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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김포공항에서 제주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전광판에 비행기 결항 안내가 뜬다. 제주에 강풍이 불고 있다고 했다. 모든 여행 계획이 어그러지게 생겼다. 숙소 예약과 돌아오는 비행기 편, 아이들 체험 학습 참여 일정까지 다 변경해야 한다. 어디부터 전화를 해야 할까? 아이들 선생님께는 뭐라고 해야 할까?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난리다. 김포공항 패스트푸드 가게에 데려갔다. 그런데 가게 앞에 학생들이 바글 거린다.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인가'했다. 햄버거를 주문해준 뒤 화장실에 갔다. 여학생들이 웃고 떠든다.

"너희 수학여행 가는 거니?"
"아니요. 돌아가는 거예요."

제주에서 서울로 수학여행을 왔단다.

"결항돼서 너희 신나겠다."
"네."

네 명의 아이들이 합창을 한다. 얼마나 신이 날까? 친구들과 함께 있으니 아이들에겐 결항도 추억이 될 것이다. 어른들이야 고생스럽지, 아이들은 그저 즐겁다. 신이 난 아이들을 보면서 지난해 세월호에 탄 아이들이 생각이 났다.

그 아이들도 아마 한동안 신이 났을 것이다. 사고가 금방 수습되고, 객실에 '가만히 있으라' 방송했던 어른들도 분명히 자신들을 구조하러 올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세월호 유가족의 도보 행진이 생각났다. '제주로 가던 아이들이 배에 탄 채 물 속에서 죽어갔는데, 나는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가려 한다.' 죄송스럽다. 마음이 편치 않다.

쓸쓸한 분향소... 세월호 1주기, 달라진 것이 없다

분향소 들어가는 길
 분향소 들어가는 길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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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경기도 안산에 방문한 적이 있다. 안산 예술의전당에서 단원고를 향해 걸었다. 학교 가는 길엔 낮은 층의 빌라들이 쭉 이어졌다. 인도엔 보도 블록이 들쑥날쑥이었다. 혹시나 발이 접질릴까 싶어서 땅을 보며 걸었다. '이 길을 걸어 아이들이 학교를 갔겠구나' 싶었다. 걸어가다 보니 초등학교가 나왔다.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웃는 소리가 들린다.

저 아이들 중엔 이번 사고로 희생된 형이나 누나를 둔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저 학교는 이번 사고가 남의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길을 걸었던 아이들이 얼마나 웃었을까? 등굣길이 어땠을지 상상을 해봤다.

나도 이런데, 자식 잃은 부모들은 이 길을 어떻게 걸어 다닐까? 자식이 매일 걸었던 길을 걸으면서 자식 생각이 안 날 방법이 있을까? 어쩌면 이 길을 잘 다니지 못하겠구나 싶다. 하긴 길뿐이 아니다. 집에는 아이 방이 있고, 아이 책상이 있고, 아이 교복이 있다. 소지품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었다.

단원고를 거쳐 분향소에 갔다. 이제야 분향소에 온 나, 너무 늦었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넓은 광장에 사람이라곤 경찰뿐이다. 둘씩 짝 지은 경찰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걸었다. 경찰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경찰이 여기 왜 서 있는 걸까? 질서 유지를 위해? 혹시 모를 소란을 막기 위해?' 무표정한 경찰의 얼굴들. 그 이유를 짐작하지 못하겠다.

건물에 들어섰다. 노란 리본과 방명록, 국화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 넓은 공간이 사진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분향소 안에는 안내하는 사람들을 빼고 우리 일행뿐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사진을 보고 이름을 읽었다. 선원, 일반인, 그리고 가장 어려 보이는 어린이. 그리고 학생들의 사진이 시작됐다. 사진 속 아이들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손으로 '브이자'를 만들어 얼굴에 올리고 웃고 있다. 모자를 쓴 아이도 있다. 사진으로 봐도 개성이 톡톡 넘치는 아이다. 이 녀석은 장난끼가 많은 녀석이 분명하다.

이 아이들, 지금 어디 모여 놀고 있을 것만 같다. 귀여운 녀석들.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순간 나는 잊었다. 이 사진이 영정 사진임을. 아이들은 죽었다. 살지 못했다. 저 어린 나이에. 저 많은 아이가 한 날, 한 사고로 죽었다. 우리는 무엇으로 이 일을 설명할 수 있을까? 신은 과연 있는 걸까? 만일 있다면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영정 사진 아래 친구가 보낸 쪽지가 있다. 좋아했던 과자도 놓여 있다. 아빠가 보낸 편지엔 눈물 자국이 번져 있다.

"사랑한다", "잊지 않을게", "내일 놀러 올게. 이제 며칠 뒤면 매일 놀러 올 수 있어" 이모티콘이 가득한 장난스런 쪽지도 있다. 무슨 사이일까? 어쩜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을지도 모른다. 이 아이들, 열여덟 해를 살면서 연애는 한 번 해 봤을까? 하다 못해 짝사랑이라도 한 번은 해봤을까? 말썽이라도 한 번씩은 부려본 걸까? 연애라도 해 봤다면 내가 좀 덜 미안할 수 있을까? 아니다,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내가 덜 미안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진짜 있어야 할 자리, 어디일까?

분향소 전경
 분향소 전경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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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게 찾아와 미안했는데, '이렇게 외롭고 쓸쓸한 분향소에 나라도 와서 다행이구나' 싶었다. 분향소를 다녀왔던 것이 지난 1월의 일이다.

기어이 우리는 진상 규명도 없이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는다. 유가족은 정부가 만든 시행령이 진상 규명과 거리가 멀게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시행령이 모법인 세월호 특별법의 '위임의 한계 일탈'을 저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관련 기사 : 국회 입법조사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법적으로 문제").

1년이 되도록 시신도 다 찾지 못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16일 해외 순방을 나간다고 한다. 그 많은 사람이, 그 많은 아이가 삶을 거두었다. 진상 규명이 다 됐다 하더라도 대통령은 국내에서 유가족을 위로해 줘야 한다. 세월호 참사 발단의 한 책임은 세월호 관리·감독을 부실하게 한 정부에게도 있다.

결코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아니, 정부에 책임이 없다고 하더라도, 가족을 잃고 자식을 잃은 국민을 위로해 줘야 한다. 대통령뿐 아니라 국민도 유가족을, 또 유가족도 되지 못한 실종자의 가족을 위로해야 한다. 다시 살아갈 힘을 줘야 한다. 측은지심이 없는 지도자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모르겠다. 세월호 1주기, 대통령이 있어야 할 자리는 진정 어디일까?


○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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