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이들을 추모하는 4.9통일열사 39주기 추모제가 2014년 4월 9일 오전 경북 칠곡군 현대공원묘역에서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절을 하고 있다.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이들을 추모하는 4.9통일열사 39주기 추모제가 2014년 4월 9일 오전 경북 칠곡군 현대공원묘역에서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절을 하고 있다.
ⓒ 조정훈

관련사진보기


1975년 4월 9일,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새벽 4시 55분, 간수는 서도원씨를 불렀다. 그 뒤 김용원씨와 이수병씨, 우홍선씨, 송상진씨, 여정남씨, 하재완씨 순으로 형 집행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도예종씨가 숨을 거둘 때까지 걸린 시간은 모두 3시간 55분,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있은 지 겨우 18시간 뒤의 일이었다.

국제법학자회의가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정한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아래 인혁당 사건) 이야기다. 2015년 4월 9일은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이 사형을 당한 지 딱 40년이 되는 날이다. 그동안 국가는 피해자 23명 전원에게 재심 무죄 판결로 뒤늦게나마 사과했다.

오랫동안 숨죽여 아파하다

순탄치는 않은 세월이었다. 첫 재심 무죄판결은 2007년 1월 23일에야 나왔다.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아래 대통령 의문사위)가 이 사건은 조작됐다고 발표한 지 5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아래 국정원 진실위)도 같은 결론을 내린 날로부터 2년이 지난 뒤였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도 2006년 인혁당 사건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했지만, 법원은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움직였다.

☞ [대통령 의문사위] "인혁당 재건위 사건 중정 조작"
☞ [국정원 진실위] "인혁당·민청학련 사건은 정권의 조작"
☞ [첫 재심 무죄] "'사법살인' 32년 만에 용서 구한 것"

형사재판 재심이 명예회복의 출발이었다면, 민사재판은 기나긴 고통을 조금이나마 위로받는 일이었다. 재심 무죄 판결 뒤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 법원은 모두 피고 '대한민국'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그런데 2011년 1월 27일 대법원은 이 사건을 파기 자판(대법원이 원심 판결의 일부를 깨고 스스로 재판을 해 결론을 내리는 것)했다. 국가가 잘못한 것은 맞지만 사건 발생일로부터 시간이 오래 지나 화폐가치가 상당히 변했으니 이자 계산 시점을 바꿔야 한다는 이유였다.

대법원이 정한 기준점은 과거 대법원 확정판결 이튿날(1975년 4월 9일)이나 만기출소일 등이 아니라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 변론 종결일인 2009~2010년이었다. 약 30년치 이자가 한꺼번에 날아간 셈이었다.

다시 가해자가 된 국가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012년 9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과거사 관련 입장 발표를 마친후 당사를 나서고 있다. 이날 박 후보는 5.16과 유신, 그리고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012년 9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과거사 관련 입장 발표를 마친후 당사를 나서고 있다. 이날 박 후보는 5.16과 유신, 그리고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국가는 곧바로 돌변했다. 2013년 7월 국정원은 피해자와 유족들 앞으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장을 보냈다. 법원 결정에 따라 과다 지급된 251억 원가량을 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야당 의원들은 그해 국정감사에서 대법원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질타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국가는 꿋꿋이 소송을 이어갔다. 2015년 4월 8일 현재 인혁당 피해자들의 부당이득금 반환소송 16건 가운데 15건은 모두 원고 대한민국의 승소가 확정됐다. 남은 것은 지난 2월 5일 항소심에서 패소, 대법원에 상고한 이창복씨의 소송 하나뿐이다.

☞ 피해자들이 물어야 할 이자... 하루에만 무려 1151만원
☞ 대법원이 30년 치 이자를 날린 기준, 아무도 모른다

인혁당 피해자들을 괴롭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붙고 있는 이자만이 아니다. 올 1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4부(부장검사 배종혁)는 과거사 사건 수임 수사를 본격화했다. 과거사 관련 위원회와 피해자들의 재심·국가배상금소송을 도운 변호사들이 수사대상이었다. 검찰은 해당 변호사들이 과거사 관련 위원회 활동을 하며 접한 정보를 사건 수임에 활용, 변호사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과거사 사건 재심 무죄와 국가 배상책임 인정 판결이 나온 지 10년 가까이 흐른 뒤에야 수사에 들어간 검찰의 모습도 어딘가 석연치 않다. 검찰의 칼날이 향한 인물 중 하나가 인혁당 사건 재심과 국가배상금소송 당시 발 벗고 나선 김형태 변호사란 점도 눈길을 끈다. 피해자 이창복씨는 8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김 변호사가 좋은 일 하고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 검찰 표적수사 분명한데... 곤혹스러운 민변
☞ "과거사 수임수사, 끝까지 피해자 돌본 게 유죄?"

대통령의 침묵... 끝나지 않는 싸움

이씨는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도 "최소한 대선 공약대로 지킬 수 있으면 좋은데… 영 돌아서서 다른 생각을 하니까 실망스럽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인 2012년 9월 24일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독재를 사과하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가치를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켰다"고 말했다. 또 "과거의 아픔을 가진 분들을 만나고 더 이상 상처로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 고개 숙인 박근혜 "5·16, 유신, 인혁당사건 헌법가치 훼손"

하지만 박 대통령은 줄곧 과거사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 지금 그의 모습은 오히려 국정원 진실위 발표가 "모함"이라고 발끈하던 2005년, 법원의 재심 무죄 판결에 "법원이 결정한 것 아니냐"고만 반응하던 2007년과 닮아 있다.

☞ 박근혜 "국정원의 인혁당·민청학련 발표는 모함"
☞ 침묵하던 박근혜 "법원이 결정한 거 아니에요?"

그의 침묵이 길어지는 만큼,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의 싸움은 계속된다. 우울한 기념일도.


태그:#인혁당, #박정희, #박근혜
댓글1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