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최근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신조어에 요즘 핫 키워드인 '뇌섹남'이 포함됐다. 이 단어가 '뇌가 섹시한 남자'의 줄임말임을 아는 사람은 이제 많을 터. 그렇다고 이 단어의 뜻을 한 마디로 명확히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뇌가 섹시하다는 건 무슨 뜻일까.

수십 번 생각해봐도 좀처럼 적절한 풀이가 떠오르지 않지만 이미 이 단어는 신조어의 '인큐베이터'인 방송가에서 자리를 잡고 대중을 상대로 마케팅을 하고 있다. 연예계 대표 뇌섹남을 집합시켰다는 방송프로그램 tvN <뇌섹시대-문제적 남자>(이하 '문제적 남자')는 지극히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뇌섹남 테마를 구현한다.

그 모습은 이미 구닥다리 단어가 돼버린 '엄친아' 캐릭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주목할 점. 실제로 <문제적 남자>에 출연한 스타들은 이미 수년 전 상위권 학력으로 엄친아 화제를 일으킨 인물과 겹친다. 이들에게 고학벌 스펙은 이미 '한 몫' 챙기고 창고에 던져 놓은 '재고 상품'에 불과한 것.

 tvN 방송프로그램 <뇌섹시대-문제적 남자> 홈페이지 캡쳐

tvN 방송프로그램 <뇌섹시대-문제적 남자> 홈페이지 캡쳐 ⓒ CJ E&M


하지만 <문제적 남자>는 출연자의 출신학교와 아이큐(IQ)지수, 어학성적 등 온갖 스펙을 끄집어내 이들의 지적인 우월함을 어필하려 애쓴다. 물론 프로그램을 더 살펴보면 이들의 똘똘함이나 박학다식함을 증명하기 위해 어려운 퀴즈를 쉴 새 없이 던지는 '테스트' 관문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검증쇼'는 그  결과가 어떻든 특별한 '무엇'을 기대했던 대중의 마음과 이미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수리지능 퀴즈나 외국어 문제를 맞춘 연예인을 '특별한 존재'로 띄우는 시도에는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를 상대적으로 똑똑치 못한 존재로 만드는 구도가 깔려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최근 한 매체에 기고한 칼럼에서 '방송 프로그램이 뇌섹남을 소비하는 방식은 개인의 우월한 능력에 대한 경외감을 인위적으로 불러 일으키려하는 일방적 이미지 폭력 행위'라고 표현했다.

문제는 '고스펙'이라는 가볍고 단순한 장치로 소수 연예인을 상품화하는 건 해당 연예인 개인의 건강한 이미지 형성에도 결코 최선의 전략은 못 된다는 점이다.

  tvN 프로그램 <뇌섹시대-문제적 남자> 방송화면 캡쳐

tvN 프로그램 <뇌섹시대-문제적 남자> 방송화면 캡쳐 ⓒ CJ E&M


그렇다면 애초에 대중이 표현하려 했던 '뇌섹남'은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진 이상일까. 고차방정식을 1분 내로 척척 풀어내는 '인간 계산기'를 뜻한 게 아니었다면 혹시 엉뚱함으로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4차원' 남자를 말하는 건 아니었을까.

필자의 판단으로는 '뇌섹'의 핵심은 사고가 얼마나 빠르고 정확한지보다 얼마나 넓고 유연한지에 있으리라. 어떤 상황에서든 융통성 있고 지혜롭게 대처하면서 타인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매력을 발산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러한 사람의 뇌야말로 '섹시'하게 빛나고 있는 게 아닐런지. 그렇다면 이순간 TV 속에서 고난도 퀴즈를 푸느라 애쓰고 있는 '고학력' 연예인들에게선 잘생긴 외모와 큰 키 말고 또 어디에서 '섹시함'을 찾아야 할지 한참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강훈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dreamyhoon)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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