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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구조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기사가 분주히 올라왔고, 나 역시도 충분히 구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실종자들은 늘어갔고, 계속해서 시신이 발견됐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나는 무력감을 느꼈다. 2014년 4월 16일, 바로 그 날이었다.

그 일로부터 1년이 흐른 후 2015년 4월, 나는 다시 무력했던 그 날을 마주했다.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게 된 이유는 하나였다. 우리 반의 방울들이 그 날을 잊고 지나가지 않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1년이 지난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또,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세월호 희생자들은 저 멀리에서 우리 반 아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 할까. 어느 수업보다도, 고민이 많았다.

지난 1년간의 세월호의 기억을 더듬던 중, 나는 <팽목항 자원봉사 리포트-219일간의 잊을 수 없는 기록>이라는 책에 관한 기사를 읽을 수 있었다. 참사 이후 진도 팽목항에서 이루어졌던 눈물겨운 자원봉사의 기록이 담긴 책이었다. 직접 책을 구해 읽지는 않았지만, 자원 봉사와 관련한 기록들은 기사를 통해서 짧게나마 읽을 수 있었다.

7000여 단체
6만여 명의 자원봉사자
80만 점의 구호물품
1200억 원 가량의 성금

왜 이 많은 손길들이 팽목항으로 향했을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나는 팽목항으로 향했던 이 아름다운 손길에 눈을 돌리기로 했다.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그저 슬픔을 나누기 위해 팽목항으로 향한 이들. 거둘 수 없는 슬픔 속에 하늘로 향한 희생자들. 희생자들이 마지막으로 우리들에게 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아직 희망은 있다"는 것 아니었을까?

이어지는 추모의 물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하는 손길, 나는 팽목항을 향하고 있는 아름다운 손길들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자연히, 내 생각은 이 세월호 희생자들의 마지막 메시지를 아이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번지게 되었다.

세월호 사고를 통해 '작은 힘'에 대해 생각하다

아이들은 1년이 흐른 4월 16일, 세월호를 다시 만났다. 아이들은 우선, '7000', '60000', '800000', '120000000000' 이 네 가지 숫자와 얽힌 세월호의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저기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아이들은 왜, 세월호와는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사람들이 팽목항으로 향했는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같은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니까, 서로 도와주어야 해서."
"슬픈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덜 슬프게 해주려고."
"자기가 도울 수 있는 일을 조금이라도 도우려고."
"하늘로 멀리 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려고."

아이들은 팽목항으로 향한 수많은 손길에 대해 아름다움과 포근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아이들은 세월호 희생자들이 남긴 희망의 메시지를 직접 실천하는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세월호 사고를 매개로 우리 반 방울들이 작은 힘을 모아서,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도올 수 있다면, 이는 그 메시지를 실천하는 작은 움직임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그 작은 움직임은 세월호 희생자들의 메시지를 잊지 않고 아이들 마음에 새길 수 있는 배움이 될 것이다.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에게 쓰지 않는 물건 나누어주기."
"주말에 양로원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안마해 드리기."
"사랑의 빵에 매일매일 돈을 넣어서 성금을 모아 도움 드리기."
"두루마리 휴지를 하나씩 모아서 팽목항으로 보내기."
"우리를 지켜주는 군인 아저씨들께 편지 쓰기."

아이들의 진지하고 깊은 생각 속에서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왔다. 점심 시간동안의 투표를 거쳐서 '주말에 양로원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안마해 드리기'가 우리 반의 봉사 활동으로 선정되었다. 아마도 이 계획을 진짜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준비들이 필요하겠지만, 좋은 시기에 행복한 마음으로 직접 학교 주변에 위치한 양로원을 방문할 생각이다.

나도 느끼는 바가 많은 수업이었다. 나 역시도 주변의 도움의 손길에 응하지 않는 것에 익숙하다. 내가 가진 작은 힘과 마음을 나누어줄 수 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지는 않을까. 세월호라는 매개를 통해 자신의 힘을 나누어주는 일. 비록 쉽고 작은 일이지만, 동시에 아이들이 이를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세월호 사고로 잠든 사람들이 우리 반 아이들을 보고 흐뭇한 미소 지을 수 있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2015년 3월 2일부터 시작된 신규교사의 생존기를 그리는 이야기입니다.



태그:#초등학교, #선생님,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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