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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결혼한 지 13년. 서로의 관점에서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그 여자 그 남자의 다.다.다(다르게 들리지만 다르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입니다. 그 남자 이야기는 남편 지용민 시민기자가, 그 여자 이야기는 아내 박보경 시민기자가 썼습니다. - 기자 말

[그 남자 이야기] 유가족이 거리에 나선 '이상한 대한민국'

지난 4일 오전 경기도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에 앞서 한 세월호 유가족이 삭발식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긴머리 삭발에 흘러 내리는 눈물 지난 4일 오전 경기도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에 앞서 한 세월호 유가족이 삭발식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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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대머리에요?"

8살 딸아이가 물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고개만 가로저었다. 딸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자리를 떠났다. 딸이 가리킨 사진은 <한겨레21> 지난주(1056호) 표지였다. 세월호 진실 규명을 요구하며 삭발한 세월호 유가족 엄마가 울고 있는 사진이었다. 꽃다운 17살의 아이들을 가슴에 묻은 엄마가 울고 있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울었다. 그 기막힌 사연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다.

지난 2일 유가족 중 52명이 삭발했다. 딸아이가 본 사진은 바로 그 당시를 촬영한 것이었다. 왜 유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삭발해야 했나. 하루 전인 지난 1일 정부에서 희생 학생 1인당 8억여 원이 지급된다는 배∙보상 지급 기준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유가족들은 "정부가 돈으로 능욕했다"며 눈물의 삭발을 감행한 것이다.

유가족 육성 기록인 <금요일엔 돌아오렴>에 나오는 이들은 아이들 방을 차마 정리하지 못하는, 아이 잃은 슬픔에 어찌할 바 모르는 지극히 평범한 부모들이다. 그들은 아이들 1주기에 집에서 제사상도 차리지 못했다. 그들은 침몰하던 배 안에서 가만히 있었던 아이들의 넋을 위로하기는커녕 삭발한 머리에 '진실 규명'이라고 적힌 띠를 두른 채 거리에서 캡사이신, 최루액, 물대포를 맞았다.

지난 1년간 유가족들은 거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들은 사고 100일이 되던 날도 거리에서 보냈다. 지난해 여름에도, 추석 때도 그들의 안식처는 없었다. 기소권과 수사권이 포함된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하며 무려 76일을 청와대 앞에서 노숙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돌아보면 유가족들의 요구사항은 단 하나, '진실 규명'이었다. 노숙 농성을 할 때도 진실 규명의 방법론에 대한 주장을 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자식 잃은 부모가 "내 아이가 도대체 왜 죽은 것인가"를 알고 싶은데, 알 수가 없다면 이들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 이들은 거리로 나선 것인가, 내몰린 것인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궁금하고 이상한 대목이 많았지만, 그중에서 인간의 머리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두 가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 본다.

진상규명 전 제시된 배∙보상금, 그리고 이상한 시행령

새벽부터 밤까지 희생자를 위로하며 대국민 메시지를 보내는 일정으로 보냈다. <JTBC> 4월 16일 방영화면
▲ 9.11 테러 1주기 당시 부시 대통령 일정 새벽부터 밤까지 희생자를 위로하며 대국민 메시지를 보내는 일정으로 보냈다. <JTBC> 4월 16일 방영화면
ⓒ JTBC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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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정부에서 학생 1인당 배∙보상 금액이 8억여 원이라고 밝혔다. 유가족이 가장 분노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직 9명은 시신을 찾지 못했고, 유족들이 '세월호의 진실'을 묻던 때 정부가 뜬금없이 돈을 들고 나온 것이다.

배상금 4억 2천만 원(일실수익 3억 원 + 위자료 1억 원 + 장례비 등 2천만 원) + 위로금 3억 원 + 보험금 1억 원 = 8억 2천만 원. 배상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실수익이란 생존했다면 벌었을 소득에서 생활비를 빼고 정한 금액인데, 단원고 학생들은 일괄적으로 단순 건설 노동자 수준(월 193만 원)으로 책정됐다.

이 금액 중 국가가 부담하는 금액은 없다. 배상금 4억 2천만 원은 정부(해수부 예비비)가 선지급한 뒤 청해진해운 등에 구상권을 행사해 받아내는 금액이다. 위로금 3억 원 역시 국민 성금을 인별로 나누었을 때 할당이 예상되는 금액이고, 보험금 1억 원은 수학여행 당시 가입한 여행자 보험 수령금이다. 결과적으로 국가가 부담하는 돈이 없는데, 왜 국가가 먼저 나서는가.

배∙보상금을 수령한 이후에도 진실 규명이 가능한가? '세월호 참사 피해 구제 특별법' 16조를 보면 "배∙보상금, 위로 지원금 지급 결정에 동의할 때 국가와 신청인(피해자)이 민사소송법상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 것으로 본다"고 돼 있다. <동의서>를 제출하고 돈을 수령한 이후에도 진실 규명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실효성은 없다. 정부의 과실이 명백해지더라도 추가로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유가족이 강하게 반대하는 또 다른 사안으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이 있다. 해수부가 지난 3월 27일 입법 예고한 것인데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지난 2일 시행령안 철회 결의안을 채택했다. 총 14명이 참석한 전원 회의에서 여당 추천 위원 3인과 대법원장 추천 1인 등 4명이 철회 결의안에 반대, 즉 정부안을 지지했고 나머지 10명의 특위 위원들이 결의안 철회에 찬성했다. 

정부(안)에 따르면 세월호 진상 조사의 핵심 기능은 정부에서 파견된 공무원들로 구성된다. 실무 최고 책임자인 기획조정실장(해수부 파견 공무원)을 비롯해 기획총괄담당관(해수부 파견), 진상조사국 조사 1과장(법무부 파견) 등 핵심 부서의 책임자가 파견되는 공무원들로 구성하게 된다. 이석태 특위 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사 대상이 조사하면 과연 국민이 믿을 수 있겠는가"라며 정부 시행령(안)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진정성은 의심받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 조사 의지가 있기나 한 것인가. 지난해 4월 16일 오전 전 국민이 생중계되는 TV를 통해서 결과적으로 아이들이 수장되는 현장을 지켜봤다. 정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해양경찰청도 해체된 것 아닌가.

과연 우여곡절 끝에 세월호 특위가 진상조사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미국과 같은 <9.11 Commission Report> 같은 백서를 완성할 수 있을까. 대통령, 부통령, 각 장관들을 인터뷰하며 사고가 난 시간에 무엇을 했고, 무슨 대처를 했는지 미국처럼 인터뷰할 수 있을까. '7시간 미스터리' 등도 조사 대상이 돼야 할 텐데, 과연 육하원칙에 맞게 밝혀질 수 있을까.

세월호 1주기인 지난 4월 16일 박 대통령이 팽목항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대통령은 유가족을 상대로 "이제는 가신 분들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그분들이 원하는 가족들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고통에서 벗어나셔서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유족들이 광화문에서 캡사이신, 최루액, 물대포를 맞는 시점에 박 대통령이 '가신 이의 뜻'을 언급하며 유족에게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고 나선 것이다. 그 박 대통령은 세월호 1주기 당일에 해외 순방을 떠났다. 첫날 방문한 콜롬비아는 국빈 방문도 아닌 '공식 방문'이었다.

[그 여자 이야기] 세월호 1년...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며칠을 생각하고 고민했지만,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너에게 지난 일 년 여의 과정을, 그 복잡한 감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그건 나에겐 역부족이구나. 아가야, 엄마는 자신이 없다. 아직 어린 네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자신이 내게는 없구나.

사실 어른인 엄마도 지난 일 년을 이해할 수가 없었어. 어른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을 어떻게 너에게 이해하라고 할 수 있겠니? 그 큰 배가 왜 침몰하게 됐는지, 배에 갇힌 사람들을 구하려고 수없이 많은 사람이 달려갔는데 왜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했는지, 일 년이 지난 지금도 희생자들의 엄마들은 왜 거리에서 울부짖어야 하는지 엄마에게도 누구 하나 명쾌하게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단다.

그러나 삭발을 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진을 보며 이 아줌마는 대머리냐고 묻는 네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네가 알다시피 엄마는 전문가도, 학자도 아니야. 다만 우리를 이어서 너희가 살아야 할 이 세상이 조금은 더 건강해지길 바라며 글을 쓴다.

8살, 6살. 너희들은 나를 울리고 웃긴다. 밤새 열이 올라 끙끙대면서도 아침이면 방긋 웃으며 "이제 괜찮아졌어요. 학교 갈래요" 하며 일어나던 너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눈물이 났어. 아빠와 문 닫고 싸우던 그때 문틈으로 "엄마, 아빠 싸우지 마세요. 그러면 내 마음이 너무 아파요"라고 써서 밀어 넣었던 너의 편지를 보고 나는 울었어.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부르며 네가 작은 엉덩이를 흔들 때 아빠와 나는 웃었다. 유치원 정문을 들어서며 뜬금없이 "엄마, 사랑해요" 외치던 너를 보면 나는 웃음이 절로 나온단다. 그런 새끼들이었어. 키가 커지고, 머리가 굵어지고, 목소리는 변했겠지만 그 날의 그 아이들도 부모에게 모두 그런 새끼들이었을 거야.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누군가의 웃음과 눈물... 그 304명

세월호 침몰사고 146일째이며 추석날인 지난해 9월 8일 오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가족 합동 기림상을 올린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추석이 슬픈 세월호 유가족 세월호 침몰사고 146일째이며 추석날인 지난해 9월 8일 오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가족 합동 기림상을 올린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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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담그던 엄마에게 맛있다고 비법을 알려달라던 애교쟁이 딸(2학년 3반 신승희)이었고, 장학금으로 자신의 졸업식에 참석한 아빠 친구들까지 식사 대접을 했던 자랑스러운 딸(2학년 3반 김소연)이었어. 수학여행 경비로 3만 원을 주면 2만 원을 돌려주던 마음 착한 아들(2학년 6반 신호성)이었으며, 1년에 한 번씩 아빠와 둘이서 설악산에 올랐던 친구 같던 그런 아들(2학년 4반 박수현)이었지.

그런 새끼들이 죽었는데, 그런 새끼들을 잃었는데 대통령부터 나서서 이제 됐다고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건, 왜 죽었는지 이유도 모른 채 시간만 흘렀는데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지내라고 하는 건 그들에게 너무 잔인한 일 아닐까?

그들은 좀 더 울어야 해. 그리고 그 울음에 엄마도 함께 하고 싶어. 그게 언제까지라 하더라도 말이야. 그들이 기댈 수 있도록 어깨를 빌려주고, 따뜻하게 안아서 토닥거려 주고 싶어. 그들은 잘못한 게 없는데 가족을 잃어야 했어. 몸의 한쪽이 무너져 내리는 고통을 겪어야 했지.

'진상 규명'이라는 어려운 말이 아니더라도 그들이 왜 가족을 잃었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해.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 말이야. 이것이 우리가 그들의 울음에 함께 해야 하는 이유야. 그리고 이것이 너희에게 들려주고 싶은 첫 번째 이야기다.

한편의 사람들은 잊지 않는다고 해. 잊지 않겠다고, 꼭 기억하고 있겠다고 말이야. 펄럭이는 현수막을 보며 무엇을 잊지 않는 거냐고 묻는 너에게, 그때 나는 무슨 대답을 했어야 했을까? 그래, 우리는 무엇을 잊으면 안 되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너무 쉽게 잊어버렸는지 몰라.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대구의 지하철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도, 화성 씨랜드 화재 사건이 났을 때 우리가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빨리 잊었던 것 같아. 잊지 않고 계속 기억하면서 지냈어야 했어. 그래야 다시는 그런 가슴 아픈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지. 자꾸 기억하면서 계속 점검했어야 했어.

왜 세월호 유가족만 유별나게 구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어리석은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고 싶어. 소를 너무 많이 잃었으니, 그것도 너무 억울하게 잃었으니 앞으로는 이렇게 억울한 죽음이 나오지 않도록 함께 노력해 보지 않겠느냐고 묻고 싶어.

너희도 알다시피 엄마는 힘이 약해. 사람들은 누구나 혼자는 약하단다. 그러나 그 작은 힘들이 모이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힘이 될 거야. 강해진 힘으로 다시는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 보자. 어디서부터 잘못된 일인지 꼼꼼히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 철저하게 따져보자.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 보자. 이것이 너희에게 들려주고 싶은 두 번째 이야기란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너희가 살아갈 세상은 조금 더 건강하고 조금 더 안전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우리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금씩 더 노력해 보자.

○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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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세월호 1주기, 우리는 잊지 않았습니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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