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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5월 8일 어버이날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 입구에서 밤샘 노숙을 한 가운데 9일 새벽 외아들 오영석(단원고)군의 영정사진을 끌어안고 엄마 권미화씨와 아빠 오병환씨가 잠들어 있다.
▲ 꿈에서라도 만났으면... 지난 2014년 5월 8일 어버이날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 입구에서 밤샘 노숙을 한 가운데 9일 새벽 외아들 오영석(단원고)군의 영정사진을 끌어안고 엄마 권미화씨와 아빠 오병환씨가 잠들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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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그랬던가. "논리는 당신을 A에서 B로 이끌지만 상상력은 당신을 세상 어디로든 안내할 것이"라고. 그렇다. 아무리 완벽한 논리라도 상상의 영역을 넘어설 순 없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사무치는 아픔을 논리로 말할 수 있을까? 그 아픔의 이유 정도는 설명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아픔의 크기를 이론적으로 풀어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저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까닭에 제아무리 훌륭한 논리를 들이대도 사무치는 아픔 앞에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 말할 순 없는 거다.

언뜻 상상의 힘은 무한해 보인다. 세상이 제아무리 넓다지만 겨우 상상을 담은 캔버스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말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하지만 상상에도 분명 한계가 있다. 그래서 상상을 초월한다는 말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아이 잃은 부모의 마음이 그렇다. 그 누구도 그 아픔을 가늠할 순 없다. 가늠할 수 없으니 표현할 수도 없다. 물론 시도가 없던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혹자는 당신의 아이가 지금 천국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해도 여전히 당신의 삶은 하루하루가 지옥일 것이라 했고 또 다른 혹자는 아이를 잃고 가장 힘든 일은 매일 그 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라 했다.

'고작' 그런 몇 마디 말로도 이미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지만 그 또한 표현이 가능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픔과 슬픔의 언어들을 다 모아본들 아이 잃은 부모의 마음을 그대로 옮길 순 없다. 그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들의 능력 밖의 일이다. 그러니 아이를 먼저 보낸 부모처럼 누군가 사무치게 아플 때 주절주절 말로 위로하지 않는 거다. 아니, 못하는 거다.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안 되니 그저 가슴과 가슴이 통하도록 보듬어주는 거다. 아픈 사람이 무너지고 쓰러지지 않도록 어깨를 내어 주는 거다.

설령 물에 빠져 죽은 아이들이 천국에 있는 걸 확인했다 해도 매일 매일이 지옥인 게 그들의 삶이었을진대 아직 어디에 있는지 생사조차 확인 못한 아홉 명의 가족들을 포함해 수백 명의 부모들이 일 년 내내 거리에 있었다.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공권력의 태만과 공권력의 무능에 자식을 빼앗겼던 사람들이며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공권력의 방관과 외면 속에 피눈물을 삼켰던 사람들이다. 그들 옆에 죄인처럼 사람들이 모이자 했다. 그 참혹한 장면을 생중계로 지켜본 목격자임에도 지난 일 년 피해자의 고통과 가해자의 책임을 증언하지 않았던 미안한 마음에 어깨 걸고 모이자 했던 거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돌아가라니...

하지만 수백 명의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무능하고 무책임한 공권력은 법에도 없고 사전에도 없는 차벽을 쌓았다. 스스로 찬물을 뒤집어쓰고 반성 또 반성했어야 할 그들이, 스스로 따갑고 매운 맛을 감내하며 참회 또 참회했어야 할 그들이, 시민들의 권리보호가 가장 큰 존재 이유인 바로 그 공권력이 다시 가해자가 되어 피해자와 목격자인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고 최루액을 부어댔다. 그래도 그 정도는 견딜 만했다. 충분하게 상상의 범위 안에 있던 일이었고 상상의 영역 안에 존재하던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정작 견딜 수 없던 건 그런 물리적인 아픔이 아니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공권력의 말 한마디였다. 감히 어떻게 그런 말을 저리 쉽게 반복해서 내뱉을 수 있을까 경이롭기만 했던 바로 그 한마디,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라"였다.

그건 상상 저 너머의 세계에서 날아온 비수였다. 당연히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으로 꽂혔다. 그 공권력의 고약한 상상력이 어디에서 온 건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 말은 절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가족 잃고 지옥보다 더 한 일 년을 거리에서 보낸 그들을 바로 앞에 두고 적어도 그 말만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단언컨대 그건 듣는 이를 미치게 만드는 미친 소리였다. 제정신으론 말할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상상 밖의 언어였다. 그날 진도 앞바다가 그랬듯 그날 광화문도 미친 세상이었다. '데모크라시 나우'의 에이미 굿맨은 "시위는 애정에서 비롯된 행위다. 시위는 세상이 더 착하고 인간적인 것으로 바뀔 수 있다는 굳은 신념 없이는 결코 취할 수 없는 행동이다. 불의를 보고 '안 된다'고 외치는 것은 궁극적으로 희망을 선언하는 행위"라며 미친 세상에 저항하라 했다.

다섯 명의 선량한 시민이 희망을 외치다 잡혀갔다. 비슷한 시간 수백 명의 아이들이 빠져죽은 바다 건너 저 먼 나라에서 공권력께서 말씀하시길 "가슴을 가진 사람에게 망각은 어렵다"고 했다. 송구스럽지만 그 말은 공권력께서 돌려받아야 마땅하다. 그리고 안 계실 때 수하 공권력이 시민들을 향해 내뱉은 말도 돌려받으셔야 마땅하다. 엊그제 잡아간 분들,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주시라. 감히 한 마디만 더 보태면 사무치는 아픔은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안 되는 법, 그저 가슴과 가슴이 통하도록 보듬어주는 거다. 지난 일 년, 유가족들이 원한 게 바로 그거였다.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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