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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0년, 군입대전 아르바이트를 했던 '안치환과 자유' 콘서트에서 만났던 일본인 친구. 그를 통해 한국의 아픈 역사를 인식하게 됐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말동무가 되어 자원활동을 하는 그의 모습에서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낀 지 14년이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이 겪었던 역사를 기억하고 교육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는 공간이다. 전쟁과 여성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행동하는 박물관'이다.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결탁한 남한 단독정부수립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저항이었던 '제주 4·3항쟁', 이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제주 4·3 평화기념관', 전두환 신군부 세력을 거부하고 민주화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목숨을 건 '5·18 민주화 운동', 그 아픔을 기억하고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세워진 '5·18 기념관'까지. 세월호 집회 현장에서 무기력하게 바라보던 내가 가만히 있지 않는 방법으로 선택한 건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지난 역사를 돌아보니, 끊임없이 기억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제2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우선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억은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며 행동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아름다운 가게'를 퇴사하고 퇴직금으로 시작하는 터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5년 전 제주도에 내려와 자리를 잡은 (주)알이 신치호 대표가 기꺼이 공간을 만드는 전체 디렉팅을 맡아주기로 했다. 감사와 큰 힘을 받고 2월 23일 제주도에 내려와 쿵쾅쿵쾅 공간 만드는 작업에 돌입했다(관련 기사 : "내가 죽을 수도 있었는데... 여기 온 게 왜 오버인가요?").

그리고 다가온 4월 16일. 이렇게 무기력하게 오지 않기를 그토록 바랐는데,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1주기를 맞이하는 느낌이 아프고 무거웠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2015년 4월 16일. 세월호 희생자들이 향하던 제주도에서 '기억공간 re:born(리본)' 을 시작했다.

2015년 4월 16일 오후 2시

'기억공간 re:born' 개관행사
 '기억공간 re:born' 개관행사
ⓒ 천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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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공간 re:born' 개관행사
 '기억공간 re:born' 개관행사
ⓒ 천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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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개관행사 시작인데 오전 11시부터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미리 취재를 하겠다며 발걸음 해 주시는 방송, 언론사들, 함께 노래하기 위해 온 뮤지션들, 영상과 사진을 담기 위해 온 활동가들, 전 직장이었던 아름다운 가게 동료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유모차를 끌고 오는 동네 엄마들, 동네 어르신들, 단체/협동조합 활동가들, 포스터를 보고 SNS를 보고 확인했다며 찾아주신 제주도민들... 육지와 섬은 그렇게 하나되어 연결되고 있었다.

시간은 2시가 가까이 오고 사회를 맡은 난 마이크를 잡았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벌써 1년이 지나 오늘이 왔습니다."

무기력하게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움직이던 지난 1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제주 선흘리 '기억공간 re:born'에서 '아이들의 방'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제주 선흘리 '기억공간 re:born'에서 '아이들의 방' 전시가 열리고 있다
ⓒ 황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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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선흘리 '기억공간 re:born'에서 '아이들의 방'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제주 선흘리 '기억공간 re:born'에서 '아이들의 방' 전시가 열리고 있다
ⓒ 황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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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선흘리 '기억공간 re:born'에서 '아이들의 방'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제주 선흘리 '기억공간 re:born'에서 '아이들의 방' 전시가 열리고 있다
ⓒ 황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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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선흘리 '기억공간 re:born'에서 '아이들의 방'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제주 선흘리 '기억공간 re:born'에서 '아이들의 방' 전시가 열리고 있다.
ⓒ 황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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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공간 re:born'이 있는 '공존공간 선흘창고'를 만난 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 장소를 고민하던 내게 독립공간을 준비하던 범준이형이 함께 하면 어떻겠냐고 손을 내밀어주었다. 그렇게 함께 '공존'을 모색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적같이 만들어진 공간이다.

소를 키우던 장소를 공존공간으로 내어주신 할머니를 감사한 마음을 담아 소개했다. 기억공간 바로 옆에 집이 있는 할머니는 집 앞마당을 행사 장소로 제공해주셨다. "여러분들 모두 행복하세요." 할머니의 덕담과 환호하는 박수와 웃음으로 행사가 시작됐다. 범준이형이 나와 공간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바로 공연이 시작됐다.

제주도에서 제주도 노래가 빠질 수 있냐며 선곡에 애를 먹었다는 뮤지션 '하늘소년'의 노래를 시작으로, '바위처럼' 노래에 맞춘 율동으로 공연을 마무리한 '볍씨학교 친구들', '개나리도 폈는데 아이들이 졌다'는 가사로 마음을 후빈 '길가는 밴드'... 이어 참여환경연대와 세월호제주대책위를 맡고 있는 홍영철 대표의 발언이 가슴을 친다.

"제주도는 화물기사 생존자들이 많습니다. 살아도 산 게 아닌 세월을 지나고 있습니다."

실종자 가족은 유가족이 되고 싶어하고, 유가족은 생존자 가족이 되고 싶어하는 물고 물리는 아픈 고리가 죽어서 말이 없는 자,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시간을 보내는 생존자, 세월호참사 1년이 지나도 '기억하겠다'고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의 관계로 투사됐다.

아프고 후빈 마음을 달래주는 듯 잔잔한 음악 연고를 발라 준 '오늘 내일', 제주여행자들로 구성된 '제주거지훈과 우뚜르들'의 마지막 공연까지. 뮤지션들의 공연은 우리가 살아서 기억하고 불러야할 노래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렇게 이어진 아름다운 생태길을, 우리는 삼삼오오 손잡고 함께 걸었다. 지금도 노란배지를 달고 있으면, '1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세월호 이야기냐'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순간 짜증과 함께 상대방을 미워하는 마음이 훅! 나를 감싸지만 마음을 나누고 함께 손잡고 걸어야겠다고 이내 정리한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게 하는 나라, 너도 나도 안전하지 않지만 당장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니 무심히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주입하는 나라... '이 나라'가 '내 나라'임을 똑똑히 보았기에, 더불어 함께 나갈 수 있는 '우리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미안함이 적어도 고개를 못드는 비참함을 면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죽음이 희망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제주도에서 아침을 맞이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난, SNS로 보이고 들리는 토요일(18일) 일로 다시금 마음을 추스른다. 세월호 참사 1주기 뒤 첫 주말을 맞은 세월호 집회. 참가자들과 경찰이 충돌하면서 세월호 유가족을 포함해 시민 100여 명이 연행됐다는 소식에 마음을 다잡는다.

지난해 5월 18일 광화문 집회에 나갔다가 연행된 후, 박근혜 정부 공권력 남용에 대한 깊어진 고민으로 제주에 왔는데... 1년이 지나도 바뀐 게 없다는 현실이 비통하다. 연행된 사람들 중에 지인도 포함돼 있다는 소식에 멀리서 안타까움만 더할 뿐, 기억공간 re:born에서 해야 할 일을 다시 들춰본다.

서울 시내 광화문 한복판에 경찰 버스가 촘촘히 줄지어 서 있고, 캡사이신과 물대포를 난사해 진실을 알고 싶은 시민들에게 무리한 공권력을 투입하는 박근혜 정부를 똑똑히 기억하자. 사회적 기억이 개인적 의미로 다시(re) 태어나(born) 행동(act)하는 내가 되면, 우리는 비로소 세월호 참사를 딛고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노래를 찾는 사람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에 동지 모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동지의 손 맞잡고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주자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주고
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길을
마침내 하나됨을 위하여


태그:#세월호, #기억공간, #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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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세월호참사 이후 세월호가 향하던 제주도에서 사회적 기억이 개인적 의미로 다시(re) 태어나기를(born) 소망하며 기억공간 re:born을 운영하고 있는 황용운 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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