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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을 입은 근엄한 모습을 상상했지만 전혀 딴판이었다. 캐주얼 차림의 남자가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들어왔기 때문. 얼핏 보기에 30대로 보인다.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내에 있는 '법무법인 동안(東岸)'의 회의실이었다.

그의 이날 복장은 길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30대 직장인이 휴일을 맞아 차려입은 가벼운 옷차림을 떠올리면 될 것 같았다. 젊은 엘리트 직장인처럼 보이는 사람은 다름 아닌 '가카새끼 짬뽕'의 이정렬(46) 전 창원지법 부장판사였다. 그는 2011년 SNS에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풍자한 이미지를 올려 법원장으로부터 경고를 받은 바 있다.

명함을 주고받은 후 호칭을 어떻게 부르는 게 좋겠는지 묻자 그는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전 부장판사'라고 부르기보다는 '사무장'으로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이정렬 사무장. 그는 얼마 전 댓글 논란을 일으켰던 이영한 전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를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서울 서초경찰서에 고소한 바 있다. 또 이와 관련 고소인 조사를 마치기도 했다.

이영한 전 부장판사는 2008년부터 인터넷 포털 사이트 아이디 5개로 1만 개에 가까운 '막말' 뉴스 댓글을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2월 13일 사직서를 제출했고, 대법원은 2월 16일 사직서를 수리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이유로 변호사보다는 사무장이 좋다고 자신 있게 얘기하는 걸까? 그리고 왜 한때는 같은 법복을 입었던 이영한 전 부장판사를 직접 나서서 고소까지 한 것일까? 그 이유를 솔직담백하게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3월 20일 오후 법무법인 동안의 소회의실에서 있었다. 이와 함께 4월 1일 이메일 추가질문과 답변으로 이루어졌다.

"공무상 비밀누설 추가로 고소하기 위해 자료 수집 중"

이정렬 법무법인 동안 사무장
 이정렬 법무법인 동안 사무장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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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에 SNS에서 댓글 논란이 일었던 수원지방법원 이영한 전 부장판사를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고소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제가 그분을 고소한 이유는 대법원하고 싸우기 위해서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그분이 만약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는 댓글을 썼다면 제가 그렇게 안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의 댓글을 보게 되면 대법원하고 정치성향이 똑같다. 또한 대법원은 자신들과 정치적 성향이 똑같다보니 그분의 앞길을 막기가 싫으니 서둘러 사표를 수리하는 것으로 문제를 덮으려고 한 것이다.

대법원은 직무상 위법이 있다고 하면 사표를 받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분이 자기가 취급한 사건을 밖으로 유출했다면 당연 징계 사유다. 또한 댓글을 익명으로 쓴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근무시간에 했는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고 본다.

전체를 따졌을 때 몇 천 개 된다고 하는데 그 댓글들이 언제 쓰였는지 시점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즉 그분께서 일이 끝나고 쓰셨는지 아니면 업무를 전폐하고 했는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근무시간에 썼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사표를 수리하고 덮었다.

제 주장은 그렇다면 대법원의 판단과 같이 직무상 관련이 없이 댓글을 썼는지 아닌지를 수사기관에서 따져보라는 것이다. 만약 저라도 그렇게 고소를 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범죄가 그냥 묻히는 것 아니냐. 판을 키우겠다는 의미에서 고소를 하게 된 것이다."

- 이영한 전 부장판사에 대해 추가고소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2월에 고소한 후 고소인 조사까지는 마쳤다. 하지만 지금 고소해놓은 명예훼손 사건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공무상 비밀누설이다. 이 부분을 추가로 고소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 중이다. 하지만 제가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일반인과 같은 수준이어서 애로를 겪고 있다.

신문기사는 물론 온라인에서 그 양반이 쓴 댓글 가운데 아직 살아 있는 것들을 하나씩 출력하고 있다. 이것을 살펴보면서 직무관련성 여부를 따져가며 자료를 모으고 있는 중이다. 머지않은 시간 내에 직무상 비밀누설죄 등을 이유로 추가로 고소하고자 한다."

- 지난해 대한변협에서 변호사 등록을 거부당한 후 현재 사무장으로 일하고 계시는데 어떠신지.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다.(웃음) 먼저 상담을 오래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제게 오시는 분 중엔 하다 하다 안 돼 가지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다. 오시는 분들 사건은 상고심이 아니면 재심단계인데 하다못해 항소심만 되어도 어떻게 다퉈볼 수 있겠는데 현실적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그분들의 사연을 들어드리는 것이다. 만약 제가 변호사 업무를 하고 있다면 재판에 들어가야 하는 등의 이유로 그렇게 오랜 시간 말씀을 들어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분께서는 제가 말씀을 들어드리니까 하시는 말씀이 '여기저기 다 다녀봤는데 가는 곳마다 미친놈 취급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사무장님께서 진지하게 들어주셔서 너무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럴 때는 진짜 보람을 느낀다. 사무장이 아니었다면 그분들의 억울한 마음을 제가 헤아리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법원에 있을 때보다는 자유를 느끼기에 현재 생활에 만족을 느낀다."

"변호사 등록 거부당했지만 사무장으로서 약자 편에"

법무법인 동안의 이정렬 사무장과의 인터뷰는 매우 유쾌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법무법인 동안의 이정렬 사무장과의 인터뷰는 매우 유쾌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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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판사 경험을 바탕으로, 소송에서 억울하게 당하지 않는 팁(Tip)은 있는지.
"소송 중에는 어느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과 자신을 돕는 변호사뿐이다. 특히 판사·검사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꽤 있는데, 이 사람들은 주어진 증거와 주장을 가지고 판단을 하는 사람들일 뿐이지, 스스로 나서서 조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최대한의 노력을 해 자료를 모아 판사·검사를 설득시키고 납득시켜야 하는 것이지, 이 사람들이 알아서 다 해줄 것이라 생각하면 정말 큰 오산이다. 이 점만 유념해도 판·검사 때문에 억울함을 느끼는 일은 꽤 줄어들 것으로 생각한다."

- 현재 근무하고 계시는 법무법인 동안은 지난해 3월 설립되었고 이광철·조동환 변호사 등 5명 규모의 소형 로펌으로 알고 있다. 법무법인 동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변호사 등록을 거부당한 후 많은 고민을 했지만 그냥 있기보다는 사무장으로서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 편에 서는 방법이 있다고 판단해 요청을 수락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저희 법무법인 동안은 여러 사건을 맡아서 처리를 하고 있는데 몇 가지만 든다면 노무현 재단 관련 재판과 함께 변희재 고소사건과 일베사건뿐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 비난) 천안 호두과자 사건도 맡아서 진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정원 여직원 사건, 안도현 시인 무죄 받아낸 사건, 이부진 남편 이혼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이 많기는 한데 돈이 안 된다.(웃음)"

- 판사시절과 현재를 비교하면 어떠신가.
"제가 사무장이 된 지 1년이 조금 안 됐다. 세월호 사고 나던 날 사무장 일을 시작했는데 법원에 있을 때보다 정신건강에 훨씬 낫다. 자유롭기 때문이다. 판사 할 때 마음먹고 각종 판례 뒤지고 일본 판례 등을 참고해 딱 선고하면 이긴 쪽은 원래 이기게 되어 있으니까 당연히 이긴 것이라고 말하고. 진 쪽은 저것 이상한 놈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더라.(웃음)

재판이 결국 50%는 승소하고 50%는 패소하게 되어 있는데 50%의 진 쪽은 욕을 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나머지 50% 승소한 쪽은 칭찬을 하는 게 아니고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점이 판사로서 애로사항이 아닌가 한다. 판사는 칭찬은 받지 못하고 욕먹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무장을 하면서는 욕보다는 칭찬을 많이 받으니까.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웃음)"

- 끝으로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여기저기서 많은 분들로부터 과분한 칭찬과 격려를 받고 있다.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정렬
댓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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