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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자인 응우옌 떤 런(NGUYEN TAN LAN), 응우옌 티 탄(NGUYEN THI THANH)과 호치민시 전쟁증적박물관 후인 응옥 번(HUYNH NGOC VAN) 관장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간인학살 당시의 참상을 증언하고 있다.
▲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 첫 방한 '올바른 성찰 이루어지길'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자인 응우옌 떤 런(NGUYEN TAN LAN), 응우옌 티 탄(NGUYEN THI THANH)과 호치민시 전쟁증적박물관 후인 응옥 번(HUYNH NGOC VAN) 관장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간인학살 당시의 참상을 증언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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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자인 응우옌 떤 런(NGUYEN TAN LAN)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간인학살 당시의 참상을 증언하자, 함께 방한한 응우옌 티 탄(NGUYEN THI THANH, 사진 가운데)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기억에 눈물 흘리는 피해자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자인 응우옌 떤 런(NGUYEN TAN LAN)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간인학살 당시의 참상을 증언하자, 함께 방한한 응우옌 티 탄(NGUYEN THI THANH, 사진 가운데)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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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학살이 일어난 날 누이동생과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저 또한 수류탄 파편이 온 몸에 박혀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왔습니다. 베트남 평화의료연대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아 큰 수류탄 파편은 제거했지만 지금도 제거하지 못한 파편이 온 몸을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24시간 다리가 저리고 밤이 되면 통증이 심해져 저는 밤마다 들판을 달립니다. 달리면 통증이 좀 덜해지기 때문입니다. 수류탄 하나가 이렇게 평생을 괴롭힐지 정말 몰랐습니다.(중략)

탄 아주머니는 배에 총상을 입었습니다. 학살로 어머니, 언니, 남동생, 이모, 사촌동생 등 가족 다섯 명을 잃었습니다. 오빠도 한쪽 엉덩이가 날아가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탄 아주머니는 학살이 일어난 날 창자가 튀어나온 부상을 입고 고통도 모른 채 오직 엄마를 찾아 다녔다고 합니다. 아주머니는 여전히 왜 그런 잔인한 학살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저도 모릅니다."

6일 오후 국회의사당 정론관에서는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피해자 응우옌떤런(남·64)씨와 응우옌티탄(여·57)씨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올해는 베트남전 종전 40주년을 맞는 해지만, 민간인 학살피해자가 한국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자들 앞에 선 응우옌떤런씨는 1966년 2월 13일 새벽 자신의 가족과 이웃들에게 닥친 끔찍한 악몽에 대해 떨리는 목소리로 증언했다. 베트남 중부 빈딘성(省, 우리의 도에 해당) 따이손현(縣, 우리의 군에 해당) 따이빈사(社, 우리의 면에 해당) 안빈마을에 들이닥친 한국군(파월 맹호부대)은 응우옌떤런씨와 어머니, 여동생 등 세 식구를 포함하여 25가구의 마을 사람들 전부를 한곳에 모았다.

학살이 시작된 것은 새벽 5시경. 누군가 고함을 치자 곧 수류탄이 날아오고 총질이 시작됐다. 수류탄 폭발로 실신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곁에는 하반신이 절단된 어머니가 누워 있었고, 머리가 깨진 누이동생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끔찍한 고통을 겪던 누이동생마저 곧 숨졌고 응우옌떤런씨는 피붙이 하나 없는 고아가 되었다.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잔인한 학살과 고통스런 비명으로 기억되는 학살의 소리는 생생하게 제 머릿속에 살아 있습니다. 그날의 기억을 다시 되돌리고 나면 한 보름은 잠도 못 자고 몸이 아픕니다. 하지만 그날을 기억하고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제 생의 마지막 소임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한국을 방문하게 된 것도 제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 입니다"

베트남 측 자료에 의하면 1966년 2월 중순의 3일 동안, 안빈마을을 포함한 따이빈사 15개 마을에서 1700여 명의 주민들이 한국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여전히 왜 그런 잔인한 학살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응우옌티탄씨는 1968년 2월 12일 주민 74명이 사망한 퐁니 마을(파월 해병 청룡부대 주둔지) 학살사건에서 어머니와 남동생, 이모, 사촌동생 등 다섯 가족을 잃었다. 학살이 일어난 날 배에 심각한 총상을 입어 창자가 튀어나온 부상을 입고 어머니를 찾아다닌 기억을 갖고 있다. 함께 살아남은 오빠는 당시 한쪽 엉덩이가 날아가는 중상을 입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왔다.

당시 학살은 파월 청룡부대 제2여단 제1대대 1중대가 자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퐁니 마을 학살사건은 지난 2000년 베트남 민간인 학살진실위원회가 학살 당시 주베트남 미군사령부에서 작성한 100여 종의 보고서와 사진 20여 장을 공개하면서 사실로 드러난 바 있다.

두 피해자를 초청한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대표 이해동 목사는 "전쟁은 끝났지만 두 나라 사이 전쟁의 기억은 만나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면서 "우리의 노력이 진실을 밝히고, 한국과 베트남이 진정한 평화로 나아가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 목사는 또 "한국과 베트남은 닮은 점이 많다, 식민지배의 역사와 분단, 냉전의 희생양이자 전쟁으로 얼룩진 고통스런 현대사는 말 그대로 닮은 꼴"이라며 "1992년 수교 이래 양국의 교류와 협력은 늘어가고 있지만 두 나라 사이 베트남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 베트남 전쟁에 대한 올바른 성찰이 이루어지길 빈다"면서 "한-베 평화의 길에 시민 여러분이 함께해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린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선 피해자들과 함께 방한한 베트남 호치민시 전쟁증적(증거와 흔적이라는 뜻)박물관 후인응옥번 관장의 '베트남전 종전 40년, 베트남 전쟁을 이야기하다' 강연도 이어졌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피해자들은 7일 오후 '광복 70년, 베트남전 종전 40년 <하나의 기억, 두 개의 전쟁> 이재갑 사진전' 개막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사진작가 이재갑씨는 지난 7년 동안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한국군 참전비와 베트남지역 한국군 주둔지를 중심으로 전쟁의 흔적과 현재, 주민의 삶과 증언을 기록하는 작업을 해왔다.

대안학교인 로드스꼴라 학생들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간담회실에서 광복 70년 베트남전 종전 40년, 베트남 호치민시 전쟁증적박물관 후인 응옥번 관장 초청 강연에 참석해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자인 응우옌 떤 런(NGUYEN TAN LAN), 응우옌 티 탄(NGUYEN THI THANH)에게 사과하는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깊이 사과합니다' 대안학교인 로드스꼴라 학생들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간담회실에서 광복 70년 베트남전 종전 40년, 베트남 호치민시 전쟁증적박물관 후인 응옥번 관장 초청 강연에 참석해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자인 응우옌 떤 런(NGUYEN TAN LAN), 응우옌 티 탄(NGUYEN THI THANH)에게 사과하는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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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베트남 민간인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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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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