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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출입하는 정치팀 이경태 기자가 기사에서 미처 풀어내지 못한 청와대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말]
'세월호 침몰사건' 2일째날 2014년 4월 17일 오전 전남 진도 인근해 침몰현장에 세월호 선수의 일부가 보이는 가운데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건' 2일째날 2014년 4월 17일 오전 전남 진도 인근해 침몰현장에 세월호 선수의 일부가 보이는 가운데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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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배가 기울고 있습니다. '진상규명'이란 평형수를 다 채우지 못한 위태로운 항해였습니다. 급기야 '성완종 리스트' 파도에 거세게 부딪혀 복원력마저 잃고 말았습니다. 신속한 구조 활동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골든타임'은 허무하게 끝났습니다. 열쇠를 쥐고 있던 박근혜 대통령은 예정대로 16일 오후 중남미 4개국 순방을 위해 출국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지난 15일 오후부터 출국 직전까지 분주하게 움직였으니까요.

사전에 공지되지 않았던 세월호 참사 1주기 현안점검회의를 15일 오후 주재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진상규명 통제령'이란 빈축을 사며 철회 요구를 받고 있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문제 등을 거론하고 세월호 참사 원인을 부정부패로 연결시키면서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엄정 대처 입장을 재차 밝혔습니다(관련 기사 : ① 유가족 삭발, 최후통첩에도 대통령은 '딴소리' ② 박 대통령 "부정부패 책임 있는 사람 용납 않을 것").

세월호 참사 1주기 당일인 16일의 행보는 '긴박' 그 자체였습니다. 박 대통령의 중남미 4개국 순방을 취재할 기자들은 당초 이날 오전께 출발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일정이 미뤄졌습니다. 진도 팽목항에 있던 실종자 9명의 가족들이 분향소를 폐쇄하고 떠나버렸다는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유가족도 없는 팽목항을 방문할 수 없으니 추모일정 장소를 변경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기자들이 분주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나서자, 청와대는 "진도 팽목항 일정은 그대로다, 오후에 새롭게 서울에서 일정이 잡혀서 출발 시간이 미뤄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새로 잡힌 '서울 일정'에 대한 구체적인 장소나 시간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애초 박 대통령은 진도 팽목항 방문 후 광주공항을 통해 출국할 예정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기자들은 계속 대기했습니다. 특히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 또 다른 대국민담화를 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돌았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된 이완구 국무총리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는 상황을 감안할 때, 박 대통령이 이 총리의 거취 문제를 결정짓고 떠날 것이란 예측이었습니다.

당일 오후 2시 50분께야 '일정'이 밝혀졌습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합동 추모식이 열릴 예정이었던 경기도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 있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급히 청와대로 향하면서 알려진 것입니다. 박 대통령과 김 대표가 악수하는 모습만 공개됐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40여 분간 독대했습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당초 예정보다 3시간 30분 늦은 오후 5시 30분께 콜롬비아로 출국했습니다.

'노란 리본'조차 안 달았던 박 대통령

세월호참사 1주기인 16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남미 해외순방 출발에 앞서 진도 팽목항을 방문해 대국민담화를 발표를 위해 이동하던 중 희생자들을 추모 기념물들을 살펴보고 있다.
▲ 팽목항에 선 박근혜 대통령 세월호참사 1주기인 16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남미 해외순방 출발에 앞서 진도 팽목항을 방문해 대국민담화를 발표를 위해 이동하던 중 희생자들을 추모 기념물들을 살펴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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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주기 당일 누구보다 바삐 움직였습니다. 문제는 '내용' 입니다.

당장 박 대통령의 '추모 행보'부터 실패입니다. 청와대는 16일 당일 새벽에서야 '팽목항 방문' 일정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 전날(15일)부터 '정보지'를 통해 나돌고 있었습니다. 4·29 광주 서구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조영택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청와대의 엠바고(보도유예) 해제 전에 기자회견을 열어 팽목항 방문을 비판할 정도였습니다.

당연히 팽목항에 남아 있던 실종자 9명의 가족들도 이를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들은 박 대통령의 방문 전 분향소를 폐쇄하고 팽목항을 떠났습니다. 이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박 대통령의 방문을 반길 수 없다는 뜻으로 전달됐습니다. 결국, 박 대통령이 직접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 위로하고 세월호 인양을 약속하는 '그림'은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팽목항까지 내려 간 박 대통령은 분향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청와대는 이런 상황에 전혀 대비하지 않았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결국 유가족들은 못 본 것 아니냐"는 지적에 "그게 우리 쪽의 희망만으로 되는 건 아니지 않냐"라고 답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실종자 가족들을 직접 만나려고 (청와대에서) 시도는 한 거냐"는 질문에는 "여러분들이 예상하는 대로 자연스럽게 만나시는 방향으로"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결국 '당연히 만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준비한 셈입니다.

박 대통령이 팽목항에서 발표한 메시지도 부족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따라 민관 합동 진상 규명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해 곧 추가적인 조사가 진행될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철회 요구를 받고 있는 '대통령령(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논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진상 규명을 진행할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아직도 출범 못한 결정적인 이유인데도 말입니다.

유가족을 오히려 자극한 측면도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제는 가신 분들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그 분들이 원하는 가족들의 모습으로 돌아가서"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1년 동안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촉구해온 유가족의 모습이 고인의 뜻과 다르다고 지적한 꼴입니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은 팽목항 방문 당시 희생자에게 추모의 뜻을 표하는 '노란 리본'도 달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세월호 참사 1주기 당일, 가장 진정성 있게 유가족을 위로하는 행보가 무엇일지 다양한 형태의 추모 행사들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던 청와대의 기존 입장은 '립서비스'에 불과했던 게 아닐까요?(관련 기사 : 박 대통령 팽목항 머문 20분간 곳곳에서 '야유')

떠나기 전 '독대'로 여당 단속... 국정 인양 가능할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6일 오후 국회 대표실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가진 긴급회동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유승민 원내대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6일 오후 국회 대표실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가진 긴급회동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유승민 원내대표.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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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의 긴급 회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출국 시간을 미루면서까지 만든 일정이었지만 '중대 결정'은 없었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 총리의 거취 문제에 대해 "돌아와서 결정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의혹 해소를 위해 어떤 조치도 마다하지 않겠다"라며 특검 가능성도 거론했습니다. 딱 거기까지였습니다(관련 기사 : "이완구 거취는 순방 후 결정, 진상규명 위해서라면 특검도").

사실상 박 대통령이 '결단'을 요구하는 새누리당의 입을 막은 것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이 총리의 거취를 논하지 마라는 뜻이니깐요. 실제로 회동 직후 여당 지도부의 심기는 눈에 띄게 불편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여당에 정치적 부담만 지우고 해외로 출국했기 때문입니다.

김 대표는 박 대통령과의 회동 내용을 전한 후 "(이 총리 거취 관련) 대표의 의견도 전달했나"라는 질문에 "모든 얘기 다 했다고 (앞서) 그랬잖아"라고 다소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 총리의) 사퇴 관련해서 대통령 언급은 없었나"라는 질문에도 "아까 발표한 이외엔 더 할 말 없다"라고만 말했습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대통령이 다녀와서 결정하겠다는데 만족하느냐"는 질문에는 "드릴 말씀이 없다"라고 답했습니다. 이 총리의 거취 문제를 논하기 위해 소집하려 했던 의원총회도 당분간 계획이 없다고 했습니다. 유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저리 말씀하시는데 의총을 당장 할 이유가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박 대통령이 '당 내외에서 분출하고 있는 의견'을 꾹 누르고 떠난 셈입니다. 그러나 여당을 단속한다고 해서 '성완종 리스트' 후폭풍이 해결될 리 없습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이 총리를 둘러싼 의혹들은 계속 추가 보도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이번 중남미 순방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더라도 이 파장을 지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국정운영의 가장 큰 동력인 박 대통령의 지지율도 하락 중입니다(관련 기사 : 박 대통령 '지지층 이탈' 시작됐다). 17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 4월 3주차 정례 조사 결과,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주 대비 5%p 하락한 34%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박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대구·경북 지역과 60대 이상 응답자의 긍정평가는 각각 전주 대비 14%p, 10%p나 하락했습니다(14~16일, 전국 성인남녀 1008명 대상, 전화조사원 인터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세월호는 지금까지도 인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연 박 대통령은 귀국 후 침몰 중인 국정상황을 '인양'할 수 있을까요.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박근혜, #세월호 참사, #성완종 리스트, #중남미 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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