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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일러두기 : 소설에 등장하는 몇몇 인물들은, 필요에 의해 창조된 가상의 캐릭터들입니다. 실제의 이름, 나이, 직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2014년 4월 13일 04 : 35 PM.

보영아, 강보영! 소리 좀 줄여!

보영의 방에서 갑자기 흘러 나오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 혹시 동네 사람들 항의라도 들어올까, 주의를 주기 위해 방문을 노크 한다. 그런데... 반응이 없다.

살며시 방문을 열자, 컴퓨터 동영상을 켜놓고 열심히 춤을 추고 있는 아이의 모습. 요즘 유행하는 아이돌 그룹의 댄스인 듯.

보영이, 지금 뭐하니? 야! 이러다 동네에서 쫓겨나겠다.
히­ 아빠 미안. 소리가 그렇게 컸나?
야 인마! 미안하면 동네 사람들 한테 미안해야지, 아빠한테 미안할 게 뭐 있어.
히히­ 그런가.
근데, 갑자기 뭔 놈의 춤을 그리도 열심히 추고 있냐?
응. 이번에 수학 여행가서 장기 자랑할 때... 애들이랑 같이 공연하려고 안무 연습 하는 중!
근데, 여기가 어디니? 동영상에 나오는 곳. 어쩐지 낯이 익은데?….
안산 올림픽 기념관!
아하! 근데... 보영아. 아까 너 혹시, 공연이라고 했니?
응.
에이 설마? 겨우 이 정도 실력으로 감히 공연씩이나?
왜? 뭐가 어때서?
움찔움찔 씰룩씰룩, 이게 뭐니? 니들 공연 제목, 혹시… '몸치 탈출' 뭐 그런 거 아니니?
아빠! 그렇지 않아도 자꾸 동작 틀려서 속상해 죽겠는데, 아빠까지 그럴 거야?
어이구? 잘하면 울겠는데?
아빠 자꾸 놀리면, 나 진짜로 삐진다? 힝!

아이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동영상을 꺼버린다.

'흠… 여기서 멈춰야지…. 울면 골치 아파 진다.'

하하하. 그래, 알았다 알았어. 으이구….
이제 안 놀릴 거지?
알았다니까! 근데, 컴퓨터 배경화면이 바뀌었네?
응… 얼마 전에 바꿨어.
배경화면 사진… 다 너네 2학년 3반 애들이니?
응.
그래?… 다들 착하고 예쁘게들 생겼네?"
그치? 우리 학교 애들은 다 그래!
전부 다?
물론 당근! 나까지 포함해서. 히­

방금 전에 야단 맞은 것도 까맣게 잊은 채, 아이는 종달새처럼 신이 나서 떠들고 있다.

근데, 보영아. 너 반에서 제일 친한 애들이 누구 누구니?
친한 애들? 나 우리 반 애들, 다 친한데?
아니, 그런 거 말고 진짜 친한 친구들!
아빠! 아빠 딸이 학교에서 인기짱 인거, 아직까지도 몰랐어?
그으래? 우리 딸이 대체 뭣 때문에 그렇게 인기가 많을까? 궁금해지네?
험험! 일단 외모 받쳐주지, 인간성 끝내주지… 거기다 내가 노래실력도 쫌 되잖아?
야! 그런 걸 가리켜서 '근자감'이라고 한다며? 근거 없는 자신감. 저번에 니가 그랬잖아!
왜? 아빠 딸… 노래뿐만 아니라 작곡도 하고 편곡도 하잖아?
그래서 인기라고?
그럼! 우리 반 애들이 그러는데… K팝 스타 한번 나가보래?
너 설마… 진짜 나갈 건 아니지?
글쎄? 나갈까 말까? 지금 고민 중!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어쩐지 표정이 진지하다.

허허허, K팝 스타? 큰일 났네! 우리 딸 뒷바라지 하려면 아빠가 돈 많이 벌어야 할 텐데, 가난한 지방대 조교수 월급으로 어떻게 뒷바라지를 하지?
크크크. 아빠 걱정하지 마. 나중에 친한 애들끼리 뭉쳐서… 버스킹 해가지구 돈 모으기로 했거든? 아빠 버스킹 알지? 영어로 busking. 왜 거 있잖아?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거…
야! 학교는 어떻게 하고 길거리 공연을 해? 공부는 아예 때려 칠거야? 대학은 벌써 포기한 거니?
어? 아빠가 웬일? 생전 공부하라는 소리는 한 번도 안하더니…. 아빠도 다른 부모님들하고 똑같네 뭐….

아이의 목소리에서 살며시, 불만이 묻어나온다.

어쨌거나 대학 가서 할 거니까… 걱정은 붙들어 매시와요, 네?
그렇지? 대학 가서 할 거지? 보영아. 아빤 말이다… 아빤 그냥, 네가 행복하길 바랄뿐이야.
응?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
공부를 열심히 하고 안 하고는, 사실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라는 뜻이야.
근데 왜…?
그러니까, 보영아. 세상이 잘못돼서, 이 사회는 대학 졸업장 없이는… 남들한테 차별받을 가능성이 아주 많아. 더군다나 고등학교도 졸업 못했다간… 그건,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 그래서 아빤 걱정하는 것뿐이야. 혹시나 네가 불행하게 살까봐. 아빠도 부몬데… 뭐 별 수 있겠니? 근데 어쨌거나, 그건 그렇다 치고… 반에서 제일 친한 애들이 누구냐니까 너 자꾸 딴 소리 할래?

계속 했다간, 분위기가 딱딱해질 것 같아 얼른 화제를 바꾼다.

히~ 그랬었나? 음… 그럼, 제일 친한 애들… 어디 가나다순으로 한 번 꼽아볼까용? 우선, 김담비, 김도언, 김빛나라, 김소연, 김수경, 김시연, 김영은, 김주은, 김지인, 김초원…
야! 제일 친한 친구들!
가만있어봐 아빠. 아직 안 끝났거든? 에, 또… 박영란, 박예슬, 박지우, 박지윤, 박채연, 백지숙, 신승희, 유예은, 유혜원, 하이고 숨차. 마저 해야지. 이지민, 장주이, 전영수, 정예진, 최수희, 최윤민, 한은지, 황지현. 끝!
쯧쯧쯧. 제일 친한 애들이 누구냐니까, 진짜로 지네 반 애들 이름을 다 부르고 있네? 몇 명 빠진 거 같은데, 그러지 말고 마저 부르지 그러니?
아빠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 몇 명 빠진 거. 히­ 걔네들도 당근 친한데, 그건 그냥 나중에 말하려고 그랬지!
그럼 니네 반 애들… 생각나는 대로 한 명씩, 한 번 얘기해볼래? 아빠도 니 친구들이 어떤 애들인지는 알고 있어야 하잖아.
음… 그럼 아빠, 잠깐만….

아이가 마우스로 몇 번 클릭을 하니, '단원고 2학년 3반'이라는 폴더가 열린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파일 하나를 누르니… 쇼파 위에서 기타를 치고 있는, 어떤 여학생 사진이 화면에 뜬다.

아빠, 얘는 시연이야. 김시연. 시연이는 나랑 취미가 같아. 걔도 음악을 좋아해서 직접 컴퓨터로 작곡도 하고 그러거든?
그러니? 그럼 시연이도 가수가 꿈이야?
아니. 나중에 음악 교사 되는 게 꿈이래. 근데 있잖아 아빠. 걔가 얼마 전에 자기가 작곡했던 곡, 애들한테 들려줬는데… 제목이 글쎄, '난 말야'래!
'난 말야'? '난 말이야'가 아니고?
응. '난 말야'….
하긴, 니들 나이 때는 말을 줄여서 하는 게 보통이니까, 일부러 그랬을 수도 있겠네? 근데, 제목이… 꼭 누구한테 자신을 소개하는 내용인 것 같은데?
그치? 가사에 '난 네가 끓여준 치즈라면도 먹고 싶고, 네가 해 준 김치볶음밥 먹는 건 내 꿈이야' 어쩌고 하는 내용이 나오거든?
그러니? 가사가 참 재미있구나.
응. 근데 그게… 아마도, 꼭 지 남친한테 하는 소리로 들린단 말이야? 시연이가 얼마 전에 남자 친구가 생겼거든. 어디… 학교 가서 한 번 놀려볼까? 크크크. 재밌겠지 아빠?
어이구… 너도 그러다 남자친구 생기면 어쩌려고? 됐고! 다른 친구들 얘기도, 한 번 계속 해봐!

친구 얘기를 떠 올리자, 아이는 마냥 좋은가 보다. 벌써 다른 아이 얘기를 꺼내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짓고 있다. 하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시절…. 보영아, 우정이 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들이 바로 그 때란다.

흠. 다음은 예은이. 유예은. 예은이는 쌍둥이인데… 예은이가 동생이야. 근데, 예은이는 평소엔 되게 얌전해. 근데, 마이크만 잡으면 애가 싹 달라져. 예은이도 나중에 가수가 꿈이래.
허허… 노래 잘하는 아이들이 그렇게도 많아? 우리 딸, 경쟁률 치열해서 참 좋겠네?
아빠, 나 또 놀리려고 그러지?
아니? 그냥 걱정돼서.
뭐 어때? 노래 잘하는 시연이랑 예은이, 그리고 나… 이렇게 같이 팀 만들면 되잖아?
오호라. 그런 방법이 있었네? 우리 딸내미 머리 참 좋은데?
어쨌거나, 예은이가 얼마 전에 어떤 방송사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를 했는데… 세상에, 신청서에다 제일 행복했던 순간이 '보컬학원에 등록했을 때'라고 적었대. 놀랍지 않아 아빠?
놀랍구나. 정말 음악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런 말 참 쉽지 않을 텐데…. 보영아, 너 예은이한테 그런 점은 좀 배워야 하지 않겠니?
그런가? 히히. 아빠 근데… 4월 30일 날 뮤지컬 '캣츠' 공연하는데, 예은이가 같이 보러 가재. 나 예은이랑 같이, 공연 보러 가도 돼?
그럼! 뮤지컬 같은 거 많이 봐두면 음악 공부도 되고 참 좋지. 근데 너하고 친한 애들은 다들 그렇게 음악을 좋아하니?
아니? 예슬이는 음악보다는 그림! 애가 예슬이. 박예슬.

아이가 다시 또 다른 파일을 클릭하자, 깜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학생 사진 하나가 화면에 뜬다.

예슬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대. 근데, 그때부터 여자 구두에서 또각또각 나는 그 소리가 좋아서… 한번은 지네 엄마 구두를 신고 밖에 나가기도 했대. 어려서부터 그래서 그런지, 예슬이는 구두 디자인 하는 걸 참 좋아해.
구두 디자인? 참 특이한데? 목표 의식이 아주 분명한 아인가 보구나.
그렇지 아빠? 얼마 전에, 예슬이가 직접 하이힐 디자인 거 나한테 보여줬거든? 근데 정말 깜짝 놀랐어. 너무 너무 잘 그려서…. 예슬이는 앞으로 꿈이 패션 디자이너라는데… 꼭 그렇게 될 것 같은 생각!
이야! 대단하네…. 벌써부터 그런 구체적인 생각을 다 하고….
그치? 근데, 거기다가 그림만 잘 그리는 게 아니고, 애가 워낙에 착하기까지 해요 글쎄…. 한 달 용돈이 5만 원인데… 그거 동생 예진이하고 같이 모아서, 아빠 생일선물도 사고 매달 기부도 하고 그랬대. 티오피( T.O.P )라는 자원봉사 동아리에서 노인복지시설 봉사 활동도 하고.
허허허 그것 참…. 정말 기특한 애구나. 요즘 그런 애들 보기가 참 쉽지 않은데… 보영아. 너도 봉사활동도 좀 해봐? 예슬이같은 친구가 옆에 있는 것도 다 복이란다.
응. 그렇지 않아도, 수학여행 갔다 오면 예슬이랑 같이 노인 복지 시설 자원 봉사 하기로 약속했거든? 다른 애들이랑 같이.
다른 애들? 다른 애들 누구?

아이는,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있다는 걸 자꾸만 자랑하고 싶은 모양이다. 친구들 얘기를 하는 내내, 환한 표정이다.

아빠. 아까 얘기했지? 우리 학교에 착한 애들 정말 많다고…. 소연이하고 승희도 그래.
그러니? 걔네들은 또 어떤 아이들인데?

 '아이들 이름 지워지기 전에...'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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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소연이. 김소연. 소연이는 우리처럼…, 아빠하고 소연이하고 단 둘이서만 살아. 근데, 소연이 아빠가 공장에 다니면서 이것저것 힘들게 일을 했는데, 글쎄 그만… 소연이 아빠가 자동차 부품 공장 다닐 때, 오른손하고 왼손 손가락이 여섯 개나 잘리고 말았대.
어이구, 저런….
소연이는 아빠가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 거를 알고서는,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대.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 때 공부를 잘해서 상도 받고 장학금도 받았는데…
초등학교 때, 장학금까지?
응. 근데 있잖아 아빠. 세상에… 그 장학금으로 초등학교 졸업식 하는 날, 소연이가 지네 아빠하고 아빠 친구 분들 식사 대접을 했대 글쎄?
으응? 소연이 아빠가 아니라, 소연이가?
글쎄 말이야. 나 같으면 그냥 나 먹고 싶은 거 군것질 하느라 바쁠 텐데…. 근데 소연이는… 공돈 생겼으니까 좋아하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하고서는, 실제로는 어른들 생각해서 삼겹살집을 갔대! 그 때 음식 값이 무려 17만 원이나 나왔는데… 글쎄 그걸 소연이가, 장학금 받은 걸로 다 계산을 했대. 아빠 그게 믿어져?
안 믿어져. 겨우 초등학생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그러게 말이야…. 어른들이 그렇게 말리는데도 소연이는 그랬대! 지네 아빠 기쁘게 해준다고…. 소연이는 나중에 중학교 교사가 되는 게 꿈이라는데, 내 생각엔 아마도… 정말 좋은 선생님 될 것 같아.
그것 참…. 근데, 그 얘기를 듣고 있으려니까 갑자기 가슴이 왜 이렇게 먹먹하지?…

아빠 근데, 승희는… 소연이랑 성격이 참 비슷해.
어떤 점이?

순간, 한참 즐겁게 얘기하던 아이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진다.

승희는 위로 승아 언니라고 언니가 하나 있는데, 어렸을 때 승아 언니가 자주 아팠었대. 그래선지 승희가 막내인데도… 엄마가 일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 힘들지?' 그러면서 꼭 어깨를 주물러줬대. 김치 담그는 것도 거들고, 설거지도 대신 해주고.
그것 참, 어쩌면 애들이 그러냐?… 다들 천사가 따로 없네?
승희도 공부를 잘해서 고등학교 2학년 되자마자 안산시에서 성적 우수로 장학금을 받았거든? 근데, 얘도 소연이처럼 그 장학금 받은 걸로 어제 4월 12일 날, 지네 엄마 아빠 결혼 20주년 기념 여행을 보내드렸대.
이번에는 장학금 받은 걸로… 부모님 여행을 보내줬다고? 허허허.
근데, 승희도 전에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었는데… 요즘은 대학가면 경영학과를 갈까 하고 고민을 하고 있더라고. 얼른 돈 벌어서 부모님 고생 안하게 해드리고 싶다고. 승희는 뭐든지 열심히 하니까 잘 될 거라고 봐. 뭐가 되었건. 근데 아빠. 지난 3월 달에 천안함 4주기 추모 글짓기 대회에서 승희가 입상을 했었는데… 아빠, 내가 그 시 한 번 보여줄까?"

아이가 컴퓨터에서 또 다른 파일 하나를 열어 보인다. 거기에 승희가 썼다는 그 시가 있었다. 훗날 사람들의 가슴을 그토록 아프게 했던….

항해

- 신승희

어느 고요한 밤
잔잔한 바다에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기운이
우리의 가슴에 남아
계속
쿡,쿡 찌른다.

그 아픔에
우리의 눈물이 비가되어
잔잔한 바다와
뒤섞인다.

우리는
잔잔한 바다를
영원히
함께 항해하리...

아빠. 승희가 쓴 시 어때? 어쩐지 너무 슬프지? 특히 '우리는 잔잔한 바다를 영원히 함께 항해하리'라는 마지막 부분. 너무 힘들고 쓸쓸할 것 같아. 바다를 영원히 항해한다면….
그래. 그렇구나. 추모시니까 그랬겠지….

아빠. 근데, 승희가 '공부 열심히 해서 나중에 돈 벌면 엄마 아빠한테 다 보답할게'라는 말을 지네 엄마한테 그렇게 자주 했대. 그래서 내가 왜 그랬냐고 물어봤더니, 이걸 나한테 보여줬어.
그게 뭐니?…
승희가 1년 전에 썼던 일기, 휴대폰에 저장해 논 거…. 이거 한 번 봐봐.

아이가 보여준 승희의 일기. 거기엔 어린 승희가 가족들을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승희양 휴대폰에서 발견된 세월호 참사 1년전 어느 날 일기.
 승희양 휴대폰에서 발견된 세월호 참사 1년전 어느 날 일기.
ⓒ 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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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일… 세월호 참사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지급 기준이 발표됐다.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통해, 진상 규명 가능성은 아예 처음부터 짓밟으려는 시도와 함께…. 대체 어떤 인간들이 그런 시나리오를 짜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건 정말로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발상이었다.

그동안 유가족들이 처절하게 겪었던 그 고통들… 그걸 단순히, 돈을 뜯어내기 위한 협잡질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아니고 뭐였겠는가? '진상규명이고 뭐고, 그냥 입 다물고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그런 계산이 아니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그들에게 묻고 싶다. 이 착하디 착한 어린 아이들이 가졌던 꿈의 무게… 그게 대체 얼마짜리라고 생각을 하나? 아이들이, 꿈을 향해 한 방울 한 방울 흘렸던 땀들과, 미래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 그리고 '가족'이라는 연대감이 주었던 그 소중하고 따뜻한 안도감. 고단한 삶의 한가운데서도 하루 하루 소소한 순간들을 밝혀준 아이들의 웃음소리들. 당신들에겐 그게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유족들에겐 너무도 그립고 다시 듣고 싶은 그 웃음소리들…. 그게 대체 얼마짜리라고 생각하는가?

모든 것들이 그렇게 무너지고… 일상의 공기가 슬픔으로만 채워진 지금. 아무 죄도 없는 그 어린 것들을 그토록 무참하게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게 했던 것으로도 그대들은 모자랐던가? 그래서 겨우겨우 하루를 살아내는… '유가족'이라는 이름의 서글픈 사람들 심장을, 발기발기 찢어버리지 못해서 그대들은 그토록 안달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대들에게도 한 번 물어보자. 만약 그대들 자식들이었다면… 당신들은 어땠겠는가? 당신들 자식 목숨 값은 대체 얼마로 칠거냔 말이다!

아이는 갑자기 승희 생각이 났는지 방울방울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말없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가만히 어깨를 안아주면서 생각을 한다.

'녀석. 다 컸네? 주위 사람들 마음도 이젠 헤아릴 줄도 알고…. 보영아. 너도 네 친구들처럼 예쁘고 착한 아이란다. 친구들과의 우정, 영원하기를… 아빠가 빌게.'

험험! 보영아. 그 친구들하고 앞으로도 계속 잘 지낼 거지? 니 생일 되면 꼭 그 애들 다 데리고 와. 아빠도 직접 한 번 보고 싶구나.
응. 알았어. 꼭 데리고 올게.
그나저나, 있다 저녁에 시내에서 저녁 약속 있는 거 알지? 이제 슬슬 준비 해야겠네? 다른 친구들 얘기는 나중에 다시 들을까?
그래. 아빠.

순간, 휴대폰 벨소리가 울린다. 발신인, '안산 태권도장 김상택'. 휴대폰을 귓가로 가져가며, 문득 창문 밖을 바라다본다. 거기, 은은한 진달래꽃 향기와 함께 해질녘 노을이 서서히 비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날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날들은… 다시 오지 않는다.

지난해 5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을 요구하며 전날 밤부터 길거리에 앉아 항의하던 곳에 노란 종이배들이 놓여 있다.
▲ 청와대 앞 띄워진 노란 종이배 지난해 5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을 요구하며 전날 밤부터 길거리에 앉아 항의하던 곳에 노란 종이배들이 놓여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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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아이들의 사연은, 그동안의 각종 인터뷰나 언론 기사들 그리고 유가족들의 구술 기록인 '금요일엔 돌아오렴' 등을 참고했습니다.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많은 분들... '금요일엔 돌아오렴' 많이 사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10회부터는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 대화문의 따옴표는 생략하고, 글자 색깔도 검정색으로 통일합니다.



태그:#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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