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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름 : 커피 한 잔 더 4
야마카와 나오토 글·그림
채다인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2.3.23.

비가 이틀째 내려 집안이 축축합니다. 방에 불을 넣으면 축축한 기운이 사라집니다. 다만,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에는 빨래를 못합니다. 하루하루 쌓이는 빨래를 바라보면서 '비가 그쳐야 빨래를 할 텐데' 하고 생각하다가, 이틀쯤 또는 사흘쯤 빨래를 못한들 입을 옷이 없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일 가운데 하나를 며칠쯤 쉬라는 뜻으로 비가 내린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비가 내리니, 이 비에 맞추어 새봄에 느긋하게 빗소리를 들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염없이 비를 바라봅니다. 복닥거리며 노는 아이들을 옆에 끼고 비를 바라봅니다. 비를 바라보면서 빗소리를 듣습니다. 마루에 서거나 앉아서 마당을 바라보노라면, 요즈음은 처마 밑이 부산스럽습니다. 올해 봄에도 기쁘게 찾아온 제비가 알을 낳아서 새끼를 깠어요. 제비는 비가 오든 말든 새끼를 먹이느라 그야말로 부산스럽습니다. 아주 빠른 날갯짓으로 휙휙 둥지를 드나들고, 날갯짓처럼 빠른 소릿결로 신나게 노래를 합니다. 제비끼리 주고받는 말일 텐데, 제비끼리 주고받는 말은 내 귀에 온통 노래로 들립니다. 지이찍찍 지이찍찍 지이지이지이지이째째째째째째째째 하면서 재미난 가락으로 들립니다.

어미 제비와 새끼 제비가 있으니 처마 밑은 제비똥으로 소복하지요. 처마 밑에 둔 자전거는 덮개를 씌웁니다. 제비똥이 떨어지면 하루나 이틀쯤 모아서 굳힌 뒤 흙으로 옮깁니다. 제비똥도 고마운 거름입니다. 제비똥을 치운 자리는 빗물로 씻습니다.

- "이대로 열심히 하라고. 지금은 남이 하는 말은 듣지 말고, 자신이 생각하는 걸 그리면 돼." (33쪽)
- "행복의 여신이라는 거네. 사사하라 씨랑 결혼하는 사람은 행복해지겠구나." '하세베 씨, 그건 무슨 뜻인가요?' (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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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를 맞으며 마당 한쪽에서 풀을 뜯다가 개구리를 봅니다. 올해에도 씩씩하게 깨어난 참개구리는 어른 주먹만 합니다. 겨우내 잘 자고 일어났을 테지요. 우리 집 풀밭을 헤집으면서 먹이를 잡겠지요.

하늘에는 제비가 있고, 땅에는 개구리가 있습니다. 제비가 아니어도 우리 집 마당을 드나드는 새가 많습니다. 온갖 숨결이 우리 이웃이 되어 날벌레도 잡고 파리와 모기도 잡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면서 이 아이들은 노래를 들려줍니다.

밥을 짓다가 온갖 노랫소리에 살짝 귀를 기울입니다. 제비와 들새와 개구리가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듣다가, 나도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바야흐로 풀벌레도 깨어날 테니, 이제부터 세 갈래 이웃이 저마다 기운차게 노래를 부를 테고, 이 노래에 맞추어 아이하고 함께 놀이노래를 부르면, 날마다 노래잔치가 되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 "하지만 말일세. 젊은데도 병이나 상처나 사건,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지.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 왔잖아. 이 정도면 행복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46∼47쪽)
- "구급차에도 같이 타 주다니, 정말로 아가씨는 상냥한 마음씀씀이가 있는 아가씨야." "우흑." "왜 그러나? 마음씀씀이가 있다니,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말이라."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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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카와 나오토 님이 빚은 만화책 <커피 한 잔 더>(세미콜론,2012) 넷째 권을 읽습니다. 모두 다섯 권으로 마무리짓는 만화책으로, 넷째 권에서는 앞선 세 권처럼 수수하면서 차분한 이야기가 흐릅니다. '커피 한 잔'을 '더' 마시는 사람들 이야기인 터라, 커피 냄새가 나는 이야기요, 커피 한 잔을 늘 곁에 두면서 삶을 사랑하려는 사람들 이야기가 흐릅니다. 도드라질 일이 없을는지 모르지만, 아무것도 아니라 할 수 없는 투박하면서 수수한 이야기가 흐릅니다.

- '3년 동안 사귀었던 미나코랑 헤어졌다. 덕분에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다. 쉬는 날에는 자고 싶은 만큼 자고,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서 어디에 가든 가지 않든 뭘 먹든 먹지 않든 자유롭다.' (76쪽)
- '(목욕이) 끝나고 밤이 깊으면 파자마나 유카타를 입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96쪽)

만화책 <커피 한 잔 더>에 나오는 사람들은 언제나 '커피'를 옆에 낍니다. 이들은 커피와 함께 삶을 누립니다. 이들처럼 다른 사람들은 다른 것을 옆에 낍니다. 이를테면, 영화를 낀다든지 책을 낀다든지 공부를 낀다든지 술을 낀다든지 밥을 낍니다. 저마다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한 가지를 옆에 끼고 아침을 맞이하며 저녁을 마무리합니다. 고양이를 좋아하면 고양이를 옆에 낄 테고, 개를 좋아하면 개를 옆에 낍니다. 자전거를 좋아하면 자전거를 늘 옆에 낄 테며, 수다를 좋아하면 수다를 옆에 끼며 살아요.

어느 것을 좋아하든 모두 아름답습니다. 커피를 옆에 끼는 사람은 숨을 살며시 돌리면서 커피 한 잔을 더 마시기에 스스로 아름답습니다. 담배를 옆에 끼는 사람은 숨을 가만히 돌리면서 담배 한 개비를 더 물기에 스스로 아름답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스스로 가장 좋아할 만한 일을 해야 즐겁습니다. 가장 좋아할 만하지 않은 일을 한다면 여러모로 힘에 부칩니다. 둘째로 좋아하거나 셋째로 좋아하는 일을 해서는 기쁘기 어렵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 되어 가장 사랑스럽게 하루를 맞이해야 바야흐로 웃음꽃이 터지고 노래가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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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가 들어 줬으면 했다. 나는 정말로 그와의 약속을 지켜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그 일에 대해 말할 상대는 없었다.' (140쪽)
- '커피를 내리는 데 30분도 안 걸리니, 10분 일찍 나설 수 있다. 10분 빠르면 풍경이 다르다.' (199쪽)

모든 사람이 커피나 차를 마셔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좋아한다면 스스럼없이 커피나 차를 마실 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책을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좋아한다면 기꺼이 책을 읽을 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학교를 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기쁨을 누리려 한다면 활짝 웃음지으며 배움길에 나서는 보람을 누릴 뿐입니다.

나는 나대로 내 길을 걸으면서 내 삶을 짓습니다. 너는 너대로 네 길을 걸으면서 네 삶을 짓습니다. 나는 커피를 마실 수 있고,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너는 술을 마실 수 있고, 차를 마실 수 있습니다. 커피나 물이나 술이나 차를 마시든 말든, 우리는 모두 바람을 마십니다. 이 지구별에 흐르는 푸른 바람을 함께 마십니다.

서로 아끼면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서로 보살피면서 손을 잡습니다. 커피를 즐기는 사람은 커피잔을 마주 놓고 빙그레 웃습니다. 커피가 아닌 다른 것을 즐기는 사람은 다른 것을 앞에 놓고 방긋방긋 웃습니다.

가장 좋아할 만한 일이란, 내 마음이 가장 홀가분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내 마음이 가장 홀가분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고 여길 만한 일입니다.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고 여길 만한 일이란, 내 마음에서 찾는 사랑입니다. 내 마음에서 찾는 사랑은, 바로 내 삶으로 가는 길이 됩니다.

나는 커피는 안 마시지만 '커피 만화'는 읽습니다. 이제 마지막 쪽을 덮습니다. 아침저녁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제비 노랫소리를 듣고, 밤에는 개구리와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때로는 밤별이 하늘을 흐르는 노래를 듣습니다. 낮에는 구름이 흐르는 노래를 때때로 듣습니다. 나는 아무래도 노래를 사랑하는 삶이로구나 싶습니다. 둘레에서 흐르는 노래를 듣고, 나도 스스로 노래를 부르면서 새 아침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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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 더 1

야마카와 나오토 지음, 오지은 옮김, 세미콜론(2008)


태그:#커피 한 잔 더, #야마카와 나오토, #만화읽기, #만화책, #시골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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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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