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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통한과 고통속에서 민족 자존과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절절한 기개를 표현했던 애국의 노래다. 

우리 후손들은 아직 이 애국가에 대해 큰 빚을 지고 있다. 단순한 나라 상징물의 의미를 훨씬 뛰어넘어 해방을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렸던 선조들의 얼과 정신이 서려 있는 이 애국가의 가사를 누가 썼는지 광복 70주년이 될때까지도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 이런 가운데 지난달 31일(화) 오후 2시,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흥사단 주최로 애국가 작사자 연구논문 발표회가 있었다.

이 토론회에서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가 윤치호 작사설을 주장했다. 윤치호가 자신이 설립한 한영서원 교재로 찬미가를 편찬해 보급하고 1945년 10월경에 애국가 가사를 옮겨 쓴 '가사지'를 남겼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대해 안용환 명지대 국제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윤정경 애국가 연구가는 각각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안창호가 작사자라고 주장했다. 안 교수는 1907년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된 무궁화가가 현재 애국가의 원형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이 애국창가집 무궁화가에 나오는 '오백년', '천만세(인)' 단어가 1898년 1월 협성회보 창간호 논설문에도 등장하며, 안창호가 이 배재학당 일에 당시 깊은 연관이 있었음을 주장하고 나선 것.

새로운 증언도 나와 눈길을 모았다. 1907년 3월, 안창호 선생이 선천예배당에서 애국찬미가(애국가) 시상을 착상했고 이 대화를 나눈 사람인 윤형관 집사의 막내 동생인 윤형갑의 종손 윤정경이 채록된 자료를 공개했는데, 애국가에 등장하는 무궁화는 근화(槿花)라는 식물(植物)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무궁(無窮)한 억조(億兆)창생(蒼生)을 지칭하기 위해 안창호 선생이 창작한 낱말이라고 안창호 선생이 직접 말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거기에 주권재민의 의미와 애국가가 민중의 노래가 되기 위해 인쇄물이 아닌 구두로 이를 전파했고 임시정부내에서도 독립운동 세력간 다툼이 있어 나(안창호)의 작품으로 얘기하는 것이 부작용이 있을 것이니 내가 애국가를 지었다고 말하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렸다는 점도 설명됐다.  

(좌)윤치호 (우)안창호
 (좌)윤치호 (우)안창호

애국가를 윤치호가 지었다는 자료들은 확실히 안창호설보다 객관적으로 많다. 그러나 안창호는 자신이 지었다고 한 적이 없는데도 그가 애국가를 지었다는 증언은 계속 나오고 있다. 윤치호설의 핵심인 찬미가가 버젓이 있음에도 그가 애국가를 지은 것이 아니라 안창호가 지은 것을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왜곡되었을 수 있다는 반론은 계속되고 있다. 왜일까? 역사를 돌이킬 수는 없으나 가정은 해볼 수있다라면 필자는 윤치호의 행적속에 그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윤치호는 1911년 105인 사건이 일어나자 친일전향을 조건으로 1915년 2월 13일에 출감한다. 그 후 윤치호는 수십년간 매국적 발언은 물론 적극적 친일 행위에 나섰다. 60년간 금천출납부에 일기까지 직접 썼던 그가 평소 애국가를 자기가 지었다고 말하고 다닌적도 없고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적었던 그의 일기장에는 애국가에 대한 언급이 단 한줄도 없다. 1945년 2월, 일본 귀족원 의원에 선출되어 일본 귀족 이도오 찌꼬오(伊東致昊)가 된 그는 해방이 되자 왜 뜬금없이 애국가를 내가 만들었다고 하고 나섰고 미국에 해방된 조선은 민주주의를 할 능력이 없으니 친일파를 다시 등용하라고 했던 걸까.  

이번 윤정경 옹의 새로운 증언은 안창호 선생 자신이 애국가를 '내가 지었다'고 말했다는 처음의 증언으로, 만약 그가 채록한 독립지사 윤형갑의 전언이 사실이라면 이는 애국가 작사자 논란에 큰 센세이션을 일으킬만한 공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안창호 선생의 새로운 창작자 주장도 아쉬움을 남긴다. 이 모든 것이 모두 증언의 기록이라는 점이다.

애국가는 누가 만들었을까. 누가 그 가삿말에 민중의 한과 통한의 아픔을 투영했고, 우리 겨레의 번영과 해방을 기원하며 애국의 마음으로 아끼고 적어 나갔을까. 이 애국의 노래에 근원을 밝히는 것.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숙제가 아닌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위키트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애국가, #안창호, #윤치호, #흥사단, #찬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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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와 대학원에서 모두 NGO정책을 전공했다. 문화일보 대학생 기자로 활동했고 시민의신문에서 기자 교육을 받았다. 이후 한겨레 전문필진과 보도통신사 뉴스와이어의 전문칼럼위원등으로 필력을 펼쳤다. 지금은 오마이뉴스와 시민사회신문, 인터넷저널을 비롯, 각종 온오프라인 언론매체에서 NGO와 청소년분야 기사 및 칼럼을 주로 써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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