월 4일까지 한 이탈리아 미술 기행의 기록입니다.



태그:#바르베리니국립미술관, #로마, #이탈리아, #카라바조, #한스홀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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