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눈을 떼면 2위 자리가 바뀌어 있다. 이번에는 '비룡군단' SK.

김용희 감독이 이끄는 SK와이번스는 지난 16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넥센 히어로즈와의 홈 경기에서 10안타로 10득점을 뽑아낸 '경제적인' 야구를 펼친 끝에 10-0으로 완승을 거뒀다.

사실 이날 경기는 SK의 선발 트래비스 밴와트가 1회부터 박병호의 타구에 맞아 조기 강판되며 시작부터 악재가 발생했다. 하지만 SK 마운드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해 6이닝을 퍼펙트로 막아낸 채병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극적인 순간에 자주 등장하는 비운(?)의 투수

신일고 출신의 우완 투수 채병용은 200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6라운드(전체 34순위)로 SK에 입단했다. 그리고 2년 차이던 2002년 7승 9패 11세이브 평균 자책점 3.19를 기록하며 이승호(NC다이노스), 제춘모(은퇴)와 함께 SK 마운드의 미래로 떠올랐다.

SK가 창단 첫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던 2003년에는 9승을 올리며 한 단계 더 발전했던 채병용은 이후 3년 동안 잔 부상에 시달리며 고전했다. 매년 작은 차이로 잠재력을 폭발시키지 못했던 채병용은 김성근 감독(현 한화이글스 감독)이 부임한 2007년 드디어 첫 번째 전성기를 열었다.

채병용은 2007년과 2008년 2년 연속 두 자리 승수와 2점대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며 SK의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이끈 핵심 투수로 활약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채병용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엘리트 우완으로 군림할 일만 남은 듯했다.

하지만 2009년 채병용에게는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규 시즌 팔꿈치 부상을 당하며 단 3승에 그친 채병용은 그 해 KIA 타이거즈와의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신일고 후배 나지완으로부터 역사적인 끝내기 홈런을 맞았다. 이는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채병용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기억될 정도로 대단히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2009 시즌을 마지막으로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한 채병용은 복무 도중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팀에 복귀한 2012년엔 3승 3패 3.16을 기록하며 재기의 가능성을 보였다. 하지만 이듬해 다시 3패 1세이브 7.97로 무너지며 평범한 투수로 전락했다.

지난해는 채병용이 2009년 이후 다시 한 번 대기록의 희생양이 된 시즌이었다. 때는 10월 17일 넥센과의 시즌 최종전. 선발로 등판한 채병용은 1회 서건창에게 KBO리그 최초의 시즌 200번째 안타를 허용했고, 이어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게 유격수 최초의 40번째 홈런을 맞았다. 5회에 맞은 유한준에게 개인 첫 20홈런의 기쁨을 안긴 것은 덤이었다.

밴와트 부상으로 갑작스런 등판... 6이닝 퍼펙트로 '응답'

비록 여러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긴 했지만, 채병용의 2014년은 충분히 의미 있는 시즌이었다. 무엇보다 2008년 이후 처음으로 큰 부상 없이 풀타임으로 활약했다는 점이 가장 뜻 깊었다. 6년 만에 규정 이닝을 채우며 '부상이 많은 투수'라는 꼬리표도 뗄 수 있었다.

올 시즌이 끝나면 FA자격을 얻는 채병용은 1억 3500만 원이던 연봉도 63%가 인상된 2억 2000만 원을 받게 됐다. 하지만 제2의 전성기를 열어야 하는 채병용 앞에 놓인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김용희 감독은 밴와트, 메릴 켈리, 김광현, 윤희상으로 이어지는 선발 4인방을 일찌감치 구축한 상태에서 사이드암 백인식과 좌완 고효준을 두고 5선발의 옥석을 고르고 있었다. 결국 채병용은 롱 릴리프라는 어중간한 보직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됐다.

우려와는 달리 통산 18세이브9홀드를 기록하고 있던 채병용은 불펜에서도 금방 적응했다. 시즌 두 번째 등판이었던 지난 3월 29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0.2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첫 승을 챙긴 채병용은 팀이 필요한 순간에는 가리지 않고 등판하며 SK불펜의 윤활유 같은 역할을 했다.

지난 16일 넥센 전에서도 채병용은 여느 때처럼 불펜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발 밴와트가 1이닝만 던지고 박병호의 타구에 맞아 병원으로 후송됐고 김용희 감독은 많은 이닝을 소화할 수 있는 채병용을 긴급 호출했다(밴와트는 검사 결과 뼈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런 등판에 당혹스러울 법도 했지만 채병용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7회까지 마운드를 지켰다. 채병용은 6이닝 동안 65개의 공을 던지며 안타는커녕 단 한 명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았다. 김용희 감독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완벽한 투구였다.

2승(1홀드)째를 거둔 채병용은 시즌 평균 자책점도 1.54로 낮췄다. 11.2이닝을 던지는 동안 단 하나의 볼넷도 내주지 않았을 정도로 눈부신 제구력을 과시하고 있는 채병용은 피안타율도 .150으로 매우 낮다.

채병용이 기대 이상으로 6이닝 동안 마운드를 지켜 준 덕분에 SK는 17일부터 시작될 LG트윈스와의 주말 홈3연전에 총력을 기울일 수 있게 됐다. 반면 넥센은 선발 한현희가 3이닝 5볼넷으로 흔들리면서 전날 역전승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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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SK와이번스 채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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