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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흘리는 성완종 "나는 MB맨 아니라 MB정부 피해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원외교 비리 관련 의혹에 대해 부인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성 회장은 이명박 정부시절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MB(이명박) 정부의 피해자가 어떻게 MB맨이 되겠냐"며 "일부 언론 보도와 달리 나는 MB맨이 아니다"고 말했다.
▲ 눈물 흘리는 성완종 "나는 MB맨 아니라 MB정부 피해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원외교 비리 관련 의혹에 대해 부인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성 회장은 이명박 정부시절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MB(이명박) 정부의 피해자가 어떻게 MB맨이 되겠냐"며 "일부 언론 보도와 달리 나는 MB맨이 아니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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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억울함을 눈물로써 호소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자수성가한 정치형 기업인이며, 말 그대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1951년 충남 서산에서 창녕 성씨 종갓집 4형제의 맏이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그와 동생들을 남겨두고 돈을 벌어 다시 오겠다며 서울로 떠났고, 어느 날 우연히 외할머니 댁을 찾아 갔다가 어머니의 거처를 알게 돼 외삼촌이 차비하라며 챙겨준 110원을 들고 홍성에서 영등포행 완행 열차를 타고 무작정 상경했다. 그 때 그의 나이 13세. 초등학교 졸업도 하지 못한 때였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그는 누구인가

영등포역에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까지 찾아가게 되고, 가정부 일을 하던 어머니와 재회했다. 그리고 그는 '우리 식구가 같이 살 집을 구할 때까지 내려가지 않겠다. 하늘 아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지만, 드넓은 서울에서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굳은 결심을 한다.

이후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신문을 돌렸고, 약국에서 약 배달을 했다. 틈틈이 폐지도 모아 팔았고, 녹초가 된 몸으로 야간에는 학교를 다녔다. 그렇게 6년을 앞만 보고 달린 그는 고향에 작은 집과 논 세 마지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22세가 되던 해 어머니와 함께 고향으로 내려왔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단돈 1000원으로 화물 영업소를 차려 사업을 시작했다. 화물차 1대로 영업을 하던 그는 불의의 교통 사고를 당해 사업을 접게 된다. 그리고는 1977년 서산토건에 입사하는데, 그것이 바로 건설업에 첫 발을 내딛게 된 순간이다.

당시 서산토건의 대표가 개인 사정으로 사업을 접게 되자 그는 200만 원으로 회사를 인수한다. 그리고는 1979년 충청권 건설 업계 서열 3위인 대아건설(주)을 인수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다. 플랜트 산업 설비와 주택 건설, 농수산물 유통, 관광 호텔 등 사업 영역을 다방면으로 확장하며 회사 규모를 키운 대아건설은 2003년 대우그룹 계열사였던 경남기업을 인수해 시공 능력 26위, 연 매출 2조 원대의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성 전 회장은 1990년 재단법인 서산장학재단을 설립, 300억 원의 기금을 마련해 해마다 1000여 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었다. 지난 25년간 약 2만 5000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했으며, 2007년부터는 매년 200명의 해외 대학생에게까지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다. 이 밖에도 형편이 어려운 사람과 지역 사회를 위해 많은 기부를 해오면서 충남 지역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갖기도 했다.

성 전 회장은 정치적 야망도 가지고 있었다. 철저한 인맥 관리를 통해 발을 넓힌 그는 2000년 충청도 출신 정·관계 인사와 언론인 등으로 구성된 '충청 포럼'을 출범했다.

하지만 정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 해 치러진 16대 총선에서는 자유민주연합(자민련)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탈락했다. 2003년에는 자민련 총재특보단장을 맡아 JP를 보좌했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자민련 비례대표 2번을 받았으나 자민련의 몰락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지 못했다. 그리고는 그해 자민련에 불법 정치 자금 16억 원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돼 유죄를 받았지만, 이듬해 특별 사면을 받았다.

그의 정치 인생, 순탄치 않았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빈소가 10일 오전 서산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가운데 성 전 회장의 두 아들이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빈소가 지난 10일 오전 서산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가운데 성 전 회장의 두 아들이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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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는 행담도 개발 비리에 연루되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으나 한 달 뒤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또 다시 특별 사면을 받기도 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는 박근혜 후보를 측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해 치러진 제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가경쟁력강화 특별위원회 자문 위원을 맡았다.

곧바로 치러진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해 출마조차 하지 못했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는 자유선진당 후보로 충남 서산·태안에 출마, 드디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름이 바뀐 '통일선진당' 원내 대표를 맡기도 했고, 통일선진당이 새누리당과 합당하면서 여당 국회의원이 됐다. 그러나 총선 전 지역 주민에게 무료 음악회를 연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14년 6월 대법원에서 벌금 500만 원을 확정 받아 당선이 무효 됐다.

이후 정계를 떠나 경남기업 경영에 전념했지만, 이미 2013년 3109억 원, 2014년 1827억 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한 회사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지난 3월 27일 경남기업에 대한 채권단의 자금 지원안이 부결됨에 따라 법정 관리를 신청했고, 법원은 4월 7일 기업회생 절차 개시를 결정했다.

그가 평생을 바쳐 일군 기업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본 그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더 큰 시련이 곧바로 닥쳐왔다.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이던 검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

그는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은 MB맨이 아니라고 말하고, '검찰이 표적을 잘못 정했다'고 눈물로써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리고 영장 실질 심사가 예정되어 있던 지난 9일 유서를 써 놓고 자택을 나간 뒤 북한산 형제봉부근 300m지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빈소는 현재 서산의료원에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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