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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고 풍부한 맛의 이탈리아 커피는 꼭 경험해봐야 한다.
▲ 이탈리아 커피 깊고 풍부한 맛의 이탈리아 커피는 꼭 경험해봐야 한다.
ⓒ 박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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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의 세포를 깨워 주는 쓰디쓴 커피의 맛을 알 때 어른이 되는 거라고 했다. 이탈리아에서 커피 맛을 통해 어른이 되기란 쉬운 게 아니다.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라>의 한 장면을 보면 이탈리아에서 커피 한 잔을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배경은 로마의 한 카페. 수많은 이탈리아인들이 바에 서서 자신이 원하는 커피를 목청껏 외친다. 이 시끄럽고 복잡한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줄리아 로버츠는 커피를 주문하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떠밀리며 당황스러워 한다.

나 역시 이탈리아에서 '커피 한잔'을 처음 주문하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했다.

이탈리아의 카페에서 가장 기쁜 것은 '좋은 자리'를 잡기가 쉽다는 것이다. 어느 커피숍을 가도 테이블이 텅텅 비어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처럼 '명당'에 앉아 있는 커플이 빨리 일어나길 바라며 곁눈질하지 않아도 된다. 기쁜 마음으로 명당 테이블을 잡고 주문을 받으러 오길 기다렸다. 1분, 5분, 10분… 아무도 오지 않는다. '이러다간 영영 커피 한 잔 못 마시겠네!' 싶은 순간 바에 서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 맞다.. 영화에서처럼 이탈리아는 바에 서서 커피를 마신다고 했지!"

이탈리아 사람들은 커피를 바에 서서 마신다. 그렇기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바는 보편적으로 커피를 마시는 '카페(cafe)'다. 테이블을 박차고 바로 이동해서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저기…커피…좀…."

그러나 바리스타는 단호한 표정으로 손을 쭉 뻗어 'Cassa(까사)'라고 써있는 곳을 가리킨다. 이탈리아에서는 커피는 '선불'이 란다. Cassa(까사)라고 써있는 계산대에 가서 원하는 커피를 계산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먼저 계산을 하고 영수증을 꼭 챙겨야 한다.
▲ 이탈리아에서는 커피는 '선불'이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먼저 계산을 하고 영수증을 꼭 챙겨야 한다.
ⓒ 박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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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을 하고 받은 영수증을 습관처럼 구겼다가 아차 했다. 영수증을 갖고 바에 가야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게 뒤늦게 생각났다. 한국에서처럼 "영수증은 버려 주세요"라고 했다면 커피 한 잔의 여유는 날아갔을 것이다. 마치 내 자존심처럼 구겨진 영수증을 필사적으로 복구한 후 다시 바로 향했다.

'그래, 이제 커피를 마실 수 있어!'

내 몸 하나 들어갈 빈 틈 없이 바에 빼곡히 자리잡고 있는 이탈리아인들 사이를 겨우 비집고 들어가 영수증을 세차게 흔들면서 신속하게 외쳤다.

"un! Caffè! per favore!! (카.페.한.잔.주세요!!) "

바리스타와 '아이 컨택트'되기를 간절히 기다리자 그가 나의 영수증을 시크하게 반틈 찟고 나서 주문한 커피를 준다. 우여곡절 끝에 카페를 마셨지만 세 모금이면 끝나는 에스프레소 한 잔은 무언가 아쉽다. 조금 더 양이 많은 아메리카노 한 잔을 더 마시고자 이번에는 자신있게 계산 후 영수증을 챙겨 바로 왔다. 

"카페 아메리카노 플리즈~" 

그러자 이번엔 바리스타가 정색을 하며 이야기한다.

"노! 아메리카노! 이탈리아는 카페!"
"...???..."

이번엔 또 뭐가 잘못된 걸까. 정말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바리스타가 말했다.

"아메리카노는 말 그대로 미국 사람(americano)란 뜻이야. 이탈리아에서는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아."

그는 커피빈을 볶을 때 기름이 생기고 그 위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물 위에 기름이 둥둥 뜨기 때문에 아메리카노는 맛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거듭 '카페'를 권한다.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한 잔의 '카페'는 에스프레소(Expresso)를 의미하며 영어의 'Express(익스프레스)와 같은 뜻이다. '9기압의 압력에 90도의 온도, 20cc 물을 30초의 추출 시간으로 빠르게 내린 커피'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카페 한 잔을 기다리며 지켜본 그들의 느린 행동과 여유로운 마인드는 '에스프레소'의 본연의 의미를 무색하게 했다.

커피를 줄 때 찻잔을 세게 내려놓기 때문에 불친절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탈리아인들은 사기 그릇 부딪치는 소리에 '행운'을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 '카페' 커피를 줄 때 찻잔을 세게 내려놓기 때문에 불친절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탈리아인들은 사기 그릇 부딪치는 소리에 '행운'을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 박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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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에 서서 커피를 마시는 이탈리아에서 '테이크 아웃' 또한 낯선 주문이다. 물론 이탈리아에도 '테이크 아웃'이 있지만 그란데(Grande) 사이즈 컵에 가득 담긴 커피와 살포시 올려진 휘핑크림은 기대할 수 없다. 테이크 아웃을 요청하면 한국의 일회용 소주잔인 플라스틱 컵에 담아주기 때문에 한 손 가득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들고 멋지게 로마 거리를 배회하고자한 것은 헛된 로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당황하는 나를 보며 웃는 이탈리아인에게 물어봤다.

"이게… 테이크 아웃 맞아?"
"응…, 그런데 이탈리아는 테이크 아웃을 잘 안해"
"왜? 이렇게 서서 마시는 건 더 힘들 것 같은데…"
"커피는 자고로 바에서 마셔야지~ 테이크 아웃을 하는 순간 커피가 식는다고!"

순간의 온도를 위해 치열한 몸싸움을 하는 그들의 열정이 진심으로 놀라웠다.

"그럼 여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마셔?"
"그건 정말 스키포! (Schifo)"

벌 서고 있는 장면이 아니다. 따뜻한 온기 그대로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서있는 열정의 이탈리아인들의 모습.
▲ 커피를 마시기 위에 바에 줄 서 있는 사람들 벌 서고 있는 장면이 아니다. 따뜻한 온기 그대로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서있는 열정의 이탈리아인들의 모습.
ⓒ 박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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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처음 맞은 여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나서야 그때 그가 말한 '스키포(Schifo)'의 뜻이 영어의 'Disgust(디스거스트, 역겨운)'였다는 걸 온 미각으로 깨달았다.

이탈리아에서 마주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정말 최악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면 에스프레소 한 잔에 뜨거운 물 조금 그리고 얼음 두어 개를 동동 띄워준다. 커피를 받고 30초가 지나면 얼음이 다 녹아 버리기 때문에 결국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커피만이 남는다.

나의 이탈리아 친구들은 아메리카노를 '검은 물' 이라고 부른다. (아니… 사실은 구정물 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아메리카노'의 쓴 맛을 호되게 배우고 나서, 나는 우유가 들어간 커피류를 선호했다. 그러나 이 또한 쉽지 않을 줄 누가 알았으랴.

'아… 제발 나에게 커피를 달라!'

* <제발 커피 한 잔만 주세요 (2)>에서 계속됩니다.


태그:#이탈리아커피, #커피맛집, #이태리커피, #로마커피, #에스프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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