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1년하고도 2일 후, 자신들을 위해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혼신을 다해 노래 불러줄 줄 누가 알았을까. 매년 이맘때쯤 이곳에서 하는 봄맞이 공연이라지만 18일, 이날은 특별했다. 안산시 고잔동에 위치한 안산 문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리멤버 포에버(Remember Forever)' 무대를 재즈 보컬 말로, 가수 김창완을 비롯해 4팀의 뮤지션들이 채웠다.

지난해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학생들이 다녔던 단원고등학교에서 불과 1km 남짓 떨어진 거리다. 같은 시각 서울 광화문에서 '세월호 참사 1년 범국민대회'에 시민 3만여 명이 함께 목소리를 높였을 때 이곳에서는 묵직한 노래 소리가 1300 객석을 가득 채웠다.

재즈와 국악에 담은 진심, 관객과 하나 돼 울리다

 가수 말로. 올림픽홀 소극장 '뮤즈라이브' 개관 기념 공연 당시 모습.

가수 말로. 사진은 2011년 6월 경 열린 서울 방이동의 올림픽홀 소극장 '뮤즈라이브' 개관 기념 공연 당시 모습. ⓒ http://www.malojazz.co.kr


공연은 크게 1부와 2부로 구성됐다. 오후 7시부터 시작한 공연의 앞부분은 가수 말로와 생황 연주자 김효영이 꾸몄다. 전통 악기지만 아직 대중에게 생소한 생황을 가지고 김효영은 서동요 등의 세 곡을 익숙한 가락으로 연주했다. 첼로와 단소, 그리고 피아노가 함께 어우러지며 더욱 서정적인 감성을 담아냈다.

재즈 보컬로 한국적 가사와 특유의 음색으로 두터운 팬 층을 보유한 말로는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공연의 의미를 더했다. 지난해 11월 27일 자신의 6집 앨범 <겨울, 그리고 봄>을 발표한 말로는 당시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두 곡의 노래('잊지 말아요', '제 자리로')를 앨범에 실으며 그 아픔을 함께 했었다.

"뜻 깊은 날 이곳에 불러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말로는 '잊지 말아요'와 '제 자리로'를 이어 불렀다. 특히 '제 자리로'를 부르기 직전 후렴구를 관객에게 알려주며 함께 노래하기를 권했다. 공연 내내 멘트를 자제하는 듯 보였던 말로는 "광화문에도 많은 분들이 모여 있는 걸로 안다. 여기 목소리가 그곳에도 들리도록 함께 불러달라"고 객석에 부탁했다. 일부 관객들은 노래를 따라 하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길 잃은 아이 이제 제자리로 / 떠났던 사람 다시 제자리로 / 불빛 환한 밤 모두 제자리로 / 아픔 없는 밤 모두 제자리로 (노래 '제 자리로' 중)

이후 말로는 '벚꽃지다'를 열창했다. 13년 전 말로 자신의 음악 인생에 방점을 찍게 한 곡이다. 당시 노래는 대중에게도 큰 사랑을 얻었다. 또 어렵기만 하고 다소 멀어 보였던 재즈 보컬리스트들을 대중과 한층 친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진중하게 관객 마음을 건드리던 말로는 마지막곡 '너에게로 간다'를 통해 한층 밝은 분위기를 만들며 관객의 큰 박수를 받았다.

끝내 울컥한 김창완, 관객과 함께 열정의 무대 선보여

▲ 열창하는 김창완 밴드 김창완 밴드가 18일 오후 7시 안산시 고잔동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리멤버 포에버' 무대에 섰다. 사진은 지난 2월 5일 진행된 김창완 밴드(김창완·강윤기·최원식·이상훈)의 3번째 정규앨범 <용서> 발매기념 쇼케이스 현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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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무대에 오른 김창완 밴드 역시 특별한 인사말 없이 첫 곡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를 선보였다. 반팔 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등장한 김창완은 무심한 듯 기타를 응시하다가도 객석에 시선을 주며 엄숙한 마음을 몸으로 표현했다.

이어 '회상'을 부르던 김창완은 곡이 끝난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오전 내내 진행된 드라마 <화정> 촬영을 마치고 공연장에 도착한 김창완은 "용인에 있다가 안산 시내에 들어오는데 그 차분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누군가는 잊자고 하는데 그게 잊히겠나. 이 공연을 며칠 앞두고 짧은 글을 적어봤다"며 작은 종이쪽지를 꺼내 읊어나갔다.

"올해도 어김없이 진달래, 개나리 흐드러지게 피고 벚꽃 만발했습니다. 활짝 핀 꽃들이 활짝 웃는 아이들의 얼굴 같고 아이들 웃음소리 같아 슬퍼 보였습니다. 내년에도 또 꽃이 피겠지요. 내년에도 꽃이 피면 아마 또 슬퍼지겠지요. 저도 막내 동생을 잃고 몇 년 동안 사진을 볼 때마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슬퍼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습니다. 남겨진 사진을 보고 노래를 들으며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줘서 고맙다고...행복하다고 합니다. 언제까지나 꽃들을 슬프게만 볼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 생명의 환희를 분노의 눈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될 일입니다. 아직은 아니겠지만 언젠가는 이 봄꽃들 속에서 우리 아이들의 영원한 청춘과 웃음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산울림 멤버이자 동생인 고 김창익씨의 사연을 전한 뒤 김창완은 '노란 리본'을 불렀다. 세월호 사고 직후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직접 만든 추모곡이다. 단 4문장으로 이뤄진 단순한 가사지만 김창완은 마지막 부분인 '너의 웃음이 너의 체온이'를 부를 때 목이 메더니 '그립고 그립다 노란 리본'이란 가사를 끝내 내뱉지 못했다. 목울대가 크게 몇 번 움직였다.

마지막 곡은 '아니 벌써'였다. 직전 감정을 추스르며 '너의 의미', '중2'를 노래했고 연이어 '아니벌써'로 관객과 호흡했다. 담담하게 퇴장하는 김창완 밴드를 향해 객석에선 앙코르가 터졌고, 이에 이들은 '개구쟁이'로 화답했다.

"슬픔 이후 상처 입은 사람들의 치유가 중요해"

'용서' 노래하는 김창완 밴드  김창완 밴드의 이상훈(왼쪽부터), 강윤기, 김창완, 최원식이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KT&G 상상마당 홍대 라이브홀에서 열린 김창완 밴드 3번째 정규앨범 <용서> 발매기념 쇼케이스에서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날 김창완은 타이틀곡 '중2'에 대해 "어떻게 보면 중2의 태도를 힐난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중2에게 어른들이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것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 김창완 밴드 김창완 밴드의 이상훈(왼쪽부터), 강윤기, 김창완, 최원식. ⓒ 유성호


공연 직후 안산 시민들은 공연장 주위에서 기념 촬영을 하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동년배들과 함께 공연을 찾은 한 50대 주부는 "조금은 우울한 마음으로 공연을 봤는데 김창완 밴드를 보면서 마음이 한층 밝아졌다"고 소감을 전했다.

안산 시내의 한 학원에서 일한다는 40대 최연자씨는 "내 가족이 사고 희생자는 아니지만 가르치던 학생이 세월호에 있었다. 그간 도망만 다니고, 숨어서 울다가 여기 왔는데 잘 왔다고 생각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최씨는 "마음이 무거운 채로 왔지만 다들 희망을 본 것 같다. 뮤지션들도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줬다"며 "여전히 다들 마음이 아프지만 이렇게만 있을 게 아니라 서로 위로해주면서 문제를 잘 헤쳐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늦깎이 학생을 위한 공부방인 안산늘푸른학교를 운영하는 정명섭씨는 "세월호 사건으로 안산이 어떤 특수성을 갖게 됐는데 자꾸만 우울해지는 건 반대한다"며 "유가족 분들, 그들의 지인들, 또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마음에 응어리들이 있다. 이젠 서로가 치유를 해가야 할 때"라고 의견을 전했다.

한편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기획 담당인 오미현 과장은 "클래식과 국악 공연으로 신춘음악회를 열어오다 올해는 추모 공연을 기획하게 됐다"며 "김창완씨나 말로씨 모두 세월호 추모곡을 내어 부탁드렸고 흔쾌히 응해주셨다. 안산 시민뿐만 아니라 세월호 사고 관련 자원봉사자 분들도 초대했다"고 덧붙였다.

김창완 말로 세월호 세월호 유족 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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