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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역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김태원(金泰源, 1900~1951)의 주요 독립운동 행적이 이름이 같은 다른 사람의 것으로 사실상 확인됐다.

<오마이뉴스>는 한국 임시정부 수립 96주년인 13일 국가보훈처가 '대전 김태원'에게 이름만 같은 다른 지역 독립운동가의 행적으로 서훈을 수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었다(관련기사 : '훈장'까지 받은 독립운동가, 행적이 의심스럽다).

국가보훈처는 1963년 '평북 출신 김태원'(金泰源)의 공적을 근거로 '대전 출신 김태원'에게 건국공로훈장 독립장(3등급)을 수여했다. '평북 김태원'과 '대전 김태원'을 동일인으로 본 것이다.

이에 대해 <오마이뉴스>는 동일인이 아닌 서로 다른 사람이며 '평북 김태원'(金泰源, 1902~1926)의 독립운동 행적이 '대전 김태원'으로 둔갑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오마이뉴스>는 이를 확인하려고 관련 자료를 찾던 중 '김해 김씨 법흥파' 족보에서 '평북 김태원'의 존재와 독립운동 행적을 확인했다. 실제 김해 김씨 법흥파 시조인 김춘(金春)의 묘소 또한 평북(룡천군 동상면)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훈을 받은 '대전 김태원'은 '경주 김씨'다.

'김해 김씨 법흥파' 족보 "... 체포당해 평양감옥에서 사형됨"

 1985년 발행한 '김해 김 씨 법흥파' 족보에 수록된 '평북 김태원'에 대한 기록. '독립자금 조달 차 국내에 잠입해 활동 중 체포당해 평양감옥서 사형됨'으로 기록돼 있다.
 1985년 발행한 '김해 김 씨 법흥파' 족보에 수록된 '평북 김태원'에 대한 기록. '독립자금 조달 차 국내에 잠입해 활동 중 체포당해 평양감옥서 사형됨'으로 기록돼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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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형집행 전 탈출했다는 '대전 김태원'과 달리 '평북 김태원'은 사형이 집행됐다고 보도하고 있다. 사진은 <중외일보> 1926년 12월31일 자 보도. 앞서 1926년 12월 30일자 <조선일보>도 '김태원'의 사형집행 소식을 전하고 있다.
 '평북출신 김태원'이 평양형무소 사형 집행 소식을 전하고 있는 <중외일보> 1926년 12월31일 자 보도. 앞서 1926년 12월 30일자 <조선일보>도 '김태원'의 사형집행 소식을 전하고 있다. 족보의 기록(평양감옥에서 사형됨)과 일치한다. 김해 김 씨 법흥파 시조인 김춘(金春)의 묘소또한 평북(룡천군 동상면)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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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김씨 법흥파' 족보에는 1926년 신문 기사에 등장하는 한자 이름 '金泰源'(김태원)과 달리 '金泰元'(김태원)으로 돼 있다. 이는 실명과 족명을 다르게 사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985년 발행한 족보의 '독립운동가' 편에는 김태원이 '독립자금 조달차 국내에 잠입해 활동 중 체포당해 평양 감옥서 사형됨'으로 기록돼 있다. 평양 감옥에서 사형(1926년, 12월) 됐다는 '평북 김태원'의 행적과 일치한다. 2000년 발행한 족보에는 '독립자금 조달차 국내에 잠입해 활동 중 체포당해 평양감옥서 사형되었다고 하나 (사형 일시 등) 증명할 만한 자료를 찾지 못했다'고 썼다.

그가 사망한 지 89년 만에 '독립운동가 김태원, 1902~1926, 평북 의주군 의주면 서부동 출생'으로 복원된 셈이다. 그의 모친도 1926년 당시 <조선일보>와 <중외일보>가 보도한 것과 같이 '장씨'로 확인됐다. 당시 <조선일보>와 <중외일보>는 '평북 김태원'의 사형집행 소식과 함께 그의 친모를 인터뷰하면서 '장씨'라고 보도했다.

2000년 발행한 족보에는 '평북 김태원'의 모친이 1881년생 '인동 장씨'(이름은 나와 있지 않음)라고 기록돼 있다. 부친은 김대건(金大鍵, 1885년생)이다. 서훈을 받은 '대전 김태원'의 모친은 '남씨'다.

'평북 김태원'은 장남으로 결혼한 누나와 두 남동생이 있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두 남동생의 경우 각각 한 명의 여식을 둔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김태원의 자녀에 대한 기록은 족보에도 남아 있지 않다. 

이에 따라 실존인물인 '평북 김태원'이 '대전 김태원'과 같은 사람으로 둔갑한 배경에 의문이 쏠리고 있다. 가능성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국가보훈처가 자료 확인을 소홀히 해 생긴 오류일 수 있다. '대전 김태원'에게 서훈을 준 1963년은 독립운동가를 선정, 포상하던 초창기로 관련 업무 처리가 서툴렀을 수 있다.  

'평북 김태원' 족보 기록 '삭제'되고 소실되고... 누가, 왜?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1984년 발행본 족보(김해김씨법흥파족보편찬위원회 발행)에서 '평북 김태원'의 독립운동 기록이 삭제돼 있다. 수정액을 이용해 기록전문('독립자금 조달 차 국내에 잠입해 활동 중 체포당해 평양감옥서 사형됨')을 알아 볼 수 없게 덧칠해 지운 흔적이 역력하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1984년 발행본 족보(김해김씨법흥파족보편찬위원회 발행)에서 '평북 김태원'의 독립운동 기록이 삭제돼 있다. 수정액을 이용해 기록전문('독립자금 조달 차 국내에 잠입해 활동 중 체포당해 평양감옥서 사형됨')을 알아 볼 수 없게 덧칠해 지운 흔적이 역력하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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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누군가 의도를 갖고 사건 조작에 개입했을 가능성이다. 1926년 당시 주요 여러 신문에 '평북 김태원'이 사형을 선고받았다는 기사와 사형집행 예고기사, 사형이 집행됐다는 소식까지 수차례 보도됐다. 그런데도 사형집행을 앞두고 천우신조로 '탈옥'한 것으로 해 또 다른 '대전 김태원'에게 서훈을 수여했다. 두 번째 가능성에 무게를 두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오마이뉴스>는 '평북 김태원'의 족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의심스러운 부분을 발견했다. 누군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1984년 발행본 족보(김해김씨법흥파족보편찬위원회 발행)에 기록된 '평북 김태원'의 독립운동 행적을 삭제한 것이다.

수정액을 이용해 기록전문('독립자금 조달차 국내에 잠입해 활동 중 체포당해 평양감옥서 사형됨')을 알아볼 수 없게 덧칠해 지운 흔적이 역력하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도록 손을 댄 것으로 보인다. 지워진 기록을 복원한 족보는 1년 뒤인 1985년 재발행한 것이다.

의아한 일은 또 있었다. 앞서 오래전 김해김씨법흥파 문중에서 모두 6권으로 발행한 족보 중 2권이 소실됐다는 것이다. 문중 관계자는 "족보 6권 중 '독립운동가 김태원 선생'의 기록이 포함된 2권이 소실됐다"며 "이 때문에 1984년 소실된 2권의 내용을 재발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누가, 언제, 어떤 이유로 '평북 김태원'의 독립운동 기록을 족보에서 삭제했는지에 의문이 쏠리고 있다.

○ 편집|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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