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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바라보는 아마다블람 모습
▲ 아마다블람 옆에서 바라보는 아마다블람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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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는 트레커로 왁자지껄하였습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카트만두에서 12시간 지프로 이동해서 10여 일을 걸었다는 젊은이, 3개월 비자를 발급받아 랑탕 트레킹을 끝내고 쿰부 히말라야에 왔다는 40대 후반 아저씨, 호텔리어로 근무하며 짬이 날 때마다 네팔을 찾는다는 40대 초반 일본인 등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히말라야를 걷고 있습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트레커들

식당은 유일하게 난방이 되는 곳이기에 이곳에 모여 시간을 보냅니다. 책을 읽거나 지도와 가이드북을 펼쳐 일정을 확인하고, 와이파이로 세상과 소통을 시도하거나 무용담을 주고받습니다. 난로의 불이 꺼지기 전까지는 모두 자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객실은 난방이 되지 않으며 허술한 벽과 창문은 차가운 히말라야의 바람을 막기에 역부족입니다.  

숙소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는 메뉴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어떤 음식을 선택해도 입맛에 맞지 않습니다. 여덟 번째 트레킹인데도 네팔 고유의 향에 적응이 되지 않아 식사 때만 되면 고민입니다. 메뉴판을 몇 번씩 훑어보아도 마음이 가지 않습니다. 심각하게 메뉴를 보고 있던 우리나라 분이 저에게 다가와 묻습니다.

"먹어 본 네팔 음식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있나요?"

이번 트레킹에서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은 계란과 감자입니다. '삶은 계란, 계란 프라이, 계란 스크램블, 삶은 감자, 감자튀김'을 끼니 때마다 서로 다른 조합으로 주문하였습니다. 여행의 기본은 먹는 것인데 언제나 현지 음식을 자연스럽게 먹을 수 있게 될지.

객실에 화장실이 없어 공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합니다. 해발 3800미터 고지에서 밤에 화장실 가는 일은 고역입니다. 따스한 침낭 지프를 열고 나와 방한복을 입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야 하며, 전등도 켜지지 않는 어둠 속에서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가급적 아침까지 화장실에 가지 않는 것이 최선입니다. 

새벽에 변의가 느껴졌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무장을 하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조심스레 화장실로 향합니다. 저는 변비 때문에 쉽게 용변을 누지 못하며 물로 세정을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영하의 날씨 속에 장시간 재래식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은 고통입니다. 겨우 일을 끝내고 물통을 보니 물이 얼어있습니다. 얼음을 깨고 바가지로 물을 떠서 항문 주위를 손으로 세정하는 순간. 그 고통이란!​

임자 콜라(강)를 따라
▲ 출발 임자 콜라(강)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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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보체 언덕에 올라 바라본 모습
▲ 임자콜라(강) 팡보체 언덕에 올라 바라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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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4400미터 딩보체로 향합니다. 

팡보체(3958m)까지 임자콜라 강을 따라 걷습니다. 날은 맑고 화창하였지만 아침 햇살이 계곡을 타고 내려오지 않아 추위가 가시지 않습니다. 잔설과 빙판이 남아 있어 걷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겨봅니다. 작은 다리를 건너 팡보체 언덕에 오르자 햇살이 계곡 구석구석까지 퍼지며 온기가 솟아나고 있습니다. 

아들을 남겨 놓고 하산하는 아버지의 마음

오늘도 아마다블람(6812m)이 함께합니다. 어제까지 앞에서 보고 걸었는데 오늘은 옆에서 속살을 들여다보며 걷습니다. 팡보체를 기점으로 울창했던 잣나무 숲은 사라졌고 관목만이 가끔씩 있는 민둥산입니다. 수목 한계선을 넘어섰습니다. 메마른 산 능선에는 야크만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습니다.

풀을 뜯고 있는 야크의 모습
▲ 야크 풀을 뜯고 있는 야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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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하는 아낙 모습
▲ 마을 우물가 빨래하는 아낙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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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4천 미터를 넘었지만 인간의 삶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팡보체(3958m), 소마레(4010m), 딩보체(4350m) 같은 크고 작은 마을이 있으며 손바닥만한 밭이 계곡과 능선에 위태하게 걸려 있습니다. 우물가에는 아낙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으며 아이들은 해맑은 모습으로 트레커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웃음으로 대하는 넉넉함이 설산처럼 밝게 빛납니다.

하산하는 우리나라 트레커를 만났습니다. 그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의 포터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고산병 때문에 딩보체(4350m)에서 트레킹을 포기하고 하산하고 있습니다. 함께했던 아들은 새로운 일행을 만나 칼라파타르로 향하고 본인은 남체(3440m)까지 내려가서 휴식을 취하기로 하였습니다.

칼라파타르(5550m)를 오르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아들을 두고 내려오는 아버지의 연민이 겹쳐 표정이 어두워 보입니다. 그의 목적지가 칼라파타르였지만 그곳에 가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칼라파타르는 인위적으로 정한 장소일 뿐 트레킹의 성패를 좌우하는 곳은 아닙니다. 히말라야를 걷는 매일 매일이 삶의 경이이며 신비였습니다. 자신의 마음의 신호에 따라 멈출 수 있을 때 성공한 트레킹입니다. 포기할 때를 알고 내려오는 아버지의 선택이 오히려 아름답습니다.

포터, 그들의 어깨에는...

히말라야 고지에도 사람이 살고 있기에 세상에서 공급되는 물자가 끊임없이 위쪽을 향해 운반되고 있습니다. 동력을 사용하는 문명의 이기를 사용할 수 없는 곳이기에 야크나 포터의 두 어깨가 운송수단입니다. 포터는 100킬로그램 안팎의 무거운 짐을 지고 히말라야를 오르고 있습니다. 임금은 무게와 거리로 결정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여린 어깨에 처자식의 생계가 달려 있기에 감내하기 힘든 무게의 짐을 지고 묵묵히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100킬로그램 이상의 합판 모습(포터들이 지고 감)
▲ 합판 나르기 100킬로그램 이상의 합판 모습(포터들이 지고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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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킬로그램 이상의 합판을 지고 산을 오르는 포터 모습
▲ 로컬 포터 100킬로그램 이상의 합판을 지고 산을 오르는 포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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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링고(3750m) 찻집에는 서양 젊은이들이 웃음소리가 가득합니다. 아일랜드와 미국에서 왔다는 젊은이들은 트레킹 도중 만나서 동행이 되었습니다. 포터없이 무거운 배낭을 직접 메고 산을 걷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아일랜드와 미국에서 온 젊은이들
▲ 젊은 트레커 아일랜드와 미국에서 온 젊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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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가 처음이라는 그들에게 "히말라야를 걸으면서 무엇을 느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이구동성으로 "행복"이라고 답변합니다. 

모든 것이 불편하고 힘든 히말라야에서 그들이 행복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페리체와 딩보체의 갈림길이 나옴
▲ 임자콜라 페리체와 딩보체의 갈림길이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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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쇼(4200m) 끝자락에 있는 조그마한 다리를 건너자 페리체(4243m)와 딩보체(4410m) 갈림길이 나옵니다. 계곡을 타고 올라가면 페리체가, 언덕을 오르면 오늘의 목적지 딩보체입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트레커는 딩보체에서 고소 적응을 위해 이틀을 묵고 갑니다. 낭카르창 피크(5086m) 아래 자리 잡은 마을은 좌측은 칼라파트라(5550m), 우측은 추쿵리(5546m) 가는 길목입니다.  

딩보체 마을에서
▲ 이정표 딩보체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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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4천 미터가 넘었음에도 컨디션이 좋습니다. 순리를 지킨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해발 3천 미터부터 술을 마시지 않았고 고산병 예방약을 꾸준히 복용하였습니다. 물을 자주 마셔 수분을 보충하였으며 최대한 천천히 걷고 있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겸손한 마음으로 걷고 있는 것이 고소 적응에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칼라파타르와 추쿵의 갈림길에 있는 마을
▲ 딩보체 마을 칼라파타르와 추쿵의 갈림길에 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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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도착하여 창을 여니 내일 가야 할 추쿵리를 중심으로 로체(8516m)와 눕체(7873m) 그리고 아일랜드 피크(6189m)가 눈에 들어옵니다.

히말라야는 매일 매일 새로운 세상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태그:#네팔, #쿰부, #디보체, #딩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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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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