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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후 7시부터 경북대학교 4합동강의동에서 열린 한국군 베트남 양민학살 피해자들의 증언에 300여 명의 청중들이 가득 찼다.
 지난 9일 오후 7시부터 경북대학교 4합동강의동에서 열린 한국군 베트남 양민학살 피해자들의 증언에 300여 명의 청중들이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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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사죄드리겠습니다."

동안거를 끝내고 강원도에서 대구까지 한 걸음에 달려온 명진 스님이 베트남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응우옌 떤 런(64)씨와 응우옌 티 탄(57)씨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숙인 명진 스님은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베트남전 당시 1년 동안 근무했다"면서 "항상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살다가 사죄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달려오게 됐다"고 말했다.

인문학 모임인 '두:목회'와 '평화박물관'이 공동 주최한 강연 '사랑만이 남는 세상'이 지난 9일 오후 경북대 4합동강의동에서 열렸다. 이날 런씨와 탄씨는 '아시아 평화의 밤-전쟁피해자의 증언'을 주제로 강연했다.

지난 9일 오후 7시부터 경북대학교 4합동강의동에서 열린 '아시아 평화의 밤-전쟁피해자의 증언'에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사회로 한국군 양민학살 피해자들의 증언이 있었다.
 지난 9일 오후 7시부터 경북대학교 4합동강의동에서 열린 '아시아 평화의 밤-전쟁피해자의 증언'에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사회로 한국군 양민학살 피해자들의 증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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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경북대학교에서 열린 베트남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자 증언에 나온 응우옌 티 탄씨와 후잉 응어 번씨, 응우옌 떤 런씨(왼쪽부터)
 지난 9일 경북대학교에서 열린 베트남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자 증언에 나온 응우옌 티 탄씨와 후잉 응어 번씨, 응우옌 떤 런씨(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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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사회를, 구수정 박사(베트남 현대사)가 통역을 맡은 이날 행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를 비롯해 시민과 학생 300여 명이 참석해 눈시울을 적셨다.

강연에 나선 탄씨와 런씨는, 부산 강연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현장에서 겪었던 일들과 상황에 대해 증언하고 "한국은 더 이상 증오하는 나라가 아닌 함께 사랑하고 같이 발전해야 하는 형제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런씨는 "제 심장으로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린 이야기는 제가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겪은 사실"이라며 "저는 역사의 진실을 들려주려 한 것이지 한국 사람들에 대한 원한이나 증오를 부추기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탄씨는 총탄에 맞아 창자가 몸 밖으로 나왔지만 손으로 쥐어 잡고 시장에 간 엄마를 찾아 나선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길거리에서 누운 채 몸이 굳어 있었다. 1968년 8살 때의 이야기이다. 탄씨는 증언을 하는 동안 계속해서 울음을 터트렸다.

탄씨는 "한국에 오면 참전 군인이 와서 제 손을 잡아주고 미안하다고 말할 것이라 생각했다"라며 "우리는 이제 친구가 될 줄 알았는데 밖에서 시위를 하는 참전 군인들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후잉 응어 번 전쟁증적박물관장은 "탄 아주머니가 한국에서 잠을 제대로 못하고 아직도 한국 사람들을 무서워하고 있다"라며 "사실 한국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나지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었다"라고 전했다.

지난 9일 경북대학교에서 열린 한국군 베트남양민 학살 증언에서 명진 스님이 민간인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응우옌 떤 런(64)씨와 응우옌 티 탄(57)씨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고 있다.
 지난 9일 경북대학교에서 열린 한국군 베트남양민 학살 증언에서 명진 스님이 민간인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응우옌 떤 런(64)씨와 응우옌 티 탄(57)씨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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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이용수 할머니가 으우옌 티 탄씨의 가슴을 손으로 쓸어주며 "이제 한을 풀고 살자"고 위로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이용수 할머니가 으우옌 티 탄씨의 가슴을 손으로 쓸어주며 "이제 한을 풀고 살자"고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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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증언이 끝나자 명진 스님은 다시 한 번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런씨와 탄씨를 끌어안고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명진 스님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던 류진춘 경북대 명예교수도 이들에게 사죄의 말을 전했다. 류 교수는 "1972년 백마부대 대원으로 전쟁에 참여했다"라며 "우리가 민간인 학살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한다"라고 말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내가 눈물이 참 많은데 오늘은 가슴만 답답하고 눈물이 나지 않는다"리며 "스님이 무릎을 꿇고 사죄하고 많은 분들이 이 분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할 때 한을 풀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런씨와 탄씨를 끌어안고 손으로 가슴을 쓸어주며 "이제 원한을 좀 푸세요, 진심으로 말씀드리니 이제 푸세요. 깜온(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고엽제전우회 등 베트남 참전 군인들이 지난 9일 경북대학교에서 열린 베트남 양민학살 피해자들의 증언을 저지하기 위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고엽제전우회 등 베트남 참전 군인들이 지난 9일 경북대학교에서 열린 베트남 양민학살 피해자들의 증언을 저지하기 위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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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경북대학교에서 열린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의 증언을 저지하기 나온 고엽제전우회 등 베트남 참전 군인이라고 밝힌 한 회원이 당시 양민을 학살하지 않았다며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9일 경북대학교에서 열린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의 증언을 저지하기 나온 고엽제전우회 등 베트남 참전 군인이라고 밝힌 한 회원이 당시 양민을 학살하지 않았다며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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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들의 증언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부터 고엽제전우회 등 베트남 참전군인 100여 명은 경북대 여정남민주공원 앞에서 강연 중단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양민을 학살한 적이 없다며 거짓 증언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엽제전우회는 성명을 통해 "주월 한국군 초대 사령관(채명신)은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특명을 내렸다"라며 "절대로 양민학살은 있을 수가 없다"라고 주장했다.

정춘광 고엽제전우회 대구지부장은 "32만여 명이 파병되어 전사자 5200명과 부상자 2만여 명, 화학전 고엽제 피해자 15만여 명이 나왔다"라며 "하지만 양민을 학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나왔다"라고 말했다.

정 지부장은 1965년 베트남에 파병됐을 당시 '한국군은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한다'는 간판 앞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선량한 양민을 학살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베트콩 작전지역에서 민간인들에게 철수하라고 경고방송을 하고 삐라도 뿌렸다"며 "철수하지 않은 사람들은 적군이고 적군은 죽어도 당연한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어린 아이들과 여자들이 죽은 사실에 대해서도 "적군의 가족도 적군"이라고 주장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자가 된 응우옌 떤 런(64)씨.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자가 된 응우옌 떤 런(64)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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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 군인들의 주장에 대해 런씨는 이들의 행동이 하나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한국을 찾은 이유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란다. 런씨는 예전에는 한국 사람들이 증오스럽고 두렵기도 했지만 이제는 참전군인들 앞에서도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런씨는 "그들도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이기 때문에 그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런씨는 "한국 군인이 베트콩이라고 말한 사람들이 베트남을 지킨 사람들"이라며 "베트남 국민은 모두 베트콩이다"고 말했다. 런씨는 이어 "한국 군인이 베트콩을 죽인 일은 나쁜 일 이었다"며 "당시 미국과 함께 침략군으로 나설 것이 아니라 베트남을 도와주었으면 더 좋은 관계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런씨는 "참전 군인들이 사과하지 않더라도 양민들이 자신들에 의해 학살됐다는 사실을 인정해주면 좋겠다"며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만 좋은 한국인들이 더 많은 것을 알게 돼 이제는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런씨와 탄씨는 초대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다시 만남을 기약하고 10일 오전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태그:#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 #평화박물관, #두:목회, #명진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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