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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서울 생활을 정리했다. 우리는 한 달에 걸쳐 서울에서 육로와 해로를 지나 제주도로 넘어왔다. 더 이상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 100일이 갓 넘은 아이와 함께 우리의 힘으로 새 삶을 시작해야 한다. 제주도에서는 과연 무엇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 기자말

허물어질 운명에 처한 집 구하기

제주도 해안가 근처, 2주 동안 수리한 집
 제주도 해안가 근처, 2주 동안 수리한 집
ⓒ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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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내려오기 3개월 전부터 제주도에서 지낼 수 있는 집들을 인터넷을 통해서 알아보았지만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제주귀농귀촌협동조합의 소개로 5일간 한 농가주택을 빌려 머물렀다. <오일장>과 <교차로>를 통해 제주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집들을 방문해보았지만, 우리의 예산으로 원하는 형태의 집을 찾기란 불가능해보였다. 제주도에 이주하러 오는 가구수는 2010년부터 현재까지 20배 이상 증가했단다. 월세나 전세 가격 모두 많이 올랐다.

<오일장> 신문에 우리가 예상한 예산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한림에 주택이 나온 것을 발견했다. 부랴부랴 찾아가봤다. 읍내에서 멀지 않은 시골길을 따라 마을에 들어가니, 펜션단지로 주택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다양한 허브들이 정원에 잘 가꾸어져 있고, 집 뒤에는 텃밭을 가꿀 수 있는 곳이었다. 집 또한 겉으로 봐서는 멋있어 보이는데 왜 이렇게 저렴한 것일까?

집 내부를 살펴보니 손 볼 곳이 많았다. 곰팡이가 벽에 여기저기 많이 피어있고, 녹슬어 있는 식기건조대도 눈에 띄었다. 이곳을 우리가 살 공간으로 만들려면 2주 정도의 시간은 걸릴 듯 싶었다. 집주인 아저씨는 원래 이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지으려고 하셨는데, 예산이 안 맞아 빌려주는 거라고 하셨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집을 마음대로 꾸밀 수 있는 기회였다.

마당에 1주일 여 텐트를 치고, 집 단장에 돌입했다. 원하는 색깔로 페인트칠을 하며 벽화를 그렸다. 중고로 구매한 냉장고와 식탁은 한지로 리폼했다.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창의력을 마음껏 펼쳐볼 수 있는 기회였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원하는 재료로 집을 마음대로 꾸며볼 수 있으니 오랜만에 동심의 세계로 가본 듯 했다.

공유하니, 집이 두 채가 되었다

서귀포 표선 귤 농장
 서귀포 표선 귤 농장
ⓒ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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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단장한 집에서 3개월이 지나고 겨울이 됐다. 지인이 귤 농장에서 귤을 따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귤 농장은 우리가 사는 곳과 정반대인 표선에 위치하고 있었다. 귤 농장에서 일손이 한달 여 필요하다고 하는데, 표선에 한 달 동안 거주할 공간을 빌리면 그만큼 비용이 나가기 때문에 고민이 됐다.

"집이 비어있는 동안 제주도로 놀러오는 사람들에게 공유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제주맘카페'에 한 달 동안 필요한 분에게 집을 공유한다고 글을 올렸다. 업로드한 지 2분도 채 되지 않아서 연락이 왔다. 인천에 사는 가족이 제주도에 이주하러 사전답사를 오는데, 우리 공간에서 머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가 단장한 집을 공유하기 시작하니, 살림살이들이 풍부해지기 시작했다. 식당을 운영하다가 건강이 안 좋아져서 쉬러 온 부부, 아이들과 한 달 동안 놀러 온 가족, 자식들 결혼시킨 후 유목하면서 살고 싶어 온다는 노부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갔다. 그리고 숯·그릴·이불·컵·접시 등 필요 없거나 다음 분들이 쓰면 좋을만한 것들도 공유해줬다. 덕분에 살림살이가 늘어났다. 세상에는 나누면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거 같았다.

우리가 쓰지 않는 유휴자원 공간을 공유한 것 뿐인데, 집이 2채가 되고 살림살이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을 보니 신기했다. 누군가에게는 필요 없거나 평범한 것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를 연결해 주는 공유경제는 매력적이다. 과연 집을 공유한 경험이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게 해줄지 기대해본다.


태그:#공유경제, #제주도, #제주, #디지털노마드, #한달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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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탐험을 좋아하고 현재 덴마크 교사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기발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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