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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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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도 도덕적으로 행위할 수 있을까?"

프랑스의 중등교육 졸업시험이자 대학입학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의 2013년 철학 논술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출제될 당시는 프랑스 정치인의 탈세와 온갖 비리가 부각되던 해였죠. 정말 시의적절한 문제 아닌가요?

시험이 있는 날이면, 국민들은 마치 수험생처럼 "올해는 어떤 문제가 나왔을까" 관심을 기울입니다. 정치인들은 TV에서 자신의 답을 발표하고, 학자와 시민들은 빈 강당에 모여 열띤 토론을 합니다. 카페, 거리와 공원 등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이 시험은 200년 넘게 프랑스인들을 생각에 빠뜨린 전통 있는 시험입니다. 시험의 목적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교양시민을 길러내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바칼로레아가 정답은 아닙니다. 이 제도 자체에 대해서 프랑스인들이 질문을 던지니까요. 하지만 확실히 부럽습니다. 배우고 싶은 부분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의 주입식 교육이나 '닦달'식 서열주의 입시와 비교하면 특히 그렇습니다.

중·고등학교 6년 간 교과내용을 기계적으로 습득합니다. 수능 시험 단 하루의 결과로 줄을 서기 위한 준비입니다. 이후에는 빠르게 머릿속에서 사라집니다. 결국 남는 게 별로 없는,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적어도 프랑스 미래 세대는, 누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생각하고 질문을 던질 힘을 길러서 사회에 진출할 기회를 가집니다.

"가만히 있으라."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지구 반대편에서 전혀 상반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476명을 태우고 가던 세월호가 바다 한 가운데에서 침몰했지요. 배에는 어린 단원고 학생들과 교사들 그리고 일반인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선내에는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정작 배의 지도자들은 그들을 남겨두고 도망 가버렸습니다.

어른들에게 늘 배워왔던 것처럼, 그저 착실히 말을 들었을 뿐인 아이들이 차가운 물속으로 스러져갔습니다. 476명 중 304명이 희생됐습니다. 그 중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9명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참사의 진실을 좇으면서 우리는 깨닫게 됐습니다. 참사의 책임은 선원이나 해운사의 악당 몇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보다 돈이 우선하는 사회풍토와 정부의 철저한 무능이 근본적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희생자들에게 한 목소리로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다짐 했습니다. 그 이상의 말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남긴 숙제들이 남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지금도 많은 시민들과 함께,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정부의 시행령 중단과 조속한 선체인양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거기서 국가의 위치는 어디인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거지요.

질문에 답해야할 사람들은 뭐하고 있을까?

지난 16일, 세월호 1주기 추모 집회
 지난 16일, 세월호 1주기 추모 집회
ⓒ 강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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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질문에 답해야할 사람들은 시민들이 '가만히' 있길 원하는 건 아닐까요? 문제를 풀어야할 박 대통령은 해외순방을 떠났습니다. 한편, 일부 정치인들은 세월호 문제의 의미 자체를 바꿔버리거나 지워버리기도 합니다.

지난해 7월, 주호영 새누리당 의원은 세월호 참사를 "기본적으로 교통사고"라고 주장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정부의 구조 실패 책임, 자본 논리와 사회풍조의 폐해 등을 무시하고 단순한 교통사고로 본질을 왜곡시켰다는 반발이 잇달았습니다.

일베 회원등이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단식농성장 앞에서 '도시락 나들이' 등 먹거리 집회를 예고한 지난 2014년 9월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일베 회원들과 시민들이 피자와 치킨을 먹고 있다.
▲ 피자 시켜놓고 인증샷 찍는 일베회원들 일베 회원등이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단식농성장 앞에서 '도시락 나들이' 등 먹거리 집회를 예고한 지난 2014년 9월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일베 회원들과 시민들이 피자와 치킨을 먹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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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의원의 존재는 곧 잊혔지만, 문제는 '세월호 교통사고론'입니다. 세월호가 교통사고라는 주장은 지난 1년 간 꾸준히 확산되어 왔습니다.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재생산해온 집단은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아래 일베)입니다. 이들은 한 술 더 떠, 세월호 유가족들의 고통을 조롱과 구경거리의 대상처럼 취급하기까지 하지요.

마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온 그간의 행적처럼, 일베는 어떤 '역사적 사건'에 숭고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부정하고 방해합니다. 5·18은 이미 역사적·법적 의미를 확고히 인정받고 있고, 국방부도 터무니없는 북한 개입설을 일축한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을 애써 조목조목 지적하면, 일베는 '왜 광주를 성역화 하느냐'는 반응으로 응대하기 일쑤지요. 단순히 5·18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마치 반드시 부정 '해야만 하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이러한 몰가치적 태도는 여당 의원의 '세월호 교통사고론'과 딱 한 걸음 차이만 존재합니다.

이 과정에서 의도적이든 아니든, 우리의 노력이 탈색됩니다. 우리는 어떤 사건에 관한 중요한 사실들을 선택하고, 구성합니다. 그리고 그 사건에 가치를 부여하고, 또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일베로 대표되는 그들에게 '참사'는 '교통사고'로, '민주화 운동'은 '폭동'으로 전도됩니다.

유가족이 '정치적'이라서 나쁘다? 진짜 나쁜 건, '탈정치화'와 '순응주의'

 세월호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전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사고해역을 방문한 유가족들 헌화를 하고 있다.
▲ 국화 던지는 유가족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전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사고해역을 방문한 유가족들 헌화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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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태도는 자식을 잃고 울부짖는 부모들의 국가를 향한 인정투쟁마저 발목 잡습니다. 시민들은 부모들에 대한 연민과 동시에, "언제든 나도 저런 식으로 사회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들은 건강하고, 국민이 버림받지 않는 사회풍토를 만들기 위해 자신들의 도덕적 신념을 정치적으로 실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시민들의 인정투쟁 역시 발목 잡힙니다. 국가는 세월호를 '교통사고'로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또 이런 국가의 논리를 철저하게 내면화시킨 이들이 단골처럼 내세우는 말, "세월호 유가족이 너무 '정치적'이다"라는 겁니다.

여기서 비단 일베만이 문제가 될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경향신문>의 15일 보도처럼, 일반시민들 중 일부도 유가족이 특혜를 원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편함이나 책임이 국가에게 상당 부분 있다는 것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를 가지기도 하니까요.

이런 오해들은 풀면 그만입니다. 세월호 유가족의 입장은 확고합니다. 배·보상 문제는 어디까지나 진상규명과 선체인양이 이루어지고 나서나 논의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배·보상안은 유가족이 먼저 요구하고 꺼낸 것이 아니라는 점을요. 정작 더 큰 문제는 '정치적'인 것을 나쁘다고 인식하는 탈정치화와 순응주의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선전선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선동은 사람의 감성을 움직이는 것이고, 선전은 이성에 호소해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것입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도덕적 신념에 따라서, 이를 제도적으로 실현하려고 '자기정치'를 하는 것입니다. 왜 굳이 '선전선동'이나 '정치적'이라는 말을 깎아내리는 뉘앙스로 써야 할까요? 

오히려 이들을 비난하는 태도야말로, 모순적으로 '정치적'입니다. 불확실하고 불안한 상황일수록, 어떤 사회상이나 인간상을 조형해내 실현하려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심리적 경향입니다. 꿈 없이 살 수 있는 인간이 있을까요? 오히려 자기신념이 없다면 감성을 오래 지탱하지 못하고, 쉽게 실망하고 쉽게 자기정치를 포기하는 게 아닐까요?

인간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한, 그들 사이의 '관계'는 불가피합니다. 현실을 초월해 사회를 떠나지 않는 이상, 소시민적 삶을 살더라도 인간은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제가 없다면, 도덕이 있을 필요도 없건만... 사소한 사적 영역 안에서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이나 인정투쟁이 생기게 마련이죠. 그래서 정치는 사람들의 일상에도 언제든 녹아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세월호 유가족이 '정치적'이라 나쁘다고 하는 건, 좀 비겁한 이유가 아닐까요.

어쨌든 제 생각은 이상과 같습니다. 하지만 미리부터 답을 선언해둘 필요는 없겠지요. 여러분들의 생각이나 정치적 이상을 '댓글'로 표현하고, 서로 나누어주세요. 다음에 글을 쓸 때, 참고하겠습니다. 그래서 여쭈어봅니다.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도 도덕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가?"


태그:#세월호, #세월호 유가족, #세월호 참사, #세월호 인양, #세월호 1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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