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장수상회>의 강제규 감독이 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장수상회>의 강제규 감독이 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강제규 감독은 이름 그 자체로 흥행의 상징이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2004)로 <실미도>(2003)의 강우석 감독과 함께 한국 영화 천만 관객 시대를 열었다. 동시에 영화 제작사의 전성기를 이끌며 영화를 통해 아시아와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강한 남성적 이야기, 동시에 거대 서사를 주로 내놓았던 강제규 감독에게도 침체의 순간은 있었다.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7년 만에 선보인 300억 원 대작 <마이웨이>가 흥행에서 크게 실패했다. 공백 기간 동안 할리우드에 도전장을 냈지만 이렇다 할 재미를 보지 못한 직후였다.

주변의 우려와 걱정이 잦아들 무렵 강제규 감독이 <장수상회>로 돌아왔다. 박근형-윤여정을 내세운 '실버영화'다. 그간 선보였던 작품과는 다른 소소한 깨달음과 가족애를 그린 작품이다. 강 감독은 "역사나 전쟁과 같은 큰 서사 구조의 작품이 아니기에 다양한 등장인물을 유기적으로 잘 엮는 것에 집중하려 했다"는 설명부터 했다.

직접 기획하고 쓰진 않았지만 소중한 작품..."판타지 요소도 담겨있다"

강제규 감독은 연출자이기 전에 뼛속부터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은행나무 침대>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마이웨이> 등 자신이 직접 각본을 쓴 작품을 중심으로 메가폰을 잡아왔다. 이에 비해 <장수상회>는 투자배급사인 CJ E&M이 기획한 영화다. 강제규 감독과 함께 여러 감독이 연출자 하마평에 올랐으나 그가 최종 낙점됐다.

이런 사연에 강제규 감독은 "작년 2월에 제안을 받았고, 각색 과정에 힘을 주며 내용을 다듬어 갔다"고 운을 뗐다. '황혼 로맨스'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에 강 감독은 "그게 이야기의 중요한 출구인 건 사실"이라며 "좀 더 얘기를 확장시켜 가족 문제와 부모 자식 간 이해 문제 등으로 접근하려 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내 뱃속에서 잉태시킨 자식은 아니고, 예쁘게 자식을 키워낸 거죠. 과거에는 온전히 내 이야기만 다루고 싶어 했다면 지금은 생각이 바뀌어 가는 듯해요. 키운 자식도 충분히 내 자식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웃음) 다만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쉽진 않아요. 오히려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것보다 어려운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내 것으로 재창조 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이 지점에서 <장수상회>에서 느꼈던 일부 불편한 대사와 설정에 대해 물었다. (관련기사: '실버영화'의 탈을 쓴 '장수상회'가 수상하다) 이해와 소통을 말하려 했다지만 맥락상 기성세대가 자식세대에 대해 일방적 대우를 요구한다고 읽을 여지가 있었기 때문.

 <장수상회>의 한 장면. 성칠

<장수상회>의 한 장면. 성칠 ⓒ CJ 엔터테인먼트


"극중 성칠(박근형 분)이 젊은이들을 가르치려는 인물은 아니에요. '이렇게 살게 된 게 다 누구 덕인데'라는 대사를 한 것도 그저 인물의 성격상 나온 거지, 그 자체가 영화의 메시지는 아니거든요. 자기네가 고생과 희생을 한 게 옳다고 생각하는 인물도 아니었어요. 또 재개발 이슈에 대한 비판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면 그건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사실 가정 문제는 우리 주변에서 대부분 볼 수 있는 문제잖아요. 그걸 그리고 싶었지 재개발 자체를 다루려는 건 아니었어요. 영화 속 장치일 뿐입니다. 흐름을 봤을 때 재개발 문제를 묵직하게 다룰 여지도 적었죠. 어느 정도 판타지성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수상회>를 사실적으로 생각하고 싶은 분들에겐 좀 거북스러울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려워진 제작 여건? "창작자 스스로 변해야, 표현의 자유 보장도 중요"

앞서 흥행 감독이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엄밀하게 보면 강제규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10여 년 전 복수의 언론을 통해서 "한국-아시아-세계시장에서 차례로 인정받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혀왔고, 그 과정을 온몸으로 헤쳐온 인물이다. 봉준호, 박찬욱 감독 등이 할리우드와 손잡고 결과물을 만들기 이전에 강제규 감독은 직접 미국에 머물며 해당 시스템을 경험했다. 할리우드 영화 제작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그의 경험은 곧 후배 영화인들의 훌륭한 자산이 될 수 있었다.

"참 당연한 얘기지만 시행착오 끝에 내린 결론은 자기 변화를 끊임없이 모색해야만 살아남는다는 거였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감독을 하고 싶고 그렇게만 살 수 있다면 참 행복한 일이잖아요. (잠시 침묵) 관객 시선으로 보면 '<장수상회>가 강제규 영화 맞나?' 물어볼 수도 있을 겁니다. 제가 추구한 자기 변화의 한 형태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제 영화에서 부족했던 점, 아쉬웠던 점을 어떻게 성장시킬지 그 고민은 끝까지 계속 할 겁니다.

미국에 머물며 결과를 내지 못한 건 참 아쉽긴 한데 그래도 할리우드의 힘, 그 원동력을 피부로 알게 됐어요. 겉에서 보면 극도로 상업화된 곳, 모든 가치가 돈으로 귀결되는 곳으로 보이겠지만 독립영화가 살아있는 곳이에요. 그 작품들의 가치를 발견해 주고 산업에 접목시켜주죠. 또 그곳에선 여러 나라의 실패 사례가 연구되고 있습니다. 그걸 바탕으로 해법을 찾고 있더라고요."

 영화<장수상회>의 강제규 감독이 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보다 직접적으로 물었다. 강 감독이 언급한 시스템이 과연 한국에서 가능할 것인가.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 영화 지원 방식 변경과 부산시의 부산국제영화제 압박 등 최근 불거진 일들이 영화인들의 불안감을 더욱 조장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에 강제규 감독은 "당혹스러웠다"며 운을 뗐다.

"한창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할 때 여관에서 주로 작업했어요. 마지막 부분을 막 쓰고 있는데 영화사로부터 갑자기 '잔금은 주겠지만 영화 제작은 안 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게 삼청교육대에 대한 영화였는데 당시 안기부가 제작하지 말라고 통보했다고 들었습니다. 또 MBC <베스트극장>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였나, 학원물이었는데 교장 선생의 횡포에 학생들이 대항하는 내용을 썼었어요. MBC에서 제작을 취소한다고 하더라고요.

최근 중국을 오가며 그쪽 매체와 몇 차례 인터뷰를 했습니다. 중국영화 성장을 위한 조언을 원하더군요. 아무리 거대 자본을 갖고 있어도 중국 내 사전 심의 제도가 있는 한 성장은 없다고 답했습니다. 관객이 원하는 콘텐츠를 줄 수 없으니까요. 이 말을 하니 제 주변에선 조심하라며 걱정들 하던데 지금의 우리 상황도 참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한국 관객들의 수준과 눈높이가 있기에 결국 극복해낼 거라고 봅니다."

 영화<장수상회>의 강제규 감독이 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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