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물> 포스터

영화 <스물> 포스터 ⓒ (주) 영화나무


지난 1일 누적 관객수 147만을 돌파하며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한동안 침체기에 빠진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러일으키는 영화 <스물>. 2013년 <힘내세요, 병헌씨>라는 걸출한 독립 영화 한 편을 내놓은 이병헌 감독은 자신의 재능을 십분 살려, 유쾌하지만 마냥 가볍지 않은 재기발랄한 청춘 영화를 완성시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저절로 성인이 된 치호(김우빈 분), 동우(준호 분), 경재(강하늘 분)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고, 각자 갈 길을 선택한다. 공부를 잘해 명문대에 입학한 경재는 한눈팔지 않고 대기업 취업에만 몰두할 것을 다짐하고, 만화가를 꿈꾸는 동우는 치킨집 알바를 하며 미대 입시를 준비한다.

그래도 동우와 경재는 그럭저럭 자기 살 길을 정해서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문제는 치호다. 유명한 요리사를 아버지를 둔 덕분에 윤택하게 살아가는 치호는 매일 밤 클럽에서 여자들과 노는 것 이외에 딱히 하는 일이 없어 보인다.

클럽에서 노는 것 이외에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뿐. 무언가 목표를 두고 열심히 하지 않는 치호는 부모 입장에서 그야말로 눈엣가시다. 하지만 그렇다고 치호가 인생을 다 산 사람처럼 삶에 대한 의지를 완전히 접은 것도 아니다. 여자들과 노느라고, 대학에 다니고 알바하고 재수하는 동우, 경재 못지 않게 바쁘게(?) 살아간다. 다만, 흥미를 느끼고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힘내세요, 병헌씨>가 그랬듯 <스물>의 주인공들은 하고 싶은 것도 있고, 이루고 싶은 바도 뚜렷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찌질이'가 되어버린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을 뛰어넘을 정도로 확고하지도 독하지도 못한 주인공들은 결국 한계에 부딪치고 넘어지게 된다. 그러나 좌절은 하되, 절망은 하지 않는 이들은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난다. 아련한 첫 사랑이 악몽처럼 끝나고,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힘들게 준비하던 미대 입시를 포기하는 순간이 와도 <스물>의 청춘들은 울지 않는다.

성장통 속에서도 그들은 유쾌하다
 영화 <스물> 한 장면

영화 <스물> 한 장면 ⓒ (주) 영화나무


이병헌 감독이 추구하는 세계의 인물들은 과거 청춘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온 몸을 불태우며, 자신들의 한계를 정면으로 돌파하려고 하지 않는다. 상업 영화 진출이 좌절된 <힘내세요, 병헌씨>의 병헌과 친구들이 독립 단편영화를 찍으면서 영화에 대한 꿈과 열정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처럼 <스물>의 동우도 유명 대학교 애니메이션학과가 아닌 공장에 다닐 뿐, 계속 만화를 그리고 블로그를 통해 작품을 발표한다.

각자 가지고 있는 목표 하에 열심히는 살아가지만 딱히 이룬 성과도 없고, 좌절하는 청춘들은 기성세대의 눈으로 봤을 때는 한심하고 딱하다. 어른의 관점에서 관심있는 여자에게 에너지를 소비하고,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이 뻔히 보이는데 딱히 가능성도 없어보이는 허황된 꿈에 열정과 역량을 쏟아붓는 청춘들은 '잉여'요, '찌질이'이다.

이병헌 감독과 그가 만들어낸 세계 속 청춘들은 자신들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들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를 '찌질이', '병신'으로 자청하며, 자신들의 미숙함과 한계를 긍정하고, 그 속에서 오는 좌절과 슬픔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이들은 자신들을 '찌질이'라고 비웃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달린다. 다만, 그 방식 또한 그 과정을 이미 겪어본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시행착오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나름의 방식대로 꿈을 향해 정진하고, 열심히 뛰어다니는 이들의 성장을 잉여스럽다고 폄하할 수 있을까.

<힘내세요, 병헌씨>에 이어 이병헌 감독이 <스물>에서 택한 엔딩은 열린 결말이다. 아직 확실한 무언가를 이루지 못한 미생들이기에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일도 없긴 하지만, 그만큼 아직 할 일과 이야기가 많다. 비록 지금은 좌절이라는 혹독한 성장통을 겪고 있지만, 그 아픔을 계기로 조만간 우뚝 솟을, 이병헌 감독의 영화 속 건강한 청년들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화 <스물> 한 장면

영화 <스물> 한 장면 ⓒ (주) 영화나무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너돌양의 세상전망대), 미디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스물 이병헌 감독 김우빈 준호 강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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