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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 동안 남편과 인도·네팔·동유럽으로 배낭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여자와 미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남자가 같이 여행하며 생긴 일, 또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며 겪은 일들을 풀어내려고 합니다. - 기자 말

맥그로드 간지 코라 산책길을 걷는 티베트 할머니들. 이 할머니들도 집이 그리울까.
 맥그로드 간지 코라 산책길을 걷는 티베트 할머니들. 이 할머니들도 집이 그리울까.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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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은 어두웠다. 아직 깊은 밤이다. 잠을 깨운 건 몸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배. 배 속의 난항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뭐가 문제니? 눈을 감고 배 속의 느낌에 집중했다. 윗배와 아랫배 사이에서 얇은 막이 느껴졌다. 막 위쪽이 팽팽히 당겨왔다. 얇은 막이 윗배를 힘껏 들어 올려 무언가를 기어코 막아내고 있는 느낌. 팽만해진 복부를 살살 만졌다.

깜박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다. 200루피짜리 방에는 화장실이 딸려 있지 않았다. 그냥 좀 자고 싶은데. 옆에 누운 더스틴의 얼굴 윤곽으로 새벽의 푸른 빛이 스쳤다. 밖으로 나갔다. 숙소 지붕 위로 히말라야의 하얀 얼굴이 나를 새초롬하게 내려다봤다. 아래층 화장실로 내려갔다. 날은 셀로판종이를 덧댄 듯 파랬다. 꾸르륵. 배가 괴물 소리를 냈다. 얇은 막이 윗배를 힘껏 쳐냈다. 입 밖으로 내용물이 튀어나왔다. 시큼한 위액 냄새가 입안을 채웠다. 새벽 공기가 차다.

"토했어."
"진짜?"
"어. 세 번은 했어."
"정말로?"
"아 그렇다고."


나쁜 자식. 더스틴은 이제 내가 아프다고 해도 웬만해선 믿지 않는다. 하루에도 다섯 번, 일주일이면 서른다섯 번 머리가 아프거나 속이 안 좋거나 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 투덜대니 신빙성이 떨어진다나. 곧 죽을 사람처럼 재채기를 하다가도 커피 한 잔 마시고 5분 만에 말짱해지는 회복 능력을 너무 자주 보여준 내 과실이다. 이번에도 가짜이면 좋으련만. 진짜라고오오오오! 배가 외쳤다. 야 진정해.

문제는 참치 샐러드였다. 참치 맛이 심상치 않다 싶더니.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마요네즈에 버무린 참치 샐러드를 먹은 이유는 다름이 아닌, 카페 메뉴 중 가장 싸기 때문이었다. 망할 짠순이 병. 메뉴를 선택하는 기준이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닌 오백 원, 천 원 차이 나는 가격이라니. 슬프다. 쪼잔하다. 애석하다. 짠순이의 바람대로 돈은 굳었다. 탈이 나 앞으로 며칠간은 아무것도 먹지 못할 테니.

맥그로드 간지 마을 너머로, 히말라야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맥그로드 간지 마을 너머로, 히말라야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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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그로드 간지 산책길. 맥그로드 간지에는 코라 산책길 말고도 숲과 마을을 따라 걷는 기분 좋은 산책길이 많다.
 맥그로드 간지 산책길. 맥그로드 간지에는 코라 산책길 말고도 숲과 마을을 따라 걷는 기분 좋은 산책길이 많다.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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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이 나기 전 내 인생은 완벽했다. 맥그로드 간지는 기대한 그대로였다. 히말라야 설산이 내려다보는 아담한 티베트 마을. 파이에도 마살라, 감자 칩에도 마살라, 짜이에도 마살라. 절대로 벗어날 수 없었던 인도 마살라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도에 몇 안 되는 도시.

싸고 맛있는 티베트 음식. 선선한 산 윗동네의 공기. 온화한 티베트 사람들. 그리고 동네를 휘젓다 발견한 보석, 히말라야 설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깔끔하고 멋들어진 카페까지. 살 것 같다.

팔자 좋은 개 한마리. 평화로운 맥그로드 간지에서는 개 팔자도 평화롭다.
 팔자 좋은 개 한마리. 평화로운 맥그로드 간지에서는 개 팔자도 평화롭다.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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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고국의 땅을 잃은 티베트

인도를 떠날 때가 됐나 보다. 맥그로드 간지가 좋은 이유가 인도답지 않은 분위기 때문이라니. 이곳은 음식도, 언어도, 문화도 모두 티베트다. 맥그로드 간지 인구 대부분이 티베트인이다. 1949년 중국공산당 정부가 수립된 후, 1950년 중국은 티베트를 시짱(西藏) 자치구로 강제 편입하였다. 이어 1959년, 제14대 달라이 라마 텐진총에 대한 중국의 암살음모가 드러났고,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인들은 고국 땅을 떠난다. 티베트 정부는 인도 정부의 허가를 받고 인도 서북쪽 히말라야의 끝자락, 맥그로드 간지에 망명정부를 세운다.

망명정부가 수립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상황은 여전하다. 1959년 히말라야 설산을 넘어 이곳으로 온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난민들은 몇 십 년째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맥그로드 간지에서 태어난 티베트 청년들은 티베트 국민이지만, 티베트 땅을 단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다.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를 존경해요. 세계적인 지도자로서의 명성이 있잖아요. 달라이 라마의 말에는 힘이 있어요. 아직 티베트의 독립을 불러오진 못했지만.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14대 달라이 라마가 살아 있는 한."

티베트 독립을 돕는 NGO 카페에서 만난 쿤 역시 맥그로드 간지에서 태어난 티베트 난민 2세다. 델리에서 대학을 마치고 돌아와 이곳에서 NGO를 운영하고 있다. 쿤의 형은 미국에서 망명 활동 중이다. 회사 근처에 있던 서울 티베트 식당 주인 민수씨가 생각났다. 한국인과 결혼한 민수씨는 식당을 운영하면서 티베트 독립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고향인 티베트로 돌아갈 수 없는 티베트인들이 인도에서, 미국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티베트 독립을 기원한다.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티베트 독립을 위해 일하는 NGO 카페에서 만난 쿤.
 티베트 독립을 위해 일하는 NGO 카페에서 만난 쿤.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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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진갸총(14대 달라이 라마)은 후계자를 걱정해야 할 만큼 연로해요. 달라이 라마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중국 정부도 이를 알고 있어요. 자기 입맛에 맞는 후계자를 정하려고 하고 있죠. 11대 판첸 라마 때처럼."

티베트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가 정해지는 방식은 라마교 전통을 따른다. 라마교에서는 달라이 라마가 사망하면 그의 영혼이 어린아이로 옮겨져 환생한다고 믿는다. 13대 달라이 라마는 사망 직전, 자신의 환생을 예고하며 '앞에 호수가 있는 하얀색 집' 언급한다.

2년간 예언된 집을 찾아다니던 라마교 지도자들은 티베트 동북부 암도 지방에서 13대 달라이 라마가 언급한 하얀 집을 발견했다. 그 집에 있던 세 살배기 아이 모 톤툽. 자신을 찾아온 지도자들의 이름을 알아맞히고, 13대 달라이 라마가 시종을 부를 때 사용하던 북을 집어들었다고 한다. 그 아이가 지금의 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다.

LONG LIVE HIS HOLINESS DALAI LAMA.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독립 운동의 중심이고 희망이다.
 LONG LIVE HIS HOLINESS DALAI LAMA.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독립 운동의 중심이고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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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의 말처럼 중국 정부에게 달라이 라마는 눈엣가시다. 티베트 문화 말살을 위해 티베트 본토 내 한족(漢族) 거주를 장려하는 중국 정부의 노력이 무산하게, 노벨 평화상까지 받아낸 달라이 라마가 쏟아내는 비폭력 운동과 티베트 전통문화, 라마교 문화의 세계적 입김은 강하다. 달라이 라마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노력으로 사전 승인 없는 환생과 윤회사상을 금지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법까지 제정한 중국 정부다.

14대 달라이 라마가 연로해가는 지금, 중국 정부가 노리는 건 후계자다. 환생을 금지한다던 중국 정부는 말을 바꿔 다음 달라이 라마의 환생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입맛에 맞는 달라이 라마를 티베트 지도자로 임명하려는 의도다.

비슷한 일은 11대 판첸 라마가 임명될 당시에도 있었다. 판첸 라마는 달라이 라마를 뒤잇는 제2의 지도자다. 1989년 제10대 판첸 라마가 세상을 떠나고, 라마교 지도자들은 전통에 따라 환생 판첸 라마를 찾아 헤맨 끝에 게준 초에키 니마를 후계자로 정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게준 초에키 니마와 그의 가족을 연금했고, 대신 기알첸 노르부라는 소년을 판첸 라마 자리에 올렸다. 달라이 라마가 지정한 판첸 라마는 실종되었다.

판첸 라마는 달라이 라마가 입적한 후 후계 달라이 라마가 성장할 때까지 최고 지도자 역할을 하는 자리다. 판첸 라마에 이어 달라이 라마의 후계자 선출까지 중국 정부의 입맛대로 결정된다면, 수십 년간 난항을 겪던 티베트 독립운동의 불씨는 꺼져 버릴지도 모른다.

마을 길목의 포스터. 포스터의 얼굴들은 분신자살을 한 티베트 승려들이다. 티베트 독립을 주장하며, 중국 정부에 대항해 스님들이 분신자살을 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마을 길목의 포스터. 포스터의 얼굴들은 분신자살을 한 티베트 승려들이다. 티베트 독립을 주장하며, 중국 정부에 대항해 스님들이 분신자살을 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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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그리워 돌솥 비빔밥을 먹었지만....

사흘을 앓았다. 식사를 하고 돌아온 더스틴이 바나나 한 송이를 가져다줬다. 사흘 만에 처음 맛보는 음식이다. 바나나를 잘근잘근 씹어 조심히 삼켰다. 바나나 하나 만큼의 미미한 기운이 났다. 혼자 숙소 밖으로 나가 천천히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달라이 라마가 거주하는 주택인 촐라캉을 빙 둘러 난 코라 산책길에는 체구가 조그마한 할머니 세 분이 나란히 서 길을 걷고 있었다. 색색의 줄무늬로 장식된 긴 티베트 치마를 두른 할머니들은 무슨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지 이따금 온화한 미소를 얼굴에 띠었다.

나는 티베트 독립도 아니고 가족의 건강도 아닌, 고작 내 몸 하나의 회복을 기원하며 마니차를 빙빙 돌렸다. 코너를 돌았다. 머리 위로 하얀 설산이 불쑥 나타났다. 사지에 기운이 다 빠진 가운데 눈만 호강이다. 그나마 이 평화로운 마을에서 몸져누운 건 행운인 걸까. 나라를 빼앗겼지만,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작은 땅덩이를 허락받은 건 그나마 다행인 걸까.

맥그로드 간지 산책길. 이렇게 예쁘다.
 맥그로드 간지 산책길. 이렇게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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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하나의 기운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시 몸져눕기 위해 숙소로 돌아가는 길, 한국 식당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주위를 서성였다. 순간 혀 속으로 강한 기억이 맴돌았다. 돌솥 비빔밥의 맛이다. 돌솥 비빔밥이 먹고 싶다. 탈이 난 상태에서 돌솥 비빔밥은 최악의 음식일 테지. 매운 고추장과 기름에 볶은 야채. 달걀과 참기름. 탈 난 속에 도움이 안 될 돌솥 비빔밥 속 재료들을 하나하나 따져보고 있자니 탐욕스런 혀가 비빔밥의 맛을 더욱 구체적으로 떠올려냈다.

사흘이나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이쯤이면 밥 한 끼 먹어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집 밥이잖아. 집 밥… 은 아니고. 어쨌든 고향의 맛. 돌솥 비빔밥이잖아. 집 밥을 먹으면 몸이 좀 나아질 거야.

긴 고민 끝에 대단한 결심을 하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테이블 세 개를 차지한 손님은 모두 한국 사람이었다. 나는 구석에 있는 빈 테이블로 앉았다. 메뉴를 살폈다. 미역국. 미역국이라면 탈 난 배가 감당하기에 훨씬 수월할지도 몰라. 아니야. 이왕이면 제일 먹고 싶은 걸 먹자. 돌솥 비빔밥을 주문했다. 건너편 테이블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국 남자 여섯 명이 앉아 있었다.

"성현이랑 다른 애들 라다크 간대."
"진짜? 나도 갈까…."
"아 그리고 대범이형 있지. 길에서 봤어. 어제 도착했데. 와. 이런 비빔밥 또 언제 먹냐.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자."

밀크 초콜릿색 피부의 마른 인도 웨이터가 밥이 담긴 뜨겁고 묵직한 돌솥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검은 돌솥 한가운데로, 빨간 고추장이 새초롬하게 앉아 있었다. 젓가락으로 빨간 장을 살짝 찍어 입에 대보았다. 괜찮겠지. 자세를 다잡고 밥을 비볐다. 참기름에 버무려진 내용물들이 돌솥의 뜨거운 표면에 닿으며 치, 하고 소리쳤다. 치-. 치-. 고추장과 참기름이 버무려져 맛깔나는 냄새가 났다. 익숙한 한국어가 귀로 흘러들어왔다.

딸려 나온 미역국을 몇 숟갈 뜨고 천천히 밥알을 씹었다. 뱃속의 얇은 막이 춤을 췄다. 두 숟갈. 복부가 부풀어 올랐다. 세 숟갈. 수저에 밥을 모으고 입가로 가져갔다. 맛깔나던 냄새가 역하게 느껴졌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가자. 긴급 상황이다.

남걀 곰파. 이곳에서는 오후가 되면 티베트 스님들이 짝을 이루고 토론을 시작한다. 자기의 의견을 다 말했으면 손뼉을 '짝!'하고 크게 쳐서 상대방에게 알린다. 스님들이 열띤 토론을 보며 손뼉 소리를 듣는 것도 재미다.
 남걀 곰파. 이곳에서는 오후가 되면 티베트 스님들이 짝을 이루고 토론을 시작한다. 자기의 의견을 다 말했으면 손뼉을 '짝!'하고 크게 쳐서 상대방에게 알린다. 스님들이 열띤 토론을 보며 손뼉 소리를 듣는 것도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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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아니 숙소. 더스틴이 있는 숙소로 돌아가 속을 비워냈다. 서러워. 밥도 못 먹고. 몇 달 만에 먹는 비빔밥인데 반도 못 비우고.

침대에 누웠다. 아아 집이 그립다. 아플 때 편히 쉴 수 있는 집. 집. 내 집은 어디지. 부모님 집? 서울? 엄마가 지어준 밥? 익숙한 친구의 목소리?

예쁜 줄무늬 치마를 입은 코라 산책길의 할머니들도 집이 그리울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 세계를 도는 달라이 라마도, 세 살 적 머물던 호수가 있는 하얀 집을 가끔 생각할까. 티베트인이지만 티베트 땅은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쿤에게도, 집은 티베트 땅을 의미할까.

나에게 집은, 여행길에 오르기 위해 남기고 떠나온 모든 것이다. 퇴근할 때 늘 지나던 골목길. 작은 연두색 마을버스가 오르던 가파른 언덕. 더스틴과 걷던 선선한 밤 산책길. 친구들과 자주 가던 밥집. 아빠 목을 빨갛게 달구던 술 냄새. 엄마가 담근 총각김치의 시큼한 맛. 내가 속한 공간과 기억과 익숙함이다. 그리울 때 언제고 돌아갈 수 있는 나의 고향이다.

맥그로드 간지에 머무는 티베트인들에게 집은, 고국의 땅은, '기억'이 되었다. 남겨두고 온 가족도, 익숙한 동네 풍경도, 그립다고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들의 집은 나의 집과 그렇게 다르다. 그 차이를 생각하다, 나는 아주 조금 더 서러워졌다.

마을로 향하는 티베트 아가씨
 마을로 향하는 티베트 아가씨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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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최유진 기자



태그:#다람살라, #맥그로드 간지, #티베트, #달라이라마, #티베트 망명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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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 인도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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