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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파상> 표지
 <모파상> 표지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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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크고 풍채가 좋으며 금발이었던 조르주 뒤루아는 대중소설의 악한 인물과 얼굴이 많이 닮아 있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늠름한 자태를 지닌 그는 굉장한 미남이기도 했다. 어느 정도 이름이 난 뒤부터는 남녀를 불문하고 그를 '벨아미'라고 부르게 된 이유였다. 벨아미는 '미남 친구'라는 뜻이다.

모파상의 <벨아미>의 주인공이 바로 이 미남자 조르주 뒤루아다. 타고난 외양이 이렇듯 사람들을 사로잡은 그이지만, 그는 언제나 마음을 졸이며 살았다. 자신의 지위에 대한 자괴감 때문이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쥐꼬리만한 봉급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었는데, 돈이 없어 술도 마음껏 마시지 못하는 처지였다.

어느 더운 여름 날 저녁 우연히 만난 군대 동기 포레스티에의 주선으로 신문사에 일하게 되면서 벨아미는 드디어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신문기자가 된 그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 일인자가 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린다.

원하는 삶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못 할 것이 없었던 그는 자신의 외모가 상류층 여인들에게도 호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십분 이용한다. 그는 여인들을 유혹해 유리한 정보를 얻고 그녀들의 신분을 이용해 자신의 지위를 높인다. 그의 야망은 계속해서 목표를 갱신하고 그의 탐욕은 상대를 짓밟으며 그를 점점 더 앞으로 진군 시킨다. 넘어질 듯하면서도 소설 속 벨아미는 끝까지 살아남았다. 젊고 부유한 여인의 남편이 되어 마들렌 성당으로 들어서는 그의 마지막 모습은 모든 것을 가진 군주의 모습과 같았다. 그런데 그런 그의 모습이 그렇게 위태로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가 하사관으로 일하던 시절 동료들은 그를 이렇게 평했다.

"교활한 놈이야. 아주 영리해. 무슨 일이든 빠져나갈 수 있는 권모술수가야." -<본문> 중에서

친구들의 평을 들은 벨아미는 그래서 이렇게 결심한다. 친구들 말대로 교활하고 영리한 꾀쟁이, 권모술수가가 되기로. 보통의 사람 같았으면 매우 기분 나쁜 상황이었을 것이다. 교활한 권모술수가라는 평을 듣고 좋아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벨아미에겐 도리어 이런 평이 그의 야망을 부채질하는 기폭제가 되고 만다. 왜냐하면 그의 세계관은 아래와 같았기 때문이다.

"세상은 강한 자의 것이다. 강해져야 한다. 모든 사람들의 위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본문> 중에서

강해지려면 교활한 악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온몸으로 이해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악함에는 후회도, 죄책감도 없다. 그에겐 도리어 악하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듯 보이기까지 한다. 세상은 언제나 강한 자와 약한 자로 양분되어 왔고, 강한 자라면 그처럼 후안무치가 되어야만 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가 누구보다 강한 자가 되어 떵떵거리는 모습을 결국 보게 된 우리들은 그가 강해진 이유는 결코 그의 미모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악해서 강해진 것이다.

점점 더 악질이 되어가는 벨아미. 그렇게 점점 더 유명세를 떨치게 되는 악인. 유명해진 그는 더 큰 악행을 저지를 수 있었고, 그 악행으로 인해 더 이름을 날리게 된 그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책을 읽다 보면 언제쯤 이 악인이 악행을 그만둘까, 싶은 마음이 절로 들 것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반대의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가 어떻게 악행을 그만둘 수 있겠는가, 싶은 것이다. 그와 그가 뿌리내린 그 사회가 마치 쌍둥이처럼 닮아있는데 말이다.

벨아미에게 도덕의 잣대를 쉽게 들이대지 못하는 이유이다. 퇴폐적이고 원색적이며 돈과 권력이 더럽게 얽혀 있는, 암투가 판을 치는 사회와 쌍둥이처럼 똑같은 기질을 타고난 재능 있는 젊은이가 그 재능을 이용해 욕망을 성취하고 그 끝을 향해 전력질주 하는 것을 과연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사회가 그의 악당 기질을 용인하고 묵인하며 도리어 그에게 손을 내미는 상황에서 스스로 멈출 수 있는 사람은 또한 몇 명이나 될까.

이미 발동 걸린 탐욕의 발은 걸려 넘어지지 않는 이상 스스로 멈추긴 어려운 법이다. 탐욕의 사회가 탐욕의 개인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그를 멈추게 할 수 있는 건 자멸 내지 더 큰 탐욕을 만났을 때뿐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 벨아미를 만난다

그래서 모파상의 <벨아미>를 읽으면 벨아미가 아닌 사회에 도덕의 잣대를 더 들이밀고 싶어진다. 인간의 악함을 자극해 끝까지 끌어내고 마는 사회의 생태가 위태로워 보이기만 한다. 걱정도 된다. 사회 그 자체 때문만이 아니라, 개인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 혼자 어떻게 양심과 순수함을 지켜낼 수 있을지 나는 알지 못하겠다.

그래도 생각해 본다면, 만약 병적으로 타락한 사회에서 개인이 혼자 도덕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면, 그건 아마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인간적이지 못한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이러한 사회에서도 타락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매일 아침 눈을 떠 인터넷을 켜 보면 또 다른 벨아미가 메인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매끈한 얼굴의 그들은 본인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듯 눈을 치켜 뜬 채 거짓말을 해댄다. 그런 그들을 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두 갈래로 나뉜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저들처럼 벨아미가 되어야 한다는 하나의 생각, 이런 세상에서 '인간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선 저들처럼은 되지 않아야겠다는 또 다른 생각.

나는 두 번째의 생각을 응원한다. 성공이 아닌, 성장을 응원하기 때문이다. 모파상의 두꺼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한 생각은 벨아미는 결코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성공만 했다. 그런데 그가 한 그 성공은 언젠가는 멈추게 되어 있다. 그럴 때, 성공이 멈추었을 때, 분명 벨아미는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성공을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계속 욕망해도 된다는 유아적인 생각만을 거듭했을 뿐, 그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가치는 절제함으로써 얻어진다는 것을 결코 알지 못했다.

덧붙이는 글 | <벨아미>(모파상/민음사/2009년 09월 25일/1만2천5백원)



벨아미

기 드 모파상 지음, 송덕호 옮김, 민음사(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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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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