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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금리 시대입니다. 한국은행 기준 금리가 1%대로 내려가면서 물가를 감안하면 저축할수록 손해인 시대입니다. 저금리로 혼란을 겪고 있는 금융권 실태를 짚어보고 금융 소비자로서 '저금리 시대'를 사는 법을 함께 고민합니다. '금융계 쓴소리'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가 생각하는 현 정부 가계부채 대책의 문제점과 해법은 무엇일까요? [편집자말]
이동걸 동국대 초빙교수(전 금융연구원장)
 이동걸 동국대 초빙교수(전 금융연구원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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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머리에서 재벌과 부동산, 박정희를 지워야 한다."

'금융계 쓴 소리'가 돌아왔다. 3년 전 "박정희 시대 산업화 논리로 미래를 설계하는 건 국가적 재앙"이라고 '박근혜 시대'를 우려했던 이동걸(62)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가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관련기사: "박정희 프레임으로 미래운용? 국가적 재앙").

참여정부에서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한국금융연구원장을 지낸 이 교수는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금융통'이다. 한동안 대학 강단과 연구실을 벗어나지 않던 그를 속세로 끌어낸 건 잇따른 박근혜 정부의 실정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와 최근 '성완종 리스트'와 같은 사회·정치의 퇴행과 더불어 부동산과 가계 부채 발 '경제 참사'도 우려되고 있다.

이달 초 언론에서 집중 조명했던 '안심전환대출'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7일 서울 장충동 동국대 연구실에서 만난 이 교수는 "안심전환대출은 가계부채 대책도, 정책도 아니다"라면서 "혜택 받은 사람들이야 좋겠지만 다른 시급한 문제를 제쳐놓고 할 만큼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이날도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국회에 출석해 안심전환대출로 가계부채 위험을 줄였다고 자화자찬했다.

"안심전환대출이 만병통치약? 우선순위 뒤바꾼 전시 행정"

"우선순위가 뒤바뀌었다. 안심전환대출에 비용이 안 드는 게 아니다. 금리를 낮춰주면 그만큼 정부든 금융회사든, 주택금융공사든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그 돈으로 시급한 일을 하지 않고 딴 짓 하는 게 문제다. 주택담보대출 460조 원에서 갑자기 34조 원(고정금리로) 바꿔 준다고 가계부채 문제가 해결되겠나.

가계부채 위험의 핵심은 소득이 없는 노년층, 베이비부머 자영업자들, 저소득층 같은 취약 계층이고, 기관 쪽으로는 비은행, 비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이다. 변동금리에 치중된 주택담보대출을 고정금리, 분할상환으로 바꾸자는 취지는 좋지만 중장기적으로 서서히 바꾸면 된다. 은행 주택담보대출은 그래도 안전한 편인데 시급하지 않은 걸 비용 들여 먼저 하는 건 전시 행정일 뿐이다."

안심전환대출은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원금 일시상환 변동금리 대출을 연 2.6%대 원리금분할상환 고정금리 대출로 바꿔주는 상품으로 1차 한도 20조 원이 며칠 만에 소진되고 1, 2차 합쳐 34만5천 명(대출 금액 33조9천억 원)이 신청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정작 제2금융권에서 고금리 대출을 받았거나 원금을 상환할 형편이 안 되는 저소득층 가계에겐 '그림에 떡'이었다.

"안심전환대출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금리가 언젠가 오르면 가계 대출을 고정금리로 바꾼 사람은 안심되겠지만 그 위험을 떠안은 은행이 부실화될 수 있다. 주택담보대출 460조 원을 모두 고정금리로 바꾸고 시중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은행이 한 해에 4조6천억 원씩 더 부담해야 한다. 1%포인트 정도 금리 인하하면 이자 비용이 3600억 원 정도 줄어드는데 그 돈으로 핵심 취약 계층을 도와주는 게 훨씬 효과가 있다. 가계부채 위험성을 해소하는 게 가계 부채 대책인데, 위험은 전혀 건드리지 못했다."

안심전환대출로 은행이 매년 수천억 원씩 손실이 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관치 금융' 논란까지 나오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관치다. 은행에서 금리를 결정하는데 정부에서 그 이하로 낮추라고 하면 부담이다. (안심전환대출처럼 중산층 대출금리를 낮춰 은행 이익을 줄일 게 아니라) 은행이 돈을 벌게 하고 번 돈을 부실 처리에 쓰도록 정부가 '푸시'하는 것이다. (부실 처리에 돈을 많이 써) 은행이 적자 상태가 되면 그때 가서 정부가 부실을 조정해주면 된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거꾸로 은행 수익은 가만 놔두고 부실 가계부채 부담만 덜어줘 은행만 더 좋게 만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공약인 '국민행복기금'이 '은행행복기금'인 거다."

- 목표 계층을 잘못 겨냥한 것인가.
"안심전환대출 목표가 빚 갚을 능력 있는 사람을 분할상환 고정금리로 전환하는 것이었다면 금리 혜택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하다. 은행감독규정을 바꿔 은행 건전성을 평가할 때 한쪽(일시상환이나 변동금리)에 너무 쏠리면 감점 준다고 하면 은행들이 만기된 주택담보대출 재연장할 때 알아서 (분할상환이나 고정금리) 전환할 거다. 갚을 능력 있는 사람에게 비용까지 들여가며 2%대 저금리 혜택을 줄 게 아니라 더 어려운 사람에게 혜택을 줘야 했다. 목적이 잘못된 게 아니라 우선순위와 방법이 잘못됐다."

"창조금융 180조 원은 '사기'... 재벌에게 창조경제 맡기기?"

"재벌을 머리에서 지워야 한다. 작은 기업이 재벌과 싸울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게 창조경제인데, 대기업 중심 구조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크라고 하면 되겠나. 접근 방법이 벌써 1970년대식이다."
 "재벌을 머리에서 지워야 한다. 작은 기업이 재벌과 싸울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게 창조경제인데, 대기업 중심 구조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크라고 하면 되겠나. 접근 방법이 벌써 1970년대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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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는 자연스럽게 박근혜 정부를 상징하는 '창조경제'로 옮겨갔다. 미래창조과학부와 금융위 등은 지난 1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올해 정책자금 180조 원을 창조경제 지원에 쓰겠다고 발표했다. 이동걸 교수는 이 같은 '창조금융'도 안심전환대출 못지않은 전시 행정으로 꼽았다.

"창조금융으로 180조 원을 지원한다는 건 사기다. 산업은행이 63조 원, 기업은행이 56조 원, 신용보증기금(신보)이 41조 원, 기술보증기금(기보)이 19조 원 공급한다는데 전체 정책금융 규모가 그 정도다. 이걸 모두 회수해서 창조금융으로 돌리면 기존 정책금융 대출받은 중소기업들은 다 망하란 얘기냐. 전에 하던 것을 '창조경제'로 딱지만 바꾸겠다는, 명백한 거짓말이다. 딱지만 바꿨으니까 그쪽(창조기업)으로 갈 돈 없다. 기술 평가든 해서 돈이 가야하는데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정책금융 액수를 창조금융으로 돌린다는 건 안하겠다는 얘기다."

올해 전국 17개 시·도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면서 주도권을 삼성, 현대차 등 대기업에 넘긴 것도 1970년대식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지역별로 사단 병력 주둔시키듯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재벌들에게 맡기면 재벌들이 키워줄까? 안 키워준다. 삼성이 주도하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거나 맛있는 건 빼앗아 먹겠지만 자신들에게 도움 안 되는 중소기업을 키워줄 의사도, 능력도 없다. 결국 삼성 혁신센터는 삼성 지원부대가 될 것이고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만 더 고착화시키게 된다.

박 대통령도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한 번도 안 가본 길'을 간다면서 옛날 지도를 꺼내놓고 옛날 패러다임대로 가고 있다. 재벌을 머리에서 지워야 한다. 작은 기업이 재벌과 싸울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게 창조경제인데, 대기업 중심 구조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크라고 하면 되겠나. 접근 방법이 벌써 1970년대식이다."

이 교수는 지난 2월 자신의 블로그에서 박근혜 경제의 허구성을 지적하면서 재벌, 부동산, 박정희 등 세 가지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문했다(관련 글: 박근혜 경제의 허구성 5편-허구의 탈을 벗기고 새판을 짜자). 높은 전세가와 저금리 기조를 앞세워 '빚내서 집사기'를 부추기는 정부의 '부동산 경기 부양' 역시 박정희 시대와 다르지 않다.

"지금 집 사면 망한다는 선대인(선대인경제연구소장)씨 주장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5~10년을 내다봤을 때 인구 구조 변화 등으로 부동산 가격이 서서히 떨어지는 추세라고 본다면 지금 가격을 올리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 떨어질 때 그만큼 더 아프다. 장기 추세나 주거 문제에 대한 판단 없이 부동산이 부양돼야 경기가 부양된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빚내서 집을 샀는데 다시 가격이 떨어지면 늘어난 가계 부채가 그대로 부실화된다. 이럴 때 대통령이 '부동산 경기 부양'이 선결 과제라니, 경제를 알고 하는 얘긴지, 너무 가볍다."

이 교수는 '금융 전문가'지만 금융 정책만으로는 부동산이나 가계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부동산 문제는 금융만 아니라 임대주택 등 안정적인 주거 공급이 같이 접근해야 한다. 가계부채도 비금융이 같이 움직여야 한다. 금융에서는 시급한 핵심 위험계층부터 금리 부담을 낮춰주고 구조 조정해서 일부 탕감해주고 워크아웃해주고 자금이 필요한 사람하게 원활하게 순환되도록 해야 한다. 가계 부채를 진 사람들의 원리금 지급 부담을 낮춰주면서 소득을 높여 갚을 능력도 높여주고, 싸고 안전한 장기임대주택 공급까지 3박자가 맞아야 가계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금융만으로 안 된다."

문제는 정부도 이 같은 해법을 뻔히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위험을 들어 DTI(총부채상환율)나 LTV(담보인정비율) 완화 등에 부정적이었지만 지금은 정부의 부동산 경기 부양 정책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작은 놈 잘 돼야 창조경제... '큰 놈' 재벌 개혁해야"

"이 정부의 가장 큰 문제가 원칙과 신뢰가 없다는 거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서 약속한 대로 복지를 늘리고 경제민주화, 반값등록금 진솔하게 했으면 사회가 변했을 텐데 재벌 '갑질'은 더 심해지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는 더 커졌다. 당선하려는 집념에 여기저기서 끌어다 붙이기만 한 거다. 창조경제,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과거에 집착한 70년대 방식이다.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큰 놈이 작은 놈 억압 못하게 하는 것이고 작은 놈이 잘돼야 창조경제도 되는 것이다. 그런 약속도 제대로 안 지키면서 재벌 3세들 편법 상속은 놔두니 되는 일이 없는 거다."

결국 이야기는 다시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로 돌아왔다. 이 교수는 정책의 초점을 청년과 미래세대, 서민·중산층, 중소기업에 맞추라고 주문하면서도 현 정부에는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었다. 새로운 대기업이 등장해 기존 대기업들을 계속 밀어내는 미국 시장처럼 재벌 중심 구조의 '판'을 바꿀 만한 경제 충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현 정부에선 기대하기 어려운가.
"다음 정부도 힘들 거다. (위기가) 한 번 더 터져야지."

- 충격이 더 필요하다는 것인가?
"경제 민주화, 재벌 개혁으로 벤처기업이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커가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경제 구조가 바뀌면서 새로운 소득이 창출되고 일자리도 생긴다. 내가 주장한 경제 민주화도 그런 맥락이다. 똑같은 말로 백 년을 뛸 수 없으니 말을 자꾸 바꿔야 한다."
○ 편집ㅣ이준호 기자



태그:#이동걸, #저금리시대, #가계부채, #창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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