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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냄새가 물씬 난다. 시골 사람들만이 느끼는 축복이다. 앞마당 노랗게 올라온 튤립의 새 떡잎 '싸가지'를 토끼인지 사슴인지 벌써 싹둑 먹어버렸다. 튤립을 유난히도 좋아하는 아내의 정성, 씨 뿌린 수고가 수포로 돌아갔으니 맘이 더 아프다.

'싸가지'는 새싹의 전라도 방언이다.

"씨앗을 심으면 싹이 터 나온다. 움터 나오는 새싹의 여린 모가지가 싹아지, 즉 싸가지다. 싸가지가 없으면 기르나 마나다. 곡식도 싸가지가 있어야 하지만 사람도 싸가지가 있어야 한다. 어려서부터 싸가지가 없으면 커서도 알곡 없는 쭉정이가 된다."

국문학자 정민씨의 정의다.

"요즈음 아이들은 싸가지가 없다." 기성세대 꼰대들의 일갈이다. 꼰대들의 기준으로 보면 그렇다. 예의도 없고, 발랑 까지고,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아이들이 곱게 보일 리 없다.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꼰대들의 눈에 보이는 젊은이들은 어쩌면 그렇게 똑같이 싸가지가 없는지 모르겠다. '싸가지 없는 젊은 것들'을 언급했다는 소크라테스의 기록도 있으니 말이다.

신세대의 싸가지를 그렇게 비관할 것까지 없지 않나 싶다. 그들은 개성이 강하고 유머와 해학을 즐긴다. '꼰대세대'의 고리타분한 삶은 매력이 없다. 대중화 되고 있는 인터넷상의 싸가지가 이를 대변한다. 좋게 보면 바른 세상을 염원하는 해학도 담겨 있다. 정치판에 "싸가지 없는 진보"의 화두를 던졌던 강준만 교수는 이런 걸 '생산적 싸가지'로 분류한다. "싸가지가 없어야 기존 문화에 도전해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가 있다"는 거다. 재미있는 멘트다.

물론 '싸가지 없음'은 결코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아이들은 그렇다 치고, 꼰대세대의 경우가 문제다. 강 교수는 정치판 싸가지를 비판하면서 '싸가지 없음'의 원조를 좌파 진보로 단정한다. 동의한다. '싸가지 없음'이 권위주의적 & 제왕적 정치문화를 허문 공로가 있기는 하다. 문제는 자기들만이 정의고 옳다는 '도덕적 오만'의 싸가지다. '천하에 몹쓸 놈들'이라는 비어까지 생겨났다. 그렇지 않아도 시원찮던 정치의 품격을 더더욱 떨어뜨렸다.

물론 '싸가지 없음'이 진보 좌파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자기들만이 '반공' '경제건설'의 주역이라는 보수 우파의 '애국적 오만'의 싸가지, 그런 싸가지가 기득권세력의 '갑질 싸가지'의 원조까지 되지 않았나 싶다. 싸가지가 보편적 인간관계에서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배려, 상식, 예의, 존경과 도리의 다름이 아니라는 기준에서 보면 좌파나 우파나 거기서 거기라는 거다.

싸가지가 알곡을 맺듯 싸가지는 인간사회가 갖추어야할 사회적 권위와 품격의 베이스이며 번영의 씨앗이라고 나는 믿는다. 영화 <국제시장>이 이를 보여준다. 가난하고 무식했던 우리의 꼰대들이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어른으로서 품위를 지키려 했고, 상식으로 판단하고, 행동했다. 꼰대들의 권위는 여기에서 생겨났다. 그런 권위로 그들은 가족을 지키며, 한글세대로 불리는 국가건설의 싸가지 동량들을 키워냈던 것이다.

요즈음 꼰대들에게 그런 권위가 있는지 의문이다. 특히 미국에 살아보니 미국 꼰대들은 너무도 어린애 같다. "장래가 없는 어린이가 노인"이라고는 했던가, 너무도 옹졸하고 이기적이고 가볍다. 젊은 싸가지들의 미래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자신의 안락과 영생만을 위해 말년을 살아간다. 앞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는 좌左.우右가 아니라, 청靑.노老의 갈등에서 올지도 모른다는 어느 선배의 얘기를 들으며 웃었다.

"장래가 없는 어린이들"의 숫자가 투표권자로서 젊은 싸가지들보다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지겹도록 오래도 산다. 웃을 일이 아니다. 공맹의 덕을 겸비한 우리 한국의 꼰대들은 미국꼰대들과는 다르리라 믿는다. 어른으로서의 권위와 품위를 잃지 않고, 젊은 싸가지들에게는 희망을 선물하는 멋쟁이 꼰대들이 사는 나라, 아름다운 조국의 모습을 그려본다.    



태그:#싸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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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거주, Beauty Times 발행인, <밖에서보는코리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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