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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벚꽃들이 꽉 차 있는 나무도, 바람에 따라 미련없이 떨어지면서 꽃비 장관을 연출하는 나무들도 있다. 지난 10일 계룡산 벚꽃축제가 시작된 날, 어르신 20여명과 미술강사와 함께 그곳을 찾았다. 오전에 계룡도자기예술촌에 들러 현장학습을 한 뒤, 오후엔 동학사방향으로 산을 오르며 꽃놀이를 즐겼는데, 그때 그 나무들이 그랬다.

그러나 오늘 보니, 거의 모든 벚꽃잎들이 비바람에 떨어졌다. 분홍빛보다 초록잎들이 더 많았다. 사람의 일도 사람의 인생도 벚꽃나무와 다름이 없는 것 같다. 며칠 전 어르신들과 계룡산 갔던 일이 떠올랐고, 그 중에 제일 나이 많은 분이 기억났다.

현장학습출발하면서 ..
▲ 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 미술교육 현장학습 현장학습출발하면서 ..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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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이번 달 하순 세계도자기축제가 열리는 이천에 가려고 했다. 그러나 평균 연령대가 75세인 데다, 85세인 분도 있어서 땡볕에 행사천막들이 많아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시간 거리에 있는, 꽃과 숲과 계곡이 있는 곳으로 다녀온 것이다.

어르신들은 친절한 도자기공방 선생님의 가르침 대로 흙을 주물럭 거렸다. 마치 초등학생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간 듯. 어르신들은 이날 아기자기한 접시, 막사발, 꽃병, 화분 등등 다양한 용도의 흙도자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청국장을 먹을 예산에 단체회비를 조금씩 더 보태어 유황오리와 수제비를 먹고 동학사 방향으로 갔다.

미술교육 도자기체험학습
▲ 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 미술반 미술교육 도자기체험학습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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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계획은 차를 트레킹 하는 입구에 대고 몸이 불편한 고령의 어르신들이 좋은 공기를 마실 수 있도록 하는 거였다. 그러나 사람과 차와 장돌뱅이장사꾼들이 너무 많아, 차로 들어가는 것보다 걸어가는 게 더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식당에서 부터 걸어갔다.

동학사로 가는 벚꽃길에는 품바공연팀이 즐비했다. 전국의 품바예술단은 다 모인 듯 보였다. 50미터마다 품바공연팀 대여섯 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또 수백개의 먹거리 장터들이 난립해, 사방에서 뭔가를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러나 동학사 입구인 계곡으로 들어서자, 그 많은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궁금할 정도로 한산했다.

다리에 관절염이 있거나 특별히 몸이 불편한 분만 빼고는 모두 1시간 30분 정도 트레킹을 했다. 76세의 어떤 할머니는 30년 만에 계룡산에 온다고 감개무량해 하셨고, 몸이 불편하면서도 동학사까지 가서 한창 초파일 준비를 하고 있던 그곳에 가족들을 위한 등도 하나 달고 아이처럼 좋아라 하는 80세의 할머니도 계셨다.

오후 4시까지는 승차를 하기로 약속해서 모두들 내려가라고 권고했는데 한 분이 없다. 어떤 분이 없는지 여기저기 알아보니 동학사 위에 있는 남매탑이 있는 곳까지 가신다며 가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 분의 나이가 85세이다. 아이구 이걸 어쩐담... 낭패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오래 기다리지 않아 그분이 빠른 걸음으로 내려오셨다.

"힘드신데 어떻게 더 올라가셨어요?"
"예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여... 기다릴까봐 금세 내려갔지..시간만 더 있으면 정상까지도 갈 수 있는데..."

그 분은 2주 연속으로 아프셔서 결석을 하셨던 분이다. 같이 배우는 분이 계룡산에 현장학습을 간다고 하니, 기운을 내서 오셨다가 자기도 모르게 신나서 조금 더 무리를 한 모양이시다.

최근 비가 내리고 찬 바람 불어 그 분의 컨디션이 어떤지 문득 궁금해졌다. 무리해서 더 아프시지 않을까... 혼자 오래 살아, 계룡산에 올 기회가 없었는데, 30년만에 와서 고맙다고 거듭 내 손을 잡든 할머니와 지병에 끙끙거리며 하루 하루 사시면서도 그날 기운내서 씩씩하게 트레킹한 할아버지가 오래도록 안녕하시면 좋겠다. 내년에도 좋은 화사한 꽃을 활짝 피울 큰 벚꽃나무처럼...


태그:#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 #복지기관 미술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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