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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부터 방영된 KBS <개그콘서트>의 새로운 코너 '민상토론'이 장안의 화제다. 최근 제기된 <개그콘서트>의 '위기론'을 타개하는 데 이 코너가 어떤 역할을 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최소한, 반등의 토대는 마련한 듯하다.

'민상토론'의 내용은 단순하다. 사회자인 박영진이 유민상과 김대성을 패널로 앉혀놓고 최근 우리 사회의 이슈를 이야기한다. 다만 그 토론의 안건이라는 것이 모두 민감한 정치적 이슈다. 처음에는 가벼운 가십거리를 얘기하는 듯하던 토론은, 갑자기 무거운 주제로 돌변한다. 예컨대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무상급식 논란을 거론하는 식이다.

어떻게 보면 조금 뻔한 것도 같은 '민상토론', 도대체 이 코너가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풍자가 어려운 사회... 반갑다 '민상토론'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의 한 장면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의 한 장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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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민상토론'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풍자가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정치풍자는 코미디에서 '성(性)'과 함께 아주 오래된, 그리고 흔한 소재다. 조선 시대에는 남사당패나 탈춤패가 당대 정치를 풍자했다. 1980년대 이후 특히 군사독재정부가 끝날 때쯤부터는 '회장님, 우리 회장님', '네로 25시' 등 수많은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정치풍자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MB 정부 이후 모든 게 바뀌었다. 참여정부 때는 대통령 비판이 소위 '국민 스포츠'라고 하더니, MB 정부 이후에는 정치풍자가 검열과 소송의 대상이 됐다. 웃자고 한 얘기에 정부가 죽자고 달려들었다.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사회 전반에 권위주의가 팽배해졌다. 정치풍자가 설 자리가 좁아졌다.

덕분에 풍자는 코미디의 영역이 아니라 전적으로 정치의 영역이 되고 말았다. '나꼼수' 정도나 제대로 된 정치풍자를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SNL의 '여의도 텔레토비'처럼 정권 교체기에 잠깐 인기를 끌 수도 있지만, 이는 극소수 사례였다. '여의도 텔레토비' 역시 금세 폐지됐다. 수위가 높은 정치풍자는 우리가 쉽게 볼 수 없는 영역이 됐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런 미디어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개그콘서트>의 '민상토론'이 나타났다. 아직 박근혜 정권이 3년 차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총선이 앞으로 1년이나 남은 때에 제대로 된 정치풍자를 전면에 내세운 코너가 공중파에 등장했다. 그러니 어찌 시청자의 입장에서 '민상토론'이 반갑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금 더 세게, 하지만 영리하게

그렇다면 '민상토론'의 인기는 단순히 그것이 정치풍자를 하기 때문일까? 아니다. '민상토론'은 재미있다. 풍자의 재미는 보통 그 사안의 민감함과 풍자의 세기와 비례하기 마련이다. '민상토론'은 생각보다 민감한 문제를, 예상보다 강하게 풍자한다.

이는 작년 가을쯤 정치풍자로 인기를 끌다가, 조금은 풀이 죽은 듯 보이는 SBS <웃찾사>의 'LTE-A뉴스'와 비교하면 확연히 드러난다. 'LTE-A뉴스'는 사회적 이슈를 나열하며 가볍게 터치하는 수준인데 반해 '민상토론'은 전·현직 대통령의 이름과 정치인들의 실명을 거론한다. 너무 민감해서 공중파에서 쉽게 다루지 못한 사건들도 툭툭 건드린다.

그런데 눈여겨 볼 만한 것은 그 사안을 다루는 '민상토론'의 방식이다. 코너의 주인공 박영진과 유민상, 김대성은 언급되는 문제들에 대해 한 번도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찬반을 묻는 사회자 박영진과 차마 대답을 못해 쩔쩔매는 유민상과 김대성만 있을 뿐이다.

'민상토론'은 단 2회 만에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무상급식, 자원외교, 4대강 사업, 이명박 2800억 원 비리 의혹 등 많은 이슈들을 언급했다. 하지만 철저히 이슈만 환기시켰을 뿐 그 이상의 판단과 웃음은 오롯이 시청자들의 몫으로 남겨 놓는다.

시청자들이 이런 내용에 파안대소를 짓는 건 세 개그맨들의 뛰어난 연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속에 숨어있는 자학 코드 때문이기도 하다. '민상토론'은 보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여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

일상생활에서 누군가가 나의 정치적 견해를 물었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이가 "개그맨이니까 의견은 있지만 말 안하고 살이나 뒤룩뒤룩 찌겠다는 거냐"라는 박영진의 일갈과 "저 까짓 게 무슨 생각이 있겠어요"라는 김대성의 남루한 변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비록 한심한 세태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현재 우리 모두는 비겁하다. 잘못을 잘못이라 하지 못한다. 잘못된 이들이 권력과 돈을 가졌기 때문에, 그게 진실이고 옳은 일인양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요컨대 '민상토론'이 재미있는 건 단순히 그것이 정치풍자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민상토론'은 어떤 코너보다도 영리하다. 자신은 '화두'를 던질 뿐, 웃음은 시청자들의 몫으로 남겨 놓았다.

검은 선글라스의 방청객, 계속된 디테일의 변주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요원일 가능성이 높다
▲ '민상토론'의 검은 선글라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요원일 가능성이 높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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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상토론' 속에 숨어 있는 디테일 역시 재미를 살린다. 사실 <개그콘서트>의 대부분 코너들은, 프로그램의 특성상 자주 반복되고 나면 식상해질 수밖에 없다. 이때 필요한 게 작은 변주들이다. '민상토론'도 코너 곳곳에 기발한 장치들을 숨겨놓으면서, 변주를 통한 재미를 더하고 있다.

우선 화면 오른쪽 구석에서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방청객을 생각해보자. 아마도 그는 국정원 요원 역할이었을 것이다. 무슨 토론이나 간담회가 있으면 몰래 잠입해서 지켜보는 그들. 이미 정부의 민간인 사찰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오히려 풍자의 대상이 되었다. 정부는 그들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고 있다고 자평하는지 모르겠지만,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이미 깨진 지 오래다.

또한 수지와 민호 열애설은 어떠한가. 사회자 박영진은 MB의 2800억 원 논란 기사를 가리키며, 그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보도된 수지와 민호 열애설 기사 밑에 단신으로 처리되었음을 지적한다. 정작 중요한 정치 기사들이 하필 그때 터지는 연애 관련 특종으로 덮어지는 세태를 꼬집은 것이다. 도대체 왜 하필 그때 연예인들의 열애설이 터지는 것일까.

이처럼 '민상토론'은 코너 안에서도 작은 변주들을 주며 끊임없이 진화를 꾀하고 있다. 자칫하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구조 속에서, '디테일'을 살려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앞으로 <개그콘서트>의 '민상토론'이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지 알 수 없다. 외부의 압력 때문에 변질될 수도 있고, 내부의 자체검열 때문에 아예 코너를 접을 수도 있다. 그래도 꼭 한 가지 부탁한다. 제발 방송하는 동안만이라도 현 세태를 시원하게 풍자해 주기를. 현재 우리는 이런 수준의 풍자도 제대로 접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민상토론' 팀의 파이팅을 빈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민상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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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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