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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가 그야말로 융단폭격을 당하고 있다. <경향신문>이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녹취한 파일을 입수하여 <경향신문>과 유족의 동의를 얻지 않고, 심지어 반대 의견을 묵살하고 방송했기 때문에 취재윤리 위반이라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유족과 함께 법적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경향신문>의 주장은 대체로 수긍이 간다. 그리고 JTBC는 통념의 취재윤리를 어겼으니 비판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성완종 전 회장의 유족이 방송 중단을 요구할 권리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경향신문> 17일자 사설 '언론윤리 저버린 JTBC의 '성완종 녹음파일' 공개'를 보자.

"경향신문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고, 입수 경로에 대한 구체적 설명도 없었다. 유족의 방송 중단 요구조차 거부하고 공개를 강행했다. 명백한 언론윤리 위반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지난 15일 경향신문은 유족 동의를 받고 인터뷰 녹음파일을 검찰에 제출했다. 고인의 육성 녹음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것은 반대한다는 유족 의사에 따라 16일자 신문에 녹취록만 게재하기로 했다.(중략)

JTBC는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학생들의 휴대전화 영상을 공개하며 유족의 심정을 배려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족의 방영 중단 요구를 묵살했다. 대중의 신뢰를 받아온 손 앵커의 '이중잣대'가 민망하다. 다시 말하건대, JTBC의 '성완종 녹음파일' 공개는 무분별한 속보 경쟁이거나 특종을 가로채기 위한 무리수일 뿐이다."

유족의 요구를 너무도 자상하게 배려하고 있다. 유족의 방송 중단 요구를 거부한 것도 언론윤리 위반이고, <경향신문>은 녹음파일을 검찰에 제출할 때도 유족의 동의를 받아 했고, 유족의 의사에 따라 신문에 녹취록만 게재했다고 한다. 급기야 세월호 참사 당시 JTBC의 태도와 이번 경우를 비교하며 '이중잣대'라고 했다. 유족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 요구에 종속될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세월호 아이들의 영상 방송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왜 그런가 보자. 세월호 아이들의 영상은 공익성도 일부 있지만 꼭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프라이버시의 영역이니 부모의 동의는 필수적이다. 성완종 전 회장의 경우도 그러한가? 고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잘못을 따지는 게 다급하기 때문에 그다지 거론되지 않고 있지만, 성 전 회장도 잘한 거 하나도 없다.

이 사건의 진실은, 부패한 기득권집단 내에서 일어난 일로서 금권로비에 의해 사익을 챙기려다 배신감을 느낀 성 전 회장이 그 실상을 폭로한 것이다. 그러니 그 폭로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은 유족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공적인 영역에 있는 것이다. 고인이 되어서 죄를 묻지 않을 뿐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다를 게 없다.

어제 KBS 보도에 따르면, 심지어 성 전 회장이 국회의원 신분으로 국회 정무위 소속일 때 금융기관들에 로비하여 대출받은 돈이 경남기업의 상장 폐지로 상당 부분 갚을 수 없게 되었는데 그 액수가 무려 1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자명하다. 세월호 아이들 유족과 성 전 회장의 유족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모독이다. 법적 조치를 하는데 성 전 회장의 유족과 함께 한다는 것도 이상하다. 파일을 건네준 김인성씨는 그렇다 해도 JTBC까지 법적인 책임을 묻기 위해 유족과 함께 하는 것 아닌가? 이것도 무리수라면 무리수로서 지나치게 감정적이다.

최진봉 교수도 "JTBC는 이번 음성파일 공개 과정에서 유족들의 방송 중지 요청에도 불구하고 성 전 회장의 생전 녹음파일을 공개해 유족들의 요구를 묵살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또한 언론 윤리적인 관점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라고 하여 <경향신문>의 주장을 따랐다(관련기사 : JTBC의 '무리수'는 방송 상업화의 민낯). 성 전 회장 유족의 요구를 묵살한 게 언론윤리의 문제라는 게 무슨 근거인가?

최 교수의 주장대로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무차별적인 속보경쟁은 지양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 방송의 상업화를 지적했는데 방송의 문제만도 아니고, 어제오늘의 현상도 아니다.

나는 이 사안이 그렇게 펄쩍 뛸 만큼 중대한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상업주의 언론환경에서 특종의식과 속도경쟁은 관성의 법칙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발생한 문제는 자연스럽게 풀어야 한다. 윤리를 강조한다고 될 일도 아니며, 법적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닌 문화적 수준의 문제다. 손석희 앵커가 사과하면서 한 "언론의 속성이란 것만으로는 양해되지 않는다는 것 잘 이해하고 있다"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언론의 사명은 진실보도다. 진실에 접근하는 길은 험난하다. 그 과정에서 인위적인 장애도 있고 경쟁하며 반칙도 나온다. 권력의 장애에 대해서는 함께 싸워야 하고, 반칙에 대해서는 항의하고 사과하며 조금씩 개선해나가야 한다. 사과가 미진하다고 하니 JTBC도 좀 더 진솔한 사과가 필요하겠고, <경향신문>도 세월호 유족까지 들먹이며 무리한 부분에 대해 성찰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태그:#성완종, #경향신문,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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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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