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람의 검심 1, 2, 3 편> 원작을 바탕으로 애니메이션과 실사판이 나왔다. 애니메이션은 보지 못했으나 실사판은 CG나 와이어 액션이 최소화되어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 영화다. 중국 무협과는 다르게 현실감있고 스피드가 강조된 결투장면은 일본무협영화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영화 <바람의 검심 1, 2, 3 편> 원작을 바탕으로 애니메이션과 실사판이 나왔다. 애니메이션은 보지 못했으나 실사판은 CG나 와이어 액션이 최소화되어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 영화다. 중국 무협과는 다르게 현실감있고 스피드가 강조된 결투장면은 일본무협영화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예지림엔터테인먼트


오늘은 영화 한 편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한 편이 아니라 세 편입니다. <바람의 검심>이라는 영화입니다. 일본 원작으로 애니메이션과 실사 판으로 모두 만들어졌는데 저는 원작도 애니메이션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우연히 '사토 다케루'의 칼 사위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리를 지켰습니다.

사실 일본 사무라이 영화는 폭력을 넘어 가학적이고 혹은 낯 뜨거운 19금 내용이나 오락적 요소가 강해 중국식 무협영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지곤 합니다. 경공을 이용해 하늘을 날고 흡성대법으로 상대의 공력을 빨아들이는가 하면 구음진경이나 항룡십팔장으로 수십 명의 적을 제압하는 능력은 중국 무협의 독특한 문법으로 세계관을 형성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 바탕엔 김용과 고룡이라는 걸출한 작가들이 포진해있습니다. 이들의 작품은 중국 역사 안에서 꽃을 피웠던  도교와 불교의 해박한 지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천룡팔부>같은 무협 드라마는 불교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며 무(武)를 통한 해탈의 경지에 길을 열어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에 반해, 세계에서도 명감독의 반열에 드는 일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요짐보>나 <란>, <칠 인의 사무라이>, <카게무샤>는 활극이 아닌 철학적 사색과 드라마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람의 검 신선조>나 <망팔 무사도> 같은 영화는 상대적으로 검술 장면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긴 하나 역시 싸움에 깊이 관여한다기보다는 시대적 배경과 그 안에서 고민하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흔적을 보여줍니다.

<바람의 검심>, 일본 무협영화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도!

하지만 얼마 전에 개봉했던 '오오토미 케이시' 감독의 <바람의 검심>은 칼싸움을 전면에 드러내고 거기에 역사적 사실을 살짝 얹어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재미가 있습니다. 물론 1부와 2부를 넘어가며 주인공인 '히무라 켄신'의 '역날검'(칼등이 위로 올라와 벨 수 없는 칼)과 카오루 도장의 현판인 '활심류'(사람을 살리는 검술)라는 단어가 영화의 주요한 키포인트로 작용합니다. 칼은 무엇이며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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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의 검심 1 > 과거 유신지사였던 히무라 켄신과 신선조로 활동했던 하지메의 결투 장면. 그러나 켄신은 역날검으로 방어에 치중하기에 둘의 실력차는 검증되지 않는다.

▲ 영화 <바람의 검심 1 > 과거 유신지사였던 히무라 켄신과 신선조로 활동했던 하지메의 결투 장면. 그러나 켄신은 역날검으로 방어에 치중하기에 둘의 실력차는 검증되지 않는다. ⓒ 예지림엔터테인먼트


​사토 타케루가 연기한 히무라 켄신! 그는 전설의 발도재라 불립니다. 발도술을 사용하여 한번 칼을 뽑는 순간 이미 서너 명의 목숨은 땅에 떨어지고 마는 그의 검술에 사람들은 전설의 반열에 올려놓게 됩니다. 실제로 영화 초반 막부 사무라이들과의 전투장면은 왜 그가 '히무라 켄신'이며, '발도재'라 불리게 되는지 증명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막부의 몰락, 그의 이름은 전설이 되고 10년이 지납니다. 이제 그는 역날검을 들고 유랑생황을 하고 있습니다.

시대는 19세기 말, 막부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 즉, 메이지(明治) 유신이 막 자리를 잡아가던 때입니다. 막부말기 정부의 편에 서서 수많은 사람을 죽였던 켄신(劍心: 칼의 마음)은 역날검을 지니며 불살(不殺) 즉,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 맹세합니다. 그리고 그가 만난 대리 사범 카오루의 도장에 식객으로 머물며 도장 현판에 적힌 '활심류'의 뜻을 읊조립니다. 칼을 지닌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본인의 역날검 뿐만 아니라 카오루의 도장에서도 아로새기게 되는 거죠.

메이지 유신! 막부의 유령과 싸우다

유신 이후 일본은 근대화의 길을 걷게 되는데, 과거 막부의 잔재를 없애기 위해 '폐도령'을 내립니다. 그리고 서구식 제도를 도입하며 서양세계와 교류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기 시작하죠. 하지만 정부 인사들의 눈엔 아직도 남아있는 막부의 잔재는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칼을 들고 다니는 사무라이의 경우엔 더 심한 제재를 가하게 됩니다. 메이지 유신을 완성하기 위해 고용했던 사무라이들은 막부가 몰락한 후 유신 정부에 의해 내쳐집니다. 일부는 정부를 위해 일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무라이들은 그들을 고용했던 정부에 배신감을 갖고 기약 없는 오늘을 살아갑니다.

영화는 그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개혁과 전통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사무라이들의 이야기를 끼워 넣습니다. 그러나 개혁도 완전치 못하고 전통도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못됩니다. 전통을 무시한 개혁은 성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메이지 유신 덕분에 일본의 근대화가 전국적으로 이루어지며 대일본제국의 발판을 놓았지만 총칼로 짓밟은 개혁으로 인해 부작용 역시 속출하고 맙니다.

각 편마다 간략한 내용을 짚어보겠습니다. ​

▲ 1편엔 절대 악인, 칸류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의 주위엔 사무라이들이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칼싸움밖에 없는지라 칸류에게 빌붙으며 그의 해결사 역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마약을 판매하고 막대한 부를 축적한 칸류는 신무기를 구입하여 도쿄를 자신의 성으로 만들려 합니다. 그의 휘하에는 갈 곳 없는 과거 막부시대의 사무라이들이 모여들고 있고요. 물론 켄신과 그의 조력자들에 의해 무력화됩니다.

영화 <바람의 검심 1 > 켄신과 사노스케의 결투 장면

▲ 영화 <바람의 검심 1 > 켄신과 사노스케의 결투 장면 ⓒ 예지림엔터테인먼트


▲ 2편은 3편과 바로 이어지기 때문에 절대 강자 '시시오'를 처단하기 위해 벌어지는 중간 과정이라고 보면 됩니다. 물론 저는 원작을 보지 않았기에 원작과의 싱크로율이 어느 정도인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구현은 어디까지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건 주인공인 히무라 켄신 역의 '사토 타케루'는 99% 싱크로율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작은 키에 날렵한 몸매. 결투 전에 고개를 푹 숙이고 상대를 노려보는 장면은 그 만의 '발도재'를 창조하였다는 평가가 주를 이룹니다.

​▲ 3편에는 절대 강자 '시시오'와 그의 부하들 '십본도'의 개인사가 잠시 등장을 합니다. 그들이 왜 시시오의 편에 서서 정부에 칼을 겨누는지, 시시오는 왜 전신 화상을 입었으며 죽지 않고 메이지 정부에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지 말입니다.

시시오는 켄신과 마찬가지로 막부와 메이지 정부의 전투가 극에 달했던 10여 년 전, 발도재로 정부에 고용되어 수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마지막 전투에서 전신 화상을 입었습니다. 화상으로 땀이 배출되지 않기에 15분 이상 싸움을 할 수 없는 거지요. 그래서 시시오와 결판을 내려면 15분 이상을 버텨내야 합니다. 시시오는 자신을 배신한 정부에 강력한 불만을 품고 십본도를 비롯한 사무라이들을 불러 모으고 현대식 배와 무기를 사들인 후 메이지 정부를 전복시키려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켄신은 스승인 세이쥬로에게 시시오를 이길 수 있도록 '비천어검류 오의'를 가르쳐달라 요청합니다. 그리고 후반부에 펼쳐지는 시시오와 켄신, 아오시, 사노스케, 하지메의 대결은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3편의 부제인 <전설의 최후>란 주인공인 켄신이 아니라 '시시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자신은 '시대를 잘못 태어났을 뿐이다'라는 시시오의 독백이 마음을 찌릅니다.

시시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칼 솜씨 하나만을 보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준 정부가 고마웠을 겁니다. 그러나 치열한 전쟁이 끝나고 그에게 돌아온 건 온 몸에 화상으로 짓무르는 고통, 그럼에도 자신을 버린 정부입니다. 이제 그는 막부도 유신정부도 어느 것도 믿을 수 없어 스스로 나라를 세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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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의 검심 1 > <바람의 검심> 3편 [전설의 최후], 켄신과 시시오의 결투

▲ 영화 <바람의 검심 1 > <바람의 검심> 3편 [전설의 최후], 켄신과 시시오의 결투 ⓒ 예지림엔터테인먼트


이토 히로부미의 등장! 칼잡이들의 운명을 결정짓다 ​

​역사를 보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칼을 쥔 사람은 정치놀음의 희생양이 됩니다. 때론 거대한 자본을 보유한 사람과 거래를 하며 권력의 최측근에 접근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정치놀음에 무너지고 말죠. 요즘 뉴스를 뜨겁게 달구는 모기업 전 회장님의 자살 사건도 역사 안에서 본다면 칼잡이와 같은 운명이란 생각도 듭니다. 아무리 살려고 발버둥쳐도 권력의 중심에서는 단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말입니다. 

강호의 최고수도 내일이면 그 자리를 빼앗길 수 있습니다. 막대한 자산도 3대를 넘기기 힘들다고 합니다. 권력 또한 10년을 버티기 어렵다고 합니다. 3편에 보면 그 장면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시시오의 왕국이 포탄을 맞고 몰락하는 것을 지켜보는 이가 있습니다. 바로 '이토 히로부미'입니다.

막부시대를 종결하고 유신정부의 주요 인사가 된 '이토 히로부미'는 시시오의 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켄신을 비롯한 사무라이들을 모집합니다. 그들의 꺾이지 않는 무인 정신이 필요했던 거지요. 가난한 자를 돕고 부패하며 백성들을 위협하는 무리를 소탕하는 사무라이 정신은 이토 히로부미와 손을 잡고 시시오를 처치하기 위해 시시오의 군함으로 오릅니다. 그러나 시시오와 사무라이들이 목숨을 걸고 결전을 벌이는 사이 이토 히로부미는 시시오의 군함을 향해 포를 난사합니다. 시시오든 사무라이든 과거의 잔재는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싸움 끝에 시시오를 제압한 켄신과 하지메, 사노스케, 아오시 등이 배를 타고 해안가에 다다르자 이토 히로부미는 뜬금없이 사무라이들에게 경례를 합니다. 이들이 살아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고 지금 이 상황에서는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다 느꼈던 거지요. 하지만 사무라이들은 무시하고 그냥 지나칩니다. 철저한 기회주의자이며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위해서는 어떠한 일도 서슴지 않는 그의 본색을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이토 히로부미! 권불십년이라고 했나요. 일본에서는 일본 근대화의 선구자로 서구 열강의 세력을 몰아내고 자주적인 일본제국을 건설한 영웅으로 그려집니다. 허나 그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으로서 을사늑약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한일 강제병합 이후, 1909년 만주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에 의해 사망하고 맙니다.

<바람의 검심 3편>(전설의 최후)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한국인들의 눈길을 끄는 것 어쩔 수 없네요. 영화에서도 그의 처세는 대단합니다. 감독의 의도 역시 이토 히로부미를 야심찬 정치가로 그리고 있습니다. 시시오와 협력을 하는 것처럼 굴다가 사무라이들을 동원해 뒤통수를 치지요. 사무라이들 역시 그에게 배신을 당하지만 이토 히로부미에게 칼을 겨누지는 않습니다.

캐릭터 소개

​주요 캐릭터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

영화 <바람의 검심> 등장인물, 왼쪽부터... 카오루, 켄신, 아오시, 사노스케, 소지로, 메구미, 세이쥬로, 하지메, 시시오

▲ 영화 <바람의 검심> 등장인물, 왼쪽부터... 카오루, 켄신, 아오시, 사노스케, 소지로, 메구미, 세이쥬로, 하지메, 시시오 ⓒ 예지림엔터테인먼트

▲ 오른쪽 그림에서 제일 왼쪽이 카오루 카미야로 켄신과 썸을 타는 역할로 나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도장을 운영하지요. ▲ 켄신의 오른쪽에 있는 아오시는 교토에서 활동하던 어번정중의 '닌자'. ▲ 밑그림의 왼쪽은 시시오의 부하 십본도 중의 한 명인 '소지로'. ▲ 그 옆은 뛰어난 의술을 가진 '메구미'입니다. ▲  메구미 오른쪽은 켄신의 스승인 '세이쥬로' ▲ 다음은 막부시대에 신선조의 사무라이로 활동했던 '하지메'. 지금은 유신 정부에서 군인으로 있다. ▲ 마지막은 2편부터 3편까지 절대 강자로 등장하는 '시시오'.

그리고 위 그림의 제일 오른쪽 캐릭터는 '사노스케'입니다. 워낙 특이한 캐릭터라서 별도로 설명을 하겠습니다.

원래 적보대의 일원으로 도쿄 뒷골목의 타고난 싸움꾼입니다. 후에 켄신과 대결하다 패배한 후 그와 친구가 되죠. 싸움꾼답게 가공할 맷집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1편에서 칸류의 부하와 대결할 때도, 3편에서 시시오의 십본도 중의 한 명인 파계승 '유쿠잔 안지'와 싸울 때도 일단은 두들겨 맞습니다. 맞고 맞다보면 상대가 지칩니다. 그때 사노스케는 상대방을 제압합니다.

필살기라면, 엄청난 거구에 욕을 잘 합니다.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다혈질이라 툭하면 싸움에 끼어듭니다. 마지막으로 의리 없이는 못살고 죽는 캐릭터입니다. 켄신과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다가 가장 친한 친구가 되며 켄신을 위해 맨 손으로 시시오와 겨룹니다. 그래서인지 그가 등장하는 장면만 나오면 그저 웃음이 터집니다.

​정리하면,

<바람의 검심>은 중국의 무협영화와는 좀 다릅니다. 와이어 액션이나 CG를 최소화하고 등장인물들이 직접 칼을 들고 연기를 펼칩니다. 그 완성도가 높다 보니 보는 사람으로서는 과하지 않은 액션이지만 실제를 방불케 하는 칼싸움 장면에 매료되고 맙니다. 특히 켄신과 하지메, 아오시의 검술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롭습니다.

또한 시대적 배​경이 유신 체제가 굳건히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라서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은근히 메이지 유신을 홍보하는 느낌마저 듭니다. 일본인의 입장에서 영화를 본다면 그리 거리낌이 없겠지만 한국인으로서는 좀 불쾌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3편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처세가 비웃음을 살 정도로 그려지는 걸 보면 속이 뻥 뚫리기도 합니다. 한국인이라면 다소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무협을 표방한 오락영화로서는 손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의 검심 메구미 아오이 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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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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