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때보다 많은 영화가 개봉하는 요즘이지만 관객들이 체감하는 선택의 폭은 생각만큼 넓지 않다. 많은 관객들이 배급사의 광고, 멀티플렉스의 상영관 배정에 따라 볼 영화를 선택하는데 박스오피스 상위 몇 편의 영화가 관객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현재의 구조를 생각해보면 신작들은 처음부터 공정하지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 실제로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3월 한 달 동안 박스오피스 상위 5편의 영화가 동원한 관객 수는 같은 기간 나머지 영화가 모은 관객수보다 많다. 3월 한 달 간 상영된 영화가 50편이 훌쩍 넘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지면을 통해 매달 개봉하는 영화 가운데 열 편을 추려 소개하는 동시에 매달 최고의 영화를 선정하려 한다. 상업자본과는 독립된 견지에서 기대할 만한 신작을 가려 뽑는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독자가 더욱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1. <분노의 질주: 더 세븐>

분노의 질주: 더 세븐 포스터

▲ 분노의 질주: 더 세븐 포스터 ⓒ UPI 코리아


4월 1일 개봉한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이 거짓말 같은 질주를 펼치고 있다. 개봉 2주차에 접어든 <스물>의 기세를 가볍게 누르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선 것이다. 벌써 7편 째에 접어든 이 시리즈의 연출은 <쏘우>와 <컨저링>으로 빛나는 명성을 쌓은 제임스 완이 이어받았다. 이로써 공포·스릴러 장르의 팬들은 재능있는 연출자를 잃었으나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는 새로운 피를 수혈하였다.

잘 알려진 것처럼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은 2013년 11월 30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폴 워커의 유작이다. 폴 워커는 물론 빈 디젤, 드웨인 존슨, 미셸 로드리게즈, 타이레스 깁슨, 루다크리스, 조다나 브류스터까지 7명의 원년멤버가 모두 함께 출연한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다. 의리를 강조해 온 시리즈 답게 영화는 폴 워커의 캐릭터인 브라이언 오코너를 죽이는 대신 그에게 가족과의 행복한 삶을 선사한다. 폴 워커의 처음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그의 마지막도 함께할 것이다.

2. <파울볼>

파울볼 스페셜 포스터

▲ 파울볼 스페셜 포스터 ⓒ 오퍼스픽쳐스


4월 2일 개봉을 앞둔 조정래,김보경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알려진 것처럼 '야신' 김성근(현 한화 이글스 감독)의 고양 원더스 시절을 다뤘다. 구단주 허민이 사재를 털어 설립한 고양 원더스는 프로팀에 지명받지 못했거나 부상 등을 이유로 방출된 선수들로 구성된 한국 최초의 독립야구단이었다. 6개의 팀을 거치며 세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본 일흔의 노감독이 부임한 이래 이 팀은 한국 야구판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고양 원더스는 어느 리그에도 속하지 못해 제한된 수의 경기만 치를 수 있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많은 선수를 프로구단에 입단시켰다. 선수의 미래를 위해 아무 조건 없이 소속선수를 프로팀에 내주면서도 정식 리그에 들지 못하는 불평등을 감내했던 고양 원더스는 결국 출범 3년 만인 2014년 전격적인 해단을 결정했다.

이 영화는 고양 원더스의 지난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영화의 완성도만 따라준다면 장외룡 감독 시절의 인천 유나이티드 이야기를 담아낸 임유철 감독의 <비상>과도 비견할 만한 작품이 될 것이다. 배우 조진웅이 나레이션을 맡았다.

'선수들의 가능성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기다려주는 것이다' - 김성근

3. <화이트 갓>

화이트 갓 국내 메인 포스터

▲ 화이트 갓 국내 메인 포스터 ⓒ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주목할 만한 시선'은 재능있는 젊은 감독을 발굴하고 격려하기 위해 1998년 도입된 칸영화제의 시상 부문이다. 국내에는 2010년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 2011년 김기덕 감독의 <아리랑>이 대상을 수상하며 널리 알려졌다. 세계 각국의 재능있는 감독이 이 부문을 통해 발굴되고 명성을 얻곤 하는데 권위 있는 시상식에서 그 재능을 공인받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상당하다.

4월 2일 개봉하는 <화이트 갓>은 2014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받았다. 헝가리 출신 코르넬 문드럭초 감독의 여섯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칸에서는 13살 소녀와 그의 애견 간의 유대를 통해 동물학대를 비판하고 있음은 물론 인간에 대한 개의 역습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통쾌함을 자아내는 참신한 작품이란 평가를 얻었다. 일견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를 연상케도 하는데 할리우드와 한국 영화에만 익숙한 관객들에게 색다른 감상을 안길 만한 작품이다. 출연하는 개들도 연기를 '개 잘한다'니 볼 영화가 없어 숨죽이고 있을 동물영화 애호가들은 집합해 마땅하다.

4. <화장>

화장 메인 포스터

▲ 화장 메인 포스터 ⓒ 리틀빅픽쳐스


김훈의 소설을 임권택이 연출하고 안성기가 주연했다는 것만으로 상당한 기대를 모으는 영화다. 연이어 내놓은 실망스런 작품에도 임권택이 존중받아 마땅한 한국 영화계의 자산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가 존 포드가 아니라 임권택을 먼저 알았더라면 감히 작품 수로 최고가 되겠다는 강박은 품지 못했으리라. 오는 9일 개봉을 앞둔 <화장>은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다.

한 편 만들고 몇 년 씩 기다리게 하는 게으른 감독들은 반성하라. 연재가 년 단위로 늘어지는 소설가와 만화가도 마찬가지.

5. <장수상회>

장수상회 포스터

▲ 장수상회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임권택의 <화장>과 같은 날 개봉하는 이 영화 역시 주목할 만한 연출자의 복귀작이다.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 한국 영화사에 발자국을 새긴 강제규 감독의 신작인 것이다. 2011년 <마이웨이>의 참담한 실패 이후 공백기를 가졌던 강제규 감독은 단편 <민우씨 오는 날>에 이어 <장수상회>를 연이어 내놓으며 변신을 도모하는 모양새다. tvN의 <꽃보다 할배> 시리즈에서 보듯 실버세대가 문화적인 키워드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강제규의 이같은 시도가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6. <더 건맨>

더 건맨 포스터

▲ 더 건맨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13구역>, <테이큰>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21세기 액션영화에 새 바람을 일으킨 프랑스 출신 영화인 피에르 모렐의 신작이다. 숀 펜과 하비에르 바르뎀이 주인공과 악당 역할을 맡아 끝내주는 액션을 펼친다는 상상 만으로도 액션팬들의 가슴을 들끓게 하기 충분하다. 조금만 운이 따라 준다면 마이클 만의 1995년작 <히트>의 아성에도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제목인 <더 건맨> 역시 액션영화의 아우라를 내뿜고 있지 않은가.

전직 특수부대원이 홀로 거대한 조직과 상대한다는 설정은 맷 데이먼의 <본>시리즈나 리암 니슨의 <테이큰> 같은 영화에서 하도 많이 우려진 탓에 더 나올 것이 없어 보이지만 피에르 모렐과 숀 펜이 함께한다니 왠지 모를 기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직접 보고 확인하는 것 만큼 속 편한 결정도 없으리라. 16일 개봉.

7. <생 로랑>

생 로랑 메인 포스터

▲ 생 로랑 메인 포스터 ⓒ (주)팝엔터테인먼트


최초로 여성의류에 바지정장을 도입하고 엄숙했던 패션쇼 무대에 음악을 사용했으며 현대미술작품을 패션에 적용하는 등 '처음'이라는 타이틀을 유독 많이 소유한 패션 혁명가. '라이프'지는 이브 생 로랑의 첫 번째 컬렉션 이후 '샤넬 이후 최고의 디자이너'라는 격찬을 남기기도 했다. 갓 약관을 넘긴 나이에 프랑스 최고의 패션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의 컬렉션을 총괄했고 이후 독자적인 브랜드 YSL을 창업하여 프랑스, 나아가 전 세계 패션을 선도한 이브 생 로랑은 프랑스의 자랑이었다. 2008년 6월 1일 이브 생 로랑이 타계한 후 프랑스 영화계가 그의 전기영화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 건 당연한 일이다.

<생 로랑>은 전기영화다. 지난해 자릴 레스페르의 <이브 생 로랑>이 피에르 베르제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제작된 바 있지만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부족함이 많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오는 4월 16일 개봉하는 <생 로랑>은 베레트랑 보넬로의 작품으로 먼저 개봉한 <이브 생 로랑>보다 한 층 화려해진 캐스팅을 자랑한다. 가스파르 울리엘이 이브 생 로랑을 연기했고 재벌가 딸로 유명한 레아 세이두와 3대 째 영화인으로 알려진 루이스 가렐이 공연한다.

8. <아리아>

아리아 티져 포스터

▲ 아리아 티져 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앞서 언급한 <생 로랑>의 루이스 가렐이 3대째 영화인 집안 출신이라면 <아리아>는 2대째 영화인인 두 여인의 협주라 할 수 있다. 그것도 감독과 배우로서다. 이탈리아의 명감독 다리오 아르젠토의 딸로 배우이자 각본가, 영화감독까지 다재다능한 재능을 뽐내는 아시아 아르젠토가 연출을 맡았고, 샤를로뜨 갱스부르가 주연으로 출연했다.

아홉 살 소녀가 인기 배우인 아버지와 유명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의 관심에서 소외되며 벌어지는 <아리아>의 이야기는 자연히 아시아 아르젠토와 샤를로뜨 갱스부르, 그녀들의 실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유명한 부모를 둔 미녀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자랐을까? 벌써부터 궁금하지 않은가? 4월 23일 확인할 수 있다.

9.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메인 포스터

▲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메인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무슨 말이 필요한가. 한국에서 촬영해 간 그 영화다. 23일 개봉한다.

10.  <스틸 앨리스>

스틸 앨리스 메인 포스터

▲ 스틸 앨리스 메인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줄리안 무어에게 오스카를 안긴 바로 그 영화다. 그녀는 이 영화에 앞서 <부기 나이트>, <애수>, <파 프롬 헤븐>, <디 아워스>로 네 차례나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에 올랐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드디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그녀의 수상은 마리옹 꼬띠아르, 로자먼드 파이크, 펠리시티 존스, 리즈 위더스푼 등 어느 때보다 쟁쟁한 후보들과의 경합 끝에 얻어진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개봉은 30일.

내가 뽑은 3월 최고작: <버드맨>

버드맨 국내 메인 포스터

▲ 버드맨 국내 메인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지난 3월 5일 개봉해 3월 31일까지 19만 9181명의 관객을 동원한 <버드맨>이 내가 꼽은 3월 최고의 작품이다. <위플래쉬>를 비롯해 좋은 작품이 제법 있었으나 특별히 형식에 있어 <버드맨>이 이룩한 경지는 비할 바 없는 것이었다.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풍자성이 매우 강한 블랙코미디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실제로 영화는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 평단과 대중까지를 풍자하는데 그 수위가 깊지 않다고는 하지만 대상은 그야말로 전방위적이어서 어떤 의미로는 할리우드가 도달할 수 있는 풍자의 극단에 서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촬영과 음악, 편집과 조명 등에서도 참신한 스타일이 돋보였는데 파격이 자취를 감춘 한국 영화계가 모범으로 삼아야 할 작품이 아닌가 한다. 별, 네 개 반.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김성호 기대작 최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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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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