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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도 못 채울 걸. 작년에도 그랬으니깐."

학생총회를 앞두고, 어느 광운대생이 친구에게 건넨 자조 섞인 표현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학생이 이야기하는 중에도 총회 장소를 그냥 지나가는 학생들이 상당수였다. 그 학생의 우려는 현실화되는 듯 보였다.

학생총회는 매년 개회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2013년을 제외하고 회의가 계속 무산됐다. 광운대 학칙상 학생총회는 재학인원의 10% 이상이 참석해야 회의에 효력이 발생한다. 그동안의 학생총회가 이 정족수를 제대로 채우지 못한 것이다.

지난 3월 25일 오후 6시. 학생총회 개회시간이다. 새파란 신입생부터 고학번 조상님까지, 학생총회 장소는 학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총회 입장을 기다리는 학생들의 '인간띠'가 순식간에 형성됐다. 그러나 그 사이로 여전히 자기 갈 길을 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학생총회 성사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또 다른 총회가 열리다

지난 3월 25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조합원 총회가 열렸다. 조합원들이 참빛관 국제회의실(총회 장소)로 향하고 있다.
 지난 3월 25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조합원 총회가 열렸다. 조합원들이 참빛관 국제회의실(총회 장소)로 향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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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총회 시작 4시간여 전, 또 다른 총회가 광운대 안에서 벌어졌다. 바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조합원 총회다. 이 분회는 현재 광운대 내부를 깨끗하게 쓸고 닦는 청소노동자들로 구성됐다. 그렇다고 광운대의 모든 청소노동자가 이 노조에 가입한 건 아니다.

이 총회는 학생총회에 비해 주목도가 떨어진다.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니지만, 또한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던 것도 사실이다. 조합원들은 총회를 홍보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모일 테니까.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은 이미 노조 결성 이후 바뀐 자신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때문에 총회의 중요성도 잘 안다. 이번 총회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의해 소집됐다.

총회 장소 안에는 김준환 서경지부 조직국장과 최다혜 조직차장, 광운대분회장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김 국장과 최 차장은 민주노총 상근자로서 광운대분회가 만들어질 때부터 함께 해왔다. 그래서일까. 노조원들은 이 두 사람을 믿고 따른다. 두 사람 또한 노조원들을 엄마처럼 여긴다.

청소노동자들이 하나둘 총회 장소로 모이기 시작했다. 분회장은 총회에 오는 조합원들에게 비타민 음료와 조합원 총회 관련 문서를 건넸다. 조합원들은 서로 얼굴을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한다. 학창시절 친한 친구끼리 짝꿍을 하듯, 서로가 옆자리에 딱 달라붙어 앉아 있는 조합원들도 있었다. 가운데쯤에 앉은 어느 조합원도 그중 하나였다.

"오랜만에 보는 동료들이 반갑지요. 청소구역이 바뀌기 전까지 같이 근무했으니, 옛 친구 같아요. 청소일도 바쁘고, 거리도 멀어서 이럴 때 아니면 보기 힘들어요. 그래서 같이 앉으려고 하죠."

그런데 중간 자리에 유독 튀는 조합원이 있었다. 수많은 여성 조합원들 사이에 앉아 있는 2명의 남성 조합원이다. 그야말로 '청일점' 아니 '청이점'이었다. 여성 청소노동자들이 건물 내부를 청소한다면, 이 남성 청소노동자들은 건물 내·외부를 돌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것이 주 업무다. 밖에서 비질도 한다. 대학 청소노동자라 하면 무조건 여성일 거란 편견은 이제 접어둬야 한다.

명예 청소노동자, 조합원 총회에 참석하다

김준환 서경지부 조직국장이 주요 교섭사항을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김준환 서경지부 조직국장이 주요 교섭사항을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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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는 오후 1시 30분 즈음 시작됐다. 나는 비노조원이지만, 명예 청소노동자 자격으로 조합원 총회에 참석했다. 지난 3월, 일일 보조 청소노동자로 일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관련기사 : 군대서 '빡세게' 했던 청소, 아이고 의미 없다). 조합원 총회는 생애 처음 경험해본다. 설렘 반, 걱정 반이었다.

김 국장이 연단 위에 섰다. 김 국장은 분위기를 풀려는 듯, 조합원들에게 한 마디 건넸다.

"그동안 계속 중앙도서관 계단 강의실에서 총회를 해왔는데, 오늘은 국제 회의실에서 하네요. 뭔가 기분이 새롭습니다. 회의실이 넓어서 마음에도 꼭 들고요. 여하튼 분위기도 참 좋네요. 여러분도 회의할 마음이 팍팍 생기시죠?"

이어서 지금까지의 단체교섭 상황을 조합원들에게 설명했다. 조합원들의 표정도 사뭇 진지해졌다. 교섭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광운대분회는 공공운수노조 규약에 따라 임금 및 단체교섭을 진행해왔다.

김 국장은 사용자 측과 노조 측이 첨예하게 대립 중인 임금협약 등 주요 교섭사항을 족집게 강의하듯 찍어서 조합원들에게 알려줬다.

"서경지부 집단교섭 사상 최저 인상률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사측은 계속해서 거부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동결을 주장하다가, 이제는 200원 인상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사측이 주장하는 6400원은 정부가 권고한 2015년 시중노임단가 8019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노동자들에게 최소한 인간답게 살 권리는 보장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김 국장의 말을 들어보니, 최저임금위원회의 최저임금 결정과 닮은 듯했다. 이를테면 위원회에 참석한 사용자위원이 처음에는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하다가, 그 이후부터 제시 금액을 찔끔 올리는 모습이 그러하다.

김 국장이 조합원 복지기금에 대해 이야기하던 순간이었다. 때마침 어디선가 번쩍 들린 손이 보였다.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질문하라고 해도, 손 드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곳은 여기저기서 갑자기 질문이 이어졌다. 질문의 요지는 조합원 복지기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김 국장은 이 질문에 자세하게 답변했다. 이 부분에서 설명시간이 꽤 길어졌다. 김 국장은 노조원들이 이해할 때까지 설명했다. 김 국장의 설명을 들은 조합원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자신의 의문을 해소한 듯싶었다. 총회가 끝나고 들은 얘기인데, 이런 질문은 매번 총회 때마다 나온단다.

노동자의 권리는 단결에서 온다

최다혜 서경지부 조직차장이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다.
 최다혜 서경지부 조직차장이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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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최 차장이 연단에 섰다. 최 차장은 조합원들이 오는 24일 민주노총 총파업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해줬다. 칠판에 분필로 무언가를 써가면서 설명을 쉽게 풀어나갔다. 김 국장도 한마디 곁들였다.

"한 사람이 사용자에게 뭔가 잘못된 것을 바꿔달라고 하면, 그 사람은 곧바로 해고됩니다. 하지만 다섯 명이 모여서 함께 가면, 사용자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확인이라도 해봅니다. 그것이 단결의 힘이지요."

단결이 결국 노동자의 권리를 향상하는 데 꼭 필요한 존재라는 점을 피력한 것이다.

최 차장은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대한 설명도 이어갔다. 요즘 비정규직 문제가 화두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비정규직 기간제한을 본인이 원하면(35세 이상)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것이 가능해지고, 현재 32개로 제한한 파견허용 업종을 55세 이상 고령 노동자에 대해서는 모든 업종으로 허용하겠다는 부분이다. 청소노동자 모두가 비정규직이란 점에서 이 문제는 그냥 넘어가기 힘들어 보였다.

"고용노동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상당히 불리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불안과 저임금 문제를 더욱 극심하게 만드는 정책입니다. 조합원 여러분들, 드라마 <미생>에 나온 장그래 아시죠? 장그래도 여러분과 같은 비정규직입니다. 그런데 요즘 고용노동부가 이 대책을 '장그래법'이라 홍보하고 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실상 '장그래 양산법'이나 다름없는 정책을 말이죠."

"맞아. 맞아. 우리한테 불리한 대책이네."

조합원 중 일부가 최 차장의 설명에 맞장구친다.

파업의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이어졌다. 서경지부의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이 최종 결렬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쟁의 조정회의는 아직 진행 중이다. 조합원들은 차례차례 줄을 서서 투표를 기다렸다. 자신이 투표할 차례가 오자 조합원들은 각자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그중 한 조합원이 내게 다가와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설명해줬다.

"노동자의 권리가 침해받는데, 당연히 우리의 단결된 힘을 보여줘야죠."

그는 쟁의행위에 찬성표를 찍었을까. 갑자기 다른 조합원들의 투표 결과도 궁금해졌다. 이번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찬성표는 얼마나 나올까. 현재 진행 중인 쟁의조정 과정에서 노사 간에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면, 서경지부 참가 분회인 광운대분회는 이제 이 투표 결과에 따라 쟁의행위를 시작할 것이다. 일부 국민들은 쟁의행위를 불온시하고 불법화하지만, 정당한 쟁의행위는 노조법의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서 진행되는 노동자의 주요한 투쟁 방식이다.

"아직도 우리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갈 길은 멀고도 멉니다. 우리도 정말 인간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단결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의 권리는 자신만이 지킬 수 있습니다. 함께 갑시다."

분회장의 총회 마무리 발언이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총회는 그렇게 친교의 공간이자, 학습의 공간이고, 토론의 공간이며, 단결의 공간이었다.

조합원 총회가 끝나고, 몇 시간 후에 진행된 학생총회는 정족수를 채웠다. 그 학생의 부정적인 예상은 빗나갔다. 학생총회가 성사되자 학생들의 요구 안건은 회의장에서 논의됐다. 총학생회는 이 요구안을 갖고 학교 측과 협상할 것이다. 학교 측도 최소한 이 요구안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이행할지 여부를 판가름할 것이다.

하지만 광운대는 대학의 또 다른 구성원인 청소노동자의 요구에 묵묵부답이다. 그사이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의 노동권은 후퇴되고 있다. 학생총회에 참석했던 학생들은 청소노동자들의 이런 사정을 알고 있을까. 단체교섭 상황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광운대 안에 파업의 기운이 서서히 감지되고 있다. 광운대는 지금 그야말로 '파업전야'다.


태그:#조합원총회,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청소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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