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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11일부터 18일까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온전한 선체 인양을 위한 안산시민 집중행동기간으로 선포했던 그 마지막 날. 서울에서 전국 집중 범국민대회와 대한민국 엄마대회가 진행되고 있던 시간, 안산에서는 두 개의 416 프로그램이 시민들과 함께 했다.

와리마루·와동좋은마을만들기협의회·들꽃청소년세상·0416신나는마을학교·안산작은도서관협의회·안산온마음센터가 공동주최한 416을 기억하는 주민 한마당 '오늘도 너와 함께'가 오후 1시부터 와동체육공원일대에서 열렸다. 4시부터는 안산문화광장에서 0416 생명예술제 '세상 그 무엇보다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하여'가 열렸다. 둘 다 삶과 생활, 생명을 이야기하고 있다.

"안산은 아이들이 행복한 동네구나, 그런 동네로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18일 오후 와리마루 등이 공동주최한 416을 기억하는 주민한마당 ‘오늘도 너와 함께’의 시작을 알리는 416가족간담회가 들꽃청소년세상에서 열렸다. ‘주희 엄마’와 ‘수빈 엄마’가 1년 전 참사 당일에 이어 진상규명을 통해 치유하고 회복해야 할 안산의 내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18일 오후 와리마루 등이 공동주최한 416을 기억하는 주민한마당 ‘오늘도 너와 함께’의 시작을 알리는 416가족간담회가 들꽃청소년세상에서 열렸다. ‘주희 엄마’와 ‘수빈 엄마’가 1년 전 참사 당일에 이어 진상규명을 통해 치유하고 회복해야 할 안산의 내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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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시 단원구 와동은 기와를 굽던 와골에서 유래된 마을로 조선시대에 와상(하)리였다가 일제강점기에는 와리로 불렸다. 지난해 4월 16일 단원고에 다니던 와동 거주 학생 97명 중 69명이 희생당했고, 고작 28명만이 엄마 아빠의 품에 안긴 마을이다.

해질녘이면 아이들이 수시로 몰려다니고, 엄마는 옆집 뒷집으로 마실가고, 아빠들은 술자리를 나누며 하루해가 기울던 마을은 문자 그대로 '한 집 걸러 초상집'이 됐다. 없는 살림이지만 서로 하소연 하고, 함께 궁리하며 씩씩하게 생활하던 공동체에는 그날 이후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날 이후 치유공간 '이웃'과 안산생명센터가 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겨울보다 길었던 침묵을 깨고 장(場)을 연 주민한마당은 들꽃청소년세상에서 416가족과의 만남으로 시작했다. 단원고 2학년 7반 고 이수빈군의 어머니 박순미씨와 10반 고 김주희양의 어머니 이선미씨는 지옥과도 같은 1년 전의 시간을 되감으며 눈물의 인사를 했다.

"얼마 전에 집에 경찰이 왔었어요. 신랑이 잠을 자다 베란다로 가 소리를 너무 질러서… 경찰도 왔다가 아무 말 없이 돌아가고… 분명히 저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끝까지 밝혀주겠다고, 진상규명하겠다며 제 귀에다 말한 그 대통령은 어디 갔는지, 왜 아무도 없는 팽목항에 가서 원맨쇼를 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가요. 그래도 전 우리 아이들이 하늘에서 분명히 진실을 밝혀 줄 거라고 믿어요." - '수빈 엄마'

"앞으로 안산은 아이들이 살기 좋은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우리 가족들도 노력하겠습니다. 저희처럼 힘든 일을 겪고 나서 못사는 동네라 아이들이 그렇게 됐다는 말 보다는 안산이 그런 일을 겪고 나서 아이들이 한 뼘이나 더 큰 그런 동네가 되었구나, 안산은 아이들이 행복한 동네구나, 그런 동네로 와동부터 우리 안산이 많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 '주희 엄마'

416을 기억하는 와동 사람들 "같이 슬퍼하고 우는 게 중요해요'

18일 오후 416을 기억하는 주민한마당이 펼쳐진 와동체육공원 오른쪽에 416 기억마당 부스가 차례로 설치되어 있다. 공원 가운데 설치된 중앙무대에서는 와동 주민들이 참여하는 문화마당이 진행되고 있다.
 18일 오후 416을 기억하는 주민한마당이 펼쳐진 와동체육공원 오른쪽에 416 기억마당 부스가 차례로 설치되어 있다. 공원 가운데 설치된 중앙무대에서는 와동 주민들이 참여하는 문화마당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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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동체육공원에는 상설마당인 416 기억마당과 참여마당이 주민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기억마당에서는 '416사진전', '416 도서전시', '노란리본 만들기', '세월호 선체 인양 서명', '트라우마 이해' 등의 부스가 운영되고 있었다.

참여마당의 '위로와 기억의 사탕 만들기'는 미리 선정한 시집에서 유가족에게 위로가 되는 시를 종이에 옮겨 쓴 후 종이 안에 사탕을 넣어 예쁘게 포장하는 것이다. 다 만든 사탕은 바구니에 담아 유가족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직접 시를 쓰고 포장을 한 아이들은 어떤 마음일까.

"단원고 언니 오빠들하고 언니 오빠의 엄마 아빠 생각하면서 시를 옮겨 썼어요. 시를 쓰는데 마음이 너무 짠했어요… 제가 쓴 시의 내용은 엄마가 딸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을 쓴 시예요." - 김민지(원일중 1학년)

18일 오후 416을 기억하는 주민한마당이 펼쳐진 와동체육공원 왼편에 설치된 참여마당 ‘위로와 기억의 사탕 만들기’에서 김민지(원일중 1학년)양이 유가족에게 전할 시를 옮겨 쓰고 있다.
 18일 오후 416을 기억하는 주민한마당이 펼쳐진 와동체육공원 왼편에 설치된 참여마당 ‘위로와 기억의 사탕 만들기’에서 김민지(원일중 1학년)양이 유가족에게 전할 시를 옮겨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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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416을 기억하는 주민한마당이 펼쳐진 와동체육공원 왼편에 설치된 참여마당 ‘배지 만들기’에서 이다현(화정초 1학년)양이 자신이 그린 세월호 그림과 ‘미안해 언니 오빠’라고 쓴 배지를 보여주고 있다.
 18일 오후 416을 기억하는 주민한마당이 펼쳐진 와동체육공원 왼편에 설치된 참여마당 ‘배지 만들기’에서 이다현(화정초 1학년)양이 자신이 그린 세월호 그림과 ‘미안해 언니 오빠’라고 쓴 배지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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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 만들기는 아이들이 원하는 글을 써오면 현장에서 즉석으로 배지에 압착해 만들어주는 부스다. 아이들은 '우리 아빠 파이팅', '엄마 아빠 사랑해', '우리 집 만세' 등 가족의 사랑과 행복을 기원하는 내용을 썼다. 그 옆에서 이다현(화정초 1학년)양은 한참을 끙끙거리며 세월호 배를 그리고 그 아래에 '미안해 언니 오빠'라고 써 어른들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했다.

전체 부스 가운데 가장 인기를 끈 곳은 역시 '음식나누기' 부스였다. 밀가루에 부추와 오징어를 넣어 먹음직스럽게 부쳐 낸 부추전은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을 떠올리게 했다. 역대 부스 중 단연 인기짱이었다는 이 부스는 그런데 오늘은 영 신통치 않다. "오늘따라 화력이 약해 속상하다"는 장은실(와동 주민)씨를 잠시 부스 밖에서 만났다.

18일 오후 416을 기억하는 주민한마당이 펼쳐진 와동체육공원에서 가장 인기를 끈 ‘음식나누기’ 부스. 화력이 약한데다 바람까지 불어 부추전 맛을 보려던 주민들이 본의 아니게 길게 줄을 서야 했다.
 18일 오후 416을 기억하는 주민한마당이 펼쳐진 와동체육공원에서 가장 인기를 끈 ‘음식나누기’ 부스. 화력이 약한데다 바람까지 불어 부추전 맛을 보려던 주민들이 본의 아니게 길게 줄을 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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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라는 느낌으로 부치고 있어요(웃음). 며칠 전 치유공간 이웃에서 간담회가 있었는데, 가족 분들의 아픔을 절감하면서 같이 슬퍼하고, 같이 울어야겠다고 다짐을 했어요. 그게 중요한 거 같아요."

문화마당은 색소폰 연주, 화관무, 우리가락 우리 춤, 우쿨렐레 하모니카 연주 등 와동 주민들의 솜씨자랑으로 이어졌다. 그간의 침묵을 함께 아파했던 주민들은 연주와 춤 등으로 416을 기억하고 추모했다. 김미경, 박미애씨로부터 화관무를 춘 이유를 들었다.

18일 오후 416을 기억하는 주민한마당이 펼쳐진 와동체육공원에서 화관무 춤을 선보인 김미경, 박미애씨. “희생자들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길 바란다”고 했다. 가운데는 우리춤 우리가락을 춘 전수민씨.
 18일 오후 416을 기억하는 주민한마당이 펼쳐진 와동체육공원에서 화관무 춤을 선보인 김미경, 박미애씨. “희생자들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길 바란다”고 했다. 가운데는 우리춤 우리가락을 춘 전수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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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들의 아픈 영혼이 하늘에서 영생을 누리시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춤을 췄어요. 화관무는 원래 왕 앞에서 추던 춤인데, 지금은 춤 이름 그대로 예쁜 꽃에 관을 씌었다는 뜻인데, 세월호 1주기를 맞이해 억울하게 숨진 희생자들이 아름다운 꽃의 영혼으로 다시금 피어나셨으면 해요."

416 백일장에 참가한 아이들이 공원 여기저기서 사색에 잠긴 사이 416 ○× 퀴즈가 시작됐다. 첫 문제가 재미있다. '와동의 옛 지명이 와사비'가 맞으면 ○, 틀리면 ×. 100% 다 맞혔다. '오늘은 416 참사가 일어 난지 367일째다' 맞으면 ○, 틀리면 ×. 절반 이상이 틀렸다. 기자도 잠시 머리 셈을 해야 했다. '2015년 4월 16일 기준 실종자 수는 8명이다' 맞으면 ○, 틀리면 ×. 다들 맞혔다. 패자부활전 끝에 큰엄마와 함께 문제를 푼 6살 어린이가 ○× 퀴즈의 최종 우승자가 되어 자전거를 상품으로 받았다. 

18일 오후 416을 기억하는 주민한마당이 펼쳐진 와동체육공원에서 416 ○× 퀴즈가 진행되고 있다. 주민들은 416 관련 퀴즈에 대해 상당 부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패자부활전을 거친 끝에 큰엄마와 함께 문제를 푼 여섯 살 어린이가 우승했다.
 18일 오후 416을 기억하는 주민한마당이 펼쳐진 와동체육공원에서 416 ○× 퀴즈가 진행되고 있다. 주민들은 416 관련 퀴즈에 대해 상당 부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패자부활전을 거친 끝에 큰엄마와 함께 문제를 푼 여섯 살 어린이가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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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가 끝나고 416 백일장 시상식이 열렸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대표작가인 김순천 작가는 자기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고, 자유롭게 쓰기를 심사 기준으로 발표하고, '안전사회, 진상규명, 선체인양, 노란리본' 4개를 제시어로 백일장을 펼치게 했다. 대상에는 목미란(원곡고 1학년)양이 쓴 시 '구름'을 선정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변화된 세상을 '구름'을 통해 잘 표현했다는 심사평이다. 시 일부를 소개한다.

"그런데 그 구름들이 흘러가는 것을 보면 노란 리본들이 생각나 구름들이 흘러가는 것을 보면 노란 세상이 생각나  흔들리는 노란 리본들과 함께 노란빛으로 물드는 세상은  흘러가는 구름처럼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져"

"늘 모든 주민들은 보석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요"

18일 오후 안산문화광장에서 열린 0416 생명예술제 ‘세상 그 무엇보다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하여’에서 경기민족굿연합 춤꾼들이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는 416 추모 굿을 추고 있다.
 18일 오후 안산문화광장에서 열린 0416 생명예술제 ‘세상 그 무엇보다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하여’에서 경기민족굿연합 춤꾼들이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는 416 추모 굿을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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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째 와동에서 마을 사업을 해 온 와리마루 지킴이 김은호 희망교회 목사는 주민한마당을 기획한 이유에 대해 "긴 흐름 속에 참사의 의미를 잊지 않고 진실규명과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피해지역 주민들이 함께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게 중요하다"며 "한마당을 통해 마을 공동체가 한 단계 더 성장해 유가족을 더욱 따뜻하게 품을 수 있는 동네, 더 나아가 이 땅에 눈물 흘리는 사람들과 더블어함께 하는 동네가 되기를 바랐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토건국가적 개발주의가 위세를 떨치고, 자본만이 '자유'를 구가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위험사회'에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우고, 다양성이 존중되면서, 하루의 노동을 쉴 수 있는 저녁이 있으며, 세상 그 무엇보다 생명이 존중받는 지속가능한 안전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까.

김 목사는 "주민들 스스로가 내 안에 있는 힘과 보석을 발견하고 나면 동네가 바뀌고, 마을이 바뀔 수 있구나 하는 자심감과 의미를 발견한다면 지속가능한 안전한 마을을 만들 수 있다"며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마을 공동체가 더불어 아이들을 함께 키우면서 주민이 선생님이 되고, 아이들이 제자가 된다면 지속가능한 안전 마을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4시가 넘어 0416 생명예술제가 열리고 있는 안산문화광장으로 넘어 갔다. 1백여 명의 시민들이 조촐하게 모여 있는 가운데 경기민족굿연합에서 416 추모굿을 온 몸으로 풀어 놓고 있다. 이날 생명예술제는 안산문인협회 시인의 시 낭송, 다운스트림의 노래, 극단 동네풍경의 416 풍자극 '까치전', 착한밴드 이든의 노래 공연 등으로 이어졌다.

안산민예총 문학위원회 윤희웅씨(고잔1동 주민)의 시 '바다로 띄우는 편지'의 끝 소절이다. 

"배에서 마지막으로 보낸 너의 문자. 엄마, 아빠 사랑해. 우리도 너를 사랑한다. 너는 엄마, 아빠 그리고 너의 친구들과 너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가슴속에서 보석처럼 빛나며 숨 쉬고 있단다. 맑은 하늘에서 한 줄기 빛으로 내려온 우리 아이. 일 년이 지났어. 바다 속은 많이 추울 텐데… 바다 속은 많이 외로울 텐데… 아빠가, 엄마가 기다리고 있잖아. 이제는 올라오자."


태그:#안산 와동 416을 기억하는 주민한마당, #0416 생명예술제, #와동 '오늘도 너와 함께', #와리마루, #들꽃청소년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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