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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5일에 열린 동양시멘트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집단 해고 규탄대회. 삼척 시내에서 거리행진을 하는 노동자들.
 지난 2월 25일에 열린 동양시멘트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집단 해고 규탄대회. 삼척 시내에서 거리행진을 하는 노동자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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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 노동 현장에서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수십 년째 계속되고 있다. 대부분 거기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의를 제기한다 해도, 그것이 잘못된 일로 받아들여지는 일은 극히 드물다. 오히려 이의를 제기한 사람만 피해를 보기 십상이다.

여기에 동양시멘트 하청 노동자들이 있다. 원청인 동양시멘트는 그들을 협력업체 직원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협력업체 직원으로 불리는 이들 하청 노동자들은 원청 노동자들과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일한다. 하청 노동자들은 말이 협력업체 직원이지, 사실상 원청 직원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하나 없다. 그런데도 대우는 완전히 다르다.

차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 하청 노동자들은 결코 원청 노동자들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없다. 원청에게 이들은 단지 협력업체가 고용한 노동자들일 뿐이다.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 노동자들과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사용자'가 다르다는 데 있다. 하지만 그 이유란 게 사실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청 노동자들이 소속된 협력업체란 게 실제로는 단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협력업체의 대표라는 사람들은 원청에서 이직한 사람들이다. 게다가 임금과 노동 시간 등 제반 근로조건은 모두 원청에서 결정했다. 그러니까 원청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들 사이에 차별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아무 데도 없다.

그런 사실에 분노한 하청 노동자들이 마침내 이의를 제기했다. 오랜 기간 원청 노동자나 다름없이 일해 온 자신들을 원청에서 '직접 고용'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답은 엉뚱하게도 '집단해고'였다. 최근에 삼척에 있는 동양시멘트에서 일어난 일이다. 대체 이곳에서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향토기업에서 일한 지 십수 년, 남은 건 '배신감'뿐

해고노동자들이 동양시멘트 앞 도로 건너편에 설치한 천막농성장.
 해고노동자들이 동양시멘트 앞 도로 건너편에 설치한 천막농성장.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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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에 시멘트 공장이 들어선 건 일제시대인 1937년이다. 그 공장에 동양시멘트 이름이 붙은 건 60여 년 전이다. 그런 이유로 동양시멘트는 '향토기업'을 자처할 수 있었다. 이 말을 들으면, 마치 동양시멘트라는 기업이 지역과 상당히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동양시멘트와 하청 노동자들 간에는 애초 그런 유대감은 존재하지 않았다.

삼척과 동해 등 지역 주민이 대다수인 하청 노동자들은 동양시멘트에서 일하면서 숱한 차별을 느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차별은 임금에서 드러난다. 하청 노동자들은 평소 원청 노동자들보다 노동 강도가 더 센 일을 해 왔다. 그런데도 임금은 잔업 수당을 제외했을 때, '원청 노동자가 받는 임금과 비교해 40%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해고 노동자들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근속연수가 13년 차에 해당하는 한 하청 노동자의 연봉이 채 3천만 원을 넘지 않는다. 이 임금을 시급으로 따지면 6420원이다. 2015년 법정 최저시급은 5580원이다. 13년차 노동자 임금이 법정 최저시급과 비교해도,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다. 부족한 생활비를 채우기 위해, 장시간에 걸친 '잔업'은 필수였다.

이들은 석회석 광산에서 채석을 운송하는 업무 등을 맡아 왔다. 이 일은 거대한 10톤 트럭을 몰고 노천광산의 낭떠러지 길을 지나는 위험한 일이다. 이런 곳에서 하청 노동자들은 "하루에 16시간씩 일하는 것도 태반"이었다. 때로는 "원청 노동자들이 꺼리는 일도 그들이 도맡아 처리"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야 했지만,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적인 수모도 참고 견뎌야 했다. "차별이 있다, 없다, 말 한 마디 잘못 꺼냈다가는 바로 근무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야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해고를 감수해야 할 판이다. 하청 노동자들은 수십 년을 원청 노동자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을 하면서도, 그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아야 했던 것이다.

하청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라는 판정 내린 노동부

지난 2월 25일 동양시멘트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집단 해고에 반발해 '투쟁 결의 삭발식'을 거행하고 있는 노동자들.
 지난 2월 25일 동양시멘트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집단 해고에 반발해 '투쟁 결의 삭발식'을 거행하고 있는 노동자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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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 지나친 차별에 화가 난 하청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한 건 지난해 5월이다. 먼저 노조를 결성한 건, 협력업체 중 하나인 (주)동일이다. 그 뒤를 이어 유한회사 두성기업이 노조를 결성했다. 노동자들은 노조 결성과 더불어, 고용노동부 태백지청에 자신들이 '위장도급'과 '불법파견' 상태에 있음을 확인해 달라고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노동부는 쉽게 답을 내놓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노동부가 좀처럼 진정 사건을 해결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지난해 10월 16일 고용노동부 강원지청 앞에서 "동양시멘트 불법파견을 신속하고 철저하게 조사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그리고 올해 2월 5일에는 태백지청을 방문해 진정사건 판정을 요구하며 지청장실을 점거하는 농성을 벌였다.

그런 일들이 있고 나서, 고용노동부는 올해 2월 13일에 가서야 겨우 '동양시멘트 불법파견 진정사건 조사 결과'를 밝히고, "(주)동양시멘트와 (주)동일, (유)두성기업은 외형상 도급계약을 체결하여 도급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나... (중략)... 그 존재가 형식적, 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아니하고..."라는 판정을 내렸다.

고용노동부는 이어서 "(주)동양시멘트는 실질적으로 (주)동일, (유)두성기업 소속 근로자들로부터 직접 근로를 제공받고 임금을 포함한 제반 근로조건을 결정하였는 바...(중략)... (서로 간에)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에 있다고 판단"한다며, "(주)동양시멘트에 (주)동일, (유)두성기업 근로자들과 근로계약 체결 등 직접 고용을 위한 제반 조치를 취하도록 통보"했다.

고용노동부가 내린 판정은 명백했다. 동양시멘트 하청 노동자들은 원래 동양시멘트에서 고용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동양시멘트는 노동부의 판정 결과를 수용하지 않았다. 동양시멘트는 하청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라는 요구에 곧 바로 (주)동일과 맺은 도급계약을 해지했다. (주)동일은 그걸 빌미로 지난 2월 17일, 노동자 101명에게 집단해고를 통고했다. 그때가 설 연휴 전날이었다.

'직접 고용' 요구에 '집단 해고'로 답한 동양시멘트

최창동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노동조합 동양시멘트지부장. 동양시멘트가 고용노동부 판정을 수용할 것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최창동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노동조합 동양시멘트지부장. 동양시멘트가 고용노동부 판정을 수용할 것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서 있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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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로부터 '직접 고용' 판정을 이끌어낸 노동자들의 기쁨은 채 일주일을 가지 못했다. 수십 년간 지속돼 온 불법과 탈법을 바로잡으려 한 대가로, 하청 노동자들은 결국 설 연휴 전날, 해고 노동자가 돼 거리로 내몰렸다. 해고 노동자들은 지난 3월 2일, 동양시멘트 정문 앞에 천막을 치고 무기한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해고 노동자들이 동양시멘트에 원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다. 해고 노동자들은 "동양시멘트가 향토기업으로서 책임을 지는 자세를 가질 것"을 원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향토기업으로서 지역 주민이 대다수인 노동자들과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니냐"며, "동양시멘트가 향토기업에 걸맞은 자세를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동양시멘트가 하청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과 같은 "책임을 지는 자세"를 갖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동양시멘트와 해고 노동자들의 관계는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집단 해고 이후, 동양시멘트는 지난 3월 30일 해고 노동자들의 시위와 점거가 자신들의 사업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법원에 '업무 방해금지 가처분신청서'를 제출했다.

노동자들이 동양과 같은 거대 기업에 맞서 싸우는 게 결코 쉽지 않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문제 때문에 늘 가슴이 무겁다. 해고노동자들 대부분 지금 당장 집안의 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투쟁에 소요될 자금을 확보하는 것도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 중에 하나다. 이들은 지금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해고 노동자들은 지금까지 한 달 보름이 넘는 천막 농성을 이어가면서 정신적으로 상당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해고자'를 바라보는 주변 시선이 따갑게 느껴진다. 농성 기간이 길어지면서, 신체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오랜 시간 동양시멘트에서 일한 대가로 느닷없이 해고를 당한 배신감도 견디기 힘든 일 중에 하나다.

해고 노동자들, 법원에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제기

하청 노동자들은 2012년 동양시멘트가 삼척화력발전소 유치 경쟁에 나섰을 때도 "여기에 있는 해고 노동자들이 직접 유치 서명을 받으러 다니는 등 동양이 유치 업체에 선정될 수 있게 도왔는데, 그 결과가 해고로 돌아왔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들은 심지어 "동양시멘트가 향토기업으로서 지역에 한 일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배신감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이후 화력발전소 유치 경쟁에서 이긴 동양은 지난해 8월 화력발전소(동양파워)를 4311억 원을 받고 포스코에너지에 매각했다. 향토기업이라는 이점을 살려 일거에 수천억 원에 달하는 이익을 남기고서도, 정작 지역 주민들이 대다수인 하청 노동자들의 요구에는 '도급계약 해지에 따른 해고'라는 치명타를 안긴 것이다.

노동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동양시멘트는 현장에 대체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 지금 대체 인력이 투입되는 일자리 역시 문제가 소지가 있다. 그런데도 고용노동부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불법' 판정을 내리고 나서도, 실제적인 문제 해결에는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불법은 사용자가 저질러 놓고도 그에 따른 피해 구제는 노동자들이 알아서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해고노동자들은 동양시멘트가 노동부 판정을 수용하지 않자, 지난 3월 9일 법원에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했다. 해고 노동자들은 동양시멘트가 자신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각오다. 투쟁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동양시멘트는 현재 "해고 노동자들이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법적 절차를 정확하게 밟아서 판결을 받아오면 어떻게 판결이 나는지에 대해서 수용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노동자들이 느낀 차별과 관련해서는 "본인들이 느끼기에는 그럴 수도 있지만 (실제) 그런 일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임금 같은 경우, "(원청 노동자들과 비교해)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잔업 수당을 포함해) 평균 연봉이 4200만 원으로 그렇게 적은 금액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동양시멘트, #위장 도급, #불법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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