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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SNS에는 이슈가 넘쳐납니다. 동시다발로 쏟아지는 이슈의 홍수 속에서 독자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이야기를 골라 알기 쉽게 풀이해드립니다. [편집자말]
제주도 사투리보다 더 높은 난이도의 사투리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청와대 사투리'입니다. 분명 한국말인데 여러 번 반복해서 들어도 해석이 어렵다는 게 특징입니다. 글로 옮겼을 때도 뜻을 파악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입니다.

'청와대 사투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지난 18일 온라인커뮤니티 <오늘의유머>의 한 회원이 올린 게시물에는 박 대통령이 '청와대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장면이 담겼습니다. '청와대 사투리.jpg'라는 제목의 이 게시물은 높은 추천수를 기록해 현재 '베스트오브베스트' 게시판으로 옮겨진 상태입니다. 

세월호 1주기에 간첩신고 언급... 누리꾼들 "청와대 사투리냐"

누리꾼이 '청와대 사투리'로 지목한 것은 박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발언한 다음 세 가지입니다.

① "이 군생활이야말로 사회생활을 하거나 앞으로 계속 군생활을 할 때 가장 큰 자산이라 할 수 있는…." (2013년 12월 24일, 12사단 신병교육대대)

② "그 트라우마나 이런 여러 가지는 그런 진상규명이 확실하게 되고 그것에 대해서 책임이 소재가 이렇게 되서 그것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투명하게 처리가 된다, 그런 데서부터 여러분들이 조금이라도 뭔가 상처를 그렇게 위로받을 수 있다. 그것은 제가 분명히 알겠다." (2014년 5월 16일, 세월호 유가족과 면담)

③ "간첩도 그렇게 국민이 대개 신고를 했듯이… 우리 국민들 모두가 정부부터 해가지고 안전을 같이 지키자는 그런 의식을 가지고, 신고 열심히 하고…." (4월 15일, 세월호 1주기 현안점검회의)

여러분들은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누리꾼들이 박 대통령의 공식 발언을 두고 '사투리'라고 꼬집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으로 보입니다.

먼저 '중언부언'입니다. 주어-목적어-서술어 순으로 흐르는 게 보통인 한국어 어순을 창조적으로 파괴하면서, 비슷한 말을 늘어놓는 기술입니다. 거기에 '그런', '이런', '무언가' 같은 추상적인 표현이 군데군데 섞이면서 듣는 사람을 블랙홀로 빠져들게 하지요. 아무리 경청해도 말이 머릿속에 남지 않고 겉돌아버리는 겁니다.

지난 18일 온라인커뮤니티 오늘의유머에는 '청와대 사투리.jpg'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이 게시물을 올린 회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한 발언을 모아 '청와대 사투리'라고 명명했다. 때와 장소에 맞지 앉은 화법을 꼬집은 표현이었다.
▲ '청와대 사투리' 지난 18일 온라인커뮤니티 오늘의유머에는 '청와대 사투리.jpg'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이 게시물을 올린 회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한 발언을 모아 '청와대 사투리'라고 명명했다. 때와 장소에 맞지 앉은 화법을 꼬집은 표현이었다.
ⓒ 오늘의유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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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상황과 맞지 않는 단어 선택입니다. 앞서 세 가지 발언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또렷이 와닿지는 않지만 대충 뭘 말하려고 하는지 추론은 가능한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누리꾼들이 "못 알아듣겠다"고 토로하는 것은 박 대통령이 때와 장소에 맞지 않는 단어를 쓰기 때문일 겁니다. 지난 15일 '간첩'을 언급한 세 번째 발언이 특히 그렇습니다.

당시는 세월호 참사 1주기 날에 해외순방에 나서는 박 대통령에게 큰 원성이 쏟아지던 시기였습니다. 또한 유가족들이 단체로 삭발을 하고, 박 대통령이 세월호 선체인양과 정부 시행령 폐기에 대한 응답을 하지 않으면 세월호 1주기 추모식을 열지 않겠다고 최후통첩을 한 직후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모두의 시선이 대통령의 입으로 쏠린 시기에 그는 '청와대 사투리'를 구사하고 말았습니다. 정부 시행령과 관련해서는 "원만하게 해결되도록 신경을 많이 쓰기 바란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고, 세월호 선체 인양과 1주기 추모식 일정에 대해서는 침묵했습니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간첩' 이야기를 꺼내든 겁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우리 사회의 안전'을 당부하면서 말이죠.

"스피치 수업 듣는 학생입니다, 저렇게 하면 F 받습니다"

'청와대 사투리'를 접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오늘의유머> 회원 '가만**'는 "아… 사투리라서 못 알아들은 거였구나, 나만 못 알아들은 줄 알았네"라며 무릎을 쳤습니다. 대학생 'Aon****'은 "안녕하세요, 이번 학기에 스피치와 토론 과목을 듣는 학생입니다, 저 정도 스피치면 F를 받습니다"라고 혹평했습니다.

'청와대 사투리'로 감상평을 남긴 회원도 있습니다. 'mad****'는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그렇다는 게… 아무리 한국인이라도… 같은… 어디가 읽을 수 있는… 그런 여러 가지 의미들을 가지고… 어떤 부분이… 열심히 살아야 하겠다… 그러니까 제 말은… 어렵다… 무슨 말을… 이해할 것"이라고 썼습니다.

트위터 이용자들도 비슷한 반응입니다. '@linde*****'은 "오오 세상에 한국 사투리는 제주도 사투리가 제일 어려울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의외로 더 하이레벨이 있었군, 청와대사투리"라고 감탄했습니다. "청와대 사투리가 아니고 청와대'어'로 분류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하나도 못 알아먹겠음"이라고 주장하는 이용자(@4_7d***)도 있습니다.

당대 문장가로 꼽히는 고종석 작가도 자신의 트위터(@kohjongsok)에서 한마디를 보탰습니다. 그는 저서 <고종석의 문장> 1·2권의 사진을 올린 뒤 "모든 한국어 화자들에게 강추, 문인지망자들과 정치인들과 청와대 비서진에겐 특강추, 박근혜씨는 어차피 읽어도 안 될 거 같으니, 그분에겐 비추"라고 남겼습니다.

당대 문장가로 꼽히는 고종석 작가도 자신의 트위터에서 박 대통령의 '청와대 사투리'를 꼬집었다.
 당대 문장가로 꼽히는 고종석 작가도 자신의 트위터에서 박 대통령의 '청와대 사투리'를 꼬집었다.
ⓒ 고종석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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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가진 사람에게 망각은 어렵다"... '청와대 사투리'는 계속된다

누리꾼들을 '멘붕'으로 몰아넣는 박 대통령의 발언은 이 외에도 여럿 있습니다.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으로 불리는 것들입니다.

먼저 세월호 1주기 날에 중남미 4개국 순방에 나선 박 대통령이 첫 번째 방문국 콜롬비아에서 한 말입니다. 그는 지난 17일(현지시각) 콜롬비아의 한국전쟁 파병에 감사 인사를 전하며 "가슴을 가진 사람에게 망각은 어렵다"(Olvidar es dificil para el que tiene corazon)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19일에 이 발언이 언론보도로 알려지자 누리꾼들이 크게 반발했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먼저 박 대통령은 유가족의 최후통첩에도 끝내 희생자들의 영정이 안치된 안산 합동분향소를 방문하지 않고 출국했습니다. 또한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열린 추모집회에서는 유가족 20명을 포함해 모두 100명의 시민이 연행되는 등 경찰의 강경대응이 논란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가슴을 가진 사람'을 언급하자 누리꾼들이 화가 난 것입니다.

그는 출국 직전에도 민심을 거스르는 발언으로 많은 사람을 허탈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지난 16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청와대로 급히 불러 긴급회동을 연 자리에서 한 말이 그렇습니다. 

당시 언론들은 박 대통령이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이완구 국무총리의 거취와 관련한 '결단'을 내리지 않겠느냐고 앞다투어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말해, 많은 국민에게 허탈함을 안겼습니다. 대신 박 대통령은 "공무원 연금개혁은 꼭 관철시켜야 한다"는 당부를 남겼습니다. 앞서 말한 '간첩' 발언이 연상되네요.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 편집ㅣ최규화 기자



태그:#박근혜, #청와대, #세월호, #이완구,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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