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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금리 시대입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 금리를 1%대로 내리면서 물가를 감안하면 저축할수록 손해 보는 시대입니다. 저금리로 혼란을 겪고 있는 금융권 실태를 짚어보고 금융 소비자로서 '저금리 시대'를 사는 법을 함께 고민합니다. 먼저 최근 중상층의 '저금리 대출 갈아타기' 수단으로 변질된 안심전환대출의 허와 실을 짚어봤습니다. [편집자말]
'안심전환대출'이 출시된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은행 본점에서 안심전환대출 가입 희망자들이 전용 창구에서 상담을 하고 있다.
 '안심전환대출'이 출시된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은행 본점에서 안심전환대출 가입 희망자들이 전용 창구에서 상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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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① 1억 3500만 원 변동 금리... '제2금융권'이라 안돼

경기도 수원에 사는 이진옥(44·가명)씨는 2년 전 1억 8500만 원짜리 빌라를 사면서 신협에서 변동 금리, 만기 일시 상환 조건으로 1억 3500만 원을 대출받았다. 이씨는 시중 은행에 가서도 상담해 봤지만, 대출금이 많다는 이유로 거부 당해 제2금융권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금리는 연 5~6%대에 3년 만기였다. 매달 120만 원 벌이에 이자만 65만 원을 내고 있지만, 원금 상환은 엄두도 낼 수 없어 대출 기간 연장을 고민하던 차였다. 마침 금리가 연 2%대인 안심전환대출이 출시됐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에 신협에 전화했지만, 제2금융권은 대상이 아니라는 대답만 들었다. 안심전환대출이 '흥행 대박'이라는 뉴스가 그저 씁쓸할 뿐이었다.

#사례② 시중은행 1억 원 대출... '고정 금리'도 안돼

경기도 용인에 사는 김아무개(39·여)씨도 속이 타기는 마찬가지다. 김씨는 3년 전 아파트를 사면서 우리은행에서 30년 상환, 고정 금리 연 3.6%대로 1억 원을 대출받았다. 김씨도 이번에 안심전환대출로 갈아타려 했지만 거부당했다. 고정금리 분할 상환 대출자는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 김씨는 "설날 아기 세뱃돈까지 모아 아등바등 원금에 이자까지 갚으며 살았는데 정부에 뒤통수 맞은 느낌"이라며 하소연했다.

'차(제2금융권) 떼고 포(고정금리) 떼고.'

연 2%대 고정 금리로 바꿔주는 '안심전환대출'이 연일 논란이다. 갈아 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정부가 애초 이 상품을 내놓은 이유는 위험 부담이 높은 변동 금리·일시 상환 대출 구조를 고정 금리·분할 상환으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기준 금리가 연 1%대에 돌입하며 사람들은 금리에 더 주목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금리가 오를 수 있다는 불안감에 저금리일 때 대출 이자를 낮추려는 중산층의 '빚 테크' 수요가 안심전환대출로 몰린 것이다.

덕분에 안심전환대출은 지난달 24일 출시 나흘 만에 20조 원 한도를 모두 소진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놀란 금융 당국은 20조 원 추가 공급에 나섰다. 그러나 가계 부채 불안 해소를 위해 만든 안심전환대출 혜택이 서민 같은 위험 계층보다는 상대적으로 원리금 상환에 여유가 있는 중산층 시중은행 대출자에 쏠려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저금리 시대 '안심전환대출' 현상의 허와 실을 짚어봤다.

[허와 실①] 제2금융권 대출자는 왜 제외했나?  

정작 가계 부채의 뇌관으로 지적되는 저소득층 서민들은 안심전환대출로 바꾸기 어렵다. 시중 은행 대출자들만 대상으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축은행·신협·상호금융·새마을금고·보험·카드 등 제2금융권은 원금 상환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대상에서 아예 빠졌다.

상대적으로 신용 등급이 낮고 소득이 낮아 제2금융권으로 밀려난 서민들은 2%대 저금리 시대에도 결국 계속 고금리를 감수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제2금융권 대출자들이 창구를 찾아서 "나는 왜 안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제2금융권 관계자는 "농협이나 수협의 경우 중앙회는 되지만 지역 단위는 해당 되지 않는다"며 "이를 모르고 나이 드신 분들은 안심전환대출로 바꾸기 위해 창구를 찾았다가 실망하고 돌아간다"고 전했다.

이 같은 불만에 금융 당국은 "제2금융권까지 통일된 전환 상품을 만들기 어렵다"며 선을 그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제2금융권의 경우 검토 결과 금리, 담보 여력, 취급 기관 등이 너무 다양해 해당 금융 회사들이 통일된 전환 상품을 협의해 만들어 내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제2금융권 이용자 중에는 생계비를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경우가 상당수다. 또 은행권보다 담보인정비율(LTV)도 높아 부실화될 위험성도 크다. 안심전환대출이 금리를 낮춰 분할상환을 유도해 가계부채를 개선한다는 긍정적인 목적을 가졌지만, '더 급한' 서민들을 외면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허와 실②] 고소득자를 위한 특혜인가?

안심전환대출 수혜가 부채 위험이 상대적으로 덜한 고소득자에 집중되는 것도 문제다. 금융위원회가 1차 판매를 분석한 결과 수혜자들의 연 평균 소득은 4100만 원이다. 특히 연 소득 6000만 원을 초과하는 고소득자가 30%를 차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제2금융권 대출자들이 박탈감을 느끼는 대목이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접수 상황을 들여다보니 안심전환대출의 수혜를 받는 사람들의 평균 소득이 4000만 원에서 5000만 원 사이"라며 "다중채무자나 저소득층이 아닌 이미 상환을 잘하는 중산층에게 혜택이 가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형평성 문제가 계속 불거지자, 여야 지도부들도 제2금융권 대출자 확대 등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임 위원장은 "서민 금융 지원에 집중하겠다"면서도 제2금융권 대출로 확대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금융당국이 제2금융권으로 확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행정 편의적인 발상으로 핑계일 뿐"이라며 "이들을 위해 별도로 10조 원을 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국장은 "지원이 절실한 중소서민보다 은행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이자를 부담하는 중산층 이상 계층에 혜택이 돌아가 형평성이 떨어진다"며 "제2금융권은 리스크가 높은 대출만 남아 서민 금융이 아니라 고리대업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허와 실③] 뒤통수 맞은 고정 금리 대출자들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완화된 이후 한 달간 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이 3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9월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1일 LTV와 DTI가 완화된 이후 31일까지 한 달간 전체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은 7월 말보다 4조7천억원 증가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여의도영업부 대출 창구 모습.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완화된 이후 한 달간 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이 3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9월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1일 LTV와 DTI가 완화된 이후 31일까지 한 달간 전체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은 7월 말보다 4조7천억원 증가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여의도영업부 대출 창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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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 금리 대출자들의 불만도 높다. 정부는 2011년 6월 '가계 부채 연착륙 종합 대책'을 발표하며 고정 금리 분할 상환 방식 대출을 권장해 왔다. 덕분에 2011년까지만 해도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3% 정도에 불과했던 고정 금리 대출자 비중이 지난해 말 23.6%로 뛰어올랐다. 정부가 시중은행에 고정 금리 대출을 늘리라고 적극 권유해 온 결과다.

하지만 당시 정부 말만 믿고 고정 금리로 대출을 받은 서민들은 이자가 떨어진 데다 안심 전환대출 대상에서도 제외돼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됐다.

이에 금융 당국 관계자는 "기존 고정 금리 대출자들은 그 당시에도 혜택을 봤기 때문에 이는 시점의 문제"라며 " 이번 안심 전환 대출의 목적은 금리 인하가 아니라 가계 부채 구조 개선이어서 고정 금리 대출자로 대상을 확대하면 제도 도입의 취지가 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애당초 목표가 변동 금리를 고정 금리로 바꾸자는 것인데, 고정 금리 대출자까지 포함하면 저금리로 낮추는 효과만 남는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저소득층을 고려하지 않은 안심전환대출이 가계 부채 구조 개선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안심전환대출은 저소득층의 가계 부채 구조 개선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애초부터 소득 계층별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책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또 안심전환대출은 이자뿐 아니라 원금을 함께 갚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계층이 원금 상환 능력이 있는 중산층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조 연구위원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의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가구의 담보 대출이 평균 73.8%나 늘어났다"며 "이같이 가계 부채 부담이 가장 큰 저신용·저소득층에 대한 대책이 나왔어야 했는데 부채 상환 능력이 양호했던 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내놓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가 오히려 안심전환대출을 홍보하면서 낮은 금리만 부각해 국민의 혼란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허와 실④] 은행도 손실 감수? "손해 보는 장사 어딨나"

안심전환대출로 은행들도 속이 쓰리긴 마찬가지다. 저금리 기조에서 안심전환대출이 확대될수록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최정욱 대신증권 연구 위원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20조 원 한도 기준으로 은행들은 1400억~1600억 원 순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은행권에서는 안심전환대출이 10년 이상의 장기 대출인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발생할 손실은 수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금융 노조는 "이번 40조 안심전환대출 공급으로 증권업계에서는 연간 40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손실을 예상하는데,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따라야 한다"며 "막대한 은행 손실은 곧바로 국민 경제에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며 영업 현장 노동자들은 극심한 노동 강도에 시달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시중 은행 관계자도 "안심전환대출로 직원들의 업무 강도가 살인적"이라며 "고객들이 기다리고 있어 점심도 못 먹고 새벽까지 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금융위에서는 은행이 안심전환대출 판매로 큰 손실을 보진 않는다고 보고 있다. 은행들은 매년 주택담보대출로 인한 예대 금리 차이로 0.2~0.3%포인트 마진을 얻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의 기존 대출이 안심전환대출로 바뀌더라도 대출 취급 시점에서 약 0.2%포인트의 마진을 보장받을 뿐 아니라, 안심전환대출 취급 은행은 매년 일회성 수익을 0.1~0.2%포인트씩 보장받는다고 설명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들도 가계부채가 장기 분할·고정 금리로 가면 안정적인 상환이 가능하니까 절대 손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태그:#안심전환대출, #금융위원회, #임종룡,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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