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듯 혹은 주문을 외듯 그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노래했다. 지난 11월 27일 발표한 자신의 여섯 번째 앨범 <겨울, 그리고 봄>의 타이틀곡인 '제 자리로' 뮤직 비디오에서의 말로는 그만큼 엄숙하고 진중했다.

대중 앞에서 노래를 불러온 지 22년, 그것도 재즈 보컬로 굵직한 족적을 남겨온 그녀가 7년 만에 내놓은 자신의 창작 앨범에 세월호 사고 희생자를 위한 추모곡을 두 곡이나 담았다. "작은 사고에도 사람들의 상처가 큰 법인데 그 분들은 얼마나 힘들까요", 18일 추모 공연 '리멤버 포에버(Remember Forever)'가 열린 안산 문화예술의 전당에서 만난 말로는 낮은 목소리로 운을 뗐다.

재즈로 시대 노래하는 이유 "내가 여기에 있음을 증명하는 일"

 가수 말로. 지난 2009년 올림픽홀 소극장 '뮤즈라이브' 개관 기념 공연 모습.

가수 말로. 지난 2009년 올림픽홀 소극장 '뮤즈라이브' 개관 기념 공연 모습. ⓒ http://www.malojazz.co.kr


오랜 시간 준비한 앨범인 만큼 각고의 노력과 정성이 담겨 있을 법했다. "몇 곡을 써놓고 나머지를 더 작업했어야 하는데 사건이 났죠. 손을 놨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말로는 더 이상 자신의 작업을 진전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음악을 할 힘이 떨어졌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음악을 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목적이 희미해졌어요. 마치 음악을 재생하다가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죠. 제가 작곡과 편곡을 하지만 이주엽씨(현 소속사 대표기도 하다-기자 주)가 가사를 쓰거든요. 새 앨범을 위해 가사를 다 받아놓은 상태였는데 그때까지의 글들 중에서 어떤 것도 노래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게 4개월을 보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말로의 상태를 알고 있었던 이주엽 대표는 새롭게 서 너곡의 가사를 말로에게 전했고, 그 중 두 개가 바로 지금 앨범에 실린 '잊지 말아요'와 '제 자리로'였다. 가사들은 말로를 울렸고, 바로 이틀 뒤 그녀는 새로운 곡을 완성해냈다. 보통 한 곡을 완성하는 데 서너 달이 걸린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며 말로는 "이 노래들은 일사천리였다"고 말했다.

"제가 의미 있는 메시지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얘기도 했었고, 아마 이주엽씨 역시 돌아가는 사회상을 보고 어처구니없다는 생각도 했겠죠. 사실 재즈는 대중과 늘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장르잖아요. 일단 노래하는 사람 스스로 좋아하고, 만족해야 하고 대중의 기호는 그 다음이죠.

어쩌면 이 노래로 사람들의 마음이 승화되길 바라기보단 스스로에 대한 증명을 하려 한 거 같아요. 어떻게 한 발 더 내가 나아갈 수 있는 지를요. 이런 굉장한 슬픔이 파도치는 사회 속에서 다음 얘기를 어떻게 풀어갈 가야 하는지 물었던 거죠. 본래 즉흥 연주도 많이 하고 손동작도 많이 쓰는데 이번엔 경건한 마음으로 노래하려 했어요." 

소통 위한 여러 실험..."미선이-효순이 사건 이후 이번에 두 번째 전환점"

 재즈 보컬 말로의 6집 앨범 <겨울, 그리고 봄> 자켓 사진.

재즈 보컬 말로의 6집 앨범 <겨울, 그리고 봄> 자켓 사진. ⓒ JNH 뮤직


이 지점에서 말로는 <벚꽃 지다>를 언급했다. 한국말 가사로 된 열 두 곡의 노래가 실린 그녀의 세 번째 정규앨범이었다. 재즈라는 장르 안에서 특유의 음색으로 그 유명한 외국곡들을 변주해왔던 말로가 방향 전환을 결심한 직후 나온 작품이었다. "그땐 실험적 시도의 연속이었죠"라며 당시 이야기를 전했다.

"한국어로 노래를 한다는 건 동시대적인 면을 담으려는 의지라고 봐요. 재즈 뮤지션이라면 흔히 말하는 스탠다드 곡(교과서처럼 자리 잡은 유명 재즈 노래들), 그러니까 '마이 퍼니 밸런타인(My Funny Valentine)', '오버 더 레인 보우(Over The Rainbow)' 같은 노래를 자기 식으로 편곡하는 작업을 많이 하잖아요. 재즈 보컬 역시 자기 노래를 만들기보단 예전 곡을 만지면서 음악의 본령을 찾거든요. 저 역시 그랬고요.

그러다 한국어로 노래해야겠다고 결심한 게 2002년에서 2003년 사이였죠. 이태원의 유명 클럽에서 공연하던 때인데 그때 관객의 절반 이상이 미군이었고, 그들의 지인들이었어요. 나머지가 소수의 한국 재즈 팬이었는데 제가 노래할 때마다 영어권 사람은 적극적으로 알아듣고 반응을 보이는데 한국인들은 그냥 구경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어요. 내가 미국 뉴욕에 가서 뮤지션 할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노래하는 게 좋은데 한국 사람들이 잘 몰라준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 무렵 미선이-효순이가 미군 장갑차에 목숨을 잃었던 사건이 불거졌고 클럽에 미군 출입이 통제되면서 한국어로 노래해야겠다고 결심한 겁니다. 내가 누굴 위해 노랠 해야 하는지 생각한 거예요. 가치 평가를 한 게 아니라 언어로 소통할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인 만큼 한국어로 작업한다면 이 분들이 더 행복해하지 않을까 하다가 <벚꽃 지다>를 작업했죠."

마치 대중 가수처럼 말로는 그 이후 끊임없이 소통을 시도했다. 2007년 6월 발표한 4집 앨범 <지금, 너에게로> 역시 모국어에 말로 특유의 감성을 실어 한국적 재즈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2014년, 세월호 사고 직후 말로는 한 번 더 자신의 음악인생을 짚어보게 됐다.

"단지 한국어로 노래하는 것 외에 내가 그 순간 그곳에서 살았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그때를 어떻게 보냈는지 흔적이 안 남아 있다면 전 그저 달나라 사람들을 위해 노래한 거밖엔 안 되겠더라고요."

이제 무엇을 노래하는가의 시대 "결국 본인의 선택"

 가수 말로. 올림픽홀 소극장 '뮤즈라이브' 개관 기념 공연 당시 모습.

가수 말로. 올림픽홀 소극장 '뮤즈라이브' 개관 기념 공연 당시 모습. ⓒ http://www.malojazz.co.kr


이제 말로에겐 재즈는 '무엇을 노래해야 하는지'라는 질문과 맞닿은 또 다른 도전 영역이 된 듯하다. 이 말에 그녀 역시 조용히 동의를 표했다. "테크닉이 필요한 재즈이기에 어릴 땐 '(노래를) 어떻게 해야 하나'의 문제였다면 이젠 곡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을 노래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때"라고 짚었다.

"물론 재즈 스탠다드도 수 천 곡 이상이니 어떤 상황에 딱 맞아떨어지는 곡을 찾을 수는 있을 거예요. 그렇다 한들 그건 우리나라 노래가 아니거든요. 다들 자신의 상황, 역사에 빗대어 나온 거죠. 빌리 할리데이의 '스트랜지 프루트(Strange Fruit)'라는 노래가 있어요. 흑인 노예가 교수형 당해 죽은 걸 비유한 겁니다. 흑인으로서 정체성을 갖고 부른 거죠. 또 니나 시몬은 끊임없이 자유를 노래했어요. 록을 하는 뮤지션이 아니었지만 의식을 갖고 노래를 발표해갔습니다.

오히려 그 유명한 루이 암스트롱은 자신을 희화화하고 역사 이야기는 한 마디도 안 했다고 해서 흑인들 사이에서 비판을 많이 받기도 했대요. 현실에 대해 너무 눈감고 있었다는 거죠. 물론 이건 개인의 선택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누가 대신 써주는 곡을 받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지금같이 이런 식으로 노래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 4월 15일 말로는 동료 뮤지션 8명과 함께 싱글 앨범 <다시, 봄>을 발표했다. 이번엔 프로듀서 역할을 맡아 힘을 보탰다. "결국 원론적으로 보면 인생에 대해 얘기하는 거예요"라며 말로가 설명했다. 겨울과 봄, 그리고 다시 봄은, 곧 어두운 시대와 그 속을 지나가는 모두를 위한 말로의 위로이지 않을까.

잘 나가던 재즈 클럽 무대를 경험해왔던 그녀였지만 언제부턴가 매주 서울 교대 근처의 허름한 클럽 무대를 고집하고 있다. 말로는 "요즘 클럽들이 대부분 엉망이다"라며 직언도 서슴지 않았다. 음악가를 홀대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 어디선가 말로는 또한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매주 클럽 무대를 서며 관객과 만나는 게 지금 생각하고 있는 유일한 목표"란다. 새로운 실험과 인생을 바라보는 말로의 감성과 만나고 싶다면 당장 그 무대를 찾아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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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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