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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레오폴드 광장에서 있었던 세입자 단체의 세입자 주민투표 서명 운동 첫날 모습
 베를린 레오폴드 광장에서 있었던 세입자 단체의 세입자 주민투표 서명 운동 첫날 모습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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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1일 토요일 오전 10시. 베를린에서는 새로운 공공주택 월세 법률안 제정하기 위한 대장정의 첫 신호탄이 울렸다. 세입자 주민투표(Mietenvolksentscheid)를 위한 주민청원의 첫 서명운동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베를린의 다양한 세입자 단체와 연합들이 모여 운영되고 있는 '세입자 주민투표 단체'는 첫날 서명운동으로 약 3000명의 서명을 받는 등 순조로운 출발을 알리고 있다. 2015년 5월 말까지 주민 청원을 위한 2만명의 유효한 서명을 받아야 한다.

이 서명 운동이 성공하면 2016년 1월까지 주민 청원의 2번째 단계로 주민 투표가 유효한 17만5000명(베를린 시 투표권자의 약 7%)의 서명을 받는다. 베를린 시민의 2016년 9월에 주민투표로 법률안을 제정할지 아닐지 결정되게 된다.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하게 될 법률안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입자 법률안
1. 주거구역지원펀드 조성을 통해,

1.1 공공 주택을 대상으로 한 소득을 기준으로 하는 월세 감소책
(소득이 낮으면 적은 월세를 내고, 소득이 높은 가구는 높으면 높은 월세를 내도록 함)

1.2 저렴한 월세의 신규 주택을 촉진
(그동안 신규주택은 충분히 공급되었으나 과도하게 높은 월세로 수요자가 적었던 점을 고려)

1.3 배리어 프리(Barrierefreiheit) 주택으로 현대화하거나 에너지 절약 주택으로 현대화할 시에 월세의 급격한 상승이 없도록 함
(그동안 주택 개량을 통해 월세를 급격히 올린 사례가 많았음)


2. 기존의 시립 주택회사들을 공공의 법 아래 있는 공공시설(Anstalt öffentlichen Rechts)로 변경을 통해,


2.1 세입자 친화적인 기업, 공공의 행복을 기준으로 하는 기업 그리고 수익 배분이 없는 기업으로 조성
(수익보다는 공공의 가치를 중시)

2.2 세입자들이 시립 주택회사를 공동 경영할 수 있게끔 함

베를린의 한 주택 벽에 붙어있는 월세 상승(Mieterhohung)에 대처하는 법. 1. (계약서에)서명하지 않는다. 2. 이웃과 이야기한다. 3. 세입자 상담소를 찾아라.
 베를린의 한 주택 벽에 붙어있는 월세 상승(Mieterhohung)에 대처하는 법. 1. (계약서에)서명하지 않는다. 2. 이웃과 이야기한다. 3. 세입자 상담소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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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투표를 통해 법률안이 통과되면 베를린시의 약 42만6000채의 시립 혹은 공공 주택 운영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세입자 주민투표 단체는 제곱미터당 약 5유로(한화 약 6천 원, 한 평당 약 2만 원)의 칼트 미테로 운영되는 공공주택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칼트 미테(Kaltmiete): 난방비, 관리비 등의 기타 비용을 포함하지 않은 순수 집세를 의미함.

베를린 시 정부는 한 평당 약 2만 원 수준의 공공주택 월세 안을 포함한 세입자 주민투표 단체의 법률안이 시행될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월세 보조금 명목으로 약 33억 유로(한화 약 4조 원가량)의 세금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하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현 베를린 시 건설부 장관인 안드레아스 가이젤(Andreas Geisel, SPD) "세입자 단체의 목표와 요구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그 뜻을 같이한다"는 긍정적인 견해를 밝히며 "(세입자 단체의) 아이디어와 제안에 대해 기꺼이 토론할 것이다. 그리고 빠르게 적용할 수 있고, 목적 지향적이며 비용을 감수할 만한 아이디어와 제안은 가능하다면 받아들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와 반면 부동산 관계자들은 세입자 주민투표 단체의 법률안과 운동에 대해 '사회주의로의 퇴행'이고 '감당할 수 없고, 쓸모없는' 법률안이라며 비난과 다름없는 우려를 나타내며 반대하고 있다.

세입자 주민투표 서명 운동 첫날. 많은 사람이 관심을 표명했고, 이는 주민 청원을 위한 20,000명의 서명 중 첫날 3,000명의 서명을 받는 결과로 증명되었다.
 세입자 주민투표 서명 운동 첫날. 많은 사람이 관심을 표명했고, 이는 주민 청원을 위한 20,000명의 서명 중 첫날 3,000명의 서명을 받는 결과로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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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베를린뿐만 아니라 독일 전역에서 시행된 월세 제동법(Mietpreisbremse)이 본격적으로 시행된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에게는 지금 베를린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대적인 세입자 운동에 고개를 갸우뚱할 만하다.

국내에 간략하게 소개된 월세 제동법에 대한 기사에서도 그 문제점을 알 수 있다.

"주택 임차료 상승 지역은 집주인이 새로 세입자를 들일 때 해당 지역 월세 평균보다 10% 넘게 임차료를 책정할 수 없도록 상한선을 뒀다. 그러나 신규 준공된 주택을 처음 임대할 때는 이 같은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는 민간주택 공급 의욕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취지다."(연합뉴스, 박창욱, 2014년 3월 20일 기사 '독일 정부, 세입자 부담 경감 법안 마련' 참조)

새로 공급되는 민간주택은 예외였다. 월세 제동법안을 통과시켰음에도 저렴한 민간 임대주택을 소망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과거보다 건설비가 상승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건설비의 상승은 집값과 월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독일에서 가장 급격히 상승한 베를린의 평균 월세는 단순 물가나 건설비 상승으로 그 이유를 돌리기 어려운 비상식적인 현상이었다.

그 결과 세입자 단체가 주장하는 평당 2만 원 수준 월세의 2배에 달하는 제곱미터당 월세 10유로 이상(평당 4만 원 수준)의 주택은 지속적인 고급주택이 공급되고, 기존 주택의 월세가 급격히 상승하며 충분한 상태가 되었지만, 그와 반면 베를린에는 약 12만 채 가량의 저렴한 주택(bezahlbare Wohnung)이 부족한 상태다.

정부가 주도했던 불완전한 세입자 정책은 시작하기도 전부터 수많은 비난을 받았고, 그 효과 역시 미미한 상태이다. 애초에 제동을 거는 정책이었을 뿐이지, 현실에 맞게 재조정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규주택에는 예외를 두는 등의 여러 예외사항을 두어 부동산업자나 집주인이 교묘하게 월세를 올릴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점도 컸다. 정부가 대안 제시에 실패하자 시민들이 나선 것이다.

주민투표 이후 템펠호프 공원은 평온을 되찾았고, 100% 시민주도의 템펠호프 시민 단체는 2014년 독일 환경단체 Bund-Berlin의 환경상을 받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시민단체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다양한 방식으로 도시 문제 해결에 참여하고 있다.
 주민투표 이후 템펠호프 공원은 평온을 되찾았고, 100% 시민주도의 템펠호프 시민 단체는 2014년 독일 환경단체 Bund-Berlin의 환경상을 받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시민단체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다양한 방식으로 도시 문제 해결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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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목적을 가진 주민투표처럼 보이지만 이 주민투표는 사실 템펠호프 공원의 개발을 저지했던 2014년 5월의 주민투표(관련 기사: 베를린 최고의 '핫 플레이스', 왜 투표까지 갔을까)와 같은 현실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바로 저렴한 주택이 부족해지는 베를린의 주택 상황을 우려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그 어떤 장소보다 저렴한 주택을 많이 공급할 수 있었던 정부 소유의 땅이었던 템펠호프 공원을 고급 주택 단지로 개발하려던 정부의 개발안을 시민들은 반대했다. 또한, 이번 세입자 주민투표의 대상을 베를린 전역으로 넓힌 것도 평범한 시민들이 감당할 수준의 저렴한 주택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한 시민들의 연속된 노력이다.

분명 정부나 부동산 관계자들의 말처럼 시 운영에 큰 부담을 주는 쓸모없는 법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시장에 맡겨진 채로 베를린의 저렴한 월세 집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리고 그 저렴한 주거비용은 지금까지 베를린이 수많은 젊은이, 여행객 그리고 창조적인 기업들이 베를린을 선택하게 된 중요한 요인이자 장점이었다. 물론, 동시에 그러한 외부의 유입이 월세를 높인 하나의 촉매가 되기도 하였다.

베를린 세입자 주민투표를 위한 단체에는 그동안 베를린의 다양한 문제에 대응해온 수많은 시민 단체와 연합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수많은 언론, 정치인 그리고 시민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기도 하다. 이유는 다른 곳에 있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주택 문제는 이미 직면한 현실이자, 다른 도시 내의 문제와 직접 연결된 사항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세입자 주민투표의 귀추가 주목된다.

* 베를린 소개서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미처 다 싣지 못한 최근 베를린 소식과 베를린 사진들을 공유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기사의 주제인 세입자 주민투표를 의미하는 독일어 Mietenvolksentscheid는 그대로 직역하면 월세 국민투표이다. 하지만 법률안의 성격과 투표 지역이 베를린에 국한된 것을 고려 세입자 주민투표로 표기하였다.



태그:#독일, #베를린, #세입자, #주민투표, #주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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