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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18일) 초등학교(정확히는 국민학교) 졸업 후 46년 만에 동창회를 했다. 그 전에도 작은 모임은 있었다지만 다 함께 17회 동창회 명분을 가지고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60년대에 학교 운동회는 마을 잔치였다.
 만국기가 걸리고 온 가족이 도시락을 싸와서 다 함께 참여했던 그 때 그 운동회.
▲ 졸업앨범 60년대에 학교 운동회는 마을 잔치였다. 만국기가 걸리고 온 가족이 도시락을 싸와서 다 함께 참여했던 그 때 그 운동회.
ⓒ 박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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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근교의 음식점에서 주말 저녁에 만난다는 안내 문자를 몇 차례 받았다. 연락이 닿고 시간 낼 수 있는 친구들 몇이 모이다보니 좀 늦은 시간에야 모이는 장소로 출발했다. 도시를 벗어난 외진 곳인데다 밤길이라 천천히 살피며 가다보니 흐드러진 벚꽃 사이로 17회 동창생들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길가에 걸려 있었다.

"우와~ 동창회가 맞긴 맞네."

창 밖에서 보니 산자락 깊숙한 곳에 자리한 음식점 안의 큰 홀에는 웬 늙수그레한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 홀 외에는 달리 있을 곳도 없어 보여 한참을 살펴보니 우리 동창들이 맞다. 머릿속의 이미지와 실제 동창들 모습의 차이가 크다. 나 역시 그럴 것이다.

당시 무연탄 난로가 놓인 교실. 수업 시간과
운동회, 수학여행의 모습
▲ 졸업 앨범 당시 무연탄 난로가 놓인 교실. 수업 시간과 운동회, 수학여행의 모습
ⓒ 박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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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자기소개하고 식사하면서 술이 한 순배씩 돌았다. 도래도래 모여 서로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누느라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이미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이날만큼은 그 시절 그때의 호칭으로 불렸다. 신작로 신발 집 누구, 화분 집 아들, 양조장집 아무개….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변두리에 자리한 학교였다. 난 시내에 살다가 집안이 기우는 바람에 시 외곽으로 막 이사한 상태였다. 그 학교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진 동네라 우리 집 근처에는 같은 반 친구가 없었다. 이날도 학교 앞에 밀집해 있던 동네 친구들은 누구네 옆에 누구 집이 있었고 등 서로 호구조사로 바쁜 와중에도 나만은 열외였다.

중심지에서 변두리 산동네로 이사 간 셈인데 전에 살던 동네와는 여러모로 달랐다. 할머니께서는 이곳 사람들 언행이 거칠다고 걱정을 많이 하셨다. 될 수 있으면 근처 애들과 같이 섞이지 않기를 바라셨다. 자치기나 팔방, 다방구나 구슬치기를 하며 골목 애들과 같이 놀기는 했지만 속엣 이야기를 나눌 친구는 없었다.

우리 집에서 한참을 걸어 나가서 있는 신작로, 대학교 앞에 사는 우리 반 '월영이'가 내가 전학가서 사귄 첫 친구였다. 이 골목 저 골목 친구들끼리 몰려다니며 숙제도 하고 놀기도 하는 그런 초등학교 시절은 아니었다. 이날 모인 동창 중에도 나랑 친했던 친구는 몇 없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낯설고, 주름진 얼굴도 가만히 보다보면 어렸을 적 학교에서 봤던 그 어리고 장난기 서린 얼굴이 생각났다.

남학생반 수업모습과 수학여행, 학교 행사  모습.
70명에 가까운 당시 한 반 학생들.
▲ 졸업앨범 남학생반 수업모습과 수학여행, 학교 행사 모습. 70명에 가까운 당시 한 반 학생들.
ⓒ 박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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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각, 하룻밤을 자고 갈 대부분의 친구들을 뒤로하고 자리를 빠져나오는 길, 불빛 아래 모여 앉은 그 동창들의 나이 든 모습 위에, 초등학교 때의 보송송한 모습들이 겹쳐 보였다. 모든 게 귀하고 어렵던 시절, 같은 학교를 다니며 한 시대를 함께 이만큼이나 살아온 인연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 했다. 한철 예쁜 화초가 아니라 풍상을 견디어낸 해송 같은 친구들. 부디 다들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빌었다.

돌아오는 길, 가로수 벚꽃이 만발해서 마치 흰 휘장을 드리운 듯한 길을 지나오다 네루다의 시를 생각했다. 사월 벚꽃처럼 한창 싱그럽진 않지만, 먹고 살며 자식 키우는 짐을 이젠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나도 좋을 나이다. 지금은 환한 저 꽃도 머지않아 곧 질 것인데. 우리도 이제 내 안의 나를 돌봐도 될 때가 되지 않았나? 그 때의 내가 원했던 것, 그 때 그리도 간절했던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한데, 그때의 그 아이는 아직 내 안에 있기나 한 것인지….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 파블로 네루다 ('질문의 책'에서)


태그:#1969년 , #초등학교 동창회, #파블로 네루다, #내 안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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