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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때?"
"아시잖아요. 불경기라서 힘들어요. 형네는요?"
"뭐 똑같지. (경기가) 꽁꽁 얼다 못해 빙하기야 빙하기."

영세 자영업자 둘은 전화통을 붙잡고 저런 우울한 대화로 안부를 묻는다. 부디 이 불경기가 빨리 걷어치워지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럴 희망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불황을 뚫고 갈 답이 있지도 않다. 그저 나뿐 아니라 모두가 겪는 불경기라니까 버텨 보는 거다. 나의 잘못만은 아니라니 거기에 위안을 삼는다.

우석훈 작, <불황 10년>
▲ <불황10년>의 표지 우석훈 작, <불황 10년>
ⓒ 강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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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언제까지고 위안만 하면서 버티기를 이어갈 수는 없다. 돌파해야 하고 돌파할 힘을 얻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는 그 방법으로 <불황 10년>을 집어 들었다. 책 한 권이 나라 경제를 일으켜 세우기는 어려워도 나 한 사람 쓰러지지 않게 할 묘책 한 두 가지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글쓴이 우석훈은 친한 지인들에게만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 주었다. 딱딱한 이론이나 복잡한 수치는 걷어내고 술잔을 앞에 두고 친구에게 조언하듯 글을 썼다. 아마도 그것은 그의 글쓰기 스타일 같은데 문어체를 피하고 잘 들리는 구어체로 글을 썼다. 그렇게 불황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한다.

부동산, 개인 재무구조, 고용 문제와 창업, 육아와 교육. 이렇게 4분야에 관한 직설적인 그의 말. 상당부분 고개가 끄덕여지고 또 어떤 말은 걸러 들고 싶은 것도 있다.

이를 테면 1장 부동산 관련 글에서 불황 중에는 건물의 값어치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그의 설명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전세금의 0.2%와 수수료 비용이 발생하는 전세권 설정의 필요성은 이해는 가지만 긍정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렇게 이해와 공감, 긍정과 부정, 취사선택을 하며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다. 불황10년에도 살 길은 분명 있다. 다소 뻔한 결론이기는 하다. 왜 안 그렇겠는가. 사람이라는 게 전쟁 통에서도 농사 짓고 장사해서 애 낳고 늙어 가는 존재 아니던가. 그런 생존력이 있으니 불황쯤 못 이겨낼까. 문제는 불황에 짓눌린 불안이고 그 불안 때문에 조급해지는 거다. 조급해지면 내가 가진 많은 자산을 썩히고 그저 남 따라 하다가 갈팡질팡하다가 끝나는 수가 있다. 어쩌면 그 갈팡질팡을 줄이는 게 비책일지 모르겠다.

<불황 10년>의 생활정보이자 비법도 근거없는 막연한 불안과 조급을 버리고 찬찬히 생각해보고 상식적인 질문을 해 보라는 거다.

부동산? 인구증가 속도가 줄어드는데 부동산 가치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떨어지는 게 정상이다. 적어도 땅이나 집값이 수 십 년 전처럼 오르지는 못할 거라는 게 상식 아닌가? 개인 재무구조? 카드로 비지고 사는 게 정상인가? 내 돈 쌓아두고 그 돈으로 사는 게 정상인가? 당연히 후자다. 그런데 왜 아직도 내 지갑에는 그 많은 카드가 있어야 할까? 고용문제와 창업? 어떤 상황 속에서도 되는 사람은 된다. 과연 내가 그런 사람일까를 얼마나 충분히 검토해봤느냐가 관건이지 내가 얼마나 자신만만한가는 아무 소용이 없는 거 아닌가? 유아와 교육? 어차피 똑똑한 인간을 만드는 게 현 교육의 대세는 아니다. 그 목적이 서울대 들여보내기라면 굳이 선행학습, 학원돌림 시켜가며 애를 힘들게 하며 청춘을 박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애가 전국순위 0점 몇 퍼센트가 아니라면 말이다.

책 한 권 읽으니 모든 불안이 싹 가시고 자신감이 봄꽃처럼 화사하게 피거나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 읽고 나니 나도 이런 생각 안 해봤던 거 아닌데 싶어 좀 식상하기도 하다. 어쩌면 나에게는 우석훈이라는 대중성이 주는 위안과 인증이 필요했던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히 책을 읽고나서 진일보 했고 그로써 불황에 대한 불안이 아주 조금 가신 건 사실이다.

우석훈은 '불황 10년'이라는 제목을 두고 지금이 10년 중의 일부일지 그 시작일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만큼 불황이란 그 끝과 시작이 불확실하다는 뜻이겠다. 그렇다면 전진만이 남아 있는 우리 인생에서 우리가 갖춰야할 건 불황타파의 막연한 기대나 희망보다는 분명한 원칙과 정밀한 주변 점검으로 천천히 조금씩 세상을 따라잡는 부지런함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늦더라도 천천히. 불황이든 호황이든 누구에게나 시간은 무사평등하게 지나가고 있으니 조급함만큼 무의미한 게 또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아날로그캠핑'블러그에도 게재하였습니다.



불황 10년 - 불황이라는 거대한 사막을 건너는 당신을 위한 생활경제 안내서

우석훈 지음, 새로운현재(2014)


태그:#불황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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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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