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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비치에서 지하강으로 가는 방카를 탄다.
 사방비치에서 지하강으로 가는 방카를 탄다.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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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을 때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활기 넘치는 청춘남녀들을 바라보며. 젊은 여행자들과 방카(필리핀 전통 나무 배)를 같이 타고 있었다. 20대로 보이는 헝가리인 4명과 더 앳돼 보이는 필리핀 커플, 그렇게 6명의 젊은이들과 동행 중이었다.   

사방(Sabang)비치에서 방카를 타고 '지하강(Underground river)'으로 가는 바닷길. 방카는 넘실넘실 푸른 물결을 가르며 북쪽으로 달렸다. 푸르른 바다, 푸르른 청춘. 코가 비뚤어졌든 입이 비뚤어졌든 얼굴이 희든 검든, 내 눈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워만 보이는 청춘들이었다.

내게도 '좋은 때'가 있었다는 걸,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공기 빠진 풍선처럼 처져버린 가슴과 뱃살, 구겨진 셀로판지처럼 자글자글 얼굴에 패인 주름살, 하루하루 다르게 '딸리는' 기력과 기억력, 슬금슬금 마모돼가는 몸의 기능들, 갱년기 들어 주저앉아버린 리비도까지.

늙었다는 걸, 절실히 실감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꽃다웠던 시절, 내가 얼마나 빛나고 예뻤는지. 그런데 '일 년으로 치면 봄이요, 하루로 치면 아침'이라는 젊은 시절을 아파하느라 시간을 많이 썼다. 아파하고 절망하느라 숱한 시간 동안 지금보다 더 시들시들했으니, 어리석었다.

지하강으로 가는 바닷길은 짧았다. 15분쯤 지나 백사장이 펼쳐진 해변에 닿았다. 방카에서 내려 데크 길을 따라 정글 속으로 들어갔다. 원숭이와 도마뱀들이 기어 다니는 숲이었다. 얼마 안 가 선착장이 나왔다. 구명조끼와 헬멧을 쓰고 노를 젓는 작은 보트에 올랐다. 헝가리 젊은이들과 필리핀 커플이 둘씩 짝을 지어 앉았다. 나는 맨 뒷자리에 혼자 앉았다.

불쑥, 스위스 청년 사무엘이 그리워지는 거였다. 혼자 멀뚱히 앉아 있자니 그랬다. 며칠 우연찮게 동행했던 사무엘은 어제 스위스로 떠났다. 사방비치에서 하룻밤 한 방에서 나랑 같이 자고(관련기사 : "한국남자랑은 절대 한 방에 들어가지 마").

사무엘과 헤어진 날, '이별의 고통' 같은 쓸쓸함이...

지하강 입구 모습
 지하강 입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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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강 입구를 향해 가는 보트들.
 지하강 입구를 향해 가는 보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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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내가 잠자리에서 눈을 떴을 때, 사무엘이 막 샤워를 끝내고 욕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몇 시냐고 물으니, 6시라고 그가 대답했다. 세상에나! 지난 밤 나는 9시쯤 잠자리에 누웠는데…. 곧바로 잠들어 죽은 듯이 9시간이나 잔 거였다. 오랜만에 여행길에서 청춘을 꿈꾸게 해준, 멋진 청년을 옆에 두고. 깊고 긴 단잠에 푹 빠졌었다니.

나중에 무용담을 늘어놓듯 너스레를 떨며 이 에피소드를 친구들에게 들려줘야겠다. "미친 거 아냐? 불발로 끝난 로맨스가 아쉬웠냐?"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으며 핀잔을 듣더라도. "그 밤, 우리는 나이도 국경도 초월할 수 있었어. 문제는 모기장이었어. 애석하게도 우리는 모기장만은 넘을 수 없었어"라고.

모기장을 들추고 침대에서 나왔다. 반대로 사무엘은 모기장 안으로 들어가 자기 침대 위에 도로 누웠다.     

"강, 잘 잤어요? 나는 밤새 배 아파 화장실 들랑거리느라 제대로 못 잤어요. 저녁을 잘못 먹은 건지…."
"그랬어? 저런, 난 그것도 모르고…. 지금은 괜찮아?"
"네. 이제 괜찮아요. 아, 덥네요! 샤워를 방금 했는데도…."

사방은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만 전기가 들어오는 곳이었다. 밤새 선풍기는 멈춰 있었다. 더운 방에서 나가 우리는 아침식사를 같이 하고, 곧바로 작별인사를 나눴다. 가볍게, '안녕!'

사무엘은 잠을 좀 더 자고 쉬다가 3시간 후에 사방비치를 떠날 계획이었다. 나는 혼자 트라이시클(삼륜 오토바이)를 타고 30여 분 달려 '우공락'이라는 바위산에 갔다. 야트막한 석회암 바위산을 타고 올라가 짚라인을 탔다. 바위산 등반도 짚라인도 내겐 좀 시시했다. 정상에서 내려다 본 전원 풍경이 그나마 볼 만했다.

숙소로 돌아와 사무엘과 같이 지냈던 방을 뺐다. 더 작고 싼 방으로 짐을 옮겼다. 그리곤 오후 산책을 나갔다. 그런데 생각지 못했던, '이별의 고통' 같은 쓸쓸함이 갑자기 밀려오는 거였다. 나흘 동안이나 여행을 같이 했던 동행이 떠났으니, 그럴 만도 한 건가? 

야시시한 커튼이 살랑거리는 해변의 마사지 숍들이 쓸쓸해 보였다. 잔잔한 바다와 모래밭 위로 쏟아지는 햇살마저 처량해 보였다. 진주로 만든 액세서리를 호객하며 돌아다니는 필리핀 청년의 눈빛도 슬퍼 보였다. 타투 가게에서 금발머리 아가씨의 팔뚝에 새겨지는 돌고래도 외로워 보였다.

"욕망이나 유혹을 다스려야 한다... 네 마음의 주인은 너다"

바닷가 소녀들
 바닷가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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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완에서 딱 한번 본 절의 내부 모습
 팔라완에서 딱 한번 본 절의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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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이 북적대는 비치를 떠나 남쪽해안으로 더 걸었다. 상가를 벗어나자 울퉁불퉁 바닷가 돌길이었다. 인적이 드문 길이었다. 물고기를 잡거나 소꿉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구경하며 천천히 걸었다. 작은 절이 나타났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팔라완 여행 중에 교회는 숱하게 봤다. 절은 처음이었다. 안에 들어가 부처상들을 기웃거리고, 절 주변 목판에 새겨진 법어 같은 글귀들을 읽었다.

"욕망이나 유혹을 다스려야 한다. 네 마음의 주인은 너다. …사람은 태어날 때도 혼자, 죽을 때도 혼자다."

특별한 감흥은 일지 않았다. 그렇다. 마음이 뜨거울 땐 뜨겁게, 차가울 땐 차갑게 그냥 놔둬도 나쁘지 않을 때가 있잖은가. 기쁠 때 실컷 기쁘고, 슬플 때 실컷 슬프고, 지금은 혼자 실컷 쓸쓸할 때다.

작은 폭포수가 떨어지는 해안까지 갔다가 돌아섰다. 오는 길에, 어린 소녀 라라를 만났다. 아이의 집으로 따라 들어갔다. 라라의 젊은 엄마는 낯선 이방인에게 뜨거운 커피를 대접했다. 커피를 달게 받아 마시고, 라라와 '쏭카'라는 필리핀 전통놀이를 했다. 찰랑찰랑 부딪치는 조개껍질의 맑은 소리와 라라의 예쁜 미소 때문이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쏭카'놀이를 같이 했던 소녀 라라.
 '쏭카'놀이를 같이 했던 소녀 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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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오늘 아침, 맑게 갠 하늘처럼 기분이 다시 말짱해져 지하강으로 오는 방카를 탄 거였다. 왁자지껄 활기찬 젊은 여행자들과 함께. 드디어 우리가 탄 보트가 지하강의 입구를 향해 움직였다. 지하강은 세계 7대 자연경관 중에 하나로 뽑혀,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길이는 약 8.2km, 2000만 년 전에 생긴 석회암 동굴이었다. 세인트폴(1028m)산의 지하로 물이 흐르면서 만들어진 용식 동굴. 물길이 바다와 맞닿아 있다는데, 관광객이 보트를 타고 투어를 할 수 있는 구간은 약 1.5km 정도라고 했다.  

마침내 동굴 입구로 들어섰다. 가이드의 랜턴 불빛이 원시의 암흑세상을 비추었다. 랜턴 불빛이 가리키는 곳을 보기 위해, 바쁘게 고개를 위아래 좌우로 돌려야 했다. 천장에 붙어있는 박쥐의 배설물이나 석회암 물방울이 얼굴에 떨어질 수 있으니 조심하며.

짙은 회색빛 대리석 틈으로 흘러내린 기묘한 형상의 종유석과 석순들, 거꾸로 매달려 있는 수천 마리 박쥐들…. 그러나 비경은 대부분 어둠 속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강은 제법 규모가 컸다. 사자바위, 거북바위, 낙타바위… 가이드의 설명은 그리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가다 동굴 탐험에서 살아나온 나, 동굴 밖에서 맞아 죽을 뻔

사가다 동굴 탐험. 로프에 몸을 묶고 수직하강.
 사가다 동굴 탐험. 로프에 몸을 묶고 수직하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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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다 동굴 탐험. 가이드들의 도움을 받으며 곡예를 하듯 오르는 절벽.
 사가다 동굴 탐험. 가이드들의 도움을 받으며 곡예를 하듯 오르는 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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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 길고 깊은 지하세계의 신비함과 거대한 풍광을 상상했다. 그러나 자연의 신비는 늘 나의 상상력을 뛰어넘으니… 이 팔라완 배낭여행을 시작하기 석 달 전에 '탐험'한 '사가다 동굴'을 떠올렸다.

사가다는 마닐라에서 300여㎞ 북쪽에 있는 필리핀의 산간지역이었다. 처음엔 나도 관광객들이 들어가는 '수마깅 동굴'을 4시간 동안 가이드랑 단독 트레킹 했다. 원시상태로 보존되어 있는 그 석회암 동굴은 나를 단번에 매료시켰다. 그 후 나는 감언이설로 젊은 친구들 4명을 꼬셔서 팀을 꾸렸다. 그들을 데리고 사가다로 다시 갔다. 

'크리스털 동굴'을 트레킹하기 위해서였다. 너무 험난하고 위험한 코스라 단독 투어는 불가능하고, 들어가는 팀도 1년에 서너 팀밖에 없다는 동굴이었다. 안전장치는커녕 특수 장비 하나 없이, 오로지 4명의 가이드들이 들고 들어간 랜턴 불빛과 로프, 가이드들의 도움에만 의지해 전진했다. 그 모험을 떠올리기만 해도, '오줌을 지릴' 것처럼 지금도 온몸이 짜릿짜릿해진다.

6시간여 동안 사투를 벌인 암흑의 지하세계. 발 놓을 자리 하나 없는 깎아지른 절벽을 타고 오르고 내리고, 로프에 매달려 수직하강, 물길, 진흙길, 몸 하나 빠듯이 들어가는 좁은 바위 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도록 스릴 넘치는 모험이었다. 또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하고 장엄한 석회암 동굴이었다. 자연 원시상태 그대로 보존된 동굴. 팔라완 배낭여행을 하며 처음으로 스쿠버 다이빙을 배워 들어가 본 바다세계만큼, 그 지하 동굴 또한 내겐 너무나 매혹적인 세계였다.

사가다 동굴 탐험. 지하세계의 아름다운 물길.
 사가다 동굴 탐험. 지하세계의 아름다운 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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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다 동굴 체험. 내 감언이설에 속아 지하세계 여행에 동행했던 젊은 친구들.
 사가다 동굴 체험. 내 감언이설에 속아 지하세계 여행에 동행했던 젊은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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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때 초주검 상태가 되어 동굴을 '탈출'한 4명의 이삼십 대 젊은이들은 나랑 다시는 여행을 같이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동굴에서 살아나온 나는 동굴 밖에서 그들에게 맞아 죽을 뻔했다.

보트에 가만히 앉아 지하강의 풍광을 감상하고 있자니, 사가다 동굴 탐험이 그렇게 자꾸 떠올랐다. 그때처럼 동굴 속에서 걷고 헤엄치고 매달리고 오르고 싶어, 몸이 들썩였다.

그러니 지하강은 내겐 조금 무료한 '관광'이었다. 아무튼 얼마나 들어갔나. 천장이 까마득하게 높은 수직동굴을 조금 지나 보트는 입구를 향해 돌아섰다. 1시간여의 지하강 투어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방카를 타고 사방비치로 돌아오는 바닷길에 굵은 비가 뿌렸다. 풍랑이 조금 높게 일었다. 방카가 흔들릴 때마다 헝가리 아가씨들이 소리를 질렀다. 비바람 속에서 지하강이 천천히 멀어져가고 있었다.

사가다 동굴체험.
 사가다 동굴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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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같은 목소리의 아버지와 함께 떠난 7년 전 동굴 여행

기억에 남는 동굴여행이 하나 더 떠올랐다. 7년 전, 부모님과 함께 떠난 동굴여행이었다. 당시, 연세 일흔일곱이셨던 아버지가 계획하고 준비한 여행이었다. 아버지는 조수석에 아내를, 뒷자리에 큰딸을 태우고 5일 동안 운전을 했다. 강원도와 충청북도에 있는 석회암동굴을 찾아 다니셨다.        

환선굴, 대금굴, 고씨동굴, 용연동굴, 화암동굴, 고수동굴…. 물론 안전을 고려해 전기나 계단, 다리 같은 설치물들이 친절하게 부설돼 있는 동굴들이었다. 그래도 눈이 휘둥그레지게 동굴은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부모님과 같이 다니는 그 여행이 즐거웠다. 

아버지는 여행을 좋아하셨다. 젊어서는 바빴고, 환갑 지나고부터였나. 국내명소는 물론이고, 수십 개 나라를 여행하셨다. 엄마를 꼭 데리고. 문제는 아버지가 '짠돌이'라는 거였다. 외국여행은 하고 싶고 돈은 아깝고. 아버지는 머리를 썼다. 해마다 몇 차례 지인들을 모아 여행사의 패키지여행을 주선한 것이다.

동행들에겐 비밀로 부치고, 주선자인 아버지와 더불어 엄마까지 공짜여행을 하신 거다. 자식들이 경비를 대주겠다고 해도, 니 돈이든 내 돈이든 아깝다며 마다했으니. 엄마는 한 번도 여행지에서 선물이나 기념품을 사보지 못했다.    

나랑 동굴여행을 한 그때도, 아버지는 4천 원짜리 백반에 2만 원짜리 여관만 고집하셨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잔머리를 굴렸다. 부모님에겐 차에서 기다리라 하고, 매일 저녁 도착한 여행지에서 여관을 찾아다니는 게 일이었다.

나는 세 명이 쉴 만한 넓고 좋은 방을 골랐다. 주인과 입을 맞췄다. 아버지에겐 2만 원이라 말하고 2만 원을 받으시라, 일렀다. 몇 만 원 더 비싼 숙박비는 내 돈으로 그때 미리 계산했다. 아버지는 "아, 이 방도 좋다! 봐라, 싸고 깨끗하고 넓은 방, 찾으면 있잖니? 아무튼 네가 수고가 많다!"라며, 여행 내내 홀딱 속아 넘어가셨다.

3년 전까지만 해도 거뜬히 장거리운전을 할 정도로 정신도 몸도 정정하시던 아버지가… 여든셋인 지금은 장거리 운전은 뛰지 못한다. 여행도 등산도 끊었다. 어떤 지병이나 노인병을 앓으시는 것도 아닌데. 이젠 엄마가 가꾸는 텃밭 일을 살살 거들거나 텔레비전 보는 것으로 소일하신다.

"은경아, 여행 가자!"

지금도 자주 청년 같은 목소리로 말하시지만, 나서지는 못한다. 아버지가 그렇게 늙을 동안, 나도 늙었다.

나는 아직 젊은 걸까? 이 시간마저 흘려 보내고 싶지 않다
지하강 입구에 들어서면...
 지하강 입구에 들어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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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 랍비이자 시인인 '사무엘 울만'의 '청춘'에 대한 말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틀렸다.

'청춘이란 마음의 젊음이다. 신념과 희망에 넘치고 용기에 넘쳐 나날을 새롭게 활동하는 한 청춘은 영원히 그대의 것이리다.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용기, 모험심, 이상이 가슴에서 아무리 부글부글 끓어오른들, 마음이 아무리 이팔청춘인들, 체력과 정신력이 따라주지 않는데 무슨 '청춘'이겠나? 그의 말은 '진짜 청춘'들에게 청춘처럼 살라고 던지는 말이거나, '늙은이'들을 애써 위로하는 공허한 말들이다. 

그런데 늙어가면서도 유쾌한 기분과 활기를 유지할 수 있나? 결국, '마음이 젊으니 나는 아직 청춘이다' 같은 말을 붙들어야 하나? '자기 최면' 효과는 어느 정도 볼 수 있을 테니. 나는 어제보다 약해진 근력이라도 그만 뚤뚤거리고 알뜰히 쓸밖에. 아버지가 오늘 텃밭에 물을 주며 웃으시듯. 

어쨌든 나는 용기고 열정이고 희망이고를 다 제치고, 앙드레 지드의 말처럼 '나의 말은 노래이고 나의 걸음걸이는 춤추고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그러니 나는 아직 젊은 걸까? 아파하며 이 시간마저 흘려 보내고 싶지 않다.

춤추듯 가벼운 걸음걸이로 숙소로 돌아왔다. 곧장 프에르토 프린세사로 떠나려고 짐을 꾸렸다. 작은 가방에서 초콜릿 상자가 나왔다. 모양이 제각각인 손톱만 한 초콜릿 다섯 개. 냉장고 마그네틱이었다. 진짜 초콜릿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입에 쏙 넣으면 달콤하게 녹아내릴 것 같았다.

스위스에서 가져온 거라며, 사무엘이 어제 떠날 때 주고 간 거였다. 울컥, 또 그 아름다운 청년이 그립다.

○ 편집|최규화 기자


태그:#팔라완, #지하강, #필리핀, #사가다 동굴, #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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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으로 귀촌하였습니다. 2017년도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출간. 유튜브 <은경씨 놀다>. 네이버블로그 '강누나의깡여행'. 2019년부터 '강가한옥펜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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