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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모면 중산리 누나네
 상모면 중산리 누나네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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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젊은 나이에 멀리 충청도로 시집간 우리 누나. 늦둥이인 나와는 17살 차이. 지금은 누나 큰아들이 25살이니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그 시절 어머니는 누나를 멀리 충청도까지 시집을 보내면서 앞으로 하나밖에 없는 딸을 자주 볼 수 없음에 많이 슬퍼했다.

어릴 적 단칸방에 옹기종기 모여 살던 우리 가족. 어렴풋한 기억에 누나는 부산 주례에 있던 케미칼 공장에 일하러 다녔다. 비가 오는 날이면 퇴근 시간에 맞춰 우산 들고 마중 나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20대가 된 누나를 시집 보내기 위해 어머니는 선 자리를 알아보셨고, 몇 번의 선 끝에 누나는 멀리 충청도에 살고 있는 매형을 만나 그렇게 시집을 갔다. 어머니는 '왜 하필 그렇게 멀리 사는 사람이 마음에 들었냐'고 아직도 가끔 말씀 하신다.

누나네 집에 가려면 종일 버스 타고 산넘어 굽이굽이 고개를 넘어 가야 했던 옛날과 달리, 고속도로로 3시간만 달리면 갈 수 있는 세상이 됐다. 하지만 그 세월만큼 어머니 머리엔 흰 머리가 생겼고, 누가 차를 태워 모셔다 드리지 않는 이상 혼자서는 오지 못할 거리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어머니의 그런 안타까운 마음을 내 나이 서른을 훌쩍넘겨 죽을 고비를 넘기고 제2의 인생을 살기로 마음 먹은 지금에 와서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마음 속에 얼마나 한으로 남으셨을까. 그 마음을 알기에 2주 전부터 누나와 시간을 맞춰 충청도 올라갈 날만 기다렸다. 지난 12일
그렇게 8년 만에 누나네 집으로 향했다.

직장을 다니는 누나의 휴무가 월, 화요일이라 일요일 퇴근 시간에 맞춰 충청도 누나네 집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집에 있는 매형과 소고기 구워 소주도 한 잔하고 오랜만에 반가운 회포를 풀었다.

누나, 어머니와 함께 오른 산막이 옛길

 산막이옛길 기념비
 산막이옛길 기념비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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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온김에 주변 관광지를 좀 둘러보려고 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날씨가 계속 비였다. 다행히 월요일인 13일 오전 잠시 소강 상태를 보여 부랴부랴 가까운 곳에 나들이라도 가자며 집을 나섰다. 30분가량 차를 달려 도착한 곳. 괴산의 명소인 '산막이 옛길'에 도착했다.

산막이 옛길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책을 나섰다. 바람이 많이 불고 날씨가 쌀쌀해 입구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씩 하면서 걷기로 하고 카페로 들어갔다. 매점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조그만 카페도 함께 운영하고 계셨다. "커피 주세요"라고 이야기하면 바로 내어주시는 커피는 바로 진한 '아메리카노'다.

앉은뱅이약수 나무구멍에서 약수가 흐른다
▲ 앉은뱅이약수 나무구멍에서 약수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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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책로를 걷다가 제일 먼저 만난 곳은 '연리지'다. 연리지는 뿌리가 다른 두 그루의 나무 가지가 한 그루처럼 붙어 있는 것을 말한다. 연리지 나무 앞에는 '백번 오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문구도 쓰여 있다. 난간에는 동그란 나무가 많이 매달려 있었는데 사람들이 손으로 소원을 써서 걸어 놓은 나무였다. 남산에 있는 자물쇠와 비슷한 것으로 보면 될 듯하다.

조금 더 올라가다 보면 '소나무 출렁다리'가 있는데 소나무 사이로 출렁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무서워서 출렁 다리로 가기 싫은 사람들은 일반 산책로를 걸어도 된다. 놀이 기구도 잘 타는지라 별 것 아니라 생각했는데 출렁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스릴 만 점이었다.

연리지 뿌리가 다른 나무의 가지가 하나로 합쳐진 현상의 연리지
▲ 연리지 뿌리가 다른 나무의 가지가 하나로 합쳐진 현상의 연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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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이 옛길의 산책로는 데크 공사가 돼 있어 쉬엄쉬엄 걷기에 좋았다. 좌측으로는 '괴산댐'이 있어 경치를 구경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호랑이굴 앞에 도착하면 어미와 새끼 호랑이 모형이 실감 나게 서 있다. 이 길을 지나면서 어머니는 외할머니께 들은 호랑이 이야기를 해주셨다.

외할머니께선 어린 시절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떡을 팔러 나갔다가 친구들과 돌아오는길에 귀여운 고양이 새끼 몇 마리에 빠져 보듬어 안고 한참을 놀았다고 한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나무 위를 올려다 봤는데 자기 새끼를 예뻐하는 걸 보며 나무 위의 어미 호랑이가 허허 웃고 있었단다. 호랑이를 보고 너무 놀라 신발도 벗어던지고 집으로 도망을 온 외할머니. 다음날 아침 집 앞에는 어제 벗어 놓고 온 신발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중간쯤 올라갔을 무렵 정자 쉼터앞에 앉은뱅이 약수가 있었다. 이 약수는 다른 약수터와 다르게 나무에서 약수가 나온다. 나무에서 물이 나오는 걸 보고 '고로쇠 물'이 생각났다. 공기 좋은 산막이 옛길을 땀 흘리며 걷다 마시는 약수의 맛은 고로쇠 물보다 훨씬 꿀맛이었다.

소나무 출렁다리 소나무동산의 길다란 출렁다리
▲ 소나무 출렁다리 소나무동산의 길다란 출렁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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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동산 산막이옛길 등산로 입구에 있는 진달래 동산
▲ 진달래 동산 산막이옛길 등산로 입구에 있는 진달래 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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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이나루 산막이마을에 있는 유람선 승선장
▲ 산막이나루 산막이마을에 있는 유람선 승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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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풍경 사진에 캐릭터를 합성한 듯 보이는 '진달래동산' 캐릭터. 등산로 입구에 진달래가 만개해 예뻤다. 진달래 나무가 더 촘촘했으면 훨씬 예쁠 것 같지만 듬성 듬성 핀 진달래에서 겨울을 이겨내고 오는 봄의 기운이 느껴지니 이 또한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다음에...' 생각하면 늦다

유람선 괴산댐 유람선에서 본 경치
▲ 유람선 괴산댐 유람선에서 본 경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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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km가량 되는 산책로를 걷는 동안 쉴새 없이 구경할 '거리'가 나와 지겨울 틈 없이 '산막이 마을'에 도착했다. 산막이 마을에는 산막이 나루가 있는데, 산막이 옛길 입구에 있는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면 산막이 나루가 나온다. 걸어 들어와 유람선을 타고 나가는 사람도 있고 유람선을 타고 들어와 산책로를 걸어 나가는 사람도 있다.

천천히 걸어 약 1시간 남짓 산책로를 걸어왔는데 유람선을 타고 괴산댐을 가로질러 나가니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나오는 길에 비가 내리고 바람이 많이 불어 유람선을 타고 나오는 10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산막이 옛길에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괴산댐에 있는 '한반도 지형'을 볼 수 있다. <1박2일>에서 소개된 영월의 한반도 지형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괴산댐 주변은 소나무가 참 예쁘다. 최근 우리나라에 전염병이 돌아 소나무가 멸종 위기라고 하는데 이곳은 아름다운 소나무를 잘 지켜냈다.

산책로 산막이옛길 산책로
▲ 산책로 산막이옛길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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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굴 산막이옛길 산책로에 있는 호랑이굴
▲ 호랑이굴 산막이옛길 산책로에 있는 호랑이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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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이 옛길을 나와 다음으로 간 곳은 괴산장이다. 괴산장은 3일장인데 때마침 장날이었다. 점심도 먹을 겸 괴산장에 구경을 갔는데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괴산시장에 있는 식당을 찾다가 들어간 어느 고깃집에서 먹은 육개장. 5천 원짜리 육개장인데 맛과 양이 훌륭하다. 내가 직장 생활을 할 때 회사 근처에서 이 정도 육개장을 먹으려면 8천 원은 줬어야 할 정도의 양과 질이다. 식당 입구에 보니 3월까지는 '장터 국밥'으로 5천 원보다 더 싸게 팔았다고 한다. 시골 장날 인심이 느껴지는 문구였다.

어머니는 이 육개장이나마 오랜만에 만날 딸과 손주에게 사주고 싶으셨는지 지갑 깊숙한 곳에 넣어둔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셨다. 나는 어머니가 밥을 사겠다는 말씀에 맞장구를 치면서 이왕이면 멋지게 카드로 긁으시라고 했다. 일평생 '신용카드'가 뭔지 모르고 사시던 어머니께 대중교통 편히 이용하시라며 겸사 겸사 만들어 드린 가족 카드. 처음엔 버스 카드로 사용할 때마다 월간 누적 사용 금액이 단말기에 표시되는 걸 보고 카드에 돈이 얼마 안 남았다며 돈 좀 넣어달라고 전화하시던 어머니. 이제는 능숙하게 카운터 앞에서 카드를 내미신다.

괴산장날 충북 괴산시장
▲ 괴산장날 충북 괴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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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개장 괴산시장에 있는 고깃집에서 먹은 육개장
▲ 육개장 괴산시장에 있는 고깃집에서 먹은 육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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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자리가 바뀌어 밤새 2시간도 채 못 주무셨는데 월악산 송계 계곡과 수안보 온천에 핀 벚꽃길 드라이브를 하는 동안 50세가 훌쩍 넘은 딸과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자동차 뒷좌석에서 쉴새 없이 수다를 떠시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여태껏 이토록 많은 한을 안고 사시게 한 내가 자식으로서 얼마나 죄송스러웠는지 모른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갑작스런 독립 선언에 '옛날 사람'인 우리 어머니는 계속 마음이 불편해 어쩔 줄 몰라 하셨다. 이 것 또한 불효겠지만, 이렇게 어머니가 행복해 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닐 거라 생각해 본다. 그리고 꼭 어머니 마음 불편하시지 않도록 떳떳한 홀로서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음에...'라고 미루면 늦다. 그 다음은 평생 돌아오지 않는다. 같은 집에 살아도 얼굴도 잘 못 보고 살던 우리 어머니. 언제 이렇게 늙어버리셨는지. 얼마 만에 환히 웃는 어머니 얼굴을 뵌 건지. 부모님의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자식 얼굴보고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행복이다. 그리고 자식으로서 효도는 그런 부모님의 웃는 얼굴을 뵐 수 있을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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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저서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