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스포츠, 단체 스포츠를 불문하고 스포츠라는 종목에서 우승이 차지하는 의미는 절대적이다. 아무리 결과보다 과정이라고 하지만 '기록은 영원하다'라는 또 다른 격언이 증명해주듯 마지막 끝점을 찍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엇비슷한 조건이라면 결국 그들의 커리어를 가르는 것은 정상을 밟아본 유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NBA(미 프로농구)의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과 국내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전신 해태 포함)가 해외 팬들에게까지 '전설 중의 전설'로 평가받는 배경에는 수없이 많이 왕좌를 차지했고 더불어 그 마지막 싸움의 장에서 유독 강했기 때문이다. 조던과 타이거즈는 각각 파이널과 한국시리즈에서 단 한번도 패하지 않은 '불패의 신화'를 가지고 있다. 이는 그들 각자는 물론 응원하는 팬들에게도 커다란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한때 전 세계 입식격투계의 메이저리그로 통했던 K-1역시 예외는 아니다. 꽤 유명했던 파이터라 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팬들의 기억 속에서 옅어질 수 밖에 없는데 결국 가장 오랫동안 회자되는 것은 우승자들이 대부분이다. K-1자체가 월드컵을 연상시키듯 각종 예선전을 통해 연말 파이널 그랑프리를 벌였던 터인지라 뭐니뭐니 해도 한해의 관심도를 독식하는 것은 단연 우승자였다.

당시에는 생각보다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승자 혹은 우승 타이틀이 많은 선수는 얼마든지 재평가될 수 있다. 수많은 입식괴물들 사이에서 최후의 승리자가 됐다는 것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을 여지가 충분하며 해당 대회나 단체의 역사를 논할 때도 빠질 수가 없다. 실제로 브랑코 시가틱(61·크로아티아)은 K-1에서 활약한 기간도 짧았거니와 팬들의 엄청난 인기를 얻은 케이스도 아니지만 원년 우승자라는 타이틀로 인해 K-1 레전드로서 영원히 이름을 얻고 있다.

반대로 그랑프리 챔피언에 버금가는 기량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우승 타이틀이 없어 무관에 울었던 전설들도 존재한다. 미르코 크로캅, 레이 세포, 마이크 베르나르도, 프란시스코 필리오 등은 최소 한두 번 쯤은 그랑프리 파이널을 접수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강자들이다. 그리고 그 정점에서 '무관의 제왕'의 대표적(?) 아이콘으로 뿌리박힌 선수가 있으니 다름 아닌 '하이퍼 배틀 사이보그' 제롬 르 밴너(43·프랑스)가 그 주인공이다.

 제롬 르 밴너는 K-1을 대표하던 '무관의 제왕'이다.

제롬 르 밴너는 K-1을 대표하던 '무관의 제왕'이다. ⓒ K-1


가장 뜨거웠던 사나이, 팬들의 기억 속에는 챔피언

밴너는 K-1 인기 파이터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1995년 데뷔 이래 흥행전선에서 이탈하지 않고 꾸준하게 팬들에게 사랑받았다. 특히 자신만의 캐릭터가 확실했던지라 K-1 팬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확실한 존재감을 자랑했다.

밴너가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간단하다. 승패를 떠나 변함없이 화끈했기 때문이다. 물러설 줄 모르는 특유의 파이팅을 바탕으로 난타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후퇴를 모르는 이른바 '전진본능'은 입식격투는 이런 것이다,를 온몸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밴너의 가장 큰 무기는 역시 무시무시한 강펀치다. 눈앞의 상대를 무자비하게 두들겨 부수는 펀치 세례는 보는 것만으로도 움찔거릴 정도로 가공할 파괴력이 묻어난다. 특히 전성기 구사하던 레프트 스트레이트는 '가드를 부수고 안면까지 박살 낸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극찬을 받았다. 헤비급 프로복싱계의 레전드 에반더 홀리필드의 스파링 파트너는 물론 세계적 프로모터 돈킹에게 프로복싱 입문 제의까지 받았을 정도였다.

엄청난 펀치력에 가려져 있기는 했지만 로우킥, 미들킥 등 킥 파워 역시 상당한 수준이었다. 사이보그라는 별명처럼 전신이 공격무기인 인간병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이보그의 메모리 칩에는 가장 강력하게 상대를 때려 부수는 프로그램이 확실하게 인식되어있었다.

선수생활 내내 공격 위주의 파이팅패턴을 구사했지만 힘이 넘치던 젊은 시절의 밴너는 유독 그 정도가 심했다. 경기 시작부터 종료공이 울릴 때까지 공격만 쏟아 부을 정도로 고집 센 캐릭터였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파이터가 가질 수 있는 꿈틀거리는 '공격본능'을 제대로 실천한 '불파이터'의 전형이었다는 평가다.

링 중앙을 선점한 채 끊임없이 전진 스텝을 밟고 나가면 그 위압감에 웬만한 상대들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고, 밴너는 그저 브레이크가 고장난 '상-샤몽 탱크(ST. Chamond)' 마냥 '호치키스기관총(Hotchkiss machine gun)'과 '75mm 탱크포'를 번갈아 뿜어대며 폭격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는 어설프게 가드를 하느니 차라리 한 대 더 때리는 형태의 공격형 수비(?)를 펼칠 정도로 밴너의 공격은 끝이 없었다. 이렇듯 계속되는 파상공세는 반격기회의 말살은 물론 심리적 측면에서도 상대에게 쉼없는 압박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K-1이 추구하던 공격적 경기에 가장 잘 어울리던 선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밴너의 이 같은 스타일은 어떤 면에서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다. 지나칠 정도로 밀어붙이는 공격 스타일 탓에 유리한 흐름을 타면서도 뒤집히는가 하면 상대의 분석에 말려 헛힘을 쓰고 패퇴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분명 자신이 더 공격을 많이 퍼부었음에도 세포, 헌트 등 카운터에 능한 선수들에게 실신 넉아웃 당하는 치욕을 겪는가 하면 운영의 달인 후스트에게는 페이스를 빼앗겨 농락당하기도 했다.

특히 체력-데미지 안배가 절실한 토너먼트 경기에서는 이런 부분이 큰 약점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워낙 한 경기마다 힘을 몽땅 쏟아버리니 이기든 지든 다음 경기에서는 힘이 부칠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지능적으로 운영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물론 저돌적인 스타일로 인해 뜨거운 인기를 얻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점 때문에 지지했던 팬들도 나중에는 노련한 밴너를 요구할 정도였다.

하지만 밴너는 끝까지 그런 스타일을 고수했다. 한때 인파이터의 라이벌로 꼽혔던 아츠마저 시간이 흐른 뒤에는 스타일을 바꾸고 노련미를 입혀 '제3의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지만, 밴너만큼은 세월이 흘러도 한결 같았다. 일각에서는 "고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고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비관적 분석도 제기됐다.

밴너는 파이팅 스타일만 봤을 때는 매우 거칠고 험악한 남자같지만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는 가슴 따뜻한 모습도 많이 보여주었다. 세포처럼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치욕스러울 정도로 농락하지도 않았으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경기 후 상대선수를 뜨겁게 안아주며 승부를 마무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밴너는 상대가 강하든 약하든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공격을 감행하는 파이터의 예의(?)에 충실하고, 다소 흥분한 상태에서도 선전을 다짐하는 상대의 제스처에 꼬박꼬박 화답했다.

밴너의 경기에서 상대방이 억울함을 표시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불같은 파이팅을 선호하는 스타일상 모호한 판정이 나오는 빈도가 낮았고 다운이나 KO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K-1이 입식격투계의 아이콘으로 성장했던 이면에는 라운드가 짧은 대신 화끈한 승부가 자주 펼쳐졌다는 요인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가장 K-1다운 파이팅을 아끼지 않았던 밴너에게 팬들이 챔피언에 버금가는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어쩌면 팬들의 마음속에서 밴너는 진작부터 챔피언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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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다음호 예고: 타고난 싸움꾼… 적정체급 아쉬웠던 작은 거인
무관의 제왕 제롬 르 밴너 프랑스 싸움반장 사이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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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객원기자 / 전) 홀로스 객원기자 / 전) 올레 객원기자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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