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는 간만에 '빈틈 없는 오디오'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 줬다. '예능 치트키' 김흥국과 '난방열사' 김부선, 오랜 연예계 활동으로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다수 보유한 이훈, <무한도전> '식스맨'의 유력 후보 광희까지. 입담으로는 정평이 나 있는 게스트들이 출연해 짓궂은 MC진들을 쥐락펴락하는 모습들이 큰 웃음을 자아냈다.

그렇게 신나게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이번 회차에서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게스트들이 게스트들이니만큼 그들의 입에서 감당 못할 '폭탄 발언'이 터져 나오지 않을까, 조금은 눈치를 보게 된 게 사실이다.

김흥국의 1인 시위나 김부선의 '난방 투쟁'과 관련된 토크가 한창 이어지던 중 광희가 "지금 굉장히 무서운 게, 막 정치 이야기가 나오니까"라고 말한 순간 그 긴장감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정치적 발언'과 그 후폭풍에 대한 공포가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김구라는 "정치 이야기 아니다.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으로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이들도 부조리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방송 하고 싶으면 그냥 참으라"고 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분명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발언이었다. 살아가는 모든 과정이 곧 정치일진대, 우리는 신문 속 정치면에 나오는 사건들만을 '정치'로 여기고 있던 것은 아닐까. 또 그 '정치'에 대해 부러 둔감해져야만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무상급식, 그걸 왜 개그맨인 저한테 물어보시죠?"

 KBS 개그콘서트 '민상 토론'

KBS 개그콘서트 '민상 토론' ⓒ 개그콘서트 페이스북


KBS 2TV <개그콘서트>가 지난 5일 시작한 코너 '민상토론'은 이러한 현실을 꼬집는다. 실제 '민상토론'은 '협의의 정치', 예를 들어 해당 코너에서 언급한 무상급식 논란이나 전 대통령의 비리 의혹 같은 것들을 풍자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신 이 코너는 기존 사회 질서를 흔드는 반동적 발언은 물론이고 작은 의문 제기에까지 '정치 과잉'의 딱지를 붙이고 보복을 가하는 구조와, 이를 두려워하는 개인을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사회자 역할인 박영진이 "지난 3월 경상도에서 무상급식을 중단해 논란이 되고 있다. 유민상씨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물었을 때, 질문을 받은 유민상이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시냐"며 아연실색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그리고 박영진은 "설마 무상급식을 모르는 것은 아니냐", "그래서 찬성이냐 반대냐"며 당황한 유민상의 말꼬리를 잡고 숨 쉴 틈도 없이 몰아붙인다.

또 다른 토론 참가자인 김대성도 유민상과 마찬가지로 곤란한 상황에 처하지만 박영진의 비호(?) 아래 위기를 모면한다. '민상토론'에 할애된 8분 남짓의 시간은 이처럼 '말하게 해야 하는 자'와 뒷일이 무서워 '말할 수 없는 자' 사이의 신경전으로 채워진다.

'민상토론'이 <개그콘서트>로부터 돌아섰던 민심을 방송 한 주만에 사로잡은 가장 큰 요인은, 마치 '볼드모트(<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로,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자'로 불림)'처럼 여겨지던 정치인의 이름이나 논란들이 '발설'될 때 나오는 쾌감에 있을 터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방송된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가깝게는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LTE 뉴스' 같은 정치 풍자 코너들은 좋은 반응에도 일말의 전조 없이 급하게 막을 내렸다. 때문에 '외압 논란'까지 일었다. 특히 <개그콘서트>의 '사마귀 유치원'에서 최효종은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보여준 풍자로 강용석 전 의원에게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이같은 일련의 사건들로 개그 프로그램에서 가능한 정치 풍자의 수위에 분명한 상한선이 그어졌다.

'민상토론'은 이 선을 넘는 과정까지 웃음으로 승화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사회자 박영진이 "시청자 여러분, 유민상씨의 의견은 본 프로그램과 전혀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와 같은 꼬리 자르기를 할 때 터지는 폭소는 이를 방증한다.

또 "이런 것을 (정치 이슈에 대한 의견을) 개그맨에게 묻지 마라. 시끄러워지는 것이 싫다"며 말을 아끼는 유민상에게 박영진은 "개그맨이니까 바보 흉내나 내면서 살이나 뒤룩뒤룩 찌겠다는 것이냐"고 일갈한다. 이는 '말할 수 없는 자'의 신분인 개그맨으로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자조이며, 동시에 협의의 정치든 광의의 정치든 점점 그것에 무관심해져가는 사람들에게 날리는 일침이다.

정치 무관심이 미덕인 세상, '민상토론'의 의미와 한계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의 한 장면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의 한 장면 ⓒ KBS


우리가 생각하는 정치의 범위가 관료들의 전유물 혹은 부정부패의 온상 정도로 좁아질수록, 거기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쿨해' 보이는 풍토가 이 '언중유골'의 바탕에 있다. 언론은 물론 일상에서 정치를 말할수록 검열, 삭제, 압박 같은 단어들로 대표되는 다양한 형태의 징벌이 가해진다.

목소리를 내면 쌈닭 취급을 받으니, 유치하고 선정적인 콘텐츠를 즐기는 것보다 정치를 논하는 것이 '길티플레저(해서는 안 되지만 했을 때 즐거운 일)'처럼 여겨질 정도다. 그렇게 정치를 시작으로 삶의 전방위에서 점점 수많은 입들이 틀어막고 막히기를 반복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침묵과 무관심은 미덕이 됐다.

그렇기에 비록 사건이 아닌 단어의 나열에 불과하더라도 '4대강 사업', '홍준표 경상남도 도지사',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무상급식 논란', '이명박 전 대통령 2800억 기업 특혜 의혹' 등을 언급하는 것은 '틀어 막혔던 입을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또 '먹는 이야기'나 '리빙·요리'와 '무상급식'을, '스포츠'와 '골프 논란'을, '물 이야기'와 '4대강 사업'을 연결한 부분은 정치가 생활이고 생활이 곧 정치임을 생각하게 해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태생적인 약점...그래도 좋은 울림 계속 주길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의 한 장면.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의 한 장면. ⓒ KBS


그러나 '민상토론'은 반드시 극복해야만 할 약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지라 '치명적'이라는 표현은 저어되나, 개그의 패턴이 지나치게 예측 가능하다는 점은 한계로 남을 듯하다.

박영진은 내내 '말하기 곤란한' 이슈만을 던지며 유민상과 김대성의 말꼬리를 잡고 몰아붙일 것이고, 유민상은 매번 식은땀을 흘리며 난감해 할 것이다. 방청석에서는 검은 선글라스를 쓴 사람이 계속해서 수첩에 무언가를 적을 것이고, 방청객들은 돌아가면서 유민상에게 '무거운' 질문을 건넬 것이다. 여타 개그 코너들 역시 일정한 패턴을 두고 진행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특히 '민상토론'에는 내용보다는 형식만이 존재한다는 점이 아쉽다.

다시 말해, 이 코너는 어떤 이슈를 연구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든 것이 아니라 단어가 허공을 오고가는 순간만을 연출했을 뿐이다. 반대의 예로 '사마귀 유치원'은 각 캐릭터가 같은 복장과 같은 유행어를 섞는다는 것 말고는 매주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민상토론'은 형식이 너무나도 공고하기 때문에 매주 다른 단어 말고는 이야기가 끼어들 틈이 없다.

그래서 '민상토론'의 콘셉트는 한 꼭지보다는 한 회차에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소재 중에서도 '무상급식', '문재인', '홍준표', '관악 을', 'MB' 같은 단어들이 2주 연속 쓰이고 있다. <추적 60분>을 찍을 기세로 정치적 이슈에 매달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좋은 취지와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오래도록 좋은 울림을 주기를 기대해본다.

유민상 : "제가 얘기를 함부로 하면 시끄러울 수 있어서..."
박영진 : "시끄러울 수 있으니 얘기할 가치가 없다?"

정치를 남의 것처럼 여기고 스스로 입을 틀어막았던, 혹은 틀어 막혔던 우리 모두를 향해 '민상토론'이 던진 질문이다. 우리는 이 질문에 과연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풍부한 이야기와 신선한 변주를 통해 다시금 사랑받는 정치 풍자 코너로 성장할 '민상토론'과 함께 이를 고민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민상토론 유민상 박영진 김대성 개그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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