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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19일, 이틀에 걸쳐 고양시에서 ‘고양누리길 전국걷기축제’가 열렸다.
 4월 18일~19일, 이틀에 걸쳐 고양시에서 ‘고양누리길 전국걷기축제’가 열렸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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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누리길 걷기축제 1박2일 참가기①에서 이어집니다.

19일 오전 8시, 배낭을 꾸려 짊어지고 신발 끈까지 조였다. 다시 출발이다. 숙소인 홍익비전센터를 출발해 일산문화공원까지 20km를 걸을 예정이다. 어젯밤, 잠들 때만 해도 종아리가 무거웠지만 자고 일어나니 가벼워졌다. 컨디션, 좋다. 이대로라면 20km가 아니라 30km도 너끈히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출발에 앞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흐리다. 오늘,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제법 많은 비가 내릴 거라고 했다. 한때는 일기예보가 거의 맞지 않아 기상청이 욕을 많이 먹었는데, 요즘은 거의 정확하게 맞는단다. 그러니까 비 올 확률이 90% 가까이 된다는 결론.

비가 와도 된다. 배낭까지 넉넉히 감쌀 수 있는 비옷을 준비했는데 뭐가 걱정이람. 모자는 방수되는 걸 가져왔다. 걷다가 하늘을 올려볼 때마다 구름이 점점 비를 더 많이 머금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구름은 여린 잿빛에서 짙은 잿빛으로 변하고 있었고, 점점 무거워져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래, 한바탕 신나게 쏟아지렴. 너무 가물었잖아. 미세먼지로 오염된 대기를 맑게 깨끗하게 씻어주는 것도 좋겠지.

4월 18일~19일, 이틀에 걸쳐 고양시에서 ‘고양누리길 전국걷기축제’가 열렸다.
 4월 18일~19일, 이틀에 걸쳐 고양시에서 ‘고양누리길 전국걷기축제’가 열렸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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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기 전에 50km 코스 도전자들이 모여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표정은 죄다 밝다. 그럴 수밖에 없다. 걸으면서 불행한 이는 없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잡생각은 허공으로 흩어지고 뿌듯한 만족감이 걸음을 옮긴 횟수만큼 마음에 차곡차곡 쌓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을 걷는 것에 '힐링'이라는 이름 붙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길이 좋다. 숲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융단을 깔아놓은 것처럼 푹신하고,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상쾌하기 짝이 없다. 100만 도시 고양시, 하면 전형적인 도회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곳곳에 걷기 좋은 길이 보물처럼 숨어 있다. 그래서 걸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홍익비전센터에서 길은 서삼릉누리길로 이어졌다. 이 길은 전체 길이가 8.28km이며, 역사문화유산인 조선왕릉인 서삼릉이 있다. 예전에는 배다리 술 박물관이 있었으나, 지금은 문을 닫았다. 박물관 운영이 어려워 그예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는데, 그 소식을 전해 듣고 안타까웠다. 그래도 고양시의 유명한 배다리 막걸리는 시중에서 판매된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공릉천에는 백로 한 쌍이 긴 다리를 담근 채 연애질을 하고 있었다. 그들 앞에서 한 마리 논병아리가 훼방질하는 것처럼 자맥질하고 있는 게 보였다. 백로들이 서로 희롱하는 모습을 같이 지켜보던 이미숙 고양생태공원 코디네이터가 공릉천에서 원앙 수컷이 바람을 피우는 현장은 목격(?)했던 경험담을 들려준다.

공릉천은 새들이 서식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라 탐조를 하러 많이 온단다. 다양한 새들을 볼 수 있는데, 새들의 애정행각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라나.

공릉천이 끝나는 길, 걸음이 저절로 멈춰졌다. 화사하게 피어난 하얀 목련이 거기 있었다. 아주 완벽하게 꽃을 피운 목련 나무는 참으로 오랜만에 본다. 개화의 절정에 이른 목련은 너무나도 우아하고 품위 있고 은은했다.

내, 너를 보려고 이 길을 걸었나 보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생각했다. 사진으로 저 모습을 완벽하게 담아내지 못할 거라고. 하지만 사진을 보며 너를 본 순간을 마음 속으로 완벽하게 재현해낼 수 있으리.

고양힐링누리길에서 하얀 목련을 만났다.
 고양힐링누리길에서 하얀 목련을 만났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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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송강누리길로 이어진다. 매봉을 넘는데 최한범 고양시 녹지과 주무관이 강아의 무덤이 있는 곳을 알려준다. 예전에는 이곳에 송강 정철의 무덤도 있었으나, 옮겨 갔고 연인이었던 강아의 무덤만이 홀로 남았다고 했다. 아내가 아닌 연인이라 남겨졌지만, 이제는 강아를 송강 곁으로 옮겨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나.

걷기 시작한 지 두 시간 남짓 되었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 두어 개가 얼굴에 떨어지는가 싶더니 어느 사이엔가 빗줄기가 되었다. 비옷을 꺼내 입었다. 공양왕릉에 다다랐을 무렵에는 빗줄기는 조금 더 거세졌다.

비는 우리 일행이 최종 목적지인 일산문화공원에 도착할 때까지 그치지 않고 내렸다. 비가 내리면서 땅이 촉촉이 젖어들기 시작하자 흙내음이 숲길에, 오솔길에 안개처럼 흩어졌다. 발밑에서 올라오는 흙내음은 은은하면서도 향기로웠다.

길은 송강누리길을 벗어나 배다리누리길로 이어진다. 걷기 좋은 숲길이다. 길은 점점 더  습기를 머금기 시작했다. 비에 젖은 연둣빛 나뭇잎들이 신나서 하늘을 향해 몸을 흔들어댄다. 봄비에 그나마 남은 벚꽃은 지겠지만, 철쭉은 흐드러지게 피어나리라. 그리고 연둣빛 잎사귀들은 더 많은 물기를 빨아들여 색이 더 깊어질 것이다.

비옷을 입었지만, 옷이 흠뻑 젖었다. 걸으면서 흘린 땀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옷 안으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는 날 걸으면 비옷을 입어도 땀 때문에 옷이 젖는다. 하지만 비옷을 입지 않으면 배낭이 젖고, 핸드폰이 젖고, 카메라가 젖어 낭패를 보니 어쩔 수 없이 비옷을 입는다.

길상사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푹 젖은 옷은 한기를 한껏 느끼게 하지만 따뜻한 커피를 마시니 몸이 다시 데워진다. 노곤한 피로감이 발밑에서부터 아지랑이처럼 위로 올라온다. 아직 걸어야 할 길이 남아 있는데 말이다.

다시 비옷을 입고, 길 위로 나섰다. 이제 남은 길은 5km 남짓. 백마역을 거쳐 정발산에 오른다. 길은 숲 사이로, 나무 사이로 구불거리면서 물처럼 흐른다. 아, 이제는 종아리가 무겁다. 비가 내리기 때문일까, 어제보다 피로감이 빨리 느껴진다.

4월 18일~19일, 이틀에 걸쳐 고양시에서 ‘고양누리길 전국걷기축제’가 열렸다.
 4월 18일~19일, 이틀에 걸쳐 고양시에서 ‘고양누리길 전국걷기축제’가 열렸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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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50km를 걸으면서 몇 개의 고개를 넘었을까? 아파트만 가득하다고 생각했던 도시 고양을 재발견하는 기회가 된 걷기축제였다.

정발산을 넘으니 일산문화공원이 나타난다. 어제, 출발했던 곳이다.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원점회귀(原點回歸)라고 한다지. 먼 길을 돌아서 다시 제자리에 서는 기분, 나쁘지 않다.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틀 동안 세속의 모든 것을 잊고 오로지 걷기에만 열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같이 걸으면서 한껏 가까워진 길 친구들, 그들의 존재가 고맙게 느껴지는 것도 걷기에만 열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일상이 무겁게 느껴질 때, 삶이 무기력해질 때, 사람의 존재에 회의가 느껴질 때, 고양힐링누리길을 걷자. 그러면 삶의 무게가 한껏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이번 걷기축제가 그랬다. 같이 걷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았다.

꽃내음 가득한 고양의 봄길, 함께 걸으면 더 좋은 길. 고양힐링누리길.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벗과 함께 걸으라고 권하고 싶다. 걷기축제는 끝났으나, 길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찾아주는 발길을 기다리고 있으므로.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고양누리길, #걷기축제, #공릉천, #고양시, #송강누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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